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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성 문제에 대한 연기론적 접근*
-물리학과 심리철학의 인과성 문제를 중심으로-
玄 南 奎**·梁 英 雄***
│목차
│Ⅰ. 머리말
│Ⅱ. 동시인과와 연기론
│ 1. 동시인과의 가능성
│ 2. 연기 공식에 나타난 俱起性
│Ⅲ. 물리학과 심리철학에서의 인과성 문제
│ 1. 물리학에서의 인과성 문제
│ 2. 심리철학에서의 인과성 문제
│ 1) 존재론적 물리주의는 타당한가?
│ 2) 심신문제와 연기론
│Ⅳ. 맺는말
Ⅰ.머리말
지난 몇 십년 동안 신과학 운동이 활발하게 논의되면서 동양 사상이 새롭게 조명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서양 철학이나 서양 과학에서 제기되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에 동양철학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적용시켜 문제점을 해결하는 커다란 성과를 얻지는 못하였다. 물론 산업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학문 분야에서도 분업화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 현실에서, 한 사람이 어떤 대상에 관한 논의를 넓고 깊이 있게 한다는 것아 과거에는 가능했었다 하더라도 지금은 매우 어렵운 실정이다. 그러나 여러 분야의 전공자들의 한 주제에 관한 공동 연구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바람직하기는 하나 현실적으로 큰 성과를 이룩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신과학 운동과 비슷한 취지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해 나가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이와 관련된 분야의 기초 연구로서 필자중 한 사람은 동역학에서 제기되는 인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흄의 인과관계에 관한 조건 중에서 원인은 결과보다 앞선다 는 것을 결과가 원인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라고 수정 제의함으로써 인과성 개념에 동시 인과 를 포함시킬 것*
이 논문은 1999년 8월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제3회 한민족 철학자대회의 자유 제1분과에서 인과(因果)와 연기(緣起) 란 제목으로 발표된 논문의 제목과 내용을 수정한 것임. 논문 발표 후의 종합토론에 참가하여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제주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 현남규, 인과성 문제와 연기(緣起) , 과학철학 제2권 제1호(서울: 한국과학철학회, 1999), pp.39-64 에서 이러한 논의를 하였다.
을 제안한 바 있다. 또한 필자들은 물리학에서 제기되는 인과성 문제를 풀기 위하여서는 계기인과와 동시인과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며, 타키온 교환을 통한 입자들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는 동시인과의 개념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가 될 수 있다는 것) 현남규·양양웅, 동시인과와 타키온 교환을 통한 물질의 상호작용 , 과학철학 제5권 1호 (서울: 한국과학철학회, 2002), pp.87-110.도 검토한 바 있다.
이 논문에서는 물리학이나 심리철학등에서 제기되는 인과성 문제를 불교철학의 연기의 개념과 관련시켜서 논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여 보고자 한다.
우선 흄의 인과관계의 조건들 중 하나를 수정한 인과성 개념이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타키온을 도입할 경우 기존의 인과성 개념만으로는 해석하기 곤란한 물리 현상들을 동시 인과 로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이 논문에서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그 다음에 불교의 연기 공식 에는 이러한 수정된 조건이 모두 내포되어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음도 고찰하고 나서 물리학의 여러 분야에서 에서 제기된 인과성 문제를 검토한다.
특히 심리철학의 심신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서 존재론적 물리주의 가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이러한 관점이 무에서 우주가 탄생할 수도 있다 는 현대 우주론에서 볼 때 무 의 설정은 실체의 가정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에 물리적인 실체를 바탕으로한 물리주의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보인다. 석가가 그 당시의 형이상학적 견해들에 대하여 침묵하였다는 무기설 이나, 현상계의 모든 존재의 공간적이며 시간적인 상관관계를 밝히는 연기설 속에는 오늘날 심리철학에서 해결해야 할 심적 인과의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는 것도 밝힌다. 또한 연기설에서는 존재 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심리철학에서의 존재론과 관련된 심적 인과 문제와 유사한 논의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제시한다.
Ⅱ. 동시인과와 연기론
1. 동시인과의 가능성
물리학에서 제기되는 인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계기인과와 동시 인과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필요한데, 타키온 교환을 통한 입자들의 상 호작용을 논함으로써 동시인과의 개념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이 절에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흄은 어떤 특정의 원인이 특정의 결과를 필연적으로 낳는다는 인과의 필연 적 연관성 까지는 부인하였으나, 원인이 결과보다 앞선다 는 것은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흄(Hume)은 모든 대상이 서로 원인 또는 결과가 될 수 있으므로 실제로 인과관계를 결정하기 위해 서는 8개의 일반적인 규칙을 정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보았는데, 오늘날에 있어서는 대개 다음의 네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보고 있다. (1)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불변하고 일정한 것이어야 한다. 언제든지 동일한 원인이 있을 때에는 동일한 결과가 불변하게 또는 일정하게 일어나야 한다. (2) 원인과 결과는 공간적으로 근접된 것이어야 한다. 두 사건이 멀리 떨어졌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인과관계를 갖는 한 공간적으로 어떤 접근이 있어야 한다. (3) 원인과 결과는 시간적 성격을 가져 야 한다: 원인은 결과보다 앞서며, 원인과 결과 사이의 시간적 사이가 오래다고 할지라도 일의(一 義)적인 시간의 계속 사이에 일어난 것이어야 한다. (4)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비대등성을 띠어야 한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뒤집을 수 없다고 본다. (Hume, D., A Treatise of Human Nature, ed. by L.A. Selby-Bigge ( Hong Kong: Oxford University Press., 1978), pp.173-176; 이준 호 역, 오성에 관하여 (서울: 서광사, 1994), pp.186-88; 김준섭, 과학적 인과성의 현대적 의에 관한 연구 , 인문사회과학 논문집 제12집 (서울: 서울대학교, 1966 ), pp.225-258에서 인용). 이 제시한 4 가지 조건들이 인과관계에 관한 논의에서 수정될 수 없지는 않다고 볼 수 있으므로 그 세 번째의 조건 가운데의 원인은 결과 보다 앞선다 는 것을 결과가 원인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라고 수정하여서도 동역학에서의 인과성 위배 문제에 관한 논의가 가능하다. 고전 역학이나 고전전자기학 등에서 논의되는 많은 물리 법칙은 시간 에 대해서 대칭인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인과성 문제에 관해서는 원인 이 결과보다 앞선다 고 함으로써 원인과 결과의 발생 시간 순서에서 반대 칭의 관점을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것에 관한 설명은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만약 인과 문제에 있어서 대칭인 경우를 생각한다면, 결과가 원인보다 먼저 발생하는 경우도 고려해 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초광속 로렌츠 변환을 고려한다면, 어떤 초광속 관 찰자는 이 경우에도 원인과 결과가 동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타키온 물리학을 도입할 수 있다면 물리학 영역에서도 대칭관계에 의한 인과성 논의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예컨데, 맥스웰(Maxwell) 방정식은 시간에 대하여 대 칭) Rohrlich, F. Classical Charged Particles,( Addison-Wesley(Reading, Massachusetts, 1965), pp.248-251. 이므로 과거에서 미래로 뿐만 아니라 미래에서 현재 및 과거로 신호 가 전파하는 것도 고려해야 하나 후자의 경우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인과의 발생 순서에 있어서 반대칭 관계만을 취하는 것과 과성 문제가 발생되는 것이 서로 무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지는 바, 인과성에 대한 대칭 관계에 의한 논의도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대칭 관계와 관련시킬 수 있는 동시인과의 예로서 수식을 이용하지 않고 타키온을 도입하여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경우 몇 가지만을 제시하여 보이
고자 한다.
우선 당구공과 같은 두 입자가 탄성 충돌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질량 중심 좌표계에서 보면 그것들은 운동량만을 교환하는 바, 교환되 는 것이 실제의 입자라면 에너지 교환 없이 운동량만을 교환할 수는 없다. 따라서 탄성 충돌시 교환되는 입자는 타키온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리학계에서는 타키온이 실재하는 입자로서 받아들여지지는 못하고 있으므로 장론의 입장에서 탄성 충돌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가상 입자(virtual particle)로서 타키온의 존재를 논박할 이유는 아직 없다.) Jue, C., Soluble Tachyon Field Model and the Equivalence Theorem , Phys. Rev. D8: (1973), pp.1757-1763.
