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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춘문예공모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copyzigi
[2013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해바라기벽 / 오선영
벌써 20분이 흘렀다. 대포 같은 카메라를 든 남자가 우리 집을 향해 셔터를 누르고 있다. 담벼락, 창문, 장독, 새시문, 슬레이트 지붕을 남자는 골동품처럼 유심히 바라보다가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찰칵찰칵.
천천히 한 장씩, 때로는 빠른 속도로 여러 장을 찍는다. 카메라 렌즈를 바꾸고, 삼각대를 세우고, 렌즈를 거즈로 닦고, 다시 카메라를 바꾼다. 빠르고 정확하게 손을 움직이는 남자는 전쟁터에서 총을 조립하는 군인 같다.
니들이 뭔데, 남의 집 담벼락에 그림을 그려? 집이
이쁘든 안 이쁘든 니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지!
다시 아랫배가 아프다. 두 손으로 배를 감싸고 밖을 내다본다. 남자가 창문을 향해 카메라를 가져다 댄다. 나는 얼른 허리를 숙인다. 쾅. 창틀에 이마를 세게 찧었다. 잘 익은 자두마냥 이마가 발갛게 부어오른다. 남자가 떠날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 새시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남자는 나를 향해 셔터를 눌러 댈 것이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내 얼굴을 찍히고 싶지 않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얼굴이 인화되어 남자의 사진첩에 꽂히고 싶지 않다.
배가 더 아프다. 이럴 때 집 안에 화장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남자가 사진을 찍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일을 볼 수 있을 텐데. 여러 집이 함께 사용하는 화장실은 제대로 된 환풍기 하나 없이 벽돌 위에 시멘트를 발라 만들어졌다. 지린내와 구더기, 담배꽁초, 생리대, 오물을 잔뜩 묻힌 휴지가 엉망으로 뒤엉켜 있다. 나는 화장실 가는 것이 싫어 얼굴이 노래질 때까지 대변을 참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문고리를 잡았다. 지금은 끔찍한 화장실이라도 절박하다. 문밖에서는 아직도 셔터 소리가 들린다.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마냥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문을 열었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나는 코가 가슴에 닿을 만큼 고개를 숙이고 빠른 속도로 걸었다.
"저기요."
등 뒤에서 남자가 불렀다. 남자는 내게 흰 종이를 내밀며 설문조사를 부탁하거나, 담장의 그림 밑에서 포즈를 취해 달라고 할 것이다. 어제 왔던 여자도, 그제 왔던 커플도 내게 같은 것을 요구했다. 남자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더 빠르게 걸었다.
"저기요. 저기."
남자가 한 번 더 불렀다. 대답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두루마리 휴지를 손에 꼭 쥐고 마을 중턱에 있는 화장실을 향해 뛰었다.
찰칵. 찰칵. 찰칵찰칵.
남자가 등 뒤에서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숨을 몰아쉬고는 화장실 문을 힘껏 열었다. 습하고 역한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여섯 달 전, 색색깔의 페인트통과 붓, 물통, 스케치북, 사다리를 든 사람들이 마을 입구에 나타났다. 남색 티셔츠를 똑같이 맞춰 입은 사람들은 자원봉사단체에서 왔다고 했다. 무채색의 어두운 마을을 산뜻하고 화사하게 바꿔 준다고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빨간색 붓을 들고 담벼락에 꽃을 그리는 사람들을 생경한 눈으로 쳐다봤다.
자원봉사자들은 우리 집에도 찾아왔다.
"뭣들 하는 짓이야?"
할머니가 새시문을 밀며 소리쳤다.
"저희가 할머니 댁을 예쁘게 해 드릴게요."
앳된 얼굴에 피부가 우유처럼 흰 남학생이 말했다.
"니들이 뭔데, 남의 집 담벼락에 그림을 그려? 집이 이쁘든 안 이쁘든 니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지!"
할머니가 쉰 목소리로 퉁명스레 말했다. 나는 할머니 옆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깨진 시멘트 사이로 바퀴벌레가 기어 나오고, 녹슨 철근이 구부러진 채 방치되어도, 그것을 남학생이 고쳐 줄 이유는 없었다. 여긴 우리 집이고, 우리 집을 관리하는 건 할머니와 나의 몫이었다.
"봉사활동 시간 채우려면 저 밑에 노인정이나 가던가, 왜 남의 집에 와서 난리야."
나는 남학생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말을 들은 남학생이 나를 쳐다보았지만,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려 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남학생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가능하다면 알록달록한 그림을 그리는 대신 집 안에 화장실을 지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화장실을 짓는 게 어려우면 재래식 공중화장실을 수세식으로 고쳐 주기만 해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장실 앞에 붉은 장미와 노란 개나리를 아무리 많이 그려도, 화장실 안의 구더기와 파리떼는 사라지지 않았다.
