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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회]
다음날, 무림맹은 발칵 뒤집어졌다.
무림맹의 철통같은 경계 속에서 이루어진 살인 사건, 그리고 사건의 피해자는 다름 아닌 무림맹의 고수들이었다.
무림맹에서는 자신들의 안마당에서 벌어진 이 기가 막힌 사건에 분노를 터트리면서도 우선 이 사실이 밖으로 세어나가지 않게 비밀을 지키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천하대회의가 벌어지는 시기였다.
수많은 무림의 명숙들이 무림맹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 때에 무림맹 내부에서 그러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 그들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무림맹의 신용은 걷잡을 수 없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때문에 무림맹에서는 총력을 기울여 이 사건이 밖으로 세어나가지 않게 입단속을 했다. 기리고 비밀리에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신황은 아침에 일어난 후 자신이 밤새 저질렀던 사건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자, 자신이 지나온 골목길을 다시 가봤다.
그러나 그가 살육을 저질렀던 골목길은 평소와 똑같은 모습으로 회복되어 있었다. 그곳 어디에서도 밤새 치열한 격전이 있었다는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만약 이곳에서 싸웠던 사람이 신황 본인이 아니라면, 그는 이곳에서 그러한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것을 결코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토록 처절하게 벽과 거리를 물들이고 있던 붉은 핏자국이 마치 하룻밤의 꿈이었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사라진 골목길.
신황은 말없이 몸을 돌렸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정말 대단한 조직력이군.”
그날의 흔적을 이렇게 감쪽같이 없앨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을 습격했던 조직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이 무림맹이든, 아니든 말이다.
신황이 다시 별채로 돌아오자 무이가 그를 반겼다.
“백부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그래, 너도 일찍 일어났구나.”
“오늘이 염화언니가 지(地)조에서 준결승을 치르는 날이잖아요. 그래서 일찍 일어났어요.”
“벌써 그렇게 되었느냐?”
“네! 오늘만 이기면 본선에 올라갈 수 있어요.”
무이는 무척 신이 난 듯했다. 홍염화의 일에 저렇게 침을 튀기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까 말이다.
“염화가 좋으냐?”
신황은 무릎을 꿇으면서 그리 말했다. 그러자 무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염화 언니는 정말 대단해요.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 있는지....”
“너도 강해질 거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너도 나이가 들면 염화보다 더 강해질 거다.”
“반드시 그렇게 될 거에요.”
사실 무이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목표로 삼기에는 신황은 너무나 높은 곳에 있었다. 또한 그가 싸우는 방식 또한 무이하고는 맞지 않았다.
사실 신황의 방식은 그 어떤 사람에게도 맞지 않았다. 그의 방식은 오직 그에게만 맞는, 그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이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찾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홍염화였다.
같은 여인이면서도 후기지수 중 두각을 나타내는 홍염화, 그녀는 네 개 조로 나눠져 펼쳐지는 신병쟁탈전에서 승승장구하며 어느새 예선 준결승에까지 올랐다.
여인이라고 그녀를 우습게보던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매서운 손속과 만화미인수 앞에 추풍납엽처럼 나가떨어졌다.
지난번 격전에서 할아버지인 팽만우를 잃어버릴 뻔했던 경험을 한 무이는 그날 이후 무공이 높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래서 홍염화를 따라다니면서 비무를 관람했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서 실전에서 무공을 어떻게 써야할지 연구를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목표가 없던 무이의 삶에 똑바로 직시할 목표가 생겼다고 봐도 좋을 것이었다.
신황은 무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생각했다.
‘이제 이 아이도 성장이라는 것을 시작했구나.’
약간 서운한 것 같기도 하고 대견한 것 같기도 했다. 신황은 자신의 이런 감정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아직 잘 몰랐다.
“식사하러 가요. 아마 지금쯤 모두 식사 준비를 끝냈을 거예요.”
“그러자꾸나.”
신황은 말과 함께 무이를 안아 무동을 태웠다. 오랜만에 태우는 무동이었다. 예전보다 조금 더 무게가 나가는 것 같았다.
“와~아!”
무이가 두 팔을 벌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크릉!
그제야 설아가 잠에서 깼는지 무이의 품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잠꾸러기!”
크릉!
“매일 잠만 자면 어떻게 해? 너 그러다 돼지처럼 살찐다.”
크으응!
“몰라. 마음대로 해!”
이른 아침부터 둘의 토닥거림이 별채 안에 울려 퍼졌다.
오전부터 지조의 비무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이번 대결에 쏠린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까지 신황은 늘 근처 전각의 지붕 위에서 비무를 관전하였으나, 이번 비무의 중요성을 감안해 제일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장포에 커다란 초립을 뒤집어썼기에 근처의 사람들은 신황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의 신경은 오로지 비무대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이다.
“만약, 홍소저가 이번에도 이긴다면 본선에 진출하게 되는 거지?”
“그렇지! 승패에 상관없이, 결승전에 오른 두 사람은 본선에 진출할 수 있으니까.”
“크아~! 얼굴도 귀엽고 몸매도 좋은데다가 무공도 출중하니 정말 이번 대회의 여자 중 제일 고수는 홍소저이구먼.”
“이런 사람하고는....... 홍(紅)조의 혁련 소저는 어디 꿔다놓은 보릿자루인가? 혁련 소저도 오늘만 이기면 본선에 진출한다네.
그러니 아직 홍소저가 낫다고는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거지.”
남자들은 편을 나누어 홍염화와 혁련혜를 응원하고 있었다.
남자들이 대세를 이루는 살벌한 비무대회에서 이제가지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준결승에 오른 두 여인은 단연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홍염화는 사람들에게 화염화(火炎花)라는 호칭으로 불렸다.마치 불꽃 속에 피어난 꽃처럼 열정적이라는 의미에서였다.