그리고 타키온의 방출이 제어할 수는 없고 자발적으로 방출되는 현상이다 라고 한다면 인과성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Recami, E., Classical Tachyons and Possible Applications: A Review , INFN/AE-84/8, (Italy: Insituto Nazionale Di Fisica Nucleare, 1984), p.72.
는 것을 고려하면 상호작용 할 때 매개되는 가상 입자로서의 타키온의 역할까지 부정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탄성 충돌할 때 매개되는 타키온들의 속도가 무한대가 될 수 있어서 그것들이 방출되고 흡수되는 시간의 간격을 무시할 수 있으므로 두 입자들은 동시에 상호작용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에다 인과 문제를 적용한다면 동시 인과 라고 할 수 있다.
전자기학의 경우에는 쿨롱(Coulomb) 법칙과 두 개의 하전입자가 접근하는 아주 간단한 경우를 예로 들어 이 문제를 설명해 보고자 한다. 쌍생성의 원리에 의하여 갑자기 어느 지점에서 서로 반대되는 부호의 전하를 띤 입자가 광자로부터 생겨난 후에 짧은 시간이 지난 다음에 어느 정도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때 그곳으로부터 1광년보다 멀리 떨어진 별에 전기를 띤 입자가 있다면, 매우 작기는 하겠지만 그 시각에 쿨롱의 힘) 정전기학에서는 두 입자들이 전하를 띤 상태로 일정한 거리에 떨어져 있으면 전기적인 힘이 작용되는데 쿨롱 법칙을 쓰면 이러한 전기적인 상호작용을 시간에 의존하지 않는 방법으로 기술할 수 있다. 만약 둘 중의 어느 하나라도 전하를 띠지 않는다면 쿨롱 법칙은 성립되지 않는데, 이때에 두 전하들의 전하량이 많거나 적은 것 등에는 무관하고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취급된다. 예를 들면, 한쪽의 전하가 매우 많고 다른 쪽의 전하가 무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두 입자들의 질량 중심을 기준으로 하여 서로 밀거나(서로 같은 부호의 전하를 띨 경우) 당긴다( 서로 다른 부호의 전하를 띨 경우)고 해석해야지 가벼운 쪽이 무거운 쪽으로 끌린다거나, 그것에서 멀어진다고 해서는 안된다.
이 그 별에 있는 입자에 바로 작용하는 것이지 1년이 지난 후에 작용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쿨롱 법칙에서는 시간에 의존하는 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론에 의하면 신호는 빛보다 빨리 전
달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는 없다. 이것도 타키온을 도입하여 설명한다면 이해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타키온은 무한한 전파 속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또한 이곳에서 쌍생성된 입자들과 별에 있는 입자들 사이에 동시 상호작용이 가능하므로 동
시 인과 의 적용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자기학에서 2체 문제로 알려져 있는, 서로 접근하고 있는
같은 부호의 전하를 띠고 있는 두 입자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서로 가
까워짐에 따라 그 두 입자들은 감속되므로 전자기파를 내게 된다. 이때
어느 한 입자만이 전자기파를 내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전자기파를 발생시키며, 또한 상대 입자가 낸 전자기파를 서로 흡수한
다. 즉, 전자기파가 어느 한 입자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두 입자가 동시에 대칭적으로 발생된다고 해석된다.) 전자파의 발생과 흡수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경우는 매우 간단한 경우로 볼 수 있으나 특수
한 조건을 주었을 때에만 복잡한 미분방정식의 해가 수학적으로 존재한다( Driver, R. D.,
Can The Future Influence The Present? , Phys. Rev. D19 (1979), pp.1098-1107; Hoag,
J. T., and R. D. Driver, A Delayed-Advanced Model For The Electrodynamics
Two-Body Problem , Nonlinear Analysis, Theory, Method & Applications 15 (1990),
pp.165-184 등에서)는 정도의 수준에서 연구되고 있다.
이를 인과
적으로 해석한다면 동시 인과 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양자역학의 경우에서는, 1935년에 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이 제
기한 이른바 EPR 역설 ) Einstein, A., B. Podolsky, and N. Rosen, Can Quantum-Mechanical Description of
Physical Reality be Described Complete , Phys. Rev. 47 (1935), pp.770-80.
에 대하여 런던 대학의 보옴이 제안한 실험) 영(zero)의 스핀을 가진 입자 체계가 있을 때, 이 두 입자들의 스핀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어떤 방법으로 서로 떼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그 때 두 입자들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진행한다. 스핀의 방향은 자기장으로 결정할 수 있으므로, 단 한 개의 전자만이 자기장(스
테른-겔라크 기기)을 통과할 때, 그것은 좌·우 어느 한 쪽의 스핀을 가지고 나온다는 것
을 알 수 있다고 하자. 다음에 두 입자 체계를 분리하여 한 입자를 위나 아래로 스핀을 줄
자기장을 통과시킨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에 입자가 위 방향의 스핀을 가지고 나온다고 하
면, 그 때 나머지 입자는 아래 방향의 스핀을 가지게 됨을 금방 알 수 있다. 즉 나머지 입
자를 따로 관찰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스핀이 자기장을 통과하는 쌍둥이 입자의 것
의 반대임을 알기 때문이다.
에서, 어떤 지역에서 발생한 입자들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여 빛
신호로써 연결될 수 없는 곳에 도달한 쌍둥이 입자들이 어떻게 멀리 떨
어진 다른 쪽 입자가 특정한 방향의 스핀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가 하는 것은 초광속 신호의 전달을 부정하는 상대성 이론만을 적용시
킨다면 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EPR 효과는 기존의 사고 방식
과는 달리 어떠한 정보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EPR 실험에서 두 입자가 서로 신
호로 연결되어 있다면 그 신호는 광속보다 빠른 타키온의 교환에 의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서는 주커브가 춤추는 물리 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Zukav, G.,
The Dancing Wu Li Masters (1979). (김영덕 역, 춤추는 물리 (서울: 범양사, 1990), pp.
392-433).
그렇다면 이 또한 동시 인과 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몇 가지 경우에 대한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날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고 있는 물리학이 자연 현상을 모두 만족스럽게 설명하
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단정적으로 주장할 수는 없지만, 타키온의
존재가 부정되고 있다고 해서 빛보다 빠른 입자가 존재해서는 안될 분
명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 타키온과 물질과의 상호작용
이 확실하게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험에 의하여 그것이 아직 검증
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타키온의 존재를 부정할 만한 이유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실험 장치를 설치할 수 있는 자기홀극(magnetic
monopole)도 아직까지 실험에서 발견되고 있지 않고 있는데, 이 경우도
실험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만을 고려하면 타키온의 경우와 마찬
가지 입장이다. 그러나 그것의 존재 자체가 물리학자들에 의하여 타키
온처럼 부정되고 있지는 않고 있다.
2. 연기 공식에 나타난 俱起性
이 절에서는 앞에서 제시된 수정된 인과성 개념과 불교철학의 중심
사상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연기의 개념을 서로 관련시킬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초기 경전에 등장하는 연기(緣起)란 말의 빨리(Pali)어 어원은
paticcasamupp da 이다. paticca- sam-up da라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이
복합어는 전(前)불교적인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는 불교 고유의 용어이다.
Paticca 는 연(緣)해서 란 의미이며, samup da 는 일어남(起) , 함께 일어남
(集起) 또는 발생 , 생성 , 생기 의 뜻을 지닌다. 그러므로 연기란 조건적 발
생 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전재성, 초기 불교의 연기성(paticcasamupp da) 연구 ,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서울: 동국대
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 1996), p.37.
그리고 초기 경전에 등장하는 가장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연기에 관한 정의는 빨리어 문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재성 박사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이것이 있을 때 이것이 있게 되며, 이것이 생겨나므로 이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을 때 이것이 없게 되며, 이것이 소멸하므로 이것이 소멸한다.) 상게서 p.42.
Imasmi sati ida hoti, imassa upp d ida uppajjati.
Imasmi asati ida na hoti, imassa nirodh ida nirujjhati.
[Majjhima Nik ya 1. 262-64; Sa yutta Nik ya 2. 28, 70, 96; Ud na, p.2.
[Kalupahana, David J., Causality: The Central Philosophy of Buddhism, (Honolulu: The
Univ. Press of Hawaii. 1975), p.90 에서 재인용.]
