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을 위해 더하기의 삶을
임성욱
(시인/사회복지학박사)
사람들은 대체로 남의 탓을 잘한다. 잘된 것은 내 탓, 잘못된 것은 네 탓으로 돌리면서. 이는 어느 한 사람 또는 한 부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물론 경중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삐걱대는 것이다. 즉, 빼기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당신은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실 당신 같은 사람은 평생 안 보고 살아도 아쉬울 것이 손톱만큼도 없어 등등으로. 이렇게 자꾸 빼기의 인생을 살다 보면 주변에 믿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아니 믿고 살 사람만이 아니다. 평범한 대화 한마디 나눌 수 있는 사람마저도 사라져 버릴 수 있다. 나날이 각박해져 가는 작금의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는 주변인뿐만이 아니다. 불특정 다수인들을 대상으로도 마찬가지다. 어떤 정치인은 험한 말로, 어떤 작가는 독한 문장으로 그리고 어떤 기자는 험하고 악한 기사로 무차별적 공격을 해대는 경우도 많다. 일반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쥐꼬리만도 못한 힘 좀 가졌다고 말이다. 이외의 기타 부류들도 그렇다. 이런 상황들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부류들의 말로는 대체로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암 등 극한적 병에 걸려서, 고독해서 혹은 모든 권력을 잃어버린 허무함으로 인해 쓸쓸히 또는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한 경우가. 인생은 참으로 짧다. 순간이다. 오늘날의 시대를 아무리 국제연합(UN)이 정한 호모-헌드레드(Homo-Hundred)시대, 즉 90세,100세 시대라 하더라도 특히 100세까지 삶을 영위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필자도 조문을 많이 다니는 부류 중의 한 사람이지만 지금까지 100세에 사망하신 경우는 딱 한 사람뿐이었다. 인생이란 이리도 짧다. 때문에 모든 부귀영화도 잠시 한때의 꿈일 수 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있을 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장기 집권했다. 하지만 한 사람은 망명 생활하다가 사후에야 고국에 돌아왔다. 또 한 사람은 자신의 최측근에게 저격당했다. 4명의 대통령은 교도소를 다녀왔다. 그리고 지난 12월 3일 대통령 윤석열은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해 내란죄 피의자가 되어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돼 헌법재판소에 제소당한 상태다. 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13명의 대통령 중 무려 6명의 말로가 비극적이었다. 비교적 괜찮은 대통령이라 했던 한 사람도 자살로 마감했다. 그렇다면 역대 대통령 중 제대로 삶을 마감한 사람은 누구인가.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물론 이들도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수없는 고통을 당했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의 인생 역정은 형극의 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봤을 때 비교적 무난한 삶의 역정을 가졌던 사람은 아직까지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처럼 앞서 예를 든 역대 대통령들만 봐도 더하기의 삶보다는 빼기의 삶이 더 많았다고 생각되는 쪽이 훨씬 더 불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이 나라의 최고 권좌를 누렸던 사람들도 이러는데 하물며 기타의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모든 문물이 극도로 발전해가는 작금의 사회. 이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소외되는 계층은 빼기의 삶을 살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타의에 의해 빼기의 삶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이젠 제발 우리 모두가 더하기의 삶을 살아보자.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 제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