그리고 혁련혜는 설중화(雪中花)라는 별호로 불렸다. 홍염화와는 정반대의 매력을 풍기는데 대한 군웅들의 배려였다.
기존에 있던 강호사화(江湖四花)가 무공보다는 미모와 집안 배경에 의해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면,
홍염화와 혁련혜는 무공과 미모, 그리고 배경까지 삼박자가 맞아떨어져 수많은 군웅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언니는 정말 대단해요!”
무이가 신황의 어깨에 무동을 탄 채로 얼굴을 붉게 상기시켰다.
아직 비무가 시작되기도 전이었지만, 무이는 벌써부터 자신이 무대에 올라간 듯 가볍게 흥분을 하고 있었다.
신황은 그런 무이의 떨림을 어깨로 느끼며 비무대를 바라보았다.
순간,
“와아아아~!”
“홍소저다.”
군웅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비무대에 오르던 홍염화는 사람들의 함성에 잠시 흠짓하였지만 이내 미소를 한 번 지어주고는 무대 중앙에 올랐다.
이어 홍염화의 상대가 비무대에 올랐다.
홍염화의 준결승 상대는 청성파(靑城派)의 후기지수 중 제일을 자랑한다는 청성일절(靑城一切) 소만호였다.
이제까지 강호에 사람들을 잘 내보내지 않던 청성파가 오랜만에 세상에 내보낸 무서운 검수. 사람들이 소만호를 바라보는 눈길은 그랬다.
이제까지 소만호의 상대가 되었던 자들은 하나같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패했다. 소만호는 자신의 상대가 된 자들에게 추호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그는 반드시 상대방이 스스로 흘린 피 웅덩이에 나뒹굴어야만 검을 거두었다. 때문에 이제까지 그의 상대가 됐던 자들은 모두 기식이 엄엄한 상태였다.
때문에 군웅들은 무서운 기세를 보이며 욱일승천하는 소만호와,
화려하지는 않지만 상큼한 미모를 뽐내며 발군의 무공을 선보이는 홍염화 중 누가 이길지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다.
홍염화와 소만호가 입장을 마치자 심판을 맡은 무림맹의 장로가 두 사람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어 둘에게 주의할 점을 설명했다.
그러나 소만호는 그런 장로의 말을 들은 척 만 척 하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꽤 예쁜 계집이군. 하지만 계집의 본분은 집에서 서방이 오기나 기다리는 것,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군.”
꿈틀!
자신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소만호의 말에 홍염화의 미간이 크게 움직였다. 홍염화는 소만호를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흥! 정말 사내 같지도 않은 게 꼴값을 떠네.”
“뭐?”
순간 소만호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빛이 떠올랐다. 그는 방금 전에 자신이 들은 말이 환청이 아니었나 싶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홍염화가 그런 그를 향해 쐐기를 박았다.
“남자가 오죽 못났으면 여자가 집에 있기를 바랄까? 당가의 암기만큼이나 속이 좁아터졌군.”
“................”
신랄한 홍염화의 말에 소만호가 일순 할 말을 잃었다.
이제까지 청성산에서 떠받듦을 받고만 자란 그가, 언제 이런 폭언을 들어봤을까? 그에게 있어 여인은 언제나 자신을 기다리는 해바라기여야 했고,
또 이제까지 늘 그랬다. 그래서 평소의 습관대로 말을 한 것뿐인데, 홍염화는 그런 소만호의 자존심을 단숨에 박살내버리고 말았다.
“네가 정녕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계집이 어디서 쥐꼬리만 한 무공을 익혀서.............”
“흥~! 좋은 검 놔두고 입만 앞세우는 것을 보니 알 만하구나. 너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홍염화는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남자는 신황이 유일했다. 그 외,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신황은 여인을 무시하지 않았다. 또한, 힘없는 자들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도 않았다. 그가 힘을 쓸 때는 오직 자신을 지킬때뿐이었다.
하지만 한 번 움직이면 너무나 잔혹하게 손을 써,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할 뿐이었다.
때문에 홍염화가 보는 남자의 기준은 무조건 신황이었다. 그런데 소만호는 신황에 한참을 미치지 못할 뿐더러, 무공이나 인품마저도 비교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계집, 내 앞에서 제발 살려달라고 빌게 만들어주마.”
촤아앙!
소만호가 검을 뽑아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정말로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홍염화의 표정에는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그녀는 소만호가 하나도 겁나지 않았다. 정말 무서운 사람은 결코 이렇게 가볍게 흥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 분명히 후회하게 될 거에요.”
홍염화가 사늘히 말하며 채대를 끌렸다.
두 사람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넓은 비무대를 좁다고 느껴지게 할 정도로 활개 치며 두 사람은 격렬히 자신들의 무기를 휘둘렀다.
신황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비무를 무심히 바라봤다. 그러나 무이는 보기만 해도 손바닥에 땀이 나는지, 연신 두 손바닥을 치마에 문질렀다.
그대 한 줄기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그 지독한 악취에 신황의 주위에 있던 군웅들이 코를 막고 급히 물러났다. 그들이 물러난 자리에는 보기에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거지가 들어왔다.
‘개방의 삼 결 제자.’
신황은 거지의 허리에 있는 매듭을 보며 중얼거렸다.
삼 결이면 분타주 급이다. 지금 신황의 옆자리에 다가온 거지는 개방의 의창 분타주인 것이다.
“크아~! 잘 싸운다. 역시 홍소저가 최고야.”
거지는 홍염화가 싸우는 장면을 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는 마치자신의 부인이 싸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열을 내며 흥분했다.
그렇게 얼마나 소리를 질렀을까? 그는 목이 메는 듯 옆에 차고 있던 술병을 입에 대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벌컥, 벌컥!
그 지저분한 모습에 사람들이 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신대협, 교 장로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그때 신황의 귀로 한 줄기 미약한 음성이 흘러들어왔다. 거지가 술을 마시는 척하며 전음을 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신황은 묵묵부답, 오직 전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지는 그런 신황의 반응에 상관없이 계속해 전음을 보냈다.
