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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孫민족 參神영혼 스크랩 옛날 조상들의 행운의 문양으로 태극문양 길표로사용 근거와고증과 태극기의 역사
앱솔 추천 0 조회 212 13.09.18 12:2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古代의 太極紋樣 吉標로事用 根거와考證

培達民族의 길상인 길표사용에대한 연구

한국인의 행운의 문양

현재 공식적으로 최고 오래된 태극 문양으로 인정된 나주 복암리 고분의 백제 목간 태극도 있고.중국의 ≪태극도설≫보다 약 400년 전인 628년(신라 진평왕 50) 건립된 감은사(感恩寺)의 석각(石刻) 가운데 이미 태극도형이 새겨져 있다

고려 말 공민왕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범종 몸체 (모형)에는 지금의 태극기와 너무나 닮 은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 태극의 의미

    

   

  음양()의 이기()가 태극의 일원()에서 생성했다고 하는 사상은 《주역()》의 〈계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태극을 일원으로 보는 사상은 진한() 때의 제서()에서 볼 수 있으며, 《여시춘추()》의 〈대악편()〉에는 음악의 근원을 태일()에 있다 하고, 이 태일에서 양의()와 음양이 생성한다고 풀이하였다. 또한 《예기()》의 〈예운편()〉에는 예의 근원을 대일()에 있다 하고, 이 대일에서 천지·음양·사시()가 생성한다고 하였다. 《순자()》의 〈예론편()〉에 나오는 것은 《예기》와 마찬가지여서, 중국 고대의 전통사상에서는 만물이 생성 전개하는 근원을 일원으로 보고, 이것을 태일·대일·태극 등으로 일컬었으며, 이 일원에서 이기·오행()·만물이 화생()한다고 설명하였다.

 

  위에서 말한 것 가운데 태일사상이 가장 오래되었고, 태극사상은 후에 정리되어 역사상()에 도입되었다.

 

  태극은 음양이고 음양론은 그 시초가 상고시대의 황하문명에서 시원하며 삼황오제로 일컬어지는 복희, 신농과 중국 최초의 황제 헌원이 모두 구이족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인류문명의 발상인 황하문명에 태극,  즉 음양사상이 정신적인 지주였던 것이며 우리 민족의 고대사의 강역이 현재의 중국대륙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 민족문화의 시원도 태극, 즉 음양사상에서 찾을 수 있고 황하문명의 주역은 우리 민족의 선조인 구이족이었다는 가설이 성립되며 청홍이나 흑백은 모두 음양을 표현하는 다른 색일 뿐 그 원리는 같으며 색깔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태극'은 하나의 명사(名詞)로서 역경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하늘과 땅이 생기기 이전'을 이름하여 태극이라고 하였다. 그 후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 주돈이(周敦?)가 한 폭의 태극도(太極圖)를 그려 태극에 포함된 뜻과 그 발전 변화를 설명했다. 우리가 ‘태극도형’이라 부르게 된 것은 중국 주렴계(이름 돈이)가 태극도설을 발표한 뒤 정수학이 우리나라로 유입된(서기 1314년)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본다.

 

  한단고기를 바탕으로 한 주장은,
  제3대 갸륵단군(BC 2181)이 가림토문자를 만들 때의 기록을 보면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진서가 있다해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라고 하여 훈민정음을 만든 취지와 동일한 것을 알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진서가 있다해도'에서 보여지듯 가림토문자 이전에 만물의 모양을 본뜬 문자가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진서는 배달국시대 한웅천황이 신지현덕에게 명하여 만들게 한 녹도문자로서 바로 중국 한자의 기원이 되는 갑골문자이다.
신기한 것은 가림토 문자가 발견된 곳에는 의례히 우리와 같은 태극문양의 유물이 발견되며,

 

  또다른 의견으로,
  나선형(螺旋形)의 태극무늬는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고대의 여러 민족들간에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태극과 유사한 여러가지 도형은 미국 대륙의 인디언족 출토품과 유럽의 여러 각지에서 출토된 고대유물에서 볼 수 있으며 지중해 연안과 이집트를 거쳐 인도에 이르기까지 세계 문화 전역에서 발견되었다. 이러한 도안들은 행운을 상징하는 기호로서 사용되었고, 이는 고대 인류의 공통된 우주관에서 이루어진 우주 생성의 과정을 상징한 직관적인 도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도형들은 여러가지 형태를 혼용하여 사용해 왔으나 우리의 태극도형은 옛날부터 원형 그대로 지금까지 쓰여져 왔다.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태극을 신성과 신비의 부호로 사용해 왔으나, 차츰 쓰이는 범위가 넓어져 신성보다도 길상(吉祥)과 축복의 뜻으로 쓰게된 듯 하다.


  실제로 옛날에는 임금의 왕관에 태극도형의 반쪽모양을 곡옥(曲玉)으로 장식하였던 것을 점차 궁전과 사찰, 누각, 어문(衙門)등 건물을 비롯하여 거문고, 패물, 갓집, 부채, 장고, 베갯모, 숟가락, 식기 등 생활주변의 일용품에 이르기까지 아름 새겨 길상의 뜻으로 표시하였으니 이 도형은 민족과 더불어 함께 쓰여온 한민족의 신성한 부호인 것이다.


