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바른복음 원문보기 글쓴이: 유니게
제 2 권 544p 요한계시록 바른 주석-헬라어 전통원문 직역 【특주9】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피난처에 대하여 먼저 ‘피란처(避難處)’ 와 ‘피난처(避亂處)’ 의 구별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한자 옥편에 ‘피란처(避亂處)’ 와 ‘피난처(避難處)’ 로, ‘환난(患難)-근심과 재난’ ‘환난(患亂)-재앙’ 으로 (難)과 (亂)으로 모두 그렇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難’ 은 ‘어려울 난’으로 ‘난감(難堪)-견디어 내기 어려움’ ‘난제(難題)-어려운 문제’이며, ‘患難’ 은 두음법칙에 의하여 ‘환난’ 이 아니고 ‘환란’ 이라고 해야 한다. ‘장로(長老)’ 라는 말도 ‘장노’ 라고 하면 틀리는 것이다. ‘(老)’ 라는 말이 앞에 나올 때는 노년(老年) 노회(老會)라고 해야지 ‘로년’ ‘로회’라고 하면 틀린다. 그런데 ‘재난’ 이라 할 때 ‘災難’ 이 아니고 ‘災亂’ 이라고 해야 옳다. (亂-어지러울 난)은 앞에 오나 뒤에 오나 ‘난’ 이라고 해야 하지 뒤에 온다고 두음법칙으로 ‘재란’이라고 하면 틀린다. 그리고 의미상 성도들이 신앙적인 문제로 당하는 어려움을 말함에는 재난(災亂)을 당한다는 것과 다르므로 ‘환란(患難)’ 이라고 해야 합당하고, 일반적으로 누구나 당하는 재난은 환난(患亂)이라고 해야 한다. 왜 이것을 언급하는고 하면 기독교가 이 중요한 말을 분별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바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한글이나 한자를 ‘환난(患亂)’ 이 아니라 ‘환란(患難)’ 으로, ‘피난처(避亂處)’ 가 아니라 ‘피란처(避難處)’ 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1.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피란처를 알지 못함에 대하여(다수) 계시록에서 하나님께서 7년 대환란 중에 성도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피란처가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잘 가르져지지 않고 있고, 환란을 당하지 않고 휴거한다고 열심히 가르치는 자가 많다. 계시록 12:6절에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 이 있더라”고 한 것은 후3년 반 환란 때에 하나님께서 계명을 잘 지킨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와 이에수-스(예수)님께서 증거 하신 바른 복음을 지킨 성도를 위해 예비하시는 피란처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에 대하여 뒷받침하는 말씀들이 너무나 많다. 가깝게 계시록에서는 3:7~13절에 주님의 말씀을 잘 지킨 프힐라델프헤이아(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온 세상에 닥치는 시험의 때에 지켜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프힐라델프헤이아(빌라델비아) 교회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다. “귀를 가진 자는 누구든지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하셨기 때문이다. 마지막 7년 대환란 때에 땅에 살고 있는 프힐라델프헤이아(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처럼 이에수-스(예수)님의 말씀을 잘 지킨 성도는 피란처에 가서 보호함을 받게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수-스(예수)님께서 세상 끝의 대환란을 하신 말씀 중에(마 24;21~31) 27~31절에 주님의 재림을 말씀하시면서 21~22절에 “그때에 큰 환란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시리라” 하셨으니 대환란 중에 택하신 자들이 세상에 있을 것을 말씀하셨고, 그 환란이 너무나 혹독하기 때문에 그 환란의 날들을 단축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살아 남을 자가 없을 것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주후 70년 히에루살렘(예루살렘)멸망에 대한 말씀이기는 하지만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 ...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하셨다(마 24:16, 20). 이에수-스(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한 당시 이우다이오스(유대인) 기독교인들은 주후 67년 전쟁이 일어나자 요단강 동편 ‘펠라’ 라는 이방 지역으로 피신하여 화를 당치 않았다고 한다. ‘도망하라’ 하신 말씀(마 24:16), 그리고 ‘여자가 광야로 도피하니’ 라고 한 말씀(계 12:6)은 피란처로 가라는 말씀이다. 구약에 ‘도피성’ 여섯 군데를 두라고 하신 의미도 같은 의미이다(출 21:12~14; 민 35:9~32). 다빋(다윗)은 솨울(사울) 왕의 박해를 피하여 광야로, 숲으로, 동굴로 숨었고(삼상 20:5이하).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후(엘리야)에게는 아합 왕을 피하여 “케리트(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고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고 하셨다(왕상 17:2~3). 헤사이아스(이사야) 26:20절에는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간 숨을 지어다” 고 하였고, 예호야킨(여호야김) 왕이 선지자 이르메야(예레미야)와 서기관 바루크(바룩)를 잡으라고 하였을 때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고 하였다(렘 36:26). 성경에 하나님께서 성도를 숨기시는 피란처시라는 말씀이 너무나 많다. 여호와께서 다빋(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과 솨울(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날에 다빋(다윗)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기를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란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고 하였다(삼하 22:1~3). “여호와께서 환란 날에 나를 그 초막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시 27:5) “주께서 저희를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시 31:21) “하나님은 우리의 피란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시 46: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에게는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시 91:1)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란처가 있으리라”(잠 14:26) “여호와 나의 힘, 나의 보장, 환란 날의 피란처시여”(렘 16:19)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렘 17:17)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욜 4:16) 2. 