남학생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는 사라졌다.
"무당집도 아니고, 정신 사납게 가정집에 무슨 꽃 그림이야."
할머니는 선반에서 굵은 소금을 한주먹 꺼내 남학생의 뒤통수에 뿌렸다.
할머니의 말과 다르게 마을은 변해 갔다. 사실보다 과장된 유부남과 처녀의 스캔들, 욕설, 추문, 조잡하게 그려 놓은 남녀의 성기와 담벼락을 어지럽혔던 사건들은 흰색 페인트 밑으로 사라졌다. 스캔들의 주인공은 소문이 사라졌다며 기뻐했고, 사내애들은 은밀한 화젯거리였던 그림이 없어진 것에 대해 오랫동안 아쉬워했다.
어느 순간부터 마을은 꽃과 나무, 나비와 비둘기, 강아지와 사슴이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구멍가게 앞 평상에 모인 어머니들은 애들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 되었다며 기꺼워했다. 아버지들은 혹시나 집값이 오를까, 몇 년 전 말만 나왔다가 무산된 재개발이 다시 시행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중에서도 꽃과 나무가 그려진 담을 가장 좋아하는 건 어린아이들과 강아지였다. 아이들은 화사해진 담장 아래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공놀이를 했다. 엄마들이 저녁밥 먹으라고 소리쳐 부를 때면, 마치 조경 시설이 잘 된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처럼 얼굴이 환했다.
스캔들과 추문의 주인공도 아니었으며, 어설픈 성기 그림에도 관심이 없던 나는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 오히려 의아스러웠다. 담벼락에 그림 몇 장 그렸다고 갑자기 잘 사는 마을로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한밤중에 화장실 가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고, 할머니는 돋보기를 쓰고 흰 실에 색색의 구슬들을 꿰어야 했다.
벽화를 그리고부터 마을은 점점 유명해져 갔다. 어디서 듣고 보았는지 사람들이 짝을 지어 마을을 찾았다. 갑자기 늘어난 손님들을 가장 반기는 사람은 마을버스 정류소 앞 구멍가게 아주머니였다. 음료수와 필름, 과자 등의 매출이 평소보다 배나 늘었다며 아주머니는 연신 웃고 다녔다.
찰칵. 찰칵. 찰칵찰칵.
카메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유명 블로그에 오른 벽화 그림은 사진 찍기 좋아하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도둑고양이와 어린왕자를 같은 앵글에 담을 수 있는 장소를 그들이 놓칠 리 없었다.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사진 속에는 구역질 나는 공중화장실이 없었다. 그곳에는 어미를 따라 물 위를 유영하는 새끼 오리들과 천사 날개를 가진 미소녀, 키를 쓴 오줌싸개가 그려진 아름다운 벽이 있을 뿐이었다.
주말이면 사람들이 몰려왔다. 주중에도, 낮에도, 밤에도 시간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쯤 되자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하나둘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시간과 장소를 고려하지 않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 때문에 생활이 불편해졌기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불평을 쏟아낼 때마다, 나는 얼굴이 하얗던 남학생을 떠올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할머니가 옳은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다.
교무실 앞 복도에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벌을 서고 있었다. 나는 애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교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저 녀석들 보세요, 잘못했다고 반성문을 몇십 장씩 써 놓고도 또 무단결석에, 조퇴에. 이제 때리는 것도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그렇다고 애들이 바뀔 것도 아니고."
담임은 옆자리 과학과 이야기 중이었다. 나는 거둬 온 공책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담임과 과학은 등 뒤에 내가 서 있는 것을 모르고 계속 이야기했다.
"참, 선생님도 순진하시네. 지 부모들도 포기한 애들을 선생님이 그렇게 챙길 필요가 뭐가 있어요. 그냥 내버려 둬요, 저러다가 학교 그만두면 다른 애들한테 나쁜 영향 안 끼치고 오히려 더 나아요."
과학이 안경을 고쳐 쓰면서 말했다.
"저……."
담임이 뒤를 돌아봤다. 잔뜩 부풀린 앞머리는 싸움을 시작한 수탉의 벼슬 같다.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거나 마음에 안 들면 머리를 들어 상대를 찍어 내릴 기세다. 담임은 턱 끝을 들어 책상 한쪽을 가리켰다. 나는 들고 있던 공책들을 책상 위에 놓았다.
"그리고… 서류 가져왔는데요."
주머니에서 반으로 접은 흰 봉투를 꺼내 담임 앞에 내밀었다.
