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論語集注) - 3 - 팔일(八佾) - ⑬ |
1 | 王孫賈問曰 與其媚於奧 寧媚於竈 何謂也 왕손가가 공자에게 묻기를, “아랫목 신에게 아첨하기보다는 차라리 부뚜막 신에게 아첨하는 것이 낫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하니 王孫賈, 衛大夫. 媚, 親順也. 室西南隅爲奧. 竈者, 五祀之一, 夏所祭也. 凡祭五祀, 皆先設主而祭於其所, 然後迎尸而祭於奧, 略如祭宗廟之儀. 如祀竈, 則設主於竈陘, 祭畢, 而更設饌於奧以迎尸也. 故時俗之語, 因以奧有常尊, 而非祭之主; 竈雖卑賤, 而當時用事. 喩自結於君, 不如阿附權臣也. 賈, 衛之權臣, 故以此諷孔子. 왕손가는 위나라 대부다. 媚는 친애하고 순응하는 것이다. 방의 서남쪽 모퉁이를 奧라고 한다. 竈라는 것은 5제사 중의 하나인데, 여름에 지내는 제사다. 무릇 5사에 제사를 지낼 적에, 모두 먼저 신주를 설치하고 각자의 제 자리에서 제사를 지낸다. 그런 연후에 시동을 맞이하여 아랫목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대략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는 의식과 비슷하다. 부뚜막에 제사를 지내는 경우에는, 부뚜막 뜰에 신주를 설치하고 제사를 마치면, 다시 아랫목에 제수품을 진설해놓고, 다시 시동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 세속의 말에, 아랫목은 떳떳한 존귀함이 있으나, 제사의 주인이 아니고, 부뚜막은 비록 비천하기는 하지만 때에 당하여 일에 쓰인다고 하였다. 이는 스스로 임금에 결탁하는 것이 권신에게 아부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왕손가는 위나라의 권신이었기에 이로써 공자에게 넌지시 말한 것이다.
禮記月令 孟春之月其祀戶 孟夏祀竈 中央祀中霤 孟秋祀門 孟冬祀行 예기 월령에, 맹춘(초봄)의 달에 戶에 제사를 지내고, 맹하(초여름)에 부엌에 제사를 지내며, 중앙에 中霤(일광창)에 제사를 지내고, 맹추(초가을)에 대문에 제사를 지내며, 맹동(초겨울)에 길에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다.
朱子曰 陘是竈門外平正可頓柴處 陘非可做好安排 故又祭於奧以成禮 五祀皆然 問五祀 皆有尸 以誰爲之 曰 今無可考 但墓祭以家人爲尸 以此推之 祀竈之尸 恐膳夫之類 祀門之尸 恐閽人之類 祀山川 則虞衡之類 儀禮周公祭泰山 召公爲尸 주자가 말하길, “陘(형, jing4)은 부엌문 밖의 평평하고 바른 곳으로서 땔나무를 안돈하는 곳이다. 陘은 안배를 잘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아랫목에서 제사를 지냄으로써 예를 완성하니, 오사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누군가 묻기를, “五祀를 지냄에 있어 모두 시동이 있는데, 누구를 시동으로 삼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지금은 상고할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墓祭의 경우 집안사람으로 시동을 삼는데, 이로써 미루어보면, 부엌에 제사를 드릴 적의 시동은 아마도 요리사 부류가 아닐까 싶고, 대문에 제사를 드릴 때의 시동은 문지기 부류가 아닐까 싶으며, 산과 내에 제사를 드릴 적에는 虞衡(산지기와 연못지기)의 부류일 것 같다. 儀禮에 따르면, 주공이 태산에 제사를 올릴 적에 소공이 시동이 되었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問主與尸 其別如何 旣設主祭於其所 又迎尸祭於其奧 本是一神 以奧爲尊 以主爲卑 何也 曰 不是尊奧而卑主 但祭五祀 皆設主於其處 則隨四時更易 皆迎尸於奧 則四時皆然 而其尊有常處耳 누군가 묻기를, “신주와 시동은 그 구별함이 어떠합니까? 이미 신주를 설치하고 그 자리에서 제사를 올렸으면서도, 다시 시동을 영접하여 그 아랫목에서 제사를 올리는데, 본래 하나의 神이지만 아랫목 신을 존귀한 것으로 삼고, 신주는 비천한 것으로 삼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아랫목 신을 높이고, 신주를 낮추는 것이 아니다. 