피란처에 가는 성도는 어떤 성도들인가에 대하여(소수) 예수 믿는다고 다 피란처에 가는 것이 아니다. 후3년 반 환란때는 신앙이 좋은 성도 중에도 피란처에 가는 자보다 스뮈르나(서머나) 교회 성도들처럼 순교하는 자가 더 많다. 피란처에 가는 성도는 극히 적다. 프힐라델프헤이아(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처럼 이에수-스(예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준행한 자라야 피란처에 가는 것이다(계 3:10←개역 한글성경에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라고 한 것은 잘못 번역한 것임. “시험하는 기간 중에 너를 보존하여 지키리라” 가 바른 번역임). 이에수-스(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드시던 자리에서 위기가 닥쳐오는 상황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시기를 “제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고 하셨다(요 17:15). 어찌 그리 믿는 자들이 환란을 당치 않고 휴거한다고 가르치기를 좋아하는지 ....... 세판야(스바냐) 2:3절에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고 하였다. 3. 한 때 두 때 반 때가 전3년 반이라 함에 대하여.(아님) 여자(교회)가 광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으로 가서 양육 받는다고 한 일천 이백 육십 일(계 12:6)과 한 때 두 때 반 때(계 12:14)를 거의 모든 계시록 강해자들이 전3년 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후3년 반이 짐승 적그리스도가 용인 사탄으로부터 마흔 두달(한 때 두 때 반 때) 일한 권세를 받아 본격적으로 성도를 박해할 기간이 후3년 반인데 전3년 반에 피란처에 간다면 후3년 반에는 피란처에 가는 것이 아니니 맞지 않는 것이다. 11장의 두 증인의 예언하는 기간을 1,260일이라 하였고(11:3), 12장에서 여자(교회)가 광야로 가서 양육 받는 기간을 1,260일이라 하였기 때문에 동일하게 전3년 반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같이 1,260일이라 하였지만 같은 때가 아닌 것은 두 증인의 1,260일의 증거를 마치는 때를 분명히 말하여 ‘무저갱에서 짐승이 올라오는 때’라고 하였으니(12:7), 후3년 반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교회)가 광야로 가는 때는 1,260일이라고만 하지 않고(12:6), ‘한 때 두 때 반 때’라고 하였으니(12:14), ‘한 때 두 때 반 때’라는 말은 다니엘 12:7절 말씀과 같이 모든 일이 끝나는 후3년 반을 가리키는 용어인 것이다. 다니엘 9:27절에는 ‘이레의 절반’ 이라 하였다. 그리고 여자(교회)가 1,260일 동안 광야로 가는 기간이 전3년 반일 수 없는 것이 여섯째 나팔 재앙이 실행 된 후에(9:13~21) 사탄이 땅으로 쫓겨 내려와서(12:9) 여자(교회)를 박해하게 된다고 하였으므로(12: 13) 전3년 반이 아니고 후3년 반이 되기 직전인 것이다. 이렇게 분명한데도 1,260일이라고 한 말만 가지고 두 증인이 증거 하는 기간과 같은 전3년 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
첫댓글 그럼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전도자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어린 성도는 도피성을 알고 있어도 못간다는 말인가요? 주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샬롬
시험의 때에 지켜(피할 힘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조건이 내 인내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피하지 못하는 수많은 성도들은 목 베임의 순교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도망해야 할 주체는 자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실한 자가 피할 때 덜 신실한 자녀를 두고 피하겠습니까? 어떻게든 데려가겠지요. 하지만 끝까지 신실해지지 않는다면 구원은 받지 못하겠죠?
(습 2: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마 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마 24: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욜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눅 21:36, 쉬운 성경) “일어날 이 모든 일들을 피할 힘을 얻고, 인자 앞에 서기 위하여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라.””
전에 선교사님이 비행기 타고 피난간다고 하셨는데,혹시 한국에는 피난처가 없나요? ㅎㅎ 고소공포증이 있어서리...
한국에서 바다 건너지 않고도 육로로 갈 수있는 도피성이 하나 있습니다.
나머지 다섯개 도피성은 바다를 건너야 합니다.
한국에도 있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도피처가 아니라 도피성이네요? 큰가봅니다
이렇게 성경말씀을 근거로 환란후로 설명해 놓으신 것이 많지 않은데,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도피성과 피난처는 다릅니다.
도피성은 합법적인 신분으로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대환난 후 삼년 반 기간을 지냅니다.
그리고 규모 면에서 대규모 입니다.
도피성은 여섯개가 준비 될 것 입니다.
도피처는...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것이 불법이지만...
매매 하지 않고 자급자족하며 살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한 곳을 말합니다.
한국에서도 이미 몇개가 준비 되고 있습니다.
아주 소규모로 알고 있습니다.
도피처, 또는 도피성으로 도앙하게 될 성도는...
1. 인내의 말씀을 지킨,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입니다.(복음 증거한 자들)
2. 도피성(도피처)의 존재 를 알고 마24장의 도망 하라는 명령을 기억하고 도망 하는 성도들입니다.
믿음이 검증된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약속 되어있으니 당연히 도망하게 되고...
그렇지 않더라도 도망가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많은 성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피하는 것이 가능 하군요. 그 자체가 믿음이 있는 것이니까요.
믿음 없이는 피하지 못합니다.
피하는 것 자체가 짐승의 표에 대하여 믿기 때문이고,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증명하는 것 입니다.
롯의 사위들은 듣고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