"거기 공책 위에 두고 가."
담임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말없이 봉투를 공책 위에 올려 두었다.
교무실 밖에는 아직도 그 애들이 손을 들고 서 있었다. 모두 우리 마을에 사는 애들이었다. 선생님들은 우리 마을 애들의 질이 나쁘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진 부모도 없고, 아이를 교육시킬 능력도 없다고 했다. 학교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우리 마을 애들부터 불러들였다. 우리 마을 아이들은 언제든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벌을 서고 있는 애들을 째려보고 교실로 향했다. 저 아이들과 같은 마을에 산다는 것이 싫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할머니와 그 동네에 살았다. 그 동네의, 그 집에서 밥을 먹고, 세수를 하고, 잠을 자고, 텔레비전을 보고, 숙제를 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나도 그 동네의, 우리 집에서 했다. 단지 같은 마을에 산다는 이유로 저 아이들과 한 묶음으로 평가받을 이유가 내겐 없었다.
종이 울렸다. 담임이 종례를 하기 위해 교실에 들어섰다. 교무실 앞에 서 있던 애들도 교실에 들어왔다. 담임은 이번 중간고사 성적과 환경미화에 대해 얼굴이 벌게지도록 장황하게 말했다. 공부는 열심히, 교실은 깨끗이! 담임이 선창을 하자 다 같이 주먹을 쥐고 구호를 외쳤다.
"주민등록등본 가져온 사람들, 앞으로 내."
담임이 적진을 염탐하는 수탉처럼 목을 앞뒤로 움직이면서 말했다. 담임의 말에 교무실 앞에서 벌을 섰던 애들이 흰 봉투를 들고 교탁 앞으로 갔다. 구청에서 우리 마을 애들의 급식비를 면제해 준다고 하였다. 담임은 주소 확인을 해야 한다며 주민등록등본을 떼 오라고 하였다.
"누가 안 가져 온 거야? 한 사람이 비는데."
담임이 서류 숫자를 세고는 말했다. 나는 재빠르게 서랍 속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어이, 주번. 너 안 가져 왔지?"
담임이 나를 불렀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다. 나는 책을 더 열심히 보는 척했다.
"너 그 마을에 살면서 왜 모르는 척해, 공짜밥 준다는데도 그깟 서류 한 장 못 챙겨 와?"
"아까 교무실에서 드렸는데요."
책을 덮고 담임에게 말했다. 종례 시간에 담임이 서류를 거둘 거라고 예상했었다. 단체로 흰 봉투를 들고 우루루 나가 '나 무상급식 먹어요'하고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 시선을 받을 바에는 차라리 밥을 굶는 게 나았다.
"종례 시간에 내면 되지 뭣 하러 혼자만 따로 내? 그리고 너, 선생님이 묻는데 그 태도가 뭐야? 버르장머리 없이."
내 자리까지 온 담임이 출석부 모서리로 내 이마를 때렸다. 그 바람에 누렇게 익은 여드름이 터져 버렸다. 담임은 더럽게 이게 뭐냐며 더 큰 소리로 화를 냈다. 교무실 앞에 서 있던 애들이 나를 보고 키득거렸다. 나는 두 눈의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담임을 노려보았다. 닭벼슬 같은 앞머리를 전부 뽑아 버리고 싶었다.
PC방 아르바이트생은 바코드 번호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카드를 내밀었다. 나는 카운터에서 가장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투데이 힛 156』
제일 먼저 방문자 수를 점검했다. 댓글이 가장 많이 달린 사진이 어떤 건지 마우스를 움직이면서 찾았다. 원목 테이블 앞에서 저녁 만찬을 즐기는 사진이었다. 테이블에는 하늘거리는 연두색 러너가 깔려 있고, 갓 구운 빵, 핏빛이 살짝 도는 스테이크, 와인이 놓여 있다.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품위 있어 보이는 아버지, 어머니와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아래로 「오늘은 내 생일.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위해 생일 파티를 해 주셨다. 아빠, 엄마 너무너무 고맙고, 사랑해요」라는 문구가 써 있었다. 「생일이었군요~ 축하드려요!」 「저도 님 같은 부모님이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역시 잘 사는 집은 애들 생일 파티도 차원이 다르게 하는군요.」 등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기분이 좋았다. 오늘이 진짜 내 생일이라도 된 듯했다. 축하 댓글 사이로 「나이도 어린 게 호화스럽게 노네.」, 「부모 잘난 덕에 편하게 사는 게 뭔 자랑이라고.」라는 댓글도 달려 있었다. 마우스를 움직여 댓글을 삭제하고는 블로그 이웃이 선물한 노래로 배경음악을 바꾸었다.