  그런데 그 석재에 새겨진 태극도상을 보면, 신라의 왕관에 쓰던 곡옥(曲玉)의 형태와 같은 태극의 陰과 陽의 두쪽만을 한폭판에 새기고 태극의 좌우 양쪽에는 톱날(긴삼각형)과 같은 장방형 비슷한 무늬를 새겨놓았다.  이와같은 톱날(긴삼각형)같은 도형은 수학의 심대 난문인 원적문제를 이해하는 도형으로서 그 자체가 수수께끼의 원적(圓積)을 표시하는 도형인 것이다.  따라서 석재의 도형은 중앙의 태극 형태를 이러한 원적으로서 표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는 우주만유(宇宙萬有)의 운행이 원(圓)으로 이루어진다는데 결부되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감은사지에서 발견된 태극도형과 그 밖의 여러가지 문체는 오래전부터 전해 온 능숙한 수법으로 새겨진 것이라는 학자들의 의견으로 보아 태극도형은 먼 옛날부터 내려온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삼태극은 천지인 (하늘·땅·사람)이다.
  하늘과 땅이 아직 나누어지기 전에 태극에서 음양(陰陽)이 생겼고, 음양의 조화에서 오행(五行)이 생겼다. 세계의 궁극적 근거가 되는 태극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동양철학의 핵심이 되는 문제이다.


  한국의 태극문양은 유사 이전의 암각화와 고인돌에도, 고구려 벽화 사신도와 액막이의 부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때의 태극은 하늘이고 우주이며 해와 달(日月)이고, 음양의 화합을 통해 풍년과 다산을 염원한 표상이다. 중국에서 태극문양이 처음 보이기로는 주돈이의 '태극도설'에서부터인데, 그 연대는 송나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태극은 가위바위보 놀이와 마찬가지로 먼저와 나중이 없이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무한성을 나타낸다. 적·청·황색의 삼태극이 상징하는 하늘·땅·사람은 각각이면서 하나이고, 그 가치 또한 동등하다. 태극의 음(陰)과 양(陽)이 화합하여 완전한 원형을 이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늘·땅·사람이 모여 우주가 된다. 그러므로 태극과 삼태극은 모두 우주를 상징한다.


  천지인 3재의 조화사상은 삼태극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상층의 효는 하늘, 중층의 효는 사람, 하층의 효는 땅을 상징하면서 천지인 3효가 하나의 괘를 이루고 있다. 물론 효 역시 음과 양으로 괘 역시 음과 양으로 나누어진다.

  음양의 태극은 빨간색이 양을 나타내고 파란색이 음을 나타낸다


  ◆ 太 極

  易은 太極을 根本體로 하여 陰과 陽으로 分化되어 나타나며 相互交合함으로써 四象을 낳고 다시 八卦로써 展開된다.

  太極은 萬物의 근원으로서 한번 動하고 한번 靜하여 陰과 陽을 낳으며 陰과 陽이 相互交合하여 변화함으로써 四象을 낳고 나아가 八卦를 이루며 이 八卦가 다시 64卦를 이룬다. 이것을 一生二法이라고 하는데 周易 64卦는 바로 이 원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 陰 陽

  우주의 근원이 되는 元素로써 萬物을 生成하는 相反的인 두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 元氣이다. 음?양의 두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뜻에서 儀로 쓴다.

  陰陽의 ?는 언덕을 의미하며 해가 비치는 쪽이 陽이고, 그늘진 곳이 陰이며 획수로 보아도 陰은 8획(소음), 陽은 9획(태양, 노양)이다.

  語順을 양?음이라 하지 않고 음?양이라 한 것은 相互交合作用을 의미한다. 泰卦가 地(음)?天(양)이다. 兩儀란 두가지 거동(나타남)을 말한다. 
                             
  ◆ 太極의 意味
  가) 空間的 意味

  * 無極而太極 : 끝이 없는 것이 太極 (太極圖設)


  * 顯微無間 : 나타난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 틈이 없음 (程子 易?序)

  * 遠在六合之外 近在一身之中 : 멀리는 上下四方(六合)의 밖까지, 가까이는 가운데에 있음 (朱子 易序)

  * 一微塵中合十方 : 하나의 티끌 속에도 十方(上下八方)을 머금음 (佛經 法性偈)


  나) 時間的 意味

  * 暫於隱息 微於動靜 莫不有卦之象焉 幕不有爻之義焉至哉 易乎 : 숨을 들이내쉬는 잠깐 사이와 움직이고 고요한 짧은 사이에 卦의 象과 爻의 義가 있지 않음이 없다. (易序)


  *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머나먼 劫도 한 생각이며 한 마음 또한 헤아릴 수 없는 劫이다. 한마음이 곧 태극이다. (佛經 法性偈)

  * 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 : 하나로 비롯하되 하나 시작한 데는 없고 하나로 마치되 하나 맺어진 데가 없음이 곧 태극이다.

(檀君, 天符經)

  따라서 태극은 무한한 공간성과 시간성을 동시에 의미한다. 우주가 비록 큰 것이나 이 태극 안에 있는 것이다.

 孔子가 周易 繫辭傳에서 太極의 이치로 萬物의 生成原理를 설명하였으니 周易이란 太極의 해설이라 할 수 있다.


  ◆ 太極의 字解와 原理

  ‘太’ 字는 ‘클 태’, ‘콩 태’, ‘처음 태’ 등의 뜻이 있다.


  특히 콩을 말한 것은 콩을 물로 불리면 양쪽에 떡잎이 나오고 중간에 핵이 돋으므로 태극이 陰陽을 生하고 음양이 태극에서 나오는 것을 잘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太를 ‘콩 태’로 訓을 새기는 것은 우리 나라 뿐이다.)

  ‘太’ 字에는 태극이 음양을 生하는 뜻과 함께 음양으로 분리될 때 태극의 씨앗이 숨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左에 있는 陽은 씨를 보유하고 右에 있는 陰은 씨를 받아 수태하므로 左의 陽에 태극의 씨앗인 ? 이 찍혀 있다.

