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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전원일기
입추가 다가오자 여름 내내 푸른빛으로 한껏 부풀어 있던 산 빛이 서서히 가라앉더니 처서를 지나면서 더욱더 무거워져 갔다. 나는 문득 나의 주말 농가를 떠올리고는 텃밭을 지키는 배추, 무, 총각무, 생강, 토란, 호박, 청갓의 가을걷이를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대문을 열고 뜨락에 들어서면 익다만 모과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제때에 구충을 해 주었더라면 낙과를 피할 수 있었는데 약주기를 싫어하는 나의 고집 때문에 벌레를 먹었다. 얼마나 괴로워하였을까! 대문 앞 텃밭에는 시퍼런 겉잎 속에서 겹겹이 고갱이가 앉기 시작한 배추와 머리에 청청한 잎을 무수히 달고 있는 허연 몸통의 무, 작달막한 키로 얌전하게 앉아 있는 총각무가 우리 부부를 반긴다. 우리 밭 농작물의 작황은 언제나 마을에서 꼴찌였다. 허기야 나는 아마추어 농부이고 외지 사람으로서 주말에만 들락거리니 채소를 잘 돌보아줄 수가 없는 처지다. 주인의 발걸음에 자란다는 채소는 그래도 멀리서 애태우는 내 마음을 아는지 잘 자라주었다. 배추는 겨울철 김장감 제1호가 되는 가을밭 군주다. 한낮 더위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8월 중순에 파종해서 불과 며칠 후면 고 작디작은 어린잎이 고개를 쳐들지만 기다렸다는 듯 해충과 새들의 야들야들한 먹을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나는 무력감에 젖으면서 농약을 친다. 10월이 지나 알심이 앉기 시작하면 볏짚으로 감싸 주는데 서리와 냉해를 막고 연한 속잎을 얻기 위함이다. 직파로 키우는 무는 별다른 충해 없이 잘 자라는 편이다. 가끔은 무성한 잎을 솎아 주어야만 뿌리가 비대해진다. 어느 해는 땅 위로 드러난 무 허리가 신통찮음을 본 이웃 아주머니가 저 정도의 굵기로는 김장거리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이 수확한 무를 몇 개 가져다주었는데 얼마나 굵은지 남자의 장딴지만하여 내가 키운 겨우 어린애 팔뚝만한 무에 비교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키워서 저럴까 하고 궁금하였지만 물어 보지는 않는다. 나의 전원생활은 다수확, 최상품, 특대품 수확에 있지 않아서이다. 무를 자르고 무청은 짚으로 엮어서 광에 매달아 시래기로 만든다. 또 뻣뻣한 큰 잎은 오래 푹 삶아서 식용유에 볶다가 새우젓으로 간을 해서 나물반찬으로 해 먹으면 그 맛이 끝내 준다. 연한 잎은 물을 자작하니 부어서 멸치젓으로 간을 해서 김치로 해 먹으면 이 또한 별미다. 배추, 무보다 한 달 늦게 흩어 뿌린 총각무는 올통볼통한 고 하얀 몸매가 앙증맞게 예쁘다. 김칫거리로 다듬을 때는 껍질을 칼로 하나하나 긁어내는 것이 지겹지만 김치로 만들어서 먹을 때는 아삭아삭 입 안에서 씹히는 그 맛은 얼마나 독특한가! 생강의 잎은 흡사 대나무 잎을 닮았다. 대나무처럼 줄기만 없다뿐이지 그 길쭉하면서 뻣뻣한 푸른 잎은 능히 관상할 만하다. 토란은 연잎과 사촌지간이다. 여름 연못에서 커다란 둥근 잎으로 너울너울 푸른 춤을 추는 것이 연이라면 키가 작달막한 볼 품 없는 가을 채소밭에서 홀로 긴 목대를 뽑아 올리고 심장 모양의 길쭉한 잎을 당당하게 자랑하는 채소가 토란이다. 전혀 채소 같지 않게 유난히 크고 단정한 잎 모습에서 고상한 품위와 우아함을 느낀다면 지나친 찬사일까? 나는 토란 옆에 서서 물뿌리개로 물을 뿌린다. 잎을 튕겨 나가는 물이 동글동글하게 뭉쳐서 투명한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며 또르르 굴러가며 떨어져 내리는 모양이 무척 아름답다. 유실수로는 감, 모과, 매화, 은행, 자두, 살구, 사과, 복숭아나무가 있다. 그 중 도회지에서 사 가지고 자동차로 실어 와 심은 것 중에서도 감나무와 모과나무는 제대로 잘 자라나 주었다. 사람 키만 하던 것이 담장과 지붕 위를 훌쩍 넘는 거목으로 자라나서 우리 부부에겐 자식도 되고 친구도 되었다. 감나무에는 수천 개의 감이 닥지닥지 달려서 마을 가가호호 다 나누어 주고, 친지에게도 주고, 침시, 연시로 만들어서 두고두고 먹었었다. 그런데 몇 년 전 혹독한 추위에 잎을 피우지 못했고, 잘라버린 밑둥치 밑 땅 속에서 다행히도 다시 나온 곁가지를 금이야 옥이야 키우고 있다. 제대로 익은 모과는 과일주로 담구고 곱고 몸빛이 샛노란 것은 실내에 한 두어 개 예쁜 그릇에 담아서 그 향취를 즐긴다. 언젠가 난초 옆에 두었더니 모과 향에 난초가 괴로워하기에 멀리 떼어 놓았다. 조롱박은 잘 익은 놈을 따다가 두 쪽으로 갈라서 물에 잠기게 잘 삶아 그 속을 파내고 말린다. 완성된 표주박은 백자 쌀 항아리에 넣어 두고 쌀을 풀 때 예스럽게 사용하고 어설픈 솜씨이지만 박공예를 하여 한두 개 장식품으로 벽에 걸어 두었다. 