집에 컴퓨터가 있으면 블로그 관리가 훨씬 편할 텐데. PC방에 들러 컴퓨터를 하니 늘 시간이 부족하다. 반 애들은 스마트폰이나 넷북으로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를 관리한다. 운동장, 방 안, 학교 급식실에서 실시간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홈페이지에 올렸다. 아침 조례 전에는 서로의 홈페이지에서 본 댓글을 화제 삼아 수다를 떨었다. 나는 실시간 검색어와 연예인 열애설로 들뜬 아이들 사이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자습을 했다. 강력본드를 바른 것처럼 내 입술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블로그 창을 끄고 검색 사이트에 들어가 '선물'을 입력했다. 선물은 최신 휴대폰과 태블릿 PC, 플랫슈즈로 정했다. 사진의 밝기와 음영, 크기를 조절해서 블로그에 올렸다. 나의 열일곱 번째 생일 선물이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블로그 이웃은 그동안 사진 찍기에 재미를 들인 모양이다. 성능 대비 카메라 가격과 회사별 카메라의 특징, 카메라를 싸게 살 수 있는 곳 등을 정리해 놓았다. 출사 가서 찍은 사진도 장소명을 폴더로 만들어 올려놓았다. 대부분이 풍경 사진이나 음식 사진, 물건을 가까이서 정밀하게 찍은 사진이었다.
『벽화마을』
가장 최근에 만든 폴더명이다. 나는 스크롤을 내리던 손을 멈추었다.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숨을 크게 들여 마셨다 내뱉었다. 긴장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자원봉사단체가 그림을 그리고 난 후, 구청은 우리 마을을 벽화마을로 공식 지정했다. 아직 벽화가 그려지지 않은 담장이나 마을버스 정류장, 공동 약수터, 집 안의 수돗가에까지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구청 공무원과 함께 그림을 그릴 사람들이 페인트통과 붓, 사다리를 들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이번에도 할머니는 사람들 앞을 가로 막았다.
"할머니, 나라에서 하는 일에 협조해 주셔야죠."
검정 뿔테 안경을 쓴 공무원이 말했다.
"이놈들아, 내 집에 내가 싫다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하는 거야!"
할머니가 담벼락을 붙잡고 서서 소리쳤다. 허리를 펴고 곧게 서려 해도 기역자로 굳어 버린 척추는 좀체 펴지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 옆에 서서 뿔테를 노려보았다. 우리 집에 그림을 그려야 되니, 어쩌니 하면서 떠들어 대는 공무원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아저……"
내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자, 뿔테가 나를 한 손으로 밀쳤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우리집 담벼락의 길이와 높이를 쟀다.
"할머니, 나랏일에 반대하면 붙잡혀 가는 거 모르세요? 제가 저 좋으려고 그리는 것도 아니잖아요."
뿔테의 목소리가 두더지 게임의 망치로 변해 할머니 등을 때리는 것 같았다. 할머니와 내가 반대를 하면 할수록 망치의 힘은 강해졌다. 나는 할머니 허리가 휠대로 휘어서 저대로 얼굴을 땅에 처박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할머니는 슬금슬금 뒷걸음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집 벽과 담에 노란 해바라기가 수백 송이 피었다. 해바라기가 이글이글 뿜어내는 열기에 집안은 한증막처럼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할머니와 나는 해바라기 감옥에 갇혀 버렸다. 가끔씩 사람들이 오면 창살 사이로 손을 내밀어 꺼내 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그들은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듯 할머니와 나를 구경했다. 해바라기 꽃으로 장식한 우리에 관심을 가질 뿐 감옥 같은 우리 집과 시든 꽃 같은 할머니, 채 피지 못한 꽃인 내게는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정액제 시간이 다 끝나간다고 모니터 위로 창이 떴다. 나는 사진을 보기 위해서 마우스를 움직였다. 순간, 온몸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한밤중에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교복 치마 아래로 소름이 돋았다. 눈을 비비고 사진을 다시 보았다. 수백 송이의 해바라기가 그려진 벽과 슬레이트 지붕, 새시문, 빨랫줄에 걸어 놓은 속옷과 양말. 우리 집 사진이었다. 그리고 자주색 교복을 입고 산 중턱에 있는 화장실을 향해 뛰어가는 아이는 바로 나였다.