‘어젯밤, 무림맹 내부에 여러 가지 변고가 생긴 것 같습니다. 갑자기 무림맹의 요소에 경계가 강화됐습니다.
아직 외부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무림맹 내부에서 일하고 있는 시비들이나 하인들의 말에 따르면 무림맹의 주요인사 몇 명이 암살을 당한 것 같습니다.’
‘흉수는?’
‘아직 무림맹에서도 파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음!’
그의 말에 신황이 무심히 눈을 빛냈다.
거지의 전음은 계속해서 신황의 귀로 파고들었다.
‘무림맹에서는 이 일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하여 비밀조직을 움직인 것 같습니다.
또한 철저한 정보의 통제를 위해 이 사건을 비밀에 붙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지는 이제까지 개방에서 알아낸 정보를 신황에게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자면 여전히 주정뱅이 거지가 술을 마시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거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모두 신황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내 조금 전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잘했다. 아예 날려버리라고!”
그렇게 거지는 다시금 호들갑을 떨다가 자연스럽게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
누가 그들을 지켜보았다 할지라도 의심할만한 구석이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거지가 사라진 후 신황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백형이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군.’
현재 무림맹 내부에서 무림맹의 인물들을 공격할만한 인물은 백용후밖에 없었다.
무림맹의 인물들이 당했다는 것은 마교의 인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이제 바야흐로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곳에 있는 인물들 중 자신들이 환호하고 있는 무림대회 이면에 그렇게 치열한 전투가 시작된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황은 그런 사람들을 무사히 바라보다 다시 비무대 위에서 격렬하게 싸움을 하고 있는 홍염화에게 시선을 던졌다.
제갈문은 비각의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그는 일련의 사건에서 무림맹의 내부에 보이지 않는 적이 들어왔다고 판단을 했다.
황주상단의 일로 정보와 탐문을 담당하는 비각의 요원들이 빠져있던 상태였다.
때문에 무림맹 내부에 대한 감시가 소홀했었는데, 적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무림맹의 내부 인물들을 암살한 것이다.
이제 제갈문은 자신의 추측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적들은 우리의 시선을 외부로 끌어내고 내부로 침투한 것이다. 비각의 요원들에 공백이 생긴 사이, 적들은 내부로 침입한 것이 틀림없다.’
그것은 매우 심각한 도전이었다.
맨 처음 일개 상단이 무림맹의 상단에 도전했을 때, 그는 그저 어리석은 자들의 치기 어린 도전이라고 치부했다.
감히 무림맹의 힘을 모르기에 그런 도전을 해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들어온 정보를 종합해볼 때, 이 사건은 그리 간단한 게 아니었다.
자신들의 이목을 외부로 돌리고 내부로 잠입한 자들, 그리고 무림맹의 삼엄한 경계를 우습게 만들어 버리고 자행한 암살.
황주상단은 시선을 빼앗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다. 진짜 적들은 이곳 무림맹 내부에 침입한 것이 틀림없었다.
“어저면 진짜 마교일지도 모른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정말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자신은 황주상단을 마교로 몰아 그들의 재산을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정말 저들이 마교라면?제갈문은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함을 인정해야 했다.
“비영, 지금 비각의 인물 중 밖으로 나가있는 인물의 비율이 얼마나 되나?”
“사 할 이상의 요원이 지금 황주상단의 일에 매달려 있습니다. 때문에 무림맹 내부에 대한 감찰이나 감시에 심각한 공백이 생긴 상태입니다.”
“밖으로 나가있는 요원들을 모두 불러들여라.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나?”
“아무리 빨리 귀환하더라도, 모두가 들어오려면 최소 삼 일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삼 일이라..........”
제갈문은 생각보다 그들의 공백이 크다고 느꼈다.
“너무 늦어. 삼 일이라면..........”
그는 잠시 생각을 하다 곧 결심을 했는지 단호한 눈빛을 했다.
“삼 일의 공백 동안 백무(白霧)를 움직인다.”
“백무를 말입니까?”
“암살자는 암살자가 잡아야 제 맛이지. 그들이라면 비각의 공백을 제대로 메워줄 것이다.”
제갈문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백무는 그의 부하가 아니다. 그들은 모두 백무광이 직접 키운 인물들이었다. 하얀 안개라는 이름이 붙은 그들.
제갈문은 단 한 번 백무가 움직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마치 아침에 하얀 안개처럼 은밀히 나타났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인물들. 그들이 나타났던 자리에 살아있는 생명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 적대감을 가진 존재, 그들이 바로 백무였다.
홍염화와 청성일절 소만호의 대결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소만호는 청성의 검을 이용해 홍염화를 사납게 몰아치고 있었다. 마치 폭풍처럼 몰아치는 사나운 검세에 금방이라도 홍염화가 휘말릴 것처럼 위태해 보였다.
“아!”
“이런.........!”
위태로운 홍염화의 모습에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
무이의 입에서도 안타까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꼭 쥔 두 주먹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봐서 무이가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신황은 피식 웃으며 무이에게 말을 했다.
“그리 걱정할 것 없다. 염화가 이길 테니까.”
“정말요? 지금 염화 언니가 밀리는데요.”
무이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상황은 누가 봐도 홍염화가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무이가 아니라 모두가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신황이 다른 말을 하니까 의문이 든 것이다.
신황은 그런 무이의 의문을 해소해주기 위해 설명을 했다.
“염화가 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염화의 얼굴 어디에도 당황한 기색은 없다. 또한 염화는 지금 최소한의 힘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방어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청성파의 검객은 있는 힘을 모두 이용해 무작정 염화를 공격하고 있다. 비록 기세 면에서는 사납기 그지없으나.....
고수와의 싸움에서 저런 막무가내는 통하지 않는다. 그는 조금 있으면 제풀에 지칠 것이다.”