연기란 말 중에 sam 이 무시간적 상의성(相依性)을 내포하고 upp da 가
시간적 인과성을 내포하고 있기) 최봉수, 원시불교의 연기사상 연구 (서울: 경서원, 1991), p.98.
때문에 연기에는 연이어 일어남(繼起) 와
함께 일어남(俱起) 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순서대로 일어
나는 두 법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인데) 상게서, p.131.
, 연기의 발생 원
리에는 계기성과 구기성의 양면이 갖추어져 있어서 인과론적인 종적 관계로의
해석은 계기성에 착안한 것이고 인연론 중심의 논리 관계로의 해석은 구기성
에 착안한 것으로 보일 뿐이다.) 상게서, p.266.
그런데 한문 번역본에서는 연기에 관한 정의가 이것 을 이것(此) 와 저것
(彼) 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 …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멸한다.) 잡아함경Ⅰ (서울: 동국대학교 부설 동국역경원, 1989), p.411,
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 …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
[ 高麗大藏經 18권, (서울: 동국대학교, 1963). p.846; 大正藏 2권, (부산: 민족문화, 1993), 100a.]
여기서 빨리어 문구와 한문으로 나타낸 연기 공식의 해석상의 차이점을 보
도록 하자. 빨리어나 산스끄리뜨 문장에서는 동일한 대명사의 반복은 분배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예컨대, asya -asya 은 이것-저것 , aus-aus 는
이것-저것 ), 여기에서 나오는 이것 들은 내용적으로 인접한 것들의 분배적인
의미로 쓰여졌다고 볼 수 있다.) Fahs, A.(1989), Grammatik des Pali, Verlag Enzyklop die(Lepzig), p. 88.(전재성, 초기 불
교의 연기성(paticcasamupp da) 연구 ,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서울: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
철학과, 1996)., p.44 에서 재인용.)
그러나 관찰자 가까이 있는 서로 다른 두
사물이나 사건을 지칭하여 이것은 이렇고 이것은 이러하다 고 할 수 있듯이,
여기서 이것 들은 단일한 사물이나 사건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둘이
다 같은 단어들이기 때문 asya -asya 은 이것-이것 , aus-aus 는 저
것-저것 등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한문 경전에서는 연기
의 공식에서 이것(此)-저것(彼) 으로 번역함으로 인하여 이와 같이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졌다. 따라서 한문으로 표현된 연기 공식 에서는 관찰자와
모두 가까이 있거나, 모두 멀리 떨어져 있는 사물·사건들의 경우의 인과관계
를 나타내기보다는 가까이 있는 것과 멀리 있는 것들간의 관계만으로 표면상
으로 나타나 보이므로, 이것 에는 원인 , 저것 에는 결과 를 대응시켜서 연기
공식 을 인과 로 해석하였다. 그 결과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대하여서도 대칭
관계보다는 반대칭 관계에 의한 논의를 하게끔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문 경전에 나타나는 연기의 공식 에 양면성이 전혀 없다고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불교 학자들은 그것에 양면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와 같이 빨리어나 산스끄리뜨어로 표현된 연기 공식 에서는 다른 곳에서
보다는 분명하게 반대칭 관계는 물론 대칭 관계에 의한 해석도 동시에 할 수
있음을 보았다. 이는 인과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도 연기 와 유사한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다면 새로운 관점에서 그것에 관한 논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보여준다.
그런데 위와 같은 연기 공식만으로는 연기의 의의가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시경전 상에서도 이것에 대하여서는 여러 가지 지수(支
數)의 나열에 의하여 형식적인 설명은 하고 있으나 연기 공식의 의의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후세 논사들은 연기란 모든 것
은 서로서로 인(因)이 되고 연(緣)이 되어 생기(生起)하는 것이라고 하
였다. 此有故彼有 라는 것의 의미는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어야 하
고, 또 그와 동시에 저것이 있으려면 이것이 있어야 한다 는, 이것과 저
것이 존립에 필수 조건이 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은 한
가지로 고립하여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서, 예컨대 A가
인(因)이 되려면 B, C, D 등은 연(緣) 즉 조건이 되며, 또 B가 인이 될
때에는 A, C, D 등은 연이 되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무
라고 하는 것은 공간적인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을 지적한 것인 동시
에, 생·멸이라는 것은 모든 존재의 시간적 상의상관성을 말하는 것으
로 보아서, 此有故彼有 는 현상계의 모든 존재의 공간적 동시적 상관
관계를 밝히는 것이요 此起故彼起 는 시간적으로 다른 시기에 연이어
서 일어나는 상의상관성을 밝히는 것이라고 김동화 박사가 언급하였던
것) 김동화, 원시불교연구 (서울: 선문출판사, 1983), pp.60-3.
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연기의 이치는 구체적으로는 12지의 수로써 표현되고 있어서
12연기라고 불리어 지고 있으나 이는 북방으로 전래된 불교에서의 이야
기이고, 남방으로 전래된 불교에서는5지, 6지, …11지, 12지 등 다수의
표현 방식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 지수의 많고 적음에는 그렇게 깊은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분별론에서 전형적인 12연기론과 아비달마적인 24조건론의 통일을 시
도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24조건(24緣論): 근본조건(因緣), 대상조건(所緣緣), 영향조건(增上緣), 공간근접조건(無間
緣), 시간근접조건(等無間緣), 병발조건(俱生緣), 상호조건(相互緣), 의존조건(依緣), 친의
조건(親依緣), 선행조건(前生緣), 후행조건(後生緣), 반복조건(習行緣), 행위조건(業緣), 이
숙조건(異熟緣), 자양조건(食緣), 제어조건(根緣), 명상조건(禪緣), 수행조건(道緣), 연합조
건(相應緣), 비연합조건(不相應緣), 현존조건(有緣), 부존조건(不存條件), 이거조건(離去
緣), 불리조건(不離緣). 그리고 분별론의 간략화된 분류를 예로 들어보자
㉮ 무명(無明)⇒형성(行): 병발조건(俱生緣), 상호조건(相互緣), 의존조건(依緣), 연합 조건(相應
緣), 현존조건(有緣), 불리조건(不 離緣)과 인연(因緣)의 7가지 관계. ㉯ 형성(行)⇒의식(識): 병
발조건(俱生緣), 상호조건(相互緣), 의존조건(依緣), 연합조건(相應緣), 현존 조건(有緣), 불리조건
(不離緣)과 행위조건(業緣), 자양조건(食緣)의 8가지 관계. ㉰ 의식(識)⇒명색(名色): 병발조건(俱
生緣), 상호조건(相互緣), 의존조건(依緣), 연합조건(相應緣), 현존 조건(有緣), 불리조건(不離緣)과
제어조건(根緣), 자양조건(食緣), 영향조건(增上緣)의 9가지 관계. ㉱ 명색(名色)⇒감역(六入): 병
발조건(俱生緣), 상호조건(相互緣), 의존조건(依緣), 연합조건(相應緣), 현존 조건(有緣), 불리조건
(不離緣)과 어떤 것은 영향조건(增上緣)과 어떤 것은 자양조건(食緣) 의 7가지 관계. ㉲ 감역(六
入)⇒접촉(觸): 병발조건(俱生緣), 상호조건(相互緣), 의존조건(依緣), 연합조건(相應緣), 현존 조건
(有緣), 불리조건(不離緣)과 제어조건(根緣), 자양조건(食緣), 영향조건(增上緣)의 9가지 관계. ㉳
접촉(觸)⇒감수(受): 병발조건(俱生緣), 상호조건(相互緣), 의존조건(依緣), 연합조건(相應緣), 현존
조건(有緣), 불리조건(不離緣)과 자양조건(食緣) 의 7가지 관계. ㉴ 감수(受)⇒갈애(愛): 병발조건
(俱生緣), 상호조건(相互緣), 의존조건(依緣), 연합조건(相應緣), 현존 조건(有緣), 불리조건(不離
緣)과 명상조건(禪緣), 제어조건(根緣)의 8가지 조건. ㉵ 갈애(愛)⇒취착(取): 병발조건(俱生緣),
상호조건(相互緣), 의존조건(依緣), 연합조건(相應緣), 현존 조건(有緣), 불리조건(不離緣)과 인연
(因緣)의 7가지 관계. ㉶ 취착(取)⇒존재(有): 병발조건(俱生緣), 상호조건(相互緣), 의존조건(依
緣), 연합조건(相應緣), 현존 조건(有緣), 불리조건(不離緣)과 수행조건(道緣)의 7가지관계. ㉷ 존
재(有)⇒태어남(生): 친의조건(親依緣)만의 1가지 관계. ㉸ 태어남(生)⇒늙고 죽음(老死): 친의조
건(親依緣)만의 1가지 관계.