  이것으로 太極이 陰陽을 낳고 陰陽이 太極을 보유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太極이 一元的 二元論임을 알 수 있다.

  太極의 씨앗은 人을 상징하는 것으로 相對的 陰(地) 陽(天)을 相補的 관계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3才가 一體的으로 존재한다. (仁은 人也, 仁은 씨)

  ‘太’ 字를 잘 살펴보면 男女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남자에게 생명의 씨가 있는 이치가 ‘太’ 속에 있음을 알 수 있으며 男左女右라는 말의 의미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極’ 字는 ‘끝 극’, ‘멀 극’, ‘덩어리 극’ 등의 뜻이며 木변에 ?(‘빠를 극’, ‘어느덧’이라는 뜻도 있음)이 합성된 것으로 나무가 처음 자라서 ‘어느덧 큰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 太極思想과 東方
  우주 삼라만상은 태극으로부터 비롯되고 또한 돌아가므로 태극은 만물의 부모이며 만물은 모두 태극의 소산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태극은 우주의 존재근거요, 불변의 자연질서이며 사회적 행위규범이요, 자연과 사회를 일관하는 同一性이다. 人이 없다면 태극도 공허일 뿐이요, 우주도 無用인 것이다
  

        
 
   태극(太極)은 중국의 고대 사상 중 음양 사상과 결합하여 만물을 생성시키는 우주의 근원으로서 중시된 개념이다.

  《주역》 계사상전(繫辭上傳)에서 태극→양의(兩儀)→사상(四象)→팔괘(八卦)라는 생성론으로 나와 있다.

 

 

  태극기는 《주역》계사상전(繫辭上傳)에서 나와 있는 태극→양의(兩儀)→사상(四象)→팔괘(八卦)라는 우주 생성론을 나타내는 태극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조선의 태극팔괘도는 복희 선천 팔괘(伏羲先天八卦)가 아닌 문왕 후천 팔괘(文王後天八卦)이다.

 

  원이 나타나는 태극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근원을 의미하며 도교에서는 태소(太素), 탄드라밀지에서는 카르마무드라라고 하며 사고의 개입이 없는 순수하고 완전한 행위를 의미하는 무아전위(無我全爲)의 우주일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상징한다.

 

  원 안의 모양은 음양 양의를 나타나고 4괘는 팔괘(八卦)를 대표하는 사정괘(四正卦)를 나타내는 것과 동시에 그 하효(下爻)와 중효(中爻)로 태양(太陽)·소음(少陰)·소양(少陽)·태음(太陰)이라는 사상(四象)도 나타낸다.

 

    

네 괘가 지닌

뜻네 괘가 지닌

이름(卦名) 자연(卦象) 계절(季節) 방위(方位) 사덕(四德) 가정(家庭) 오행(五行) 의미
건(乾) 천(天, 하늘) 춘(春, 봄) 동(東) 인(仁) 부(父) 금(金) 정의
리(離) 일(日, 해) 추(秋, 가을) 남(南) 예(禮) 중남[子] 화(火) 지혜
감(坎) 월(月, 달) 동(冬, 겨울) 북(北) 지(智) 중녀[女] 수(水) 생명력
곤(坤) 지(地, 땅) 하(夏, 여름) 서(西) 의(義) 모(母) 토(土) 풍요


  사괘는 본래 팔괘 중에서 넷을 선택한 것인데, 팔괘는 중국에서 삼황으로 떠받들고 있는 태호 복희가 만든 것이다. 그는 동이족이라고 사마천의 《사기》에서 서술되고 있으며, 그가 팔괘를 처음 만든 사람이라고 밝힌 것은 《주역》 계사전이 최초이다. 다만 조선에 복희 선천 팔괘가 아닌 그것을 고쳐서 만든 문왕 후천 팔괘를 따르는 까닭은 복희가 팔괘를 만든 까닭이 우주 생성 원리를 설명하려 함인 반면 문왕은 우주 생성 원리를 인간의 치세 원리에 반영(“선천 변위 후천도”에서 이르는 〈“자연조화의 체”를 “인사의 용”에 적용〉한다는 사상)하려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종래 주장에서는 팔괘에서 “넷을 제하여” 만들었다고 하였으나, 근래에는 “선천 변위 후천도”에서 선천 팔괘와 후천 팔괘의 관계를 밝히어 팔괘 가운데 “넷을 선택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더 자세한 정보는 여기에,,,
http://msyun.woorizip.com/ 

 

태극문양의 기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게오르규는 《25시에서 영원(永遠)의 시간으로》에서 우리의 태극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국기는 유일한 것이다. 어느 나라의 국기와도 닮지 않았다.

 

거기에는 세계의 모든 철학의 요약 같은 것이 새겨져 있다.

 

태극기는 멋지다. 거기에는 우주의 대질서, 인간의 조건이나 살아 있거나 죽어 있는 모든 것의 운명이 선,

 

 점, 원, 붉은 색, 흰 색 그리고 파란 색으로 그려져 있다."


태극(太極)' 이라는 어휘는 역경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하늘과 땅이 생기기 이전'을 뜻합니다. 
태극 문양은 아시아에서 고대부터 유행한 원시적인 종교관에 기인되었다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아시아지역 기원전 유적지 곳곳에서 태극이나 삼태극 도안이 그려진  유물들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삼국시대엔 고대부터 즐겨쓰던 이런 형태의 문양을 한자어를 도입하면서 태극이라고 불렀으며
각기 이름은 다르지만 계속 전승되었기 때문에 티벳이나 몽골의 국기에도 비슷한 태극 도안이 넣어져 있습니다.