“음~!”
신황이 설명을 들으며 무이는 두 눈을 부릅뜬 채 홍염화와 소만호의 싸움을 지켜봤다.
잠시 후,
“정말!”
무이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정말 신황의 말대로 소만호가 지친 모습이 역력해 보이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홍염화는 쌩쌩하기 그지없었다.
“소나기가 거셀 때는 잠시 몸을 피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굳이 화난 상대에 정면 대결을 걸 필요가 없는 거지.”
“그럼, 염화 언니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염두에 두고 대결을 벌인 건가요?”
“그렇다. 때문에 처음부터 청성파의 검객을 도발한 것이다.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인이라 할 수 없다. 너 역시 그것을 잘 알아두어야 한다.”
신황의 말에 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홍염화의 싸움에 집중을 했다.
“훅훅!”
소만호는 자신도 모르게 거친 숨을 토해냈다. 홍염화의 도발에 자신도 모르게 발끈해 무작정 검을 휘두른 결과였다.
제아무리 내력이 충만하고 거친 수련으로 육체가 단련되었다고 하지만, 주구장창 헛손질만 하고도 육체가 지치지 않는다면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소만호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계집이 진짜........”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홍염화를 노려봤다. 살기가 가득한 눈동자.하지만 홍염화는 그의 시선에 추호도 위축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바보..........”
그녀의 입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너무도 작아 근처에서 구경을 하던 무인들마저 듣지를 못했다.
하지만 오직 단 한 사람, 소만호만큼은 그녀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이런 계집년이...........!”
“그래, 나 계집이다. 그래서 네가 보태준거 있냐? 사내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 입만 거칠어서.”
쉬쉬쉭~!
홍염화의 채대가 날카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소만호를 몰아쳐갔다. 소만호는 급히 검을 들어 홍염화의 채대를 막아갔다. 하지만 채대는 교묘하게 소만호의 빈틈을 헤집고 들어왔다.
“이익!”
대번 소만호의 얼굴에 당혹한 기색이 떠올랐다. 너무나 날카롭게 파고드는 채대 때문이었다.
그는 검기를 끌어올려 홍염화의 채대를 단숨에 자르려 했으나, 홍염화는 교묘히 손목을 움직여 그런 소만호의 공격을 모두 무위로 만들었다.
터~엉!
순간 소만호의 검이 홍염화의 채대에 의해 밖으로 튕겨져 나가며 철벽처럼 보호되던 가슴이 환하게 열렸다. 그리고 홍염화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홍염화는 벼락처럼 소만호의 가슴으로 접근했다. 얼굴과 얼굴이 맞닿을 만큼 지근거리, 그녀의 입이 열렸다.
“멍청이!”
콰~아~앙!
순간 그녀의 손이 소만호의 가슴에 닿으면서 장엄한 불꽃을 피워냈다. 대라염(大邏炎)의 초식이었다.
“크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소만호가 비무대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흥! 꼴에 사내라고 자존심만 살아서........”
홍염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흐트러진 옷깃을 정리하고 오연하게 무대를 내려왔다.
“와아아~!”
“최고다.”
군웅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홍염화가 자리에 내려오자 무이가 활짝 웃으며 그녀를 맞았다.
“언니, 축하해요!”
“고마워!”
홍염화는 무이가 건네주는 손수건으로 얼굴에 흘린 땀방울을 닦으며 대답했다.
신황 역시 홍염화에게 수고의 말을 건넸다.
“수고했다. 이제 결승이구나.”
“네!”
홍염화는 정말 기쁜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실 소만호는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뼛속 깊은 곳까지 남성우월주의에 물들어 있어 여성을 매우 우습게 여겼다.
만약 그가 조금 더 냉정하거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홍염화를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면, 싸움의 양상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모두 지난 일이었다.
소만호는 바닥에 누워있고, 홍염화는 자신의 발로 비무대를 내려왔다.
모든 일은 결과가 말해주는 것이다.
한편 소만호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 동료들의 보살핌으로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그는 한동안 고개를 흔들다 지독한 통증이 느껴지는 자신의 가슴을 보고 이를 갈았다.
“그 계집은..........?”
그의 말에 청성파의 무인들이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몸부터 추스르세요, 사형! 다행히 홍소저가 손에 사정을 두어서 내상이 심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요. 사형!”
사제들의 말에 소마호가 두 눈을 붉게 치뜨며 소리쳤다.
“그년, 그년이 어디 있냔 말이다!”
소만호가 이를 부득 갈았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의 냉정을 찾게 만들었다.
“조용히 하거라. 부끄럽지도 않느냐?”
“사부님!”
순간 소만호의 눈에 떠올랐던 살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에게 준엄한 일갈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청성파의 장문인인 철산자였다. 철산자는 망신을 당했다는 표정으로 소만호에게 말했다.
“너의 그 경망함이 청성을 망신시키는구나. 이럴 줄 알았다면, 너를 이곳에 데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부님!”
준엄한 철산자의 호통에 소만호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철산자는 고개를 숙인 소만호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못난 놈.......,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그놈의 돈이 문제였다. 만약 소만호의 집안이 사천에서 손꼽힐 정도로 부유하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소만호를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근래 세력이 많이 위축된 청성파는 많은 돈을 필요로 했고, 고육지책으로 소만호를 제자로 맞아들였다.
물론 많은 기부금과 함께 말이다.
상상하기 힘들만큼 엄청난 기부금이 아니었다면 그는 소만호를 결코 일대 제자로 뽑지 않았을 것이다.
‘신황......, 젊은 나이에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남자. 저런 남자가 제자로 들어왔다면 청성파의 앞날은 걱정이 없을 텐데.......’