(座佐木現順, 阿毘達磨思想硏究, 156. (전재성, 초기 불교의 연기성(paticcasamupp da)
연구 ,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서울: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 1996, p.88 에서
재인용))
, 12연기의 대부분의 토대 속성) 화살표 앞에 있는 것이 토대 속성을 말한다. 예컨대 무명(無明)은 형성(行)의 토대 속성이
다.
에 관계하
는 조건인 병발조건(俱生緣), 상호조건(相互緣), 의존조건(依緣), 연합조
건(相應緣), 현존조건(有緣), 불리조건(不離緣)이 시간적으로 볼 때 동시
적 관계를 나타내고 나머지는 모두 계기적 관계를 나타낸다.) 전재성, 초기 불교의 연기성(paticcasamupp da) 연구 ,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서울: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 1996), p.88.
어원적
으로 볼 때에도 인(因/hetu)은 일방적 진행을 나타내는 인과관계로 계기
적 관계이고, 연(緣/pratyaya)은 일방적 진행이 아니라 일방적 진행과
함께 귀환을 의미하기 때문에 상호적 관계를 나타낸다.) 상게 논문, p.97.
이렇게 12연
기의 각 지분에 대하여 보면, 순서를 지키면서 요소들이 발생(繼起)하나
그것들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구기(俱起)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데, 식
과 명색 지분은 계기성과 구기성의 양면성을 그 관계 속에 지니고 있음
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12연기에서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심적인 것도 함께 논의하고 있으
므로, 여기서 이러한 양면성을 보이는 것은 심리철학의 심적 인과의 논
의에 있어서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Ⅲ. 물리학과 심리철학에서의 인과성 문제
1. 물리학에서의 인과성 문제
우선 물리학에서 고전역학이나 양자역학 분야에서 제기되는 인과성
문제에 관하여 간단하게 고찰해 보고자 한다.
동역학 이론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경험 가능한 사실(초기 상태)과 또
하나의 경험 가능한 사실(말기 상태)을 합리적으로 관련 지움으로써 현
상 세계에 대한 예측 또는 설명을 가능케 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데, 이러한 동역학 분야에서 인과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고전 역학에서 다루어지는 선형이거나 비선형 미분방정식은 모두 결
정론적으로 볼 수 있으나, 두 개의 아주 비슷한 초기 조건을 가해 주었
을 경우에는 각각의 해는 아주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선형방정식의 경
우에는 비슷한 초기 조건을 주면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비하여
, 비선형의 경우에는 두 개의 아주 비슷한 조건을 주더라도 판이하게
다른 해들을 얻게 된다. 특히, 비선형 동역학의 결정론적 혼돈 현상을
보이는 계는 단기적인 예측은 가능하나 장기적인 예측이 곤란한데, 이
러한 게에서 미래의 상태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면 우리가 기술하
고 있는 물리 이론이 현실 세계를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고전 역학과 함께 고전 물리학의 초석이 되는 고전 전자기학 이론에
서도 인과성 문제는 제기된다. 복사 반작용을 고려한 하전입자의 운동
방정식에서는 하전입자가 외부의 힘이 정지한 그것에 작용하기도 전에
미리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선가속(preacceleration) 현상이) Rohrlich, F. Classical Charged Particles,( Addison-Wesley(Reading, Massachusetts),
1965).. p.177.
나타난다.
즉, 가해 준 힘을 원인이라 하고 그에 따라 나타나는 가속 운동 상태를
결과라고 한다면, 원인보다 결과가 먼저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선가속 현상을 제거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이론 모형을 세우는 등) Sorg, M., Non-local generalization of the Lorentz-Dirac Equation and the Problem of
Runaway Solutions , Z. Naturforsch 31a (1974), pp.664-665.
여러 학자들이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기대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이런 인과성 위배 현상에 대하여 여
러 가지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매우 짧은
시간(약
┌───┐
│10^-2 │
│3 │
└───┘
초 정도) 이내에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이것은 실험적으로
규명할 수 없는 영역이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도
본질적으로 그 문제에 대하여 해결을 본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리고 특수 상대론에서 논의되는 공간꼴 영역(spacelike region)에서
는 로렌츠(Lorentz) 변환에 대하여 시순의 불변성이 성립하지 않기 때
문에, 어떤 초광속 변환된 좌표계에서는 변환되기 전의 좌표계에서 원
인이었던 사건이 결과였던 사건보다 나중에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
러한 사실은 원인이 원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것이 결과보다도
시간적으로 앞서야 한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
고 해석할 수 있는 아인슈타인 인과율 에 위반되므로 오늘날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빛보다 빠른 입자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것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지난 1962년에 수다르산
(Sudarshan) 등이 초광속 입자가 존재해서는 안될 이유가 없다는 내용
의 논문) Bilaniuk, O. M. P., V. K. Desphande, and E. C. G. sudarshan, Meta Relativity , in
American Journal of Physics 30 (1962), pp.718-723.
을 발표한 이래, 지난 80년대까지는 많은 물리학자들이 타키
온에 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타키온 물
리학자 들조차 인과성 위배 문제에서 원인과 결과의 시순만은 유지시
켜 보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양자역학은 근본적으로 결정론적 이론 체계라고 볼 수 있으나 그것의
바탕이 되는 불확정성 원리로 인하여 질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
확히 결정할 수 없으므로 엄밀한 인과율을 적용시키는 것을 어렵게 하
였다. 그런데 대상에 대해 어떠한 관측을 수행하는 행위를 사건 이라고
하고, 대상을 서술하는 것을 상태 라고 하면, 상태와 상태 사이에는 결
정론적인 관계가 성립하나, 사건과 사건 사이에는 그것이 성립하지 않
기 때문에 두 개의 사건과 사건의 그러한 관계를 현실세계 안에서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대상에 대하여 어떤 관측을 수행하는 행위
즉, 사건이 그 대상을 서술하는 상태에 인과적으로 영향을 주는가는 사
건 과 상태 사이의 인과관계라고 볼 수 있는데, 사건 과 상태 사이의
인과관계를 고찰할 경우 사건이 상태에 미치는 영향이 아인슈타인 인
과율 을 위배하면서 전달될 수도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장회익, 과학과 메타과학 (서울: 지식산업사, 1991), p.133.
뿐만 아니라 블랙홀 근방에서 물리법칙을 적용할 수 없다거나, 초기
우주에서 시간이 소멸됨으로 인하여 물리법칙을 적용시킬 수 없는 것,
그리고 S 행렬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블랙박스(black box)내부에 관한
물리적인 과정을 알 수 없는 것 등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론 물리
학의 여러 분야에서 인과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심리철학에서의 인과성 문제
1) 존재론적 물리주의는 타당한가?
이 절에서는 심리철학의 심신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서 존재론적 물리주의
가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 적절한지 여부를, 무에서 우주가 탄
생할 수도 있다 는 현대 우주론의 한 관점을 바탕으로 하여 검토해 보고자 한
다.
심적 인과관계는 심적 사건이 물리적 사건을 초래하는 그런 경우뿐만
아니라 물리적 사건이 심적 사건을 초래하는 경우, 그리고 심적 사건이
또 다른 심적 사건을 초래하는 경우까지 내포하는 것이므로) 김재권, 수반과 심리철학 (서울: 철학과현실사, 1994), p.314.
여기서는
후자의 경우는 제외하고 전자의 경우만을 주로 고찰하고자 한다. 그런
데, 심신 인과관계의 문제는 심신 문제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며 심신
관계에 대한 그 어떤 이론도 그것이 심적 인과관계에 대한 만족할 만한
해명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결코 적절한 이론이라고 간주될 수 없는
바,) 상게서, p.316.