대문을 나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본다. 집집마다 마당이나 집 앞 길바닥에 멍석을 깔고 추수한 농산물을 펼쳐 놓고 가을 햇살에 일광욕을 시키고 있다. 물고추는 태양초를 꿈꾸며 빨갛게 반짝이며, 참깨 단, 들깨 단은 등짝을 맞대고 서서 몸을 말리고, 녹두, 팥, 메주콩들이 동글동글 몸을 굴리면서 수다를 떠는가 하면, 그늘진 처마 밑에서는 따 놓은 누런 호박, 단 호박, 조롱박, 수세미가 한담을 나누고 있다. 가을 텃밭은 어수선하다. 잡목들이 떨어뜨리어 낸 크고 작은 누런 잎, 땅을 덮었던 비닐, 수확 후의 떨어진 잎, 줄기, 열매들이 스산한 가을바람에 고랑과 이랑 사이를 굴러다닌다. 남편은 토마토, 가지, 고추를 세웠던 지주목을 뽑아내고 나뭇가지를 쳐 주고, 나는 솎아낸 무청을 엮어 달고, 누렇게 된 배추 겉잎을 뜯어 준다. 봄, 여름, 가을 내내 엎어 두었던 항아리를 씻어 빙빙 돌리어 뒷마당에 옮겨 놓으면 남편은 땅을 서너 군데 파고 김칫독을 묻는다. 11월 말에 도회지 본집에서 김장을 해서 농가까지 자동차로 실어 날라 땅 속에 넣어 두고 자연히 익으면 먹을 만큼 덜어서 다시 차에 실어 본집으로 가져가곤 한다. 극성을 떨어가면서 이런 전근대적이고 구식인 김치보관법을 고수하는 이가 나 말고 또 있을까! 마루에 걸터앉아서 캐어 놓은 생강을 바라본다. 여기저기 붙은 흙 사이로 샛노란 속살을 내보이고 있는 뿌리덩이에서 결실의 보람을 맛보면서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을 느끼고, 결실을 이루고는 누렇게 퇴색되어 말라가고 시들어가는 잎에서 헌신과 희생의 고통과 더불어 교사로서의 나의 모습을 본다. 가을이라고 다 열매 맺거나, 다수확, 최상품으로 약속된 것이 아니다. 작황지수나 작황은 종자, 토질, 일기, 농약, 거름, 따위의 재배적 환경에 따라 다르다. 교육 또한 개체와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다. 그런 중에도 농사나 교육이나 공통된 것은 풍작을 기원하는 농부의 ‘농심’이나 교육자의 ‘교육애’는 그 어떤 요소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교사의 훈화, 체벌, 관심어린 격려와 부단한 채찍질은 밑거름과 덧거름이 되고, 때로는 고독성의 농약이 되어 학생의 바람직한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이루게 되는 것이리라. 일년지계인 농사, 백년지계인 교육, 농사가 그 해에 결실을 보는 것에 비하여 교육은 그 원대한 계획의 중요성만큼이나, 결실을 맺음에 있어서도 어렵고, 힘이 들고, 진통 또한 유난히 심한 것일까? 이제 곧 11월 중순이 되면 서둘러 배추를 뽑아야겠다. 황량해질 텃밭에는 그래도 초가을에 심은 마늘이 이른 봄 발아를 위해 숨을 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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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농사꾼이 다 되셨군. 농사중에는 자식농사가 최고라는데.... 마음데로 않되오. 학교농사, 자식농사, 전원의 농사, 무척 바쁜 생활을 하시오. 세심한 농사이야기.... 난 농군의 후예로서 더욱 감명깊게 읽었소. 이가을의 좋은결실의 계절에 좋은 일만이....
지금의 꿈은 노후에 전원에 정착하여 낮에는 밭을 갈고,밤에는 책을 읽고, 새벽에는 글을 쓰는 생활을 하고 싶은데 그리 될련지...노력하고 있어요.
가을 뜰이 참 풍요롭습니다. 마치 우리집 마당을 보신것 같군요
태평천하의 뜰을 가 보고 싶군요. 농사를 짓는 데가 어디인가요? 궁금하네.
가을정원 이름만큼 풍요롭고 아름답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 수안김 몇대손인가? 나는 24세손일세...
반갑네그려. 나는 26세손쯤 되는 것 같은데...영덕까지 가서 우리 오빠에게 다시 물어보고 서울로 다시 올께.우습제?
너의 부지런한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구나 난 게을러서 그 넓은 땅을 그냥 놀리고 있으니~~~~
농심이 곧 백년지계인 교육심과 같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걸핏하면 참교육이라고 포장하는 행태에 적잖이 실망했었는데 역시 사명감을 가진 교육자가 더 많으리라 그리 믿어 봅니다. 좋은 향기 맡으며 한참을 머물다 갑니다. 건강 하시네요
참교육은 전교조들이 즐겨 쓰는 용어들이지요. 평상심의 생활처럼 교육도 평상심으로 조용히 하면 되는데 왜 이리 시끄러운지 창피하오.
사람은 자기만의 소중한 정원을 가꾸며 살아가지요 규모와 모양 색깔 냄새하며 방법이 좀 다를지라도 나름대로 가꾸며 열심을 살아 가지요 소상한 농심이 정겹슴니다
바람개비의 정원은 어떠할까요 궁금하네요.그리고 생각이나 느낌을 글로 써 둔 것이 있으면 한 번 봤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