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네프의 연인들(Les Amants du Pont-Neuf)
최용현(수필가)
1987년, 프랑스의 레오 까라 감독이 파리를 관통하는 센 강의 퐁네프 다리에서 영화를 찍겠다고 했을 때, 파리시에서는 퐁네프에서의 차량과 행인에 대한 통제가 쉽지 않아 허가를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의 예술인들과 파리 시민들이 연이어 탄원서를 내자, 파리시장은 1988년 여름 휴가철 ‘3주 동안’이라는 조건부 허가를 해준다.
그 3주 동안 5분 분량의 영상밖에 찍지 못한 까라 감독은 1년 7개월에 걸쳐 퐁네프 옆에 실제 다리와 똑같은 세트장을 지었다. 계획에 없던 세트장 건설비에다, 5분 분량의 불꽃놀이에 20억 원을 쓰는 등 과다지출 때문에 원래 제작자와, 1년 만에 다시 구한 제작자가 파산을 하고 말았다. 결국 문화성 장관이 나서서 세 번째 제작자를 구해준 덕분에 촬영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1991년 3월,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금액인 총제작비 1억 9천만 프랑(약 250억 원)을 들여 4년여 만에 완성한 ‘퐁네프의 연인들(Les Amants du Pont-Neuf)’은 이런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퐁네프에서 노숙을 하는 부랑아 알렉스(드니 라방 扮)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쓰러지고, 그의 다리 위로 자동차가 지나간다. 구급차에 실려 간 알렉스가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고 퐁네프 난간에 있는 자신의 자리에 돌아와 보니 한 쪽 눈을 밴드로 막은 젊은 여자가 누워서 자고 있다. 옆에 화구(畵具)와 스케치북을 놓아둔 채로.
그녀의 이름은 미셀(줄리엣 비노슈 扮), 실명위기에 처해 애인으로부터 버림받게 되자 가출하여 퐁네프에서 노숙을 시작한 미모의 화가이다. 첫눈에 뿅 간(?) 알렉스는 미셀의 가방에서 찾아낸 주소로 미셀의 집에 몰래 들어가, 그녀의 집이 부자이고, 줄리앙이라는 첼리스트와 사랑을 나누었으며, 눈병으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알아낸다.
어느 날, 미셀은 지하철역에서 귀에 익은 줄리앙의 첼로소리를 듣고 몰래 따라가지만 문전박대를 당한다. 알렉스는 짝사랑하는 미셀이 줄리앙을 미행하는 모습을 보고 낙심하여 낮술을 퍼마신다. 미셀이 돌아오자, 두 사람은 함께 병나발을 분다. 그리고 길바닥에 널브러져 실성한 사람처럼 자지러지게 웃어댄다.
밤이 되자,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맞아 불꽃놀이의 향연이 펼쳐진다. 미셀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하고, 알렉스도 따라 일어나 함께 왈츠를 춘다. 그러다가 센 강으로 내려가 모터보트를 탈취하여 알렉스가 운전을 하고 미셀은 뒤에서 줄을 잡고 신나게 수상스키를 탄다. 그날 밤, 알렉스는 미셀의 머리맡에 메모를 남긴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일 아침에 ‘하늘이 하얗다.’고 말해줘. 그게 만일 나라면 난 ‘구름은 검다.’고 대답할 거야.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지 알 수 있어.”
알렉스가 고참 노숙자인 한스를 찾아가 잠이 오지 않는다며 수면제를 달라고 한다. 그러자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알렉스의 처지를 잘 아는 한스는, 밑바닥 인간들에게 사랑은 가당치도 않은 사치라며 속히 그 여자를 쫓아내고 잊어버리라고 충고한다.
며칠 뒤, 미셀이 ‘오늘은 하늘이 하얗구나.’ 하고 말하면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둘은 한스의 가방에서 훔쳐낸 수면제를 이용하여 한 카페를 털어 그 돈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날 밤 해변에서 발가벗고 뛰놀던 두 사람은 마침내 하나가 되고, 다시 퐁네프로 돌아온 미셀은 거의 시력을 잃어 하루하루 알렉스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퐁네프에서 만난 사랑은 꼭 이루어진다.’는 구전(口傳)을 모티브로 하여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까지 맡은 레오 까라는 막장에 처한 맨발의 청춘들의 처절하고 자학적인 사랑을 누벨 이마주 세대의 기수답게 전율이 감도는 광시곡(狂詩曲)으로 형상화해냈다. 우리나라의 김기덕 감독과 많이 닮았지 않은가.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영상파의 천재로 불리는 까라 감독이 기라성 같은 미남배우들을 제쳐놓고 전혀 배우의 외양(外樣)이 아닌 드니 라방을 자신의 영화 속 주인공으로 계속 발탁하는 점이다. 뚜렷한 페르소나를 지닌 그에게서 강렬한 아이덴티티를 느끼기 때문일까?