예컨대 두 원인의 문제) 예컨대 어떤 심적 속성 M을 지닌 사건이 원인이 되어 어떤 물리 사건 E를 야기 시켰다고
하자. 이때의 인과관계가 심적 인과일 수 있으려면, 이 때의 원인 사건이 갖는 심적 속성
M에 의해 결과 E가 야기되었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물리주의를 인정하여 물리
영역의 인과적 폐쇄성 원칙(the causal closure of the physical domain) 을 받아들인다면,
물리 사건인 결과 E는 물리적인 원인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물리적인 인과
관계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그 원인이 되는 사건은 그것이 지니고 있는 물리 속성에 의해
결과 E를 야기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 때에 물리적인 원인 사건이 지닌 물리 속성을 P 라
고 하자. 그러면 이 때 동일한 물리 사건 E는 심적 속성 M을 지닌 심적 사건과, 물리 속성
P를 지닌 물리 사건의 둘 모두를 두 원인으로 가지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 때 E는 심
적 속성 M에 의해 야기되었다고도 할 수 있고, 물리 속성 P에 의해 야기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 이 때 이 두 원인들 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특히 동일한 결과 E가 심적 속성
M에 의해서도, 그리고 물리 속성 P 에 의해서도 야기되었을 수 있다면, 두 속성 M과 P 사
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심신 이론들은 이러한 두 원인간의 관계를 물리주의와
조화를 이루면서 설명하려는 시도들로 볼 수 있다.(백도형, 정신 인과와 보편자 ,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서울: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1995), p.7에서 인용)
에서 문제점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고 보여진다.
심신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다루기 힘든 것으로 판명되었던 부분
은 심적 사건과 물리적 사건이 접속되는 부분에 대한 본성을 밝히는 문
제로 볼 수 있다. 유물론자는 비일관적으로 심적 사건이 물리적인 것이
라고 주장하고 있고, 관념론자는 비일관적으로 물리적 사건이 심적인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또한 이원론자는 어떤 심적 사건도 물리
적인 것이 아니고, 어떤 물리적 사건도 심적인 것이 아니라고 올바르게
주장하나 접속 문제에 대해서는 틀리게 그 문제가 존재한다고 생각했
다.) 데카르트적 인과적 이원론 아래에서는, 물리적 현상에 관한 어떤 완결적인 물리적 이론도 있을 수
없음이 추론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물리적 선행자와 법칙만에 호소해서는 인과적으로 설명할 수 없
는 그런 물리적 발생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적 상호작용론에 의하면, 물리적 세계에 관한
어떤 포괄적 이론도 비물리적인 인과적 요인과 그 요인의 작용을 지배하는 법칙을 지칭하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데카르트적 상호작용론이 물리적 영역의 인과적 폐쇄성을 파괴한다
고 말할 수 있다.(김재권, 수반과 심리철학 (서울: 철학과현실사, 1994, p.353에서 인용)
그러나, 완전히 심적인 것도 아니고 완전히 물리적인 것도 아닌
둘 사이를 연결하는 형이상학적 시멘트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Priest, S., Theories of the Mind, Penguin Books(1994). ( 박찬수 외 옮김, 마음의 이론
(서울: 고려원, (1995), pp.297-99.
그리고 심리 문제에 관한 오늘날의 사유를 지배하는 존재론적 그림은
데카르트적 그림과 현저하게 다르다. 두 갈래로 쪼개진 세계라는 데카
르트적 모델에서, 실재물과 그것의 특징적 속성이라는 층으로 되어 있
는 세계, 즉 체계적으로 단계 나 질서 라는 층으로 이루어진 구조의 모
델로 대치되었다. 밑바닥 단계가 존재하고 그 단계에는 미시 물리학이
우리에게 말해 주듯이, 그것이 무엇이든 모든 물질은 가장 기초적인 물
리적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러한 대상들은 어떤 기초적인 물리적
속성과 관계로 특징지어진다. 밑바닥 단계에서 상위의 단계로 올라가면,
우리는 하위의 단계에 속하는 실재물들로 구성되어 있는 구조들을 발견
하고, 더욱이 어떤 주어진 단계에 존재하는 실재물들은 그 단계와 구별
되는 속성들의 집합에 의하여 특성 지어 진다고 생각한다. 더 상위의
단계에서 우리는 생기적 속성을 갖는 세포와 유기체를 발견할 것이고,
더 올라가서는 의식과 지향성을 갖는 유기체를 발견할 것으로) 김재권, 수반과 심리철학 (서울: 철학과현실사, 1994), p.354.
보고
있는데, 밑바닥 단계의 소립자 층과 마음을 갖는 유기체 단계 사이에
여러 층이 존재한다고 봄으로써 보다 더 심신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여진다.
지금까지 층으로 되어 있는 모델의 특징은 대답되지 않은 하나의 중요한
물음을 남겨 놓는다: 어떻게 어느 주어진 단계에서 실재물의 특징을 나타내
는 속성이 인접한 단계의 실재물을 특징짓는 속성과 관계 맺을까?) Kim, Jaegwon, Philosophy of Mind, (Colorado: Westview Press., 1996) (하종호·김선희 공
역(1997), 심리철학 ( 서울: 철학과 현실, 1997), p.355).
그런데, 철학에서 존재론적 문제는 실재하는 세계를 두 가지 이상의
세계들로 분리하고자 하는 데서 생기는데, 물질 세계와 심적 세계를 구
별하고자 하는 이원론은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 또 한편으로는 존재론
적 문제는 실재 세계의 다원적 현상을 한 가지 차원으로 환원하여 보고
자 하는 데서 생기는 바, 우리가 마음이라고 믿는 것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심적 현상은 모두 물질적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런 문제를 생기게 한다.) 소흥렬, 연결주의와 원자주의 , 수반의 형이상학 김재권교수회갑기념논문집,(서울: 철학
과 현실사, 1994), p.407.
과학자의 입장에서 이 두 경우에 대한 형
이상학적인 문제를 접근시켜 본다면 아마도 전자보다는 후자의 경우를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입장은 다음의 김재
권 교수의 논문에서도 추측할 수 있다.
현대 심리철학에서, 실체 이원론은 여러 가지 이유로 거의 포기되어 왔
다. 시공간의 틀밖에 그리고 물리적 과정들과의 인과적 상호작용 안에 비물
리적 실체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많은 사상가들에게는 매우 당혹스럽고
신비하여 궁극적으로 비일관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존재론적 물리주의
(ontological physicalism), 즉 시공간계 안에 물리적 소립자들과 그것들의
집합들 이외에 어떤 구체적 존재나 실체도 없다는 견해는 심신 문제에서
지배적인 입장이 되어 왔다. 가장 현대적인 논쟁들에서는, 존재론적 물리주
의는 정립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결론이라기 보다는 논의의 출발점을 이룬
다.) Kim, Jaegwon, Philosophy of Mind, (Colorado: Westview Press., 1996) (하종호·김선희
공역(1997), 심리철학 ( 서울: 철학과 현실, 1997), pp.357-8).
이와 같이 대부분의 과학자들에게는 이원론보다 존재론적 물리주의가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일 것 같으나 이것은 결국 유물론) 생멸 변화하는 현상에 대하여 상주적·불변적·자기동일적·실질적인 본제를 실체라고
하는데, 유물론은 실체의 성질을 물질적이라고 보는 형이상학적인 입장을 말한다. 흄은
정신·물질의 실체가 다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부정했다.
을 의미한다
고 보여진다. 그런데 유물론에서 물질을 실체라고 본다면, 특수 상대론
에 의하여 물질은 에너지라고 볼 수 있으므로, 에너지는 항상 없어지지
않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우주론에서는 주로 우주가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생겨났다고 보고 있으므로, 에너지 보존 법칙을 생각
하면 우주 전체의 에너지는 과거나 현재는 물론 미래에 걸쳐서 0이 되
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물질 자체도 있다고 말하기가 곤란
해질 것이기 때문에 물질적 실체라는 개념조차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트라이온(Tryon)의 우주 모델은 이러한 입장을 보다 잘 보
여준다.
어떤 빅뱅 모델에 있어서도 우리는 (우주의) 창조 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
다. 이 문제는 두 가지 면이 있다. 하나는 물리학의 보존 법칙들이 무에서
유의 창조를 금지시키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창조의 순간에 보존
법칙을 적용시킬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명백
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 나의 모델에서는, 우리의 우주가 약 100억 년
전에 정말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태어났다고 가정한다. 널리 퍼져 있는
신념과는 정반대이지만, 이러한 사건은 어떠한 물리학의 보존 법칙들을 위
반할 필요가 없다. 물리 법칙들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나타나는 우주가
어떤 특정한 속성들을 가져야 한다는 것만을 의미할 뿐이다. 특별히, 이러
한 우주는 모든 보존되는 양들에 대하여 값들이 모두 영이 되어야 한다.) Tryon, E. P., "Is the Universe a Vacuum Fluctuation?", Nature 246(1973), p.395.