그는 어딘지 모를, 신황을 배출한 문파가 무척이나 부럽게 느껴졌다. 만약 신황 같은 제자가 있었다면 그가 무림맹의 이전투구에 뛰어들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나는 무림맹의 일에 뛰어들었다. 그렇기에 너는 나와 적이다. 신황!’
이유야 어찌됐든 자신은 제갈문과 손잡기로 이미 합의를 했다.때문에 신황과는 절대 같이 할 수 없는 사이였다.
“가자, 이 수모를 갚아줄 날이 그리 멀지 않았음이니.”
그는 고개를 숙인 자신의 제자를 끌고 비무대가 있는 광장을 벗어났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지나간 자리에 다시 밤이 찾아왔다.
이미 결선에 나갈 사람들이 모두 뽑혔다. 원래대로라면 결승전에 올라간 두 사람은 자웅을 결하겠지만,
무림맹에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결승전을 치르지 않고 대신 각 조에서 두 사람씩 해서 여덟 명으로 본선대회를 치르기로 합의했다.
때문에 홍염화는 곧바로 본선을 치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천(天)조에 따로 떨어져 있던 무당의 서문수 역시 무사히 본선에 올라갈 수 있었다.
이런 기분 좋은 일들로 인해 신황이 머물고 있는 별채는 무척이나 흥겨운 분위기였다.
오랜만에 초풍영이 무당의 숙소에서 벗어나 서문수와 함게 신황의 별채로 넘어왔고, 술자리를 벌였다.
“자자! 축하해. 한 잔 하자고.”
멀리소도 초풍영의 목소리가 문을 넘어 들어왔다.
오랜만에 무당파의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한 초풍영은 그동안 본의 아니게 금주를 했던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지 사람들에게 연신 술을 권하고 있었다.
서문수와 홍염화는 처음에 약간 서먹서먹하더니 곧 익숙해졌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결선에 오른 것을 축하했다.
신황은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 겐가?”
그의 옆에는 적엽진인이 같이 서 있었다.신황은 하늘에 반짝이는 별자리를 헤아리며 대답했다.
“잠시, 아버지와 동생을 생각했습니다.”
“혈육이 생각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 그러고 보니 자네의 고향을 아직 물어보지 않았구먼. 자네의 고향은 어딘지 알려줄 수 있겠는가?”
그의 말에 신황이 대답했다.
“해동, 장백산이 제 고향입니다.”
“해동이면 조선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랬군. 자네의 고향이 조선인 줄은 미처 몰랐구먼.”
자신의 말을 들은 적엽진인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선이라.... 예전에 만났던 선인이 생각나는군.”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젊었을 적에 공부한답시고 세상을 떠돈 적이 있었네. 그때 우연히 조선에 들어간 적이 있었지.”
적엽진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제일 처음 조선에서 느꼈던 것은, 산세가 훌륭하고 지기가 풍부한데 왜 그리 인물이 나지 않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네.
정말 조선 땅의 정기는 놀라울 정도로 풍부했지. 보통 그 정기를 가진 곳이라면 인물이 많이 나야하는데, 예상외로 인물이 적음에 놀랐지.
하지만 얼마 안가 나는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네. 조선에는 인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모습을 안 보이는 것뿐이었네.”
적엽진인은 조선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은자(隱者)들을 만났다.
조선의 무맥(武脈)은 중원처럼 문파나 세가를 이루어 밖으로 드러난 형태가 아니라 은류(隱流)로 흘렀다.
그것은 그들이 처한 시대적인 상황이나 역사적인 면이 중원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말까지는 해동 땅에서도 무인이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조선으로 넘어가면서 무인들이 배척을 받기 시작했다.
자신조차 무장 출신이었던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무인들이 가진 힘을 꺼려해 그러한 힘을 배척했다.
백성의 신망을 받는 무인들은 역적으로 몰려 참수당하기 일쑤인 상황에서, 무인들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산에 숨어 은밀히 자신들의 무예를 후대에 전할 뿐, 결코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온 인물들은 결코 자신의 본류나 스승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그들의 대부분 문사로 위장을 해 나라의 환란을 해결했다.
때문에 조선에는 문사 출신의 무장들이 많았다. 뿌리부터 무인인 자는 배척을 받는 나라의 풍토 때문이었다.
그렇게 무인이 배척을 받는 환경이다 보니, 무맥을 잇는 무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고 후대에 자신의 모든 것을 전했다.
때문에 조선에는 중원처럼 이름을 건 문파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은자(隱者)라 하더군.
내가 만난 사람 역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네. 그저 조선 땅의 수많은 은자 중 한 명이라고만 하더군. 허허허!”
적엽진인은 그 은자와 더불어 오랜 시간을 지냈다. 덕분에 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꽤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조선 땅에는 크게 세 종류의 무맥이 흐르고 있다고 들었네.
하나는 고구려와 백제의 웅대한 기상을 이은 무맥으로 박치기, 팔굽 치기, 무릎 차기 등 주로 온몸을 이용한 실전적이면서도 호전적인 종류의 무예이고,
또 하나는 신라라는 나라에서 주로 발전한 부드러우면서도 유려한 무예,
마지막으로는 기문둔갑술(奇門遁甲術)과 주술(呪術)등이 가미된 신령적인 무도라고 들었네. 내 말이 틀리는가?”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많은 분화를 거듭해 그런 구별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럼 자네의 무예도 그런 무맥 중 하나를 이었겠군.”
“후후후~! 글쎄요.”
신황은 말꼬리를 흐렸다.
적엽진인은 교묘히 신황의 대답을 유도했다.
하지만 신황은 그에 넘어가지 않았다.
“거참, 이것도 안 통하는가? 그리 비싸게 굴지 말고 속 시원히 이야기 좀 해보게 내 자네의 정체만 생각하면 머리가 다 지끈거리며 아파오네.”
그가 조선 땅에서 만났던 은자는 주로 주술과 기문둔갑을 익히고 계승하던 사람이었다.