입안이 바싹 말랐다. 마우스를 쥐고 있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며칠 전 우리 마을에 왔던 남자가 바로 블로그 이웃이었다. 그가 나를 찍어서 인터넷에 올린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지?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사진을 삭제해 달라고 해야 하나. 남자가 사진을 삭제해 달라는 이유를 물으면 뭐라고 답을 해야 하지? 나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생일 파티를 하고, 명품 구두와 최신 스마트폰을 생일 선물로 받는 아이인데. 수백 가지, 수천 가지,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눈앞에 있는 모니터를 집어 던져 버리고 싶었다.
아르바이트생은 정해진 시간이 다 되었다며 자리를 비키라고 했다. 나는 가방을 메고 PC방을 나왔다. 온 도시가 샛노란 해바라기 숲으로 바뀐 것 같았다.
쉬는 시간이 되자 나는 교실 뒤쪽의 거울 앞으로 갔다. 고무줄을 입에 물고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잔머리카락이 나오지 않도록 머리를 동여맸다.
"이거 너야?"
내가 자리에 앉자 앞자리 애가 몸을 뒤로 돌리면서 물었다. 무슨 뜻이냐고 묻자 제 책상 위에 있던 넷북을 내 쪽으로 돌렸다.
"뭔데? 재밌는 거면 나도 좀 보자."
우리 마을에 사는 애가 불쑥 끼어들더니, 모니터를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야, 너 스타 됐네."
모니터를 보고 있던 애가 큰 소리로 말했다. 뭐가 재미있는지 과장된 몸짓으로 박수까지 쳤다.
"누구, 나 말야?"
"여기 봐. 이거 너 맞잖아."
아이의 말에 그때까지 우리를 주시하고 있던 반 애들이 책상으로 몰려들었다.
들통의 똥을 벽에 부었다. 블로그와 구청장, 네티즌,
남자의 얼굴이 해바라기와 함께 똥물에 묻혔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우리 마을이 소개됐다. 정확히는 파워블로그로 선정된 사람의 블로그 사진 중 하나가 메인에 뜬 거였다. 앞자리 애가 마우스를 움직여 사진을 클릭했다. 해바라기들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수백 송이의 노란 꽃들이 콘크리트벽 안에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낯익은 광경이었다. 해바라기들을 뒤로하고 한 손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쥔 내가 공중화장실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이제 유명인사 됐네, 메인화면에도 뜨고. 난 그렇게 사고를 쳐도 인터넷에 나오지는 않던데."
우리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나라는 증거가 어디 있어? 왜 나라고 생각하는데?"
"너 맞잖아. 여기 해바라기 집 너네 집이잖아. 니가 이 집에 일이 년 산 것도 아니면서 왜 자기 집을 몰라봐?"
사진 밑으로는 「벽화마을에 다녀왔다. 여학생이 산 중턱에 있는 공중화장실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직도 집 안에 화장실이 없는 집이 있다니……. 마음이 아팠다. 저 여학생은 얼마나 불편할까.」라고 적혀있었다.
"똥 누러 간 거냐? 아님 그날이라서? 하필 이런 걸 찍히냐. 쪽팔리게."
애들이 재밌다는 듯이 사진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키득거렸다.
"흥, 이게 뭐 어때서?"
콧방귀를 뀌었지만 내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사진에 찍힌 건 별일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은 자주 인터넷에 얼굴이 올랐다. 반바지를 입고 빨래를 너는 모습, 슬리퍼를 신고 고추를 말리는 모습, 모기장을 치고 자는 모습. 연예인들도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모습이나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을 개인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는가. 제집의 강아지가 사료를 먹는 모습이나 맨 얼굴로 양치하는 모습을 아침 프로그램에서 찍지 않는가. 그러니 이건 별일이 아니다. 별일이 아니야. 나는 주문을 외우듯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애들이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책을 펼쳤다. 벌거벗은 채로 칠판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좁은 골목길에 주황색 가로등이 드문드문 박혀 있었다. 바람이 불자 가로등 밑의 벽화가 춤을 췄다. 오줌싸개의 키가 커졌다 작았다, 장독대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했다. 모양과 크기가 변하는 벽화그림이 낯설고 기괴했다. 벽화처럼 집도 늘어나면 좋겠다. 우리 집이 해바라기를 심을 만큼 넓어지면 좋겠다. 해바라기가 벽을 뚫고 나와 우리집 마당에 싱싱하게 피어 있으면 좋겠다. 담장 아래로 도둑고양이가 지나갔다. 야오옹. 작고 높은 음으로 울었다.