19세기 대한제국의 태극기 

몽골의 국기에서의 태극

티벳 국기에서의 태극

 

티벳
티벳에서는 한국과 똑같은 태극 도형을 사용하는데 탄드라밀지에서는 카르마무드라라고 하며 사고의 개입이 없는 순수하고 완전한 행위를 의미하는 무아전위의 우주 일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상징합다. 

 

몽골 


몽골 국기에서 보이는 태극 문양은 남녀를 상징하며, 또한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감지 않기 때문에 지혜와 방심하지 않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몽골의 수호신,물고기=한국도 물고기문양은 불교와 관계가 있으며,
물고기 문양은 원래 인간에게 문명을 전파한 바빌로니아의 반인반어의 신 오안네스이다)


태극 문양은 한국이 중국보다 적어도 300년 이전부터 사용하고 있었다.
(현재 공식적으로 최고 오래된 태극 문양으로 인정된 나주 복암리 고분의 백제 목간 태극도 있고.중국의 ≪태극도설≫보다 약 400년 전인 628년(신라 진평왕 50) 건립된 감은사(感恩寺)의 석각(石刻) 가운데 이미 태극도형이 새겨져 있다)

 
현재 중국 대륙에서의 태극은 그 용어만 '주역'(한족이 아닌 동이족이 만든 역, 태호복희 혈통은 우리민족에 더 가깝다.)에서 나타나고,문양은 1070년 주돈이의 '태극도설'에서 처음 나타난다.
이는 우리의 것보다 최소한 380년 이상 후인 것으로 보아, 태극은 중국에서 유입된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문양임을 입증하고 있다.
 
즉, 본래, 태극의 문양은 우리 민족이 행복을 바라는 상징으로, 부적처럼 쓰고 있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백제(百濟)
한국의 태극문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일부 살펴봅시다. 


다뉴세문경(거울)
이것에 관한 특별한 어휘는 전해지지 않지만 단군신화를 보면 천부인(하늘의 징표)에 근접하는 유물입니다.

마한 지역의 청동기시대 유물로 고조선계 잔무늬거울(다뉴세문경) , B.C 300~100

고조선 영역에서만 나오는 거울로 고대의 종교관을 엿볼수있는 유물입니다. 
거울은 작은 삼각형이 모여 소용돌이를 이루고 빛의 방향에 따라서 왼쪽으로 돌기도하고 오른쪽으로도 돕니다.
그야말로 조화롭지만 변화무쌍한 우주 만물의 원리를 실시간으로 볼수있게 디자인한 유물입니다.

그러다가 차츰 곡선의 디자인이 나오게 되면서 대략 원시적인 태극 문양이 갖추어 집니다.

마한의 방패유물

마한의 방패유물(신창동 삼한시대 유적)

소용돌이 문양들이 정형화 되는것은 삼국시대입니다. 

백제의 태극무늬

 

백제의 태극무늬 기와들입니다. 마한 시절의 소용돌이 무늬에서 태극문양으로  세련되게 만들어집니다.

백제의 목간 태극무늬
현재 공식적으로 최고 오래된 태극 문양으로 인정된
나주 복암리 고분의 백제 목간 태극입니다


(新羅)신라
신라에선 한국 전통 문양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3태극 문양이 발견됩니다.
가운데 태극은 시계 방향으로 도는것이 재미있죠.
신라 미추왕릉 보검의 3태극 (三太極)  A.D 400~500
중앙아시아 단검형식에 삼태극이 3개  결합한 신기한 보검.


곡옥이 태극형상으로

 

신라 미추왕릉에선 곡옥이 태극형상으로 결합해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신라 감은사지의
신라 감은사지의 태극 문양 (682年)

팔괘의 유입.


태극기는 그 형태가 팔괘를 참고하고 있어 도교와 관계가 깊지요.
북한의 낙랑유적에선 기원전후 부근 漢나라의 팔괘유물(나침반)이 발견?다고 하는데
삼국시대 이전에 이미 팔괘같은 주역이론이 한반도에 존재했음을 확인할수 있습니다.

도교의 본격적인 도입 시대부터 살펴봅니다.

고구려(高句麗)
고구려 벽화에서 신선이 팔괘(八卦)를 긋는 모습

도교는 고구려때 성행하여 오늘날 고분 벽화를 통해서 잘 볼수있습니다.
또한  연개소문이 정식으로 당나라 도교를 수입하여 장려하려 했습니다.


한국 태극기에서 팔괘는 ? (하늘)  , ? (땅)  , ? (물) , ? (불)  4가지만 사용하는데  위치로 보면 동서남북 4방위를 뜻합니다.
고구려에선 음양론으로 해(삼족오와)와 달(토끼,두꺼비)를 사용했고 팔괘보다는 사신도를 선호했기 때문에 태극이나 팔괘 유물을 찾기 힘들죠.



고려시대 - 高麗

몽골내습도(고려,몽골 연합군의 일본 침공)에는 고려 병사들의 방패에 삼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사진에서 몽골군 깃발은 붉은 바탕에 노란 태양.

현무,주작,청룡,백호 사신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도 팔괘나 태극은 여러 유물에서 발견됩니다.  etc

조선시대 - 朝鮮
정왜기공도권(征倭紀功圖券) - 임진왜란에 참가한 명나라 화가 작품

조선 수군 배에 조선군 식별을 위한 태극 깃발이 달려있습니다.
정식 태극기가 사용되기 전에 이런 형태의 태극 깃발들이 많은데
태극무늬는 널리 석조 문양, 서원 대문, 별전,  장신구, 여러곳에 활용됩니다

 

三軍水軍調練圖

삼도수군조련도 (三軍水軍調練圖 )
師 깃발을 달고있는 판옥선 꼭대기에  펄럭이는  태극 기발

조선시대 태극 배갯모
배개에 세겨놓을 만큼 널리 쓰였다.