단지 五祀에 제사를 지낼 적에, 모두 각자 자기 자리에 신주를 설치하는 것이니, 사계절에 따라 바꾸어야 하지만, 모두 아랫목으로 시동을 영접하는 것은 사계절 모두 그러한 것이어서, 그 존귀하게 여기는 바에 일정한 곳이 있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五祀先設主席而祭於其所 親之也 後迎尸而祭於奧 尊之也 祭於其所 近於褻止 祭於奧 又非神所栖 故兩祭之以盡求神之道也 쌍봉요씨가 말하길, “五祀를 지낼 적에 먼저 신주 자리를 설치하여 제 자리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그것과 친밀하게 하는 것이다. 나중에 시동을 맞이하여 아랫목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그것을 높여주는 것이다. 제 자리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무례하게 함부로 하는 것에 가깝고, 아랫목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또한 그곳이 神이 깃든 곳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 제사를 지냄으로써 神에게 구하는 도를 지극히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奧乃一室中最尊處 五祀皆迎尸於奧 雖有常尊 然尸竈之類 乃祭之主而奧非祭之主也 以奧之尊 見竈爲卑賤 夏屬火竈以火爨 夏祭主之 當夏之時 行夏之事 신안진씨가 말하길, “아랫목(奧)은 곧 방 안에서 제일 높은 곳이다. 五祀를 지낼 적에 모두 아랫목에서 시동을 맞이하는데, 비록 그곳에는 항상 존귀함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시동과 부엌神 같은 부류는 곧 제사의 주인인 반면에, 아랫목은 제사의 주인이 아니다. 아랫목을 높임으로써 부엌의 비천함을 드러낸 것이다. 여름은 불에 속하는데, 부엌에서 불로써 밥을 짓기에, 여름 제사는 부엌을 주인으로 삼는 것이다. 여름 시절을 당하면, 여름의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以奧比君 以竈比權臣 아랫목으로 임금에 비유하고, 부엌으로 권신에 비유한 것이다. |
2 | 子曰 不然 獲罪於天 無所禱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지 않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용서를 빌 곳이 없다.”라고 하셨다.
天, 卽理也; 其尊無對, 非奧竈之可比也. 逆理, 則獲罪於天矣, 豈媚於奧竈所能禱而免乎? 言但當順理, 非特不當媚竈, 亦不可媚於奧也. 하늘은 곧 이치로서, 그 존귀함은 대적할 게 없는데, 아랫목과 부뚜막에 비교할 만한 것이 아니다. 이치를 거스르면, 곧 하늘에 죄를 짓는 것이니, 어찌 아랫목과 부뚜막에 잘 보이고 빌어서 면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단지 마땅히 이치에 따라야 할 뿐이지, 그저 마땅히 부뚜막에 잘 보여서도 아니 될 뿐 아니라, 또한 아랫목에 잘 보여서도 안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朱子曰 獲罪於天 只是論理之當否 不是論禍福 問獲罪於蒼蒼之天 抑獲罪於此理 曰 天之所以爲天者 理而已 天非有此道理 不能爲天 故蒼蒼者 卽此道理之天 주자가 말하길, “하늘에 죄를 짓는다는 것은 그저 이치의 당부를 논한 것이지, 화복을 논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누군가 묻기를, “푸르디 푸른 하늘에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이 이치에서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하늘이 하늘인 까닭은 이치일 따름이다. 