그것은 여러모로 무당의 것과도 비슷했기에 적엽진인은 그와 더불어 오랜 시간을 이야기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조선에 존재하는 수많은 무맥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어디서도 신황이 쓰는 무예에 대해서 들은 기억이 없었다.
때문에 그의 궁금증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신황은 조바심을 내는 적엽진인을 잠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조선 땅에서 아무리 제 가문을 찾아도.... 말해주는 은자들은 없을 겁니다.”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가?”
“제 가문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그 순간이 그들 최후의 날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순간 신황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죽음의 약속, 그들은 우리 가문에 씻을 수 없는 빚이 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우리 가문에 대해 입을 열수 없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내려진 천형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자초한.........”
신황의 말에 적엽진인이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가 조선에서 만났던 은자의 능력은 정말 놀라웠다.
단순히 기문둔갑이나 주술의 능력으로 따지자면 그의 것이 무당의 것보다 훨씬 낫다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 당시 자신과 나이가 비슷했으니, 지금도 살아있다면 추측하기 힘들 정도의 성취를 이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단지 한 가문에 진 빚 때문에 존재를 말할 수 없다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지요. 우리 가문은 스스로 일어났습니다. 전장에서......”
“전장에서...... 말인가?”
놀라는 적엽진인의 얼굴을 보면서도 신황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어두운 하늘에 천연히 빛을 발하고 있는 은하수를 바라보았다.
복수를 위해 일어선 가문.
죽음의 빚을 갚기 위해 그의 아버지까지 육 대에 걸쳐 죽음의 전장을 떠돌며 무예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육 대, 백팔십 년의 시간이 걸려 오직 적을 멸살하기 위한 무예를 만들어낸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조선에 존재하는 다른 은자들처럼 선도(仙道)를 추구한다거나 어설픈 자비를 말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그들이 걸어온 길이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처절한 가시밭길이었기 때문이다.
백팔십 년의 시간이 걸려서 복수를 할 만큼, 신황의 가문은 집요했다. 그리고 그런 가문의 특징을 신황은 고스란히 한 몸에 이어받았다.
고집스럽게 닫힌 신황의 입술은 그런 가문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허~어! 이거 점점 더 궁금해지는군.”
적엽진인은 더 이상 신황에게 묻지 않고 애꿎은 수염만 쓰다듬었다.
번쩍!
그때 어두운 야공에 무언가 빛이 번쩍였다.적엽진인이 입을 열었다.
“느꼈는가?”
“잠이 없는 인물들이군요.”
신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에 적엽진인이 침중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 같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진인께서는 혹시 모르니 이곳을 지키십시오.”
“알겠네. 사실 이 나이가 되면 쓸데없는 일에는 움직이기가 싫거든.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게나.”
“그럼!”
신황이 대답과 함께 몸을 날렸다.
적엽진인이 어둠에 물들어 사라지는 신황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전장에서 일어난 가문이라..........”
야공을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들, 그들은 일체의 소리도 흔적도 없이 몸을 움직였다.
만약 밤하늘에 촘촘하게 떠있는 별들이 없었다면, 그들의 모습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두셋씩 뭉쳐서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들, 그들은 드넓은 무림맹을 마치 자신의 집 안마당처럼 거침없이 활보했다.
스스슥~!
마치 검은 안개처럼 그들은 그렇게 소리 없이 움직였다.
“후~암! 슬슬 온몸이 뻐근해 오는군.”
“조심해, 이 친구야. 지금처럼 비상이 걸린 시기에 잘못하다가는 경을 칠 테니 말이야.”
“누가 경비를 제대로 안 서는가? 그저 오래 서 있었더니 발이 저려 와서 하는 말일세.”
무림맹 청루각의 경비를 서는 서안평과 고만수는 그렇게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허나 그들의 눈은 보기에도 매섭게 번뜩이고 그들이 결코 마음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어젯밤 전대미문의 무림맹 요인들 암살 사건이 일어난 후, 무림맹에서는 무림맹의 주요 인사들이 기거하는 건물에 경계를 강화했다.
서안평과 고만수 역시 그런 이유로 청루각에 배치되었다.
사실 서안평과 고만수는 이런 곳에서 경비나 맡을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무림맹 내부에서도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추혼대(追昏隊)의 구성원들이었다.
본래 비밀스러운 임무에만 투입되는 추혼대였지만,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무림맹에서는 그들을 비밀리에 경계 임무에 잠입시켰다.
일반 무사들 사이에 잠입한 추혼대, 그들이라면 충분히 암습을 경계할 수 있으리란 것이 무림맹의 생각이었다.
“감히 무림맹 내부에서 버젓이 살인을 저지른 놈들이 정말 궁금하군.”
“흐흐흐~! 나한테 걸렸으면 녀석들의 목을 단숨에 두 동강 내었을 텐데.”
“아~! 정말 지겹다.”
서안평과 고만수는 그렇게 한담을 나누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그들이 그렇게 웃고 떠드는 사이, 그들이 등을 지고 있는 담 그림자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스르륵~!
서안평과 고만수가 전신의 감각을 활성화시켜 주위를 감지하고 있음에도 검은 그림자들은 주위의 환경과 완벽하게 동화되어 조금씩 움직였다.
그것은 무척이나 기괴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광경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곧 그 검은 그림자는 청루각으로 은밀히 사라졌기에.
서안평과 고만수는 꿈에서도 자신들의 등 뒤로 검은 그림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스스슥~!
검은 그림자는 담을 넘은 후 신속하게 청루각을 향해 접근했다.
완벽하게 어둠과 동화되어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들, 그들은 스스로를 흑우(黑雨)라고 불렀다.
흑우는 이번 임무에 투입된 마교의 정예 중 하나로, 주로 요인 암살과 첨보를 맡은 조직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무림맹으로 잠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항상 최악의 환경을 가정하고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흑우는 스물네 개 조로 이루어져 있고, 각 조는 세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조를 이루는 세 명은 각자의 맡은 임무를 위해 유기적으로 움직였고, 최소한 십 년 이상을 같이 훈련받았기에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의중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대감이 강했다.