 

조선시대 열쇠고리,  수복십이지장 개금패(開金牌) -대전 화폐 박물관

 

 조선시대의 윷놀이 판

조선시대의 윷놀이 판에서는 북극성 자리에 태극이 박혀있습니다.

〔구조원리〕
① 흰 바탕:바탕이 흰 빛으로 되어 있는 것은 순일무잡(純一無雜)한
한민족의 동질성과 결백성을 상징한 것이며, 평화를 애호하는
정신이 우리 민족의 기질과 이상임을 드러내 보인 것이라 하겠다.
고대 동부의 여러 족속들이 백의(白衣)를 숭상한 것은 공통된
문화적 특징이라 하겠지만, 특히 ≪삼국지≫ 동이전(東夷傳)에
보면 “나라 사람들이 흰 옷을 숭상해 입었다.”고 하였으며,
“상중(喪中)에는 남녀 모두가 순백(純白)으로 입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백색을 숭상한 것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② 일원상의 태극:유교철학에서 태극은 우주만상의 근원이며
인간생명의 원천으로서 진리를 표현한 것이므로 사멸(死滅)이 있을
수 없는 구원(久遠)의 상(相)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황(李滉)은 “태극은 지극히 존귀한 것으로 만물을 명령하는
자리이며, 어떠한 것에도 명령을 받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천상(天上)의 달이 천강(千江)에 비칠 때 강마다 둥근 달이 있는
것처럼 천지로 말하면 천지가 한 태극이라 할 수 있으며, 만물로
말하면 만물 하나하나가 모두 태극의 원만성을 구비한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만유(萬有)가 모두 태극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겠으나,
그 원리는 인간 주체로부터 인식되는 것이므로, 인도(人道)의 극치가
곧 태극이며, 태극이 다름아닌 인극(人極)인 것이다.
김장생(金長生)은 만물의 태극보다 인심(人心) 중의 태극,
즉 진리의 주체적인 인극을 강조하였다.

인극으로서의 주체는 남을 해(害)하지 않고 자기완성과 타인의
완성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공동주체이다.

여기에 각 개인의 인격이 존중되고 자유와 평등의 도리(道理)가
성립되며, 국가 사회의 안녕과 질서가 유지된다 하겠다.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 중에서
천·지의 요소를 인간으로 집약하여 인도주의 정신을 고취하여왔다.

단군설화에서 단군(檀君)이 하늘을 상징하는 환웅(桓雄)과 땅을
상징하는 웅녀(熊女) 사이에서 탄생하였다고 한 것이라든지,
“무릇 도는 인간에게서 멀리 있지 않으니, 사람은 누구나
이방(異邦)이 따로 없다(道不遠人人無異國).”고 한
최치원(崔致遠)의 진감국사(眞鑑國師) 비문, 그리고 천도교의
인내천사상(人乃天思想) 등에서 그 실례를 찾아볼 수 있다.
태극의 진리가 원융무애(圓融無碍)하여 더할 나위 없는 것을 일컬은
것이지만, 그러나 이 같은 추상적 원리는 구체적 현실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음양상대(陰陽相對)의 구체적
상황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③ 태극과 음양과의 관계:태극이 곧 음양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음양을 떠나서 태극은 존재할 수도 설명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태극기의 도형을 실제로 고찰하면 홍색의 양과 청색의 음이 상하로
상대화합(相對和合)되어 있는 음양의 도상(圖象)만 보일 뿐이지
태극의 원리는 내재한 까닭에 보이지 않는다.
양상음하(陽上陰下)로 배치된 이유는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있고 따라서 사회와 민족국가가 형성된다.
음양의 순환과 조화 속에서 만물이 성장하고 번영한다.

음과 양은 본래 성질을 달리하여 각립(各立)하면서도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 머리와 뿌리를 맞댄 대립관계 속에서 상호
의존하여 생성, 발전하는 것이다.
즉, 이원적 부잡성(不雜性.개별성)과 일원적 불리성(不離性.융합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면서 상호 화합성을 구현하고 있거니와, 이를
조종하고 통일하는 것이 곧 태극인 것이다.
불교철학에 있어서 성(聖)과 속(俗)을 이원적으로 분리하지 않고,
고매한 화엄(華嚴)의 도리를 대중 속에 생활화시킨 것이라든지,
원효(元曉)의 〈십문화쟁론 十門和諍論〉에 있어서 공(空)과
유(有)를 원융하여 일승불교(一乘佛敎)를 이룬 것이라든지,
율곡철학(栗谷哲學)에 있어서 이(理)와 기(氣)가 묘합(妙合)하여
일원화한 ‘이기지묘(理氣之妙)’의 사상 등은 모두
음양양의(陰陽兩儀)의 중화작용(中和作用)을 진리로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④ 사괘(四卦):건·곤·감·이의 사괘는 태극도형의 음양 양의와
뗄 수 없는 관계에서 배열된 것으로, 음양이 생성, 발전된 양상을
나타낸 것이다.

중국의 태극도형은 좌에서 우로 회전하지만, 태극기에서의 도형은
우에서 좌로 회전하고 있다.

건(○)은 태양(太陽)으로서 양이 가장 성한 방위에 배치되고,
곤(○)은 태음(太陰)으로서 음이 가장 성한 방위에 배치되어 있다.
또한, 감(○)은 소양(少陽)으로 음 속에서 음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며, 이(○)는 소음(少陰)으로 양 속에서 양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즉, 태양인 건에서 소음인 이로 바뀌고, 이에서 태음인 곤으로
성장하며, 또 곤에서 소양인 감으로 바뀌고, 감에서 태양인 건으로
성장하여 무궁한 순환 발전을 수행한다.
건은 천도(天道)로서 지선(至善)·지공(至公)의 정의(正義)를
의미하고, 곤은 지도(地道)로서 후덕(厚德)과 풍요의 공리(共利)를
상징하며, 감은 수성(水性)으로서 지혜와 활력을 나타내고,
이는 화성(火性)으로서 광명과 정열을 뜻하는 것이며, 백색 바탕은
평화의 정신을 상징한다.