그런데 프리스트(Priest)는 심신 문제를 해결하는 많은 시도들은 두
개의 목록들 중의 한 쪽을 다른 쪽으로 환원하는 잘못된 형식을 주로
취하고 있다.) 물질적인 것을 시간-공간적, 공적, 수정가능적, 외적, 다자적, 결정론적, 수동적, 세속적, 가
분적, 외연적, 형태를 갖춘, 가시적, 비지향적, 객관적이라고 하면, 이 각각에 대응하는 심
적인 것으로는 시간적, 사밀적, 수정불가능적, 내적, 일자적, 자유로운, 능동적, 신성한, 불
가분적, 비외연적, 형태가 없는, 비가시적, 지향적, 주관적이라 할 수가 있다. 이렇게 심적
사건과 물리적 사건은 상호 배타적인 술어들에 의하여 규정되기 때문에, 어떤 심적 사건
도 물리적 사건일 수 없다. 따라서 심적 사건은 존재하고 어떤 심적 사건도 물리적 사건
과 동일하지 않다는 두 개의 전제로부터 오직 물리적 사건만이 존재한다는 유물론은 거
짓이다.(Priest, S., Theories of the Mind, Penguin Books(1994). (박찬수 외 옮김,
마음의 이론 (서울: 고려원, (1995), pp.294-7에서 인용)
사실상 각 술어들은 의미론적으로 반대편으로 환원이
불가능하므로 심적인 것과 물적인 것이 동시에 실제적이라는 그의 견해
는 철학적 분석 이전의 것이고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그것이 물리적인 것이라는 관점에서 어떠한 것도 심적인 것일
수 없고, 그것이 심적이라는 관점에서 어떠한 것도 물리적인 것일 수
없다.) Priest, S., Theories of the Mind, Penguin Books(1994). ( 박찬수 외 옮김, 마음의 이론
(서울: 고려원, (1995), pp.294-5.).
우리는 여기에서 존재론적으로 실재하는 두 세계를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심신 문제를 잘 다루고 있는 기능주의) 기능주의는 심리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하나 그것이 물질적인 것인가 아닌가에 대해
서는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기능주의는 자신들의 입장이 일원론인가 아니
면 이원론인가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기능주의자들은 유물론적
(일원론적)인 경향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꼭 유물론적 관점을 고수해야만 기능주
의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능주의는 정신적 실체가 물질인가 아니면 비물질
적인 영혼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중립적이며, 그것이 물질이든 영혼이든 간에 정신 상
태란 그것이 수행하는 어떤 기능 상태와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의 입장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기능주의는 정신이 물질인가/아닌가 하는 전통적인 심리철학의 논의와는
그 논의의 차원(dimension)을 달리하는 것으로서 전통적 분류에 의해 일원
론 또는 이원론으로 말해지기 어려운 새로운 이론이다.) 김영정, 심리철학과 인지과학 (서울: 철학과현실사, 1996), p.60.
이렇게 기능주의는 존재자의 구성적 구조 중심의 전통적 사고에서 존재
자가 수행하는 기능 중심의 사고로 개념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다) 상게서, p.61.
.
2) 심신문제와 연기론
앞에서 심신 문제에 내포된 인과성과 관련된 문제점을 많은 철학자
들이 여러 관점에서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였으나 좋은 성과를 내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러한 문제의 근본
적인 해결 방안을 연기론에서의 찾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제시해 보
이려고 한다.
부처님이 그 당시의 형이상학적인 제 견해) 왜 붓다가 인과성에 관하여 연기론의 관점을 취하였는가는 그 시대를 전후한 인도의 다
른 인과성 이론들을 살펴봄으로써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보고 있는데, 거기에는 각
각 사상가나 학파에 연결되어 있는 초기 불교도들에게 알려진 대표적인 이론들(비결정론,
결정론, 창조론, 허무론, 성력론(性力論), 적취론, 전변론, 인실론(因實論), 비일론(非一論))
과 이 이론에 대한 회의론이 있다. (전재성, 초기 불교의 연기성(paticcasamupp da) 연
구 ,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서울: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 1996), pp.8-29 에
서 인용).
에 대하여 무기의 태
도) 명과 신이 같은가 다른가에 대해서는 십무기설(十無記說)에 관심을 두게 된다. 이 교설은
대개 네 가지 주제에 대한 열 가지 물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시간적 우주를 주제로 하
여 ①세계는 유상, 무상의 두 가지를 묻고 있으며, 공간적 우주를 주제로하여 ②세계의 유
변,무변의 두 가지 물음을 묻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인간 존재를 주제로 하여 ③신체는
영혼과 같은가 다른가에 대한 두 가지 물음을 묻고 있으며, 사후의 인간 존재를 주제로
하여 ④여래 사후 존재, 부존재, 존재 및 부존재 및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등의 네 가지 물음을 묻고 있다. (최봉수, 原始佛敎의 命身觀 硏究-근세 서
양 靈肉論과 비교하여- ,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서울: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1985), pp.65-6. 에서 인용)
을 취하였던 것은, 그가 발견한 어떤 합리적 관점에서 비합리적 태
도를 비판했다기 보다는 그 스스로의 내증을 통해 발견한 초합리적 입
장이 거기에 전제되어 있고, 그 바탕 위에서 부처님의 침묵(무기)도, 불
교의 모든 철학적 제이론과 실천도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
다.) 김용환, 無記說(Avyak ta)에 대하여 , 인문논총 제37집 (부산, 부산대학교, 1990), p.
139.
이것은 불교가 사변적 철학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 종교
임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실천의 중요성과
함께 이것을 뒷받침 해주는 정연한 논리 체계는 현대 과학적으로 보았
을 때에도 결코 손색이 없다.
그런데 무기설과 빈번히 결합하는 교설이 오온설과 사제설(四諦說)인
데 그 사제설이 오온설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오온설은 다시 육계설
(六界說)) 육계설은 주로 물질적 요소인 신체 조직을 명확히 하려고 地·水·火·風·空·識界를
말하는데, 전5계에 의해서는 신체적 기관 및 그 작용을, 식계에 의해서는 정신 활동을 표
현한 것이다. 오온(五蘊)은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적 형체인 색온(色蘊)과 정신을 구성하는
受·想·行·識蘊을 말하는데, 여기서 온이란 쌓임·모임·집합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육계·오온설은 육근으로서는 인식이 미치지 못하는 육근하층 또는 육근 이전의 경계를
본연의 고찰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계라는 술어의 사전적 의미는 두 가지이다. 제1
은 층(layer)의 뜻이며 제2는 요소(element)의 뜻이다. 육계설과 오온설의 수준에 오면 그
진정한 내용을 언설로서 도저히 상대방에게 전달시킬 수 없는 면이 있어서 그것은 오로
지 진격한 수행과 사유를 통해 파악되어야 할 목적으로 부처님에 의해 제시되어 있는 것
이다. 그러나 경전에 제시되고 있는 육계·오온설에 속한 몇 가지 경설에 대한 피상적인
언급과 음미는 서양의 심신 문제에 대한 해결 가능성을 충분히 제시한다고 생각한다고
최봉수 박사는 보고 있다.
을 선행시킨 뒤에야 비로소 성립한다.) 최봉수, 原始佛敎의 命身觀 硏究-근세 서양 靈肉論과 비교하여- , 동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서울: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1985), p.71.