알렉스가 입으로 불을 뿜는 장면, 퐁네프 상공을 수놓는 휘황찬란한 불꽃놀이 광경, 그 아래서 두 연인이 추는 광란의 왈츠와 센 강의 야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이내믹한 수상스키 모습 등은 까라 감독의 범접할 수 없는 영상세계를 보여주는 명장면들이다. 미셀의 강변에서의 목욕 신 수위도 눈을 의심케 한다. 자, 이대로 해피엔드가 될 것인가.
어느 날, 알렉스는 ‘시력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수술법이 개발되었으니 어서 집으로 돌아오라.’는, 미셀을 찾는 벽보를 보고 기겁을 한다. 미셀이 시력을 되찾으면 자신의 곁을 떠날 거라고 생각한 알렉스는 벽보를 불태우고 전단지를 실은 차에 불을 지른다. 차가 폭발하면서 벽보를 붙이던 사람도 불에 타 죽는다.
우연히 자신을 찾는 라디오 방송을 듣게 된 미셀은 알렉스가 잠든 사이 ‘널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어. 날 잊어줘.’라는 글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간다. 알렉스는 ‘아무도 나에게 잊는 법을 가르쳐줄 순 없어.’라며 미셀이 강에 던져버리라고 줬던 총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쏜다. 며칠 후 알렉스는 방화 및 과실치사죄로 체포되어 교도소에 들어간다.
눈 수술로 말쑥해진 미셀이 함께 했던 날들이 그리웠다며 교도소로 면회를 온다. 알렉스의 3년 형기가 끝나고 크리스마스이브에 두 사람은 눈 내리는 퐁네프에서 다시 만난다. 두 연인은 난간 그 자리에 앉아 함께 포도주를 마시고, 미셀은 알렉스의 초상화를 그려준다.
미셀이 돌아가려고 하자, 알렉스가 미셀을 안고 다리 아래로 몸을 던진다. 지나가는 모래운반선에 오른 두 연인, 뱃머리에서 함께 날아가는 포즈 -후일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영화 ‘타이타닉’(1997년)에서 멋지게 오마주하는- 를 취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 덕분에 유명해진 퐁네프(Pont-Neuf)는 ‘새로운 다리’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400년 전에 지어졌고, 센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라고 한다. 언젠가 파리에 가면 퐁네프에 꼭 가보리라.*
첫댓글 참.. 이 영화 본지도 20 년이 훨씬 지났네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때 줄리엣 비노쉬는 참 예뻤는데...
최근 영화에서 보니
이젠 중년의 .. 나이많은 .. 아줌마...
그래도.. 원숙미는 있었습니다
그랬죠. 줄리엣 비노슈 어느 한 곳 모난 데 없이 무난하게 이뻤죠.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까. 세월을 거스를 사람은, 이겨낼 사람은 없으니까.
영화속 주인공응 아직도 젊은데 나는 왜 늙어 가도 있을 까?.........
영화속 주인공은 영원히 필름 속의 시간에 갖혀있는 거죠.ㅎㅎㅎ
반갑습니다 회원님 ^^
네 반갑습니다.
얼마전에 이 영화를 다시 보았는데
불꽃놀이 장면이나 밤에 수상스키장면은 지금 보아도 놀랍더라구요
30년 전에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영상을 만들다니...
프랑스 영화의 자존심이랄까. 예술혼이랄까.
혼이 담긴 프랑스 영화는 정말 멋져요.
이 작품도 그런 작품 중의 하나죠.
글을 읽고 나니 다시 한번 영화를 보고 싶어집니다.
30년 전 제가 30살이었을 때
이 영화를 보고 저는 아주 최악의 재미없는 영화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아마도 깊은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했었나 봅니다.
좋은 영화 로 생각을 바꿔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랬었군요.
남자주인공, 혹은 여자주인공으로 감정이입을 하고 보면 확연히 달라져 보일 거예요.
꼭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를 만든 프랑스 영화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질 겁니다.
이곳을 알게된건 저에게 큰 행운이자 기회입니다. 카페 회원분들 많이 가르쳐 주시고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사보다는 장면을 구체화한 영화였습니다.
프랑스 영화치고는 엄청난 물량을 쏟아부어 만든 대작이죠.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 고마운 말씀...
늘 좋은 글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거의가 눈팅였는데...
오늘은 또 글을 보내네요~^^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눈팅도 감사하고,
댓글은 더욱 감사하지요.^^
아름다운 파리에 빠져드는 영화!
퐁네프 다리에 한번 가보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