정의와 풍요, 광명과 지혜, 이 네 가지는 우리 국기의 사괘가 상징하는
특징이며, 백색의 바탕인 평화의 정신을 성취하는 길이다.
이것은 곧 산업과 도의를 균형있게 발전시키며, 정열과 지성을
겸비한 온전한 인간과 사회를 이룩하려는 이상을 포함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산업과 도의, 정열과 지성을 원만하게 조화함으로써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며, 개개인의 인권이 존중되고 자유가 보장되는
복지사회를 건설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문화의 창조와 인류의 평화를 상징하는 태극기는 대한민국이 희구하는
좌표인 동시에 홍익인간의 국시(國是)를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태극기의 역사
[신라시대 태극문양] / [고려시대 태극문양]  /  [조선시대 태극문양]  / [태극기도 옛날부터] / [1875년-1883년 : 논의와 제정][1883년-1900년 : 최초의 태극기] / [서양인 눈에 비친 태극기] / [4괘 배치, 색깔론] / [1900-1910년:태극기의 수난사] / [1910년-1945년 : 태극기 투쟁사] / [1945년 이후 : 해방 후의 태극사]

 

 

(여기에 수록된 많은 자료는 KBS TV, 역사 스페셜, '그때 태극기가 있었다.'서 갈무리하였습니다.)

 

신라 시대의 태극 문양

  •  경주 감포의 감은사지의 기단석에 새겨진 태극 문양은 신라의 국력이 왕성하던 7세기초에 나타났다.
  • 중국에서의 태극은 그 용어만 [주역]에서 나타나고, 문양은 1070년 주돈이의 [태극도설]에서 처음 나타난다. 이는 우리의 것보다 380년 뒤진 것으로 보아 태극은 중국에서 유입된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문양임을 입증하고 있다.

  

고려 시대의 태극 문양


  • 고려 말 공민왕 때의 것으로 추증되는 범종 몸체 (모형)에는 지금의 태극기와 너무나 닮은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조선 시대의 태극 문양

  • 조선시대 궁궐과 왕의 무덤에서 태극문양은 많이 보인다.


  • 종묘의 태극문양 : 태조4년 1395년의 종묘는 비록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중건한 건물이지만, 중수할 적에 역사적 근거에 기초한 중수하였기에 원형을 그대로 살려 복원하였을 것으로 본다. 종묘의 돌계단과 태실 입구의 기둥에 새겨진 삼태극 문양은 마치 태실의 수호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 조선 왕실에서 태극문양을 소중히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 사진 3개]

 

.태극 깃발도 옛날부터 있었다

  • 태극 문양뿐 아니라, 태극 깃발도 이미 조선의 고종이 국기로 제정하기 전부터 사용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 임진왜란 종전화가가 그린 태극 문양 깃발은 가운데의 태극을 중심으로 구름이 사방을 에 두르고 있다. 이는 아마 명나라의 군선과 구별 짓기 위함이다.


  •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수군진법 그림(작전도)에는 태극문양의 깃발이 발견되고 있다. 이는 아마 최고의 지휘관이 타고 있는 본부 군선(軍船)을 표시하는 듯 하다.

  • 경원대학교 아시아 문화연구소가 중국의 중앙 민족 대학교와 함께 중국 내의 한국문화와 한민족의 뿌리를 찾기 위한 한중 교통로 답사 위한 사료 조사를 하던 중에 북경의 조그마한 도서관에서 발견 20폭의 화첩에는 태극문양의 깃발이 그려져 있다.
  • 이 두 장의 그림은 청나라 사신이 조선 영조의 책봉례에 참석하는 과정을 청의 사신이 그린 것이며, 조선에 온 청나라 사신 앞에 태극 문양의 삼각기가 펄럭인다.
  • 청나라 사신은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 용기를 펄럭이고, 조선의 영조를 시위하는 병졸들은 태극 문양 삼각기 들고 있다. 이는 아마 압록 강변에서 청의 사신을 접견하는 과정에서 의장용으로 사용된 깃발로 추증하고 있다.   arrow28_R.gif (게재 : 1998년 7월 10일 KBS 9시 뉴스)

  • 나타나는 태극삼각기와 매우 비슷하다프랑스의 성 루이 성당 안에는 병인양요 당시에 프랑스가 한국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 문양의 삼각기가 걸려있다. 이는 위의 봉사도 안에 .

 

  • 이상의 자료를 통하여 볼 때 태극기는 조선의 고종 때 제정하기 전부터 이미 태극 문양 깃발이 사용되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1875년-1883년 : 논의와 제정의 역사

    ball01e.gif 국기 제정에 대한 최초의 관심 : 1875년, 일본은 우리나라의 개항을 요구하면서 운요오호를 몰고 왔다. 1876년(고종13년)1월 운요오호사건(雲揚號 事件)을 계기로 한 일 양국간에 강화도 조약 체결이 논의 동안 일본측은 "운요오호에는 엄연히 일본의 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는데 왜 포격(砲擊)을 가하였는가?"라고 트집을 잡고 늘어졌다. 그러나 당시의 우리 조정의 인사들은 국기가 무슨 의미와 내용을 지니고 있는지조차 몰라서 어리둥절하기만 했었다.