육계설에서의 식계는
순수한 심적 작용 또는 심적 존재만을 의미하는 술어로 봐서는 안될 것
같다. 그것은 식계에도 연용되는 11가지 분류) 그런데 육계는 11가지 측면에서 분류되고 있다. 즉, 첫째는 과거·현재·미래로 분류되고
둘째는 내·외로, 셋째는 추( )·세(細)로, 넷째는 열(劣)·승(勝)으로 그리고 다섯째는
원(遠)·근(近)으로 분류되고 있어서 서로 대치되는 다섯 종류를 이루고 있다. 예컨데 인
간 존재인 육근은 현재·내·추의 존재로 볼 수 있으나 열·승, 원·근에 대해서는 구체
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추는 조잡한, 물질적인, 거대한 등의 뜻을 지닌 형용
사이다. 이에 비해 세는 섬세한, 작은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세의 요소는 층의 구조를 띠
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원시 불교는 극도로 미세한 규모의 요소들을 단순히 물질 덩
어리의 기계적이고 외삽적인 축소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모종의 이유에 의해서 중층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복합구조상의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팔리어의 어원에 의거하면 세의
범위 속에는 원자적 크기의 존재가 포함된다는 사실을 주의해야 한다.( 최봉수, 原始佛
敎의 命身觀 硏究-근세 서양 靈肉論과 비교하여- ,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서울: 동국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1985), pp.74-8 & pp.80-3에서 인용)
가 있기 때문이다. 11가
지 분류 중 추·세·원·근 등의 공간적 분류는 오로지 물질로 둘러싸
인 공간과 그 공간에 존재하는 물질들에게만 1차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식계는 심적 작용과 함께 하는 물적 존재를 지칭하고
있는 술어로 볼 수 있고) 중아함의 상적유경(象跡喩經) 의 심연계주(心緣界住) 라는 경문에 의하면 마음은 세한
육계에 의지하여 머문다 라는 진술이 가능하다. 그런데, 상적유경 은 심연계주의 계를 굳
이 지계·수계·화계·풍계의 전 4계로 국한하려는 듯이 보인다. 육계중 전4계가 물질적
존재를 가르치고 있고 공계가 물질이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언급하고 있으며, 식계가 육
계에도 심적 작용이 있음을 2차적으로나마 암시하고 있으므로, 마음이 전4계에 의지하고
있음은 곧바로 마음과 물질이 분리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즉 마음이 세
한 육계에 의지한다 는 진술은 구체적으로 말할 때 세한 육계 중에 전4계에 의지한다는
말이 되고 이것은 마음이 물질에 의지하여서 비로소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지계가 있으니 마음은 계에 의지하여 머무나니라. …수계…화계…풍계가
있으니 마음은 계에 의지하여 머무나니라" : 중아함 30, 대정 1, 464c) ( 최봉수, 原始佛
敎의 命身觀 硏究-근세 서양 靈肉論과 비교하여- ,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서울: 동국
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1985), pp.85-88에서 재인용)
이것으로 물심의 불가분리를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음은 세한 육계에도 존재하고 세한 육계 중 세한
전4계에 의지해서 비로소 존재함을 육계설이 전해 주는 반면에, 육계설
은 아직 그 마음이 물질적 존재에 인(因)으로서의 작용을 가할 수 있는
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듯하나,) 최봉수, 原始佛敎의 命身觀 硏究-근세 서양 靈肉論과 비교하여- , 동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서울: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1985), pp.88-9.
오온설에서 이러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고 최봉수 박사는 언급하고 있다.) 최봉수, 原始佛敎의 命身觀 硏究-근세 서양 靈肉論과 비교하여- , 동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서울: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1985), pp.89-96.
즉, 오온설에서의 색
온에는 11가지 분류가 적용되는데 그 중에서도 내(內)는 인식작용이 가
능한 심적 존재를 특징으로 지적하는 분류이다. 따라서 색이 사대(四
大)) 地大·水大·火大·風大
를 바탕으로 그것의 심적 작용까지 포섭하는 술어로 볼 수 있다.
오온의 수·상·행·식온의 각 지분에도 11가지의 분류들이 적용되는
바, 그 중에서도 추·세·원·근 등의 공간적인 분류들이 적용되는 것
은 이것들도 사대에 바탕을 두어 분리되지 않고 진행되는 심적 존재 또
는 심적 작용을 포괄하는 술어들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행온의 행
(sa kh ra) 은 kaoti(do)라는 동사에서 나온 것인데, sa kh ra의 기본적
인 뜻이 붙게(sam) 함(kara)이다 는 것을 바탕으로 하면 행 은 무언가
를 붙게 하여 형성해 나가는 심적인 작용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붙일 대상으로는 다름 아닌 마음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사대를
들 수 있다. 곧 사대를 붙게 하여 형성해 나가는 심적인 작용이 행 임
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립자들 사이의 물리적 결합은 사대 상호간의 결합에 해당하는 것으로 횡 적인 결합이
라고 말할 수 있다면, 행온이 보다 고유하게 다루고 있는 결합은 사대 각각에 남겨진 계
적인 구조상의 결합이며 그것은 횡적인 결합과는 구별되는 종적인 결합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최봉수, 原始佛敎의 命身觀 硏究-근세 서양 靈肉論과 비교하여- , 동
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서울: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1985), pp.89- 96에서 인용.)
그런데, 심리철학에서의 심신 은 원시불교
에서는 명신(命身) 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원시 불교에서의 명신관을 최
봉수 박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원시 불교는 우선 12처설) 일체라고 표현되는 모든 것이란 우주 전체를 가리키는 것인데, 부처님은 모든 것이 눈과
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촉감, 마음과 법이라는 12가지 속에 들어간다고
하여, 이 열두 가지를 십이처라고 한다.
등을 통하여 서양 심신론에 대비한 원시 불
교의 명신(命身) 관의 입장을 마련한다. 곧 인간에게서 비물질적 심적 존재
는 설정되며 그 심적 존재는 육체를 이루는 물질과는 분리될 수 없으며 그
러면서도 육체에 대하여 인으로서의 작용이 가능하다 는 것이다) 최봉수, 原始佛敎의 命身觀 硏究-근세 서양 靈肉論과 비교하여- , 동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서울: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1985), p.100.
.
또한 다음 경문은 명신에 대한 일원론적인 견해와 이원론적인 견해를
극단적인 견해로 규정하여 배척한 뒤 명신의 문제에 대한 중도 정관(正
觀)이 12연기에 있음을 설해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심신이 동일한가 다른가에 대하여서는 부처님이 침묵을 지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12연기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비구들이여 명이 곧 신이라는 견해가 있으면 범행주(梵行住)) 범행이란 금욕적 고행이나 청정한 종교 생활을 말하며, 범행주란 종교적인 학습이나 수행
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사실 또는 진실이라는 뜻으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가 없으며,
명이 곧 신과 다르다라는 견해가 있어도 범행주는 없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 양단을 떠나 중(中)으로 법을 설하니 곧 십이연기 이느니라.) Samyutta-Nikya 2·2·12·35·52-54. (최봉수, 原始佛敎의 命身觀 硏究-근세 서양 靈
肉論과 비교하여- ,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서울: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1985),
p.64에서 재인용).
따라서 불교에서의 연기설을 심리철학의 심신 문제와 비교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여기서는 부처님은 존재 문제를 어떤 입장에서 설명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하자.
부처님에게 있어서 외부의 존재는 유도 무도 아니다) 형이상학은 이항 대립의 체계이다. 참과 거짓, 보편과 특수, 동일성과 차이, 안과 밖, 남과
여 등 대립되는 이분법이 형이상학의 근간이 된다.
. 유와 무는 추
상된 개념일 뿐 실재가 아니기 때문이며, 중도는 이 같은 추상된 개념
이 허구임을 자각한 입장) 이중표, 阿含의 中道體系 硏究 ,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서울: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
과, 1989), p.134.
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이중표 교수는 연기설
이 존재론적으로는 관념론도 실재론도, 유심론도 유물론도, 다원론도 일
원론도 아니라고 보고 있다.) 상게 논문, p.131.
그런데 부처님은 존재라는 개념을 사용
하지 않고 법 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외부 세계는
존재의 세계가 아니라 법계 ) 상주하는 법계는 이것을 인식하는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항상 존재한다. 이것이 연기법이
다. 법은 무엇 이 아니라 항상 어떻게 하면 어떻게 된다 는 법칙(연기법)이며 법계는
항상 어떤 조건 아래서는 항상 어떻게 되는 세계 인 것이다.
라는 사실의 자각에 기인한다. 우리는 이
법계를 질료로 하여 인식을 성립시키고 그 인식을 토대로 존재를 구성
하기 때문에 존재의 실상은 법 이라 할 수 있는 바, 그것은 무엇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 아래에서는 항상 어떻게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중표, 阿含의 中道體系 硏究 ,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서울: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
과, 1989), p.141.