해바라기 벽을 등지고 쪼그려 앉았다. 집 안에서 할머니가 마른기침을 뱉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눈을 비비면서 흰 실에 색색의 구슬을 꿰고 있을 것이다. 지긋지긋하다. 할머니도 구슬도, 해바라기도 공중화장실도. 끔찍하고 끔찍하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파워블로그의 힘은 예상했던 것보다 대단했다. 정말 파워가 강했다. 나는 반 애들 말대로 진짜 유명인이 되었다. 내가 찍힌 사진은 인터넷 세계에서 수백 장, 수천 장이 복사되었다. 하늘에서 비행기를 타고 살충제를 뿌리는 것보다 더 빠르고 넓게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화장실이 없는 집에 사는 나를 불쌍하게 여겼다. 예민한 여학생이 공중화장실을 사용하려면 얼마나 불편하겠냐는 댓글을 달았다. 그 댓글 밑으로 이렇게 사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는 글이 이어졌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국가는 무얼 하느냐는 성토의 내용도 있었다. 정부가 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으니, 먼저 항의하고 요청하자는 댓글도 있었다. 마지막 댓글에 사람들이 엄지손가락을 가장 많이 세웠다.
게시판이 생겼다. 게시판 이름은 「여학생에게 화장실 만들어 주기」였다. 나는 PC방 구석 자리에 앉아서 나를 위한 게시판이 생기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메인 화면에는 자주색 교복을 입은 내 뒷모습이 커다랗게 박혀 있었다. 치마 아래로 드러난 다리가 유달리 두꺼워 보였다. 블로그에 사진이 오른 지 만 사흘이 지나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고양이가 다시 울었다. 발정이 났는지 작고 높은 음으로 요염하게 울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운동화를 봤다. 앞부분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지난번 화장실에서 발이 빠졌을 때 생긴 흔적이었다. 솔이 휜 칫솔에 치약을 묻혀 빡빡 문질렀지만 똥색은 빠지지 않았다. 아직도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집 안에 화장실이 생기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남자에게 사진 따위를 찍히는 일도 생기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게시판에 글을 써 볼까? 그 여학생이 나라고, 내가 그 집에 살고 있다고, 그러니까 화장실 만드는 것을 도와 달라고. 그 게시판은 나를 돕기 위해 만든 거니까. 내가 도와 달라고 하면 정말 도와주지 않을까. 아니면 도와 달라는 나를 비웃고 다들 사라질까. 내가 나타나면 어이없어 하며 뻔뻔하다고 손가락질할까. 결론 없는 의문과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그만 하자, 뻗어 나가는 생각의 허리를 자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 나 왔어."
새시문을 열었다. 처음 보는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방 안을 들여다보니 통장과 할머니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게 너냐?"
통장이 프린트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사진이었다. 대답을 하지 않고 통장을 쳐다봤다.
"이 사진을 구청장이 인터넷에서 봤대. 화장실 만들어 주기라나 뭐라나. 우리 마을 사진인데 누구냐고 묻는데 해바라기 그림이며 뒷모습이 꼭 너 같아서."
통장은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나라고 확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렇다는 말도, 그렇지 않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구청장이 화장실 만들어 준대요?"
나는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처럼 통장에게 물었다. 상대가 어떤 패를 들고 왔는지 알아야 한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표정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으면서 너무 위축되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그러나 강단 있게 말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면, 나는 화장실과 관련된 일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일단 어느 집인지 정확히 알아보래. 여론이 그쪽으로 쏠리고 있으니까 자기가 먼저 알아서 선수 치겠다는 거지. 다른 집 상황도 알아보고 말야."
온라인에서 돌아다니던 사진이 모니터를 뚫고 오프라인으로 튀어나왔다. 통장이 지금 내 앞에서 우리 마을, 아니 우리 집 화장실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말…이게 되는 걸까?
나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구석으로 가서 교복을 갈아입고 밥을 먹었다. 통장이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입술 사이로 웃음이 비직비직 흘러나왔다. 나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소리 내서 웃으면 안 된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그러니 너무 좋아하면 안 된다. 나는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공중화장실로 향했다. 이제 이 화장실과는 안녕이다. 영원히 끝이다. 화장실 문을 열었다. 치마를 내리고 있던 여자가 깜짝 놀라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얼른 문을 닫고 화장실 뒤로 도망쳤다. 화가 난 여자가 큰 소리로 욕을 했다.
담임은 칠판 앞에서 판서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필기를 하다 말고 우리 집 담장을 떠올렸다. 며칠 되지 않은 일인데, 아주 오래전의 일처럼 느껴졌다. 지긋지긋하기만 하던 해바라기들이 내게 도움을 주는 일도 생기구나 싶었다.
"너 블로그 있어?"
종이 울리자마자 앞자리 애가 물었다.
"응, 근데 왜?"
"이거 봐, 너 지금 검색 순위 1위야."