지금 청루각을 향해 움직이는 자들은 칠 조로, 청루각에 있는 요인을 암살하기 위해 움직이는 중이었다.
이미 무림맹의 내부와 똑같은 구조물을 만들어두고 수십, 수백 번도 더 침투 훈련을 하였기에 그들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들은 눈을 감고도 침투할 수 있을 만큼 무림맹이나 청루각의 구조를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청루각은 무림맹의 외성을 책임지는 백이문의 거처였다.
백이문은 무림맹 외성의 총관으로, 무공은 그리 강하지 않으나 복잡한 외성의 살림을 잘 꾸려나가 그가 없으면 외성의 움직임이 멎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중요한 존재였다.
불이 환하게 켜진 백이문의 방, 창문이 열려 있어 밖에서도 내부의 상황이 환히 보였다.
칠 조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훈련받았던 그대로 각자 흩어졌다.
칠 조의 일 호는 창문 밑에서 대기를 했다. 그가 창문 밑에서 기다리는 사이 이 호와 삼 호는 다른 곳에서 백이문의 주위를 끌 것이었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파멸검(破滅劍) 사무열을 죽였다. 그래서 이 방식이 또 한 번 통할 것이라 믿었다.
일 호는 이 호와 삼 호의 신호가 오기를 기다렸다.
“.............”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묵묵부답, 그가 기다리는 신호는 오지 않았다.복면 속에 숨겨진 그의 얼굴에 곤혹스런 빛이 떠올랐다.
한 번도 이런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갈등을 하다 전음을 날리려 했다.
스르륵!
그 순간, 소리도 없이 허공에서 내려와 그의 목을 감는 얇디얇은 은사. 그러나 일 호는 그런 사실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하고 있나? 준비가 됐으면..... 흡!’
갑자기 일 호의 전음이 끊겼다.
그는 갑자기 목을 조여 오는 은사에 목을 잡고 두 다리를 버둥거렸다. 그러나 목을 파고드는 은사는 무서운 힘으로 그의 살갗을 뚫고 들어왔다.
한동안 몸부림을 치던 일 호가 곧 잠잠해졌다. 그리고 일 호의 시신이 공중으로 딸려 올라갔다.
어둠 속에 먹힌 일 호의 시신.
그러나 책상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한참 고민하는 백이문은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자신의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리 없는 전쟁을.
푹~!
흑우 제 팔 조 일 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의 목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은빛의 검이 길게 위 아래로 관통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습격한 자를 바라보려 했다.
콰득!
그러나 일 호의 목에 검을 꽂은 자는 가차없이 검을 한 바퀴 돌렸다.아득해지는 정신.
‘제...엔장!’
그것이 일 호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느꼈던 생각이었다.
스릉!
검의 주인인 자가 검을 회수했다.
그러자 일 호의 몸이 무너지며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흰색의 무복을 입은 남자, 그의 얼굴에는 귀면탈이 걸려있었다.
스슥!
순간 그의 주위로 똑같은 복장을 한 남자들이 모여들었다.
하나같이 흰색의 무복에, 중원에서는 보기 힘든 모양의 귀면탈을 쓴 남자들. 그들은 귀면탈 사이로 무심한 눈빛을 빛내며 전면을 바라보았다.
일 호를 죽였던 귀면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나머지 귀면탈이 일제히 허공에서 산개해 무림맹 곳곳으로 흩어졌다.
마치 허공에 폭죽이 터지듯 그렇게 사방으로 흩어진 귀면탈의 남자들.마지막으로 검을 거둔 귀면탈이 움직였다.
그들의 이름은 백무(白霧). 하얀 안개처럼 아침이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존재였다.
무림맹을 제집처럼 활보하던 흑우가 멈춘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칠 조와 팔 조, 십이 조에서 연락이 끊겼다.’
일견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듯 보였지만 그들은 치밀하게 서로의 움직임에 신경을 썼다.
때문에 조금만 이상이 있어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세 개 조가 당할 때까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방해자가 나타났다 우리와 같은 부류다.’
흑우의 대장인 흑령은 그렇게 판단했다.
흑우는 결코 정면 대결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태생부터 암살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흑우가 하나 둘이 아닌, 세 개 조가 당할 때까지 적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들을 습격한 자들이 흑우만큼이나 은밀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졌다.
무림맹에서 대외적으로 나서지 못할 거란 판단에 움직였는데, 저들 역시 흑우와 비슷한 존재를 준비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전쟁인가?’
흑령은 조용히 중얼거리며 부하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전쟁이 될 것이다.... 우리의 동료를 죽인 녀석들을 사냥한다.’
일순, 그의 전음에 도처에 흩어져있던 흑우의 남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시작된 전쟁이다. 그리고 암살자와의 싸움이라면 그들이 밀릴 이유가 하나 없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흑우(黑雨)라 불렀다.
암살자는 기본적으로 소리를 내지 않도록 훈련을 받는다.
어떤 곳에서는 일부러 혀를 잘라 죽어도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하고 비밀도 지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렸지만,
흑우나 백우 두 단체만큼은 그런 저급한 암살 조직과는 격이 달랐다.
흑우는 태어나면서부터 천성적으로 살기가 짙은 아이들을 선별해 모처에서 죽음을 수련을 시켰다.
그들이 흑우로 자라면서 제일 먼저 한 수련이 어떤 고통에도 참을 줄 아는 인내심 수련이었다.
그들에게는 서른네 종의 고문이 가해졌고, 정신이 깨어있는 한 어떤 고통에도 무감각해질 만큼 초인적인 인내심을 길렀다.