    ball01e.gif 이것을 계기로 비로소 조정에서는 국기 제정의 필요성이 활발하게 거론되었다. 일본은 이미 명치유신 2년 뒤, 1870년에 흰색 바탕에 국왕을 상징 붉은 태양을 그린 일장기를 국기로 제정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ball01e.gif 직접적 계기 : 1882년 미국과의 수호조약 시, 미국의 대표 슈펠트는 우리나라가 독립 국가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독자적 국기를 가져야 한다며 국기 제정의 필요성 언급하였다. 이에 김홍집은 통역관 이응준에 급히 태극기를 제작할 것을 명하니 이에 이응준은 흰색 천 중앙에 태극문양(청홍색의 태극양의기)을 그린 국기를 제작하였다. 아래의 그림은 1882년 5월 조미조약시 사용되었을 것으로 상상하며 그린 이응준의 태극양의기(추정)와 미 성조기의 모습이다.

 
ball01e.gif 한미조약 참관 차, 와 있던 청나라의 마건충과 김홍집과대화 의

 

김 : "그렇다."
마 : "조선의 왕과 신하와 백성은 무엇을 입는가?"
김 : "임금은 용이 새겨진 홍포를 입고 신하는 푸른색 관복을 백성은 백색을 즐겨 입는다."

마 : "내가 생각하건데, 귀국의 국기는 백성을 상징하는 백색 바탕에 신하를 상징하는 청색 구름과 임금을 상징하는 붉은 용을 그리되, 우리 청국기의 용 발톱이 5개이니, 4개로 구별 짓는 것이 어떻겠는가?"
(청나라의 국기에 그려진 용의 발톱은 5개이며, 조선을 속국으로 보는 의미에서 4개의 발톱을 그릴 것을 권했다.)
 
청나라사신 마건충 도안조선국기

 

김 : "그것은 그리기에 너무 어렵다. 그냥, 태극양의기를 활용하겠다."
마 : "그렇다면, 반홍 반흑의 태극양의 둘레에 팔괘를 그리면 되겠다."

  

     


    <사진설명> 주렴계 저서의 태극도설(1070년)(좌)과  박영효(朴泳孝)가 1882년 태극기를 만들 때 마건충이 제안했던 태극 팔괘도에 근거하여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팔괘도'(우)는 건곤감리와 손태리진의 8괘를 모두 나타내고 있다.
    arrow25_L.gif 참조 : 태극 팔괘도 발견 (1998. 11. 2일 조선일보
    )
    arrow25_L.gif
    참조 : 주돈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와 이황의 태극도 풀이


    ball01e.gif 1881년 충청도 관찰사 이종원이 제출한 태극 팔괘의 도식에 의해 비로소 국기를 정하였으나 실제로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한 것은 1882년 특명전권대신 겸 수신사인 박영효 일행이 일본으로 갔을 때 태극 도형과 4괘가 그려진 태극기를 사용한 것이 처음이다.
     
    ball01e.gif 최초의 제작과 게양(태극기의 효시) :1882년 8월 9일 특명전권대사(特命全權大使) 겸 수신사(修信使)인 박영효(朴泳孝) 등 일행이 인천에서 일본 배인 <메이지 마루>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 갈 때, 당장 게양하여야 할 국기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출발 전 고종의 왕명으로 이미 조정에서 어느 정도 찬성을 본 국기 도안 내용을 다소 수정한 태극 사괘(太極四卦)의 도안이 그려진 기를 국기로 게양할 것에 의견을 모아 박영효가 타고 간 일본 배 <메이지 마루>호에서 이것을 만들었다. 이 때 이 배에는 개화당의 주역인 서광범, 김옥균 등도 타고 있었다. 이들 일행은 8월 14일 고오베에 도착, 숙소를 정하고 건물의 옥상에다가 태극 사괘를 게양했는데, 이것이 태극기의 효시(嚆矢)이다. 
     
    ball01e.gif 아래의 사진은 아마 박영효가 <메이지 마루>호 안에서 제작하여 일본에 게양한 것으로 추정되는 최초의 공식 태극기 모양이다. 이같은 사실은 1997년에 발견된 1882년 10월2일자 도쿄 일간신문 '시사신보'(時事新報)에 실린 태극기 제작배경기사로 알게 된 것이다. - 일명,'박영효의 태극기'라 부른다.

<사진설명> (왼쪽) 1882년 일본의 [시사신보]에 기재된 태극기의 모양, 박영효가 일본에 게양했다는 최초의 태극기 아닌가 추정된다. 바탕이 옥색이며, 4괘의 모양이 지금까지 발견된 태극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오른쪽) [시사신보]에 기재된 배치와 색깔 설명에 따라 칼라로 처리해본 태극기의 모습이다.
arrow25_L.gif참조: [1997년 8월 15일 동아일보 1면 (종합)기획]

 
ball01e.gif국기 제정반포 (1883. 1. 27)  그 이듬해인 1883년 음력 1월 27일 고종은 왕명으로 태극도형과 4괘가 그려진 국기를 공식으로 제정, 반포하였으나 구체적인 작도법 등이 정해지지 않아 개인이나 단체에 따라 다소 다른 문양의 태극과 4괘 도안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1883년-1900년 : 최초의 태극기 (태극 문양과 색깔 규정)


    ball01e.gif 쥬이 태극기와 데니의 태극기 : 1883년 제정 당시의 태극기는 남아 있지 않지만 현존하는 최고의 태극기인 쥬이 태극기와 데니(1890년)의 태극기를 통하여 그 원형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우선 두 태극기의 비교 분석해보면,
    • 쥬이 태극기 : 1883년 푸트 미국 공사의 조선 방문 수행원이던 쥬이가 1884년 입수하여 미국으로 가져간 태극기로 실물크기 중 가장 오래되었다. 현재 미국의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제작연도 : 1884년, 실물크기 : 53×36cm
    • 데니의 태극기 : 광무황제(고종)가 조선정부의 외교 고문으로 일하던 미국인 데니(O.M.Denny) 에게 하사한 태극기로 태극과 4괘가 재봉틀 박음질로 되어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소장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이다.(1890년)
    • 태극의 소용돌이가 지금의 태극기 보다 매우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음양 태극 방향이 서로 다르며 쥬이 태극기의 음은 흑색인 반면, 데니 태극기의 음은 청색이다.
    • 괘의 색깔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쥬이 태극기의 4괘는 흑색인 반면, 데니 태극기의 4괘는 청색이다.