앞자리 애가 스마트폰을 내게 내밀었다. '벽화마을 소녀 블로그'가 실시간 검색 순위 1위에 올라 있었다. 기사 제목을 누르자 페이지가 바뀌면서 전문이 떴다.
「벽화마을 소녀의 블로그가 네티즌들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벽화마을 소녀는 한 파워블로거가 찍은 사진 속의 소녀로 화장실이 없는 마을에 살고 있어 네티즌들의 안타까움을 샀습니다. 하지만 소녀의 블로그를 발견한 네티즌들은 소녀에게 속았다는 배신감에 허탈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소녀는 가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부잣집 딸 행세를 해 왔습니다. 호화스런 생일파티와 생일선물, 해외여행 사진을 올려 블로그 이웃들의 환심을 샀습니다. 네티즌들은 이 블로그가 벽화마을 소녀의 블로그가 맞는지 진위여부를 가리기 위해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거짓말도 하냐?"
앞자리 애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싶어 다시 기사를 읽었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실로 뛰어갔다. 앞자리 애가 보여 주는 정보를 믿을 수 없었다. 시샘 많은 계집애가 내가 유명해지니까 일부러 저러는 거다. 나를 골탕 먹이려고, 놀리려고 가짜 기사를 만들어서 내게 보여 준 거다.
인터넷 창을 열어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 '벽화마을 소녀 블로그'가 1위에 있었다. 주소를 바꾸어 다른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 거기서도 '벽화마을 소녀 블로그'가 1위였다. 나는 주소를 바꾸며 계속해서 창을 띄우고, 검색 순위를 확인했다. 앞자리 애가 보여 준 기사는 사실이었다. 뉴스마다 벽화마을 소녀가 거짓말을 했다는 내용을 토해 내고 있었다. 소녀가 거짓말을 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내용도 있었다. 소녀에게 속아 후원금을 보냈다는 사람, 저번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걸로 학교에서 유명하다는 익명의 인터뷰까지 이어졌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다리, 종아리, 배, 팔, 목, 얼굴까지 소름이 가시처럼 돋아났다. 누군가가 날 건드리면 온몸의 가시로 상대방을 미친 듯이 찔러 버리고 싶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후원금을 받지 않았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지 않았고, 저번에도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 기사를 쓴 이가 앞에 있다면, 지금 당장 숨통을 끊어 버리고 싶다. 세포 하나하나까지 가시로 찔러 죽여 버리고 싶었다.
내 블로그는 핵폭탄을 맞은 것처럼 황폐해졌다. 사람들은 사진마다 갖은 욕설과 인신공격의 말을 써 놨다. '나가 죽어라'는 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할머니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어머니까지 싸잡아 욕을 했다. 담임이 우리 마을 애들을 욕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부잣집 아이가 아닌 것은 맞지만, 우리 집에 화장실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내게 최신 스마트폰과 태블릿 PC가 없는 건 맞지만, 우리 집 벽에 해바라기가 그려진 것은 사실이었다.
이 모든 게 그 남자 때문이다. 남자가 사진을 찍어서 일어난 일이다. 아니다, 해바라기 때문이다. 우리 집 벽에 해바라기가 피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다. 아니다, 인터넷에 게시판을 만든 사람들 때문이다. 왜 잘 살고 있는 사람을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화장실을 만들어 주네 마네 하는 걸까. 아니다, 구청장 때문이다. 아니다, 내 블로그를 발견한 사람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럼 결국 블로그를 운영한 내가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른 건가. 그런 건가. 정말… 그런 걸까.
갑자기 입술이 찢어진 듯 따가웠다. 키보드 위에 핏방울이 툭, 떨어졌다. 나는 급하게 컴퓨터 전원을 꺼버렸다. 팍, 하는 파열음을 뒤로하고 컴퓨터실을 뛰쳐나왔다.
교실로 가서 가방을 챙겼다. 반 애들이 수업을 빼먹고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씨팔, 조용히 해!"
시퍼렇게 날이 선 내 목소리가 교실 안에 울려 퍼졌다. 시끄럽던 교실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한낮에도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마을에서 어슬렁거렸다. 사람들은 버스 정류장의 표지를 찍고, 평상을 찍고, 공중화장실을 찍었다. 화장실과 우리 집은 이제 출사 코스 중의 하나가 되었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흘끔거리며 나를 보았다. 개중에는 대 놓고 렌즈를 들이밀며 사진을 찍는 이도 있었다.