그렇게 흑우는 인간 한계의 극까지 체험하면서 고통이 무감각해졌다. 그런 혹독한 수련을 거쳤기에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백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백무광이 비밀리에 기른 인물들로, 제갈문이나 무림맹의 주요 인물들도 모르는 방식으로 조련된 인물들이었다.
백무가 과연 얼마만큼이나 존재하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오직 무림맹주 백무광 하나뿐이었다. 그 이외의 인물들은 백무의 존재 자체도 제대로 몰랐다.
백무광의 오른팔이라고 알려진 제갈문이 가진 권한은 그에게 배속된 일부의 백무만을 움직일 수 있는 것. 나머지 백무는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어디에 있는지는 그 역시 몰랐다.
하나 제갈문은 한 가지만은 알고 있었다. 백무가 움직이는 곳에는 절대 살아있는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만큼 백무의 암살 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들은 특수한 방법으로 서로의 의중을 읽었고,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수십이던, 수백이던 같은 공간에 있다면 그들은 하나의 생명체나 마찬가지였다.
몸은 수십, 수백으로 갈라져 있지만 오직 하나의 목적으로 마치 한 몸처럼 움직였다. 생명체의 말살이라는 공통된 목적을 위하여.그것이 바로 백무였다.
턱!
흑우 제 육 조, 일 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발밑에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촉 때문이었다. 그는 이질적인 감촉을 느끼자마자 신속하게 발을 배며 손을 들어 뒤따라오던 조원들을 제지하려 했다.
그러나 그가 채 손을 들기도 전에 그의 몸은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발목을 보니 어느새 올가미가 걸려있었다.
일 호가 서둘러 검을 휘둘러 올가미를 자르려는 순간, 무언가 허공에서 번쩍였다.
이어 터지는 짧은 신음 소리.
“큭!”
목이 베어지는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일 호가 입을 벌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의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숨은 끊어져 있었다.
앞에 가던 일 호가 당하자 뒤에 따라오던 이 호와 삼 호는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암기를 내던지며 뛰어들었다.
이미 일 호의 목숨을 구하기에는 늦었다고 판단을 하고, 대신 적을 말살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었다.
스르륵!
순간 그림자에 묻혀 있던 은사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더니 흑우 이 호와 삼 호를 조여 갔다.
촤하학!
이어 물주머니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엄청난 양의 핏물이 담벼락에 튀었다.
잠깐 동안의 정적.
이어 귀면탈을 쓴 남자들이 어둠을 뚫고 나타났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흔적을 잠시 바라보다 곧 다른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번쩍!
그 순간 허공에서 무언가 어둠을 갈랐다.
성둥!
순간 귀면탈을 쓴 한 남자의 어깨가 허공으로 떨어져 나갔다.
백무를 습격한 것은 흑우 육 조의 근처에 있던 다른 조였다. 그들은 근처에서 육 조의 존재감이 없어지자 신속하게 이동을 해 철수하는 백무를 공격한 것이었다.
생살이 통째로 떨어져 나가 비틀거리는 백무의 목을, 이어 달려온 흑우의 요원이 가차없이 베었다.
서걱!
쉬익~!
이어 벌어진 난전. 백무와 흑우는 섬뜩하게 자신들의 무기를 휘두르며 서로의 목을 놀렸다.
쉭!
다선 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움직이는데도 들리는 것은 오로지 무기를 휘두르는 소리뿐이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섬뜩한 광경이었다.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나도 비명을 내지르지 않고, 심지어 죽는 순간까지도 소리를 내지 않는 비정상적인 광경. 그래서 더욱 잔인한 싸움이었다.
무림맹 곳곳에서 암투가 벌어졌다.
소리도 흔적도 남기지 않았기에 건물 안에 있는 무인들은 자신들의 지척에서 그런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를 느끼지 못했다.
아니 몇몇 초절정의 무인들은 그 사실을 눈치 챘으나, 그들은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강호에서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함부로 끼어든다는 것은 그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곳은 무림맹이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괜히 휘말리고 싶지 않은 게 그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별채의 지붕 위에 앉아 눈을 빛내고 있는 남자, 그는 다름 아닌 신황이었다.
지금 그가 묵고 있는 별채 근처에서도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신황은 소리 없이 벌어지는 전쟁을 처음부터 계속해 지켜보았다.
한쪽은 백용후의 마교에서 파견한 인물들일 것이고, 다른 이들은 무림맹에서 키운 살귀일 것이다.
두 쪽 모두 지독한 피비린내를 풍기는 것이, 개인당 최소 두 자릿수 이상의 사람을 죽인 것 같았다.
저런 살인귀들은 결코 수련이나 비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피에 익숙해져야만 만들어질 수 있는 살인병기였다.
저런 살귀들의 피를 충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을까?
당장 오늘 추정되는 자들만 하더라도 백여 명이 넘어간다.
한 사람당 열 명씩만 죽였다 하더라도 최소한 천 명 이상의 사람이 저들의 수련 상대로 사라졌다고 봐야했다.
신황은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니었고, 그 역시 많은 사람의 피를 두 손에 묻혔다. 하지만 저들처럼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여 무공을 익힌 것은 아니었다.
“마교와 무림맹, 하나도 다를 바 없군.”
피의 대명사라는 마교는 말할 것도 없고, 정파의 기둥이라는 무림맹 역시 저런 살귀를 만들다니.
문득 신황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흑우와 백무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우연의 일치인가?”
흑우와 백무, 그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닮아 보였다.
신황이 사라진 후, 그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는 침중한 눈으로 백무와 흑우가 싸우는 광경을 바라보다 신황이 사라진 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오랜만이야...........”
그의 마지막 말은 어둠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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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진짜 진짜 감사합니다.
무시 무시 하구만
고맙게 잘보고 있어요~~~
즐감
ㄳㄳ
즐독
잘봅니다
즐감 요
감사합니다
즐감
흑우와 백우의 일치??? 오랜만이야... 누굴까?????
즐감하고 갑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 하고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