하늘이 이 이치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하늘이 될 수 없으니, 그래서 푸르디 푸른 것이 곧바로 이 이치의 하늘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凡物必有對 惟天則無所不包 惟理則無所不在 故尊而無對 경원보씨가 말하길, “모든 사물에는 반드시 그 짝이 있지만, 오직 하늘만은 포함하지 않는 것이 없고, 오직 理만은 없는 곳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존귀하면서도 대적할만한 것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吳氏曰 天雖積氣 理寓其中 逆理 則得罪於天而禍及之矣 오씨가 말하길, “하늘은 비록 氣를 축적하고 理가 그 안에 깃들어 있지만, 이치를 거스른다면, 하늘에 죄를 지어서 禍가 그에 미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天卽理也一句 是昭昭之天合人心之天言之 理原於天而具於人心 逆理 則自欺此心之天 是卽欺在天之天而獲罪 非自外至矣 신안진씨가 말하길, “하늘은 곧 理이라는 한 구절은 밝디밝은 하늘을 사람 마음속의 하늘과 합하여 말한 것인데, 理는 하늘에서 근원한 것으로서, 사람의 마음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이치를 거스른다면, 스스로 이 마음속의 하늘을 속인 것으로서, 이는 곧 하늘에 있는 하늘을 속여서 죄를 지은 것이니,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緊要是媚字不好 주자가 말하길, “긴요한 것은 媚라는 글자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纔說媚字 便已非理 非理則獲罪於天矣 운봉호씨가 말하길, “조금이라도 媚라는 글자를 말한다면, 곧 이미 이치가 아닌 것이니, 이치가 아니라면 하늘에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3 | ○ 謝氏曰: “聖人之言, 遜而不迫. 使王孫賈而知此意, 不爲無益; 使其不知, 亦非所以取禍.” 사씨가 말했다. “성인의 말씀은 겸손하고 박절하지 않아서, 만약 왕손가가 이 뜻을 알았다면, 유익함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고, 설사 그가 알지 못하였다고 해도, 역시 화를 당할 바는 아니었다.”
朱子曰 王孫賈 庸俗之人 見孔子在衛將謂有求仕之意 欲孔子附己 故有媚奧與媚竈之言 彼亦雖聞有孔子之聖 但其氣習卑陋 自謂有權可以引援得孔子也 子曰 不然者 謂媚奧與媚竈 皆非也 天下只有一箇正當道理 循理而行 便是天 若稍違戾於理 便是得罪於天 更無所禱告而得免其罪也 猶言違道以干進 乃是得罪於至尊至大者 可畏之甚 豈媚時君與媚權臣所得而免乎 此是遜辭以拒王孫賈 亦使之得聞天下有正理也 주자가 말하길, “왕손가는 용속한 사람인지라, 공자께서 위나라에서 장차 벼슬을 구하는 뜻이 있음을 말하려는 것을 알고서, 공자가 자신에게 아부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아랫목에 잘 보이고 부뚜막에 잘 보인다는 말을 하였던 것이다. 그도 역시 공자의 성스러움이 있다는 것을 들었을 테지만, 다만 그 氣習이 비루하였기 때문에, 자신에게 공자를 이끌어줄 만한 권세가 있다고 스스로 말했던 것이다. 공자께서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랫목에 잘 보이는 것이나, 부뚜막에 잘보이는 것이나,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천하에는 오직 하나의 정당한 이치가 있으니, 이치를 따라서 행한다면 곧 하늘이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이치를 거스르거나 어그러지면, 곧바로 하늘에 죄를 짓는 것이니, 더이상 빌고 고하여 그 죄를 모면할 곳이 없는 것이다. 이는 ‘道를 위반하여 벼슬에 나아감을 구하는 것은 도리어 지극히 존귀하고 지극히 위대한 것에 죄를 짓는 것으로서, 대단히 두려워할 만한 것이니, 어찌 당시의 임금에게 잘 보이고 권신에게 잘 보여서 모면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는 겸손한 말로써 왕손가에게 거절한 것이지만, 또한 그로 하여금 천하에는 올바른 이치가 있다는 것을 들을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夫子謂苟獲罪於天 則媚奧媚竈皆何所益 蓋胸中所存一有不直 則爲獲罪於天矣 夫欲求媚是不直之甚者也 斯言卽禱祠而論之 而所以答其意者 亦無不盡矣 남헌장씨가 말하길, “공자께서 만약에 하늘에 죄를 짓는다면, 아랫목에 아첨하고 부뚜막에 잘 보이는 것이 전부 무슨 보탬이 있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대체로 마음속에 보존된 바에 하나라도 곧지 않은 것이 있다면, 하늘에 죄를 짓게 될 것인데, 무릇 잘 보이기를 구하려 하는 것이 바로 곧지 않음이 심한 것이다. 