화장실 문을 열자 악취에 숨을 쉴 수 없었다. 들통 가득 똥을 퍼 담았다. 똥무더기 사이로 구더기들이 꿈틀거리면서 기어 다녔다. 속이 메슥거렸다. 들통을 들고 집으로 갔다. 사진을 찍던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다가가자 얼굴을 찌푸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썩은 내와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나는 해바라기 앞으로 다가갔다. 활짝 핀 해바라기가 나를 잡아먹는 식인귀로 보였다. 화악. 들통에 든 똥을 벽에 부었다. 블로그와 구청장, 네티즌과 남자의 얼굴이 해바라기와 함께 똥물 아래로 묻혀 버렸다. 싱싱하던 꽃잎들이 하나둘 시들었다. 다시 한 번 똥을 들이부었다. 화사했던 벽에 살이 퉁퉁하게 오른 구더기들이 들러붙었다. 노란 해바라기 잎들이 다 죽을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누런 똥물을 부었다.
찰칵. 찰칵. 찰칵찰칵.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에 맞춰 사람들이 셔터를 눌렀다. -끝-
[2013 신춘문예 - 소설 당선소감] "기쁜 소식에 어울리는 소설가 되도록 노력"
지갑 속에는 등기우편물 영수증이 들어 있었다. 당선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 영수증들을 꺼내 보았다. 두께가 제법 두툼했다. 수취인은 매번 다르면서도 같았다. 내가 보낸 원고들의 종착지였다. 몇 해 동안 소설을 써서 보냈지만 잘 받았다, 잘 읽었다는 답장은 오지 않았다. 나는 떠나간 소설들의 안부가 궁금할 때마다, 책상 앞에 앉아 또 다른 '편지'를 준비했다. 그것만이 돌아오지 못한 내 글들을 애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예상하지 못한 답장에 기쁘면서도 겁이 난다. 울리지 않는 전화를 원망했으면서도, 울려 버린 전화가 두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보낸 편지들이 나를 지지해 줄 것임을, 그 글들이 든든한 힘이 되어 줄 것임을 믿는다.
답장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 드린다. 기쁜 소식에 어울리는 소설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수상 소식에 나보다 더 기뻐한 가족들. 그들의 응원과 위로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앞으로 더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열심히 쓰겠다. 내 곁에서 같이 울고 웃어 준 친구들. 너희들이 있어서 그 시간들이 외롭지 않았다. 부족한 제자를 이끌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선생님들께도 감사 인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S, 당신으로 인해 나는 '온전한 지지'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두려움을 이기고 글을 쓰겠다. 아주 오랫동안, 긴 시간 동안.
오선영/1981년 서울 출생.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2009년 평사리토지문학상 수상.
[2013 신춘문예 - 소설 심사평] "시대 모순 향한 작가정신·서사적 골격 비교적 탄탄"
본선으로 넘어온 작품은 모두 11편이었다. '공벌레' 'SPEC' '묵계'에선 모호한 어휘와 잘못된 문장이 눈에 띄었다. '밴다이어그램 속의 교집합을 닮은'에선 의붓딸의 아이를 새엄마가 자신의 호적에 올려 기르고 있다는 설정이 작위적이었고 '거울을 보다'는 갈등이 약했으며 감동이 적었다. '나비를 그리다'는 이야기가 덜 풀려나온 듯했다. '시월환경'에서 두 여인의 관계에 대한 묘사는 차분했지만 감성주의가 아쉬웠다. '가까운 길을 일부러 멀리 걷는 버릇'은 아내와의 느닷없는 화해가 자연스럽지 못했고 '디타의 토요일'은 여성주의적 관점에 좀더 투철했더라면 하는 점과 중간중간 감상적 터치와 자살로 처리한 종말이 흠이었다. '나무에게 묻다'는 쌍둥이 형제와 아버지 사이의 화해 과정을 차분하게 그려 낸 작품이다. 그러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려는 강박적 의도가 작품의 깊이를 떨어뜨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과 사건의 대부분이 회상 속에 잠겨 감칠맛 있는 문장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이 없고 지루한 느낌이었다. '해바라기 벽'은 벽화그리기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빈민촌을 배경으로 가식적이고 과장된 친절과 사회적 허위의식을 포착해 낸 작품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같은 것은 간단히 무시되어 버리는 인터넷의 허구적 센세이션의 문제점도 무난히 드러내 보였다. 소품 같다는 느낌과 상식적 시선은 아쉬웠으나 시대의 모순을 향한 작가정신과 서사적 골격이 비교적 탄탄한 것이 미더웠다.
진지한 토론 끝에 심사위원들은 '해바라기 벽'을 당선작으로 정하는데 의견을 모았다. 함께 투고된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일정한 역량을 갖추었다는 점도 판단에 도움이 되었다. 새 작가의 탄생을 축하하며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최인석·김헌일·옥태권·권유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