이와 같이 상주하는 법계를 토대로 하고 있는 연기설은 그것이 세계를
우리의 마음에서 연기한 것으로 설명한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의식 외의 일
체를 부정하는 주관적 관념론과는 구별된다. 그렇다고 해서 의식 외의 세계
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실재론이라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법은 존재가
아니라 모든 현상이 의존하고 있는 원리이며 질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
계는 물질의 세계도 정신의 세계도 아니다. 물질이나 정신은 12처를 바탕으
로 이와 같은 법에 따라 연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질서는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원리이다. 따라서 법계에는 자타가 없고 내외가 없
고 분별이 없다. 모든 분별은 이 같은 법 과 意 의 관계) 의(意)의 원어 manas'는 마음(mind, heart, soul)', '의식(conscious)'와 같은 의미도 있지
만, 한역에서 의 로 번역했듯이 의지(will)', '의욕(desire)'이라는 뜻에 보다 잘 어울리는
개념이다. 따라서 의 는 의지와 욕구를 가지고 있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법 으로
번역된 dharma'는 법칙(law)', '규칙(rule)', '의무(duty) 등 다양한 의미와 함께 확정된
질서(established order) 를 뜻한다. 이와 같은 어의에서 본다면, 법은 법칙이나 질서로서
누군가에 의해 확정된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때 법을 확정하는 것이 무엇인가
가 문제된다. 자연과학에는 많은 법칙이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있고, 관성의 법칙이 있
고,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 있다. 이렇게 많은 법칙이 있다고 해서 자연계에 실제로 그와
같은 법칙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속단이다. 자연계에 실재하는 법칙은 하나도 다수
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 의해 무한히 많은 법칙으로 인식될 수도 있고, 우주의 큰 법칙
하나로 인식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가 발견한 법칙은 자연계에 실재하는 법칙이 아니
라 우리의 관심과 의도가 있을 때 관심과 상응하게 규정되고 의미 구성된 법칙이라 할
수 있고, 이때 우리에게 인식된 내용은 이와 같이 규정되지 않은 법을 질료로 우리의 의
지가 규정하고 의미 구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의는 이렇게 법칙을 규정하여
구성하려는 의지 즉 작용적 계기라 할 수 있고, 자연계에 실재하는 법칙은 이 같은 의 에
의해 법칙 으로 확립되고 인식된 대상적 계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이중표, 阿含의 中
道體系 硏究 ,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서울: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1989), p.137 에
서 인용)
을 알지 못하는
무명에서 비롯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佛陀의 존재론은 엄밀한 의미에서
는 존재론이 아니라 법계론 이라 할 수 있다.) 이중표, 阿含의 中道體系 硏究 ,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서울: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
과, 1989), p.141.
우리는 여기서 12연기와 관련시켰을 때 심신 문제를 어떻게 볼 수 있
는지에 대하여 고찰할 필요가 있다. 부처님은 보리수나무 밑에서 연기
법 을 깨달아 얻고 난 이후에 베나레스에서 다섯 비구들에게 자신의 깨
달은 바를 설명하였으나 그들이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이후에는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45년간을
설법하셨다고 알려져 있다. …부처님이 중생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에서부터 설하여 근기를 성숙시켜 갔음에 틀림없다. …제일 먼저 설해
진 법문은 12처설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가장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
다. 12처는 눈·귀·코·혀·몸·마음(眼耳鼻舌身意: 六根)과 색·소
리·냄새·맛·촉감·법(色聲香味觸法: 六境)의 열두 가지인데 이것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 고익진,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 (서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90), pp.35-6.
는 고익진 교수의 견해는 의미
가 있다. 이렇게 부처님은 12처에서 시작하여 육육법·오온·12연기에
이르기까지 쉬운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려운 것에 이르기까지 설법하
였다. 그런데 12처에서 감각 기관으로서 제6근의 존재를 설정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눈과 같은 전5근이 각각 독립된 성질을 갖고 있으
므로, 이것을 하나로 통합하는 기능이 요청됨에 의하여 제6근을 설정하
였다고 보여지며, 이것에 대한 객관적인 대상으로서의 법 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식 과 함께 의식 으로 논해지는 바, 의식 의
문제는 현대의 심리철학에서도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이다. 어떠하
든 12처에서의 육근의 역할은 신경과학적으로 보면 대뇌 피질의 기능으
로 접근해 나가야 할 사항인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날 마음의 본질을
알아내려는 인지과학이 나날이 발전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러한 학문의
성과가 다른 마음에 관한 학문 에 많은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부처님 역시 마음의 본질을 제자들에게 설명하
기 위해서 12처설에서부터 설명하였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다.
그렇다면 심신에 관한 존재론적 문제는 심리철학적인 면에서만 보아
도, 고대에서 시작되었으나 아직도 논의가 평행적으로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이다. 이것을 유추해 보면, 부처님 같은
이가 45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강의해야 보통 사람들이 그것을 어
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성숙되는 문제에 해당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런데 불교의 연기설 에서 심리철학에서의 심
신 문제를 논하고 있는데, 거기에서는 존재 보다는 법계 의 개념으로 언
급되고 있으므로, 심리철학의 존재론 적인 문제를 법계론 적인 문제로
방향을 전환시켜 논의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Ⅳ. 맺는말
동역학 이론에서 제기되는 인과성 문제에 대하여 철학적으로 논의하
는 데에 있어서 흄의 인과관계에 관한 조건 중에서 원인은 결과보다 앞선
다 는 것을 결과가 원인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라고 이를 수정함으로써 인
과성 개념에 동시 인과 가 포함될 수 있도록 가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수정된 조건이 괜찮다면, 지금의 물리학 이론과는 다른 관점에서 타키온을 도
입하여 그것을 논의할 수 있으며, 그 결과 동역학에서의 인과성 문제도 적절
하게 설명할 수 있다.
사실, 칸트가 인과성의 개념을 순수오성개념 가운데 하나로 채택하고 있듯
이, 철학에서 인과성 개념은 합리적 사고를 하기 위한 하나의 요청 개념이다.
그리고 그러한 요청은 존재론적으로 존재 또는 실체 를 전제로 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미 2500 여년 전에 존재 대신에 법 을, 인과 대신에 연기 를
이야기하였고, 현대 물리학에서도 상호작용 을 통해서 인과성 뿐만 아니라 동
시성을 나타내는 상호성 의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존재론적 물리주의도 결국은 유
물론을 의미한다고 보여 진다. 그런데 유물론은 물질을 실체라고 본다.
특수 상대론에 의하여 물질은 에너지라고 볼 수 있으며, 에너지보존법
칙은 물리학 이론의 토대가 되기 때문에 에너지는 항상 없어지지 않고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현대의 우주론에서는 대부분이 우
주가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생겨났다고 보고 있으므로, 에너지 보존
법칙을 생각하면 우주 전체의 에너지는 과거나 현재는 물론 미래에 걸
쳐서 0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물질 자체도 실체가 있다고 말하
기가 곤란해질 것이기 때문에 물리주의라는 개념조차도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물리주의적인 토대 위에서 논의되는 심리철학의 심적
인과관계에 있어서 심적 사건이 물리적 사건을 초래하는 경우뿐만 아니
라 물리적 사건이 심적 사건을 초래하는 경우를 어떻게 인과적으로 설
명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런데 초기 불교의 연기 공식 에서는 원인이 결과보다 앞선다 는 논
의뿐만 아니라 동시 인과 에 관한 내용도 함께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
다. 그뿐만 아니라 연기 공식 을 보다 구체화한, 현상계의 모든 존재의 공
간적이며 시간적인 상관관계를 밝히고 있는 연기설 에서는 존재의 개념 대신
에 법 의 개념을, 존재의 세계 대신에 법계 라는 개념을 사용하므로 써 심신
문제에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석가가 제자들에게 이해하기 쉬
운 육근(六根) 육경(六境)과 같은 주객의 문제에서 시작하여 설법하였다는 것
과, 신경과학의 급속한 발전이 마음의 본질을 알기 위한 인지과학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 사이에는 서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인지과학은
이제야 마음의 본질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지만 불교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이를 발전시켜 왔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석가가 쉬운 것에서
부터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어려운 오온은 물론 연기설 에 이르기까지 45년을
계속적으로 서로 다른 대상에 대하여 서로 다른 방법으로 논했던 과정에서는
존재 라는 개념 대신에 법계 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논의를 고려하다 보면, 심신이 동일한가 다른가와 같은 심리철학에
서의 존재론적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실체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데서 인과문
제의 딜레마가 초래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이러한 견해가
타당하다면 심리철학적인 논의에 있어서도 존재론적 문제를 불교 철학에서의
법계론적 문제로 방향을 바꾸어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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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좋은 글 잘 담아갑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