이 말씀은 기도와 제사에 나아가 논한 것임에도, 그 뜻에 대답한 것은 역시 다하지 않음이 없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西山眞氏曰 聖人道大德宏如天地 故其發言渾渾乎如元氣之運 不曰媚奧竈之非 但言獲罪於天無所禱也 亦如對陽貨 但言吾將仕矣 其言渾然圭角不露 旣非阿徇 又不違忤 此所以爲聖人之言也 常人之於權貴 非迎逢苟悅 則必激觸使怒 雖直言激觸者 不失其正 然比之聖人氣象 猶未免陷於一偏 然此非勉强可及 苟欲師慕 其萬一惟敬以存養 使心平氣和 則庶乎其可近爾 程子謂 讀論語者要識聖賢氣象如此章之類 優游玩味 則其氣象可見矣 又曰 使王孫賈知此意 則必惕然 自省平日所爲咈理 得罪於天者已多 是乃開其悔悟之機也 如不知此意 亦不至觸之以招禍 서산진씨가 말하길, “성인께서는 도가 크고 덕이 넓기가 天地와 같기 때문에, 그 하신 말씀도 순수하여 마치 元氣가 운행하는 것과 같아서, 아랫목과 부뚜막에 아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다만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또한 양화에 대하여 단지 ‘내가 장차 벼슬을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그 말씀이 혼연하여 圭角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이미 아부하고 따르는 것이 아니며, 또한 거스른 것도 아니다. 이것이 바로 성인의 말씀이 되는 까닭이다. 보통 사람은 권세와 부귀에 대하여, 그에 영합하여 구차히 기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면, 반드시 과격하게 부딪혀서 분노하게 만드는데, 비록 직언으로 격하게 부딪히는 자가 그 올바름을 잃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이를 성인의 기상에 비교하면, 도리어 어느 한 편에 치우쳐 빠짐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상은 억지로 해서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스승으로 사모하고자 하여, 그가 만에 하나 오직 공경함으로써 마음을 보존하고 길러서 마음을 화평하게 하고 기운을 조화롭게 한다면, 거의 그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따름이다. 정자가 말한 ‘논어를 읽은 사람은 성현의 기상이 이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장과 같은 부류를 충분히 여유 있게 완미한다면, 그 기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만약 왕손가가 이 뜻을 알았다면, 반드시 두려워하면서 평소 행한 것이 이치에 어긋나서 하늘에 죄를 지은 것이 이미 많다는 것을 스스로 반성할 것이니, 이는 마침내 그에게 후회하여 깨닫는 기회를 열어준 것이다. 만약 이 뜻을 알지 못한다면, 이 역시 그를 촉발시켜 화를 불러오는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王孫賈 衛之權臣 觀聖人獲罪於天之語 則其儆之深矣 然他日稱衛靈公之不亡 則以其國有人之故 而王孫賈治軍旅 亦與焉 蓋其人雖不善 至於治兵 則其所長 此又憎而知其善之意 聖人之心 至公如天地 此其一事也 왕손가는 위나라의 권신이었다. 성인께서 하신 ‘하늘에 죄를 짓는다면’이란 말씀을 살펴보면, 그를 경계하심이 깊은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날에 위령공이 망하지 않는 것을 지칭하면서 그 나라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왕손가가 군사를 다스리는 것도 역시 그 안에 인정해 주었다. 대체로 그 사람이 비록 선하지 않을지라도, 병사를 다스리는 일에 이르러서는 그가 잘하는 바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또한 미워하면서도 그 장점은 알아준다는 뜻이다. 성인의 마음은 지극히 공정함이 천지와 같으니, 이것이 바로 그 하나의 일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