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95~98%가 어떤 형태로든 정서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이 통계는 주로 서양 사회를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토머스 키팅 신부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나머지 2%, 곧 병리적 고통에서 벗어난 사람을 아직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결국 키팅 신부님의 말은
우리 모두가 크고 작은 정서적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세 가지 본질적인 욕구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첫째, 안전과 생존의 욕구
둘째, 애정과 존중의 욕구
셋째, 힘과 통제의 욕구입니다.
이 세 가지 욕구는 본래 나쁜 것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에는 반드시 필요한 욕구입니다.
아이는 안전을 느끼고,
사랑과 존중을 받고,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고 느낄 때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이 욕구들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거나,
상처와 위기 속에서 좌절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 욕구는 마음 깊은 곳에서 더 절박해지고,
본능적인 방식으로 채워지기를 원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안전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 사람은
계속 더 큰 안전을 찾으려 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존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인정과 애정을 얻기 위해 애쓸 수 있습니다.
힘과 통제의 욕구가 좌절된 사람은
상황과 사람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안전해야 행복하다.”
“내가 사랑받고 인정받아야 행복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어야 행복하다.”
키팅 신부님은 이것을
**“행복을 위한 정서 프로그램”**이라고 부릅니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작동합니다.
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못하든,
이 세 가지 욕구를 채우려는 반응이
내면 깊은 곳에서 계속 움직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어른이 되어도,
공부를 많이 했어도,
좋은 직업을 가졌어도,
이 프로그램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조건을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이 내면의 움직임을 정직하게 알아차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더 이상 무의식적인 반응에 끌려가기만 하지 않게 됩니다.
내가 왜 불안해하는지,
왜 인정받으려 애쓰는지,
왜 사람이나 상황을 통제하려 하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욕구를 무조건 따라가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바라보고 내려놓을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이때부터 우리의 기도는
단순히 마음의 평안을 구하는 시간을 넘어,
내면의 거짓된 행복 프로그램이 드러나고 치유되는 여정이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조건을 알아차리는 중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