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향기 있는 결혼식 / 은소

[은소]

                    향기 있는 결혼식

                                                               은소 / 김양순

고향 후배 L씨 부부는 오랜 세월 나의 좋은 이웃이었다. 그들 부부의 결혼식 때 나는 축가를 불렀고, 그들이 낳은 자녀 셋은 어린 시절 나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자영업을 운영하던 그 부부는 여러 곳으로 이사를 다녔지만 어디서나 성실하고 정직한 자세로 소신껏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에 그 부부에게서 걸려온 전화는 나에게 신선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곧 있을 큰아들 결혼식 때, 겉치레를 생략한 소박하고 뜻 깊은 예식을 올리고 싶다고 했다. 사촌 이내의 일가친척만 초대해서 감사의 첫인사는 신랑 어머니, 주례는 신랑 아버지, 성혼선언문 낭독은 신부 어머니 등, 양가의 혼주가 결혼식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무슨 말로 첫인사를 해야 할지 걱정 된다면서 내게 도움을 청했다. 나 역시 신랑 어머니가 결혼식 첫인사를 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내 아들 결혼식이려니 생각하고 몇 줄 써 보았다.

“여러분, 제 아들 ㅇㅇㅇ 장가가는 날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31년 전 우리 부부가 아들을 낳았다고 기뻐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그 아이가 자라서 오늘 결혼을 하게 되었네요. 그동안 우리 부부의 든든한 기둥으로 자라준 신랑ㅇㅇㅇ, 그리고 우리 아들 곁으로 다가와 예쁜 신부가 되어준 ㅇㅇㅇ, 두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 가운데 만나 부부가 되는 이 결혼식에, 진심으로 축하해주시는 여러분이 함께 해주시기에 한층 더 뜻 깊은 자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결혼식 첫인사말로 적당한지 어떤지 자신은 없었지만, 전에 내가 써두었던 ‘신혼부부를 위한 기도문’과 함께 메일로 보내 주었다. 옛 제자에 대한 내 나름의 결혼 선물인 셈이다.

엊그제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 L씨 부부의 목소리에는 만족한 기분이 역력했다. 결혼식 날, 초대 손님 외에도 축하객이 많이 와서 처음에 의도했던 만큼 작은 결혼식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혼주들이 직접 진행하는 결혼식을 하객 모두가 끝까지 지켜보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고, 참 신선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다는 칭찬을 들었다고 했다.

가을이 되면 결혼식 청첩장을 자주 받게 된다. 다 축하해 주어야 할 일이지만, 십 년이 넘도록 연락 한 번 없던 옛 지인이 보내준 청첩장이나, 별로 가까이 지내지도 않는 사이에 건네주는 청첩장은 고지서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빠듯한 수입에 자로 재듯 이리저리 계산을 맞추어 살림을 하는 주부들에게 결혼식이 많은 계절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허례의 너울을 쓴 결혼식 문화를 쫓아가느라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마치 발에 맞지 않는 굽 높은 유리 구두를 신고 절뚝절뚝 걸으며 아픔을 호소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불합리한 결혼식 문화, 하루 빨리 개선되도록 용기 있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성스러운 의식인 결혼식은 그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될 일이며, 그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마음껏 축복해주는 자리여야 할 것이다.

현재 천안에서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며 향기롭게 살아가는 L씨 부부, 가을들꽃 같은 마음으로 준비한 아들 결혼식을 통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인생의 은은한 향기를 선물한 셈이다. 아름다운 이웃 L씨 부부에게 “참 잘하셨습니다!”라는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2012. 10. 17.)

♬

[海月 채현병]

아름다운 이야기,
다정한 결혼 이야기,
잔잔한 감동으로 밀려옵니다.
고맙습니다.

[은소]

단풍 고운 계절
행복한 나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해월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