     

 


<사진>우리나라 최고의 태극기 - 위쪽, 쥬이의 태극기(1884년)와  아래쪽, 데니의태극기(1890)


 

서양인 눈에 비친 태극기

    ball01e.gif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신 소설가 게오르규는 《25시에서 영원(永遠)의 시간으로》에서 우리의 태극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국기는 유일한 것이다. 어느 나라의 국기와도 닮지 않았다. 거기에는 세계의 모든 철학의 요약 같은 것이 새겨져 있다. 태극기는 멋지다. 거기에는 우주의 대질서, 인간의 조건이나 살아 있거나 죽어 있는 모든 것의 운명이 선, 점, 원, 붉은 색, 흰 색 그리고 파란 색으로 그려져 있다."


    ball01e.gif 우리나라가 태극기를 제정한 것은 1882년이다. 그 이후부터 서양인들은 우리의 태극기에 대해 매우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그들의 나라에 소개하고 있다. 그 몇 가지를 살펴본다.
    ball01e.gif  1883년 조선의 사절단이 미국을 방문하여 태극기를 게양했을 때 미국인들은 태극 문양에 매우 깊은 호기심을 보였으며, 9월 27일 뉴욕 타임즈 신문에서는 우리 태극문형을 '상형문자와 같은 상징'으로 '행복'을 의미한다고 소개하였다.


ball01e.gif 1886년 미국의 로우엘 저 [고요한 아침의 나라]의 표지에 인쇄된 태극문양

 


    ball01e.gif 1895년에 발행된 헤세 마르텍의 저서 [코리아]의 표지에서의 태극기


ball01e.gif 1910년 파리에서 통용 엽서 - 서신을 양반에게 전달하는 엽서 (신분 사회의 한 단편을 보여준다.)

ball01e.gif  리빅사 발행의 판촉용 카드에 새겨진 청홍 태극문양 (조선의 신식 군인과 함께) 청홍태극문양은 1900년의 쥬이 태극기의 태극양의를 많이 닮았다.


태극기 4괘의 배치와 색깔은?


    ball01e.gif 박영효가 처음 태극기를 제정하여 일본에 게양했을 당시는 4괘의 색깔에 대해 분명히 밝히지 않았으며, 1883년 태극기 제정, 공포시에도 '널리 시행토록 하라'는 말만 있었을 뿐 하늘, 땅, 물, 불을 상징하는 4괘에 대한 색깔과 구체적 제작도 규정은 없었다.

    ball01e.gif 이후, 태극과 4괘의 색깔을 처음으로 분명히 밝힌 책은 유길준의 [상회규칙]인데, 태극음양을 청색(靑繪), 홍색(紅繪), 4방의 괘는 청색으로 한다고 기록하였다.


    ball01e.gif 1874년 청나라가 외국과 맺은 조약과 외국 사신의 서신 등을 기록해 놓은 청나라의 『통상장정(通尙章程)』에 나오는 태극기는 '대청속국, 고려국기'라 소개하면서 청국을 상징하는 노란색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속국으로 표시하고, 괘의 색깔은 청색으로 표시하였는데, 청색은 대한 제국의 색깔을 의미한다. (고려대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돼있는 1898년의 [통상약장유찬(通商約章類纂)]이란 문헌에도 이와 같은 모양
     
    ball01e.gif 1900년 파리의 만국 박람회의 한국관 소개 책자에 실린 태극기는 건곤리감 4괘가 태극을 중심으로 대각선 모서리 방향이 아니라 열십자(十) 방향으로 배치되었으며, 청홍양의의 태극은 상하가 아니라 좌우로 배치되어있는 매우 낯선 모습이다.
    arrow25_L.gif 참조 : 1900년 파리의 만국 박람회의 한국관 소개 책자에 실린 태극기
1900년-1910년 : 태극기 수난사

ball01e.gif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던 해, 11월 18일에 대조선국(大朝鮮國) 정부는 태극기를 홍보하기 위해 최초의 우표를 발행하였는데, 여기서부터 태극기 최초의 수난이 시작된다.
ball01e.gif 태극문양이 새겨진 우표를 인쇄하려 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인쇄시설이 없어 일본에 인쇄를 의뢰하였지만 애당초 우리의 요구와 관계없이 중국의 전통 태극 문양이 인쇄되어왔다. 이는 우리나라의 주권을 조금씩 약화시키려는 저의가 숨어 있는 최초의 태극 수난사였다.

<아래 사진설명> 우리가 주문한 우표는 왼쪽 모양이었으나, 일본에서 인쇄되어 온 최초의 우표와 주문과는 달리 중국전통의 태극 문양이 인쇄되어 왔다.

 

 

    ball01e.gif 이듬해 1885년 미국에서 인쇄한 우리나라 우표에는 우리 고유의 태극기 문양이 인쇄되어 있다.

    ball01e.gif 1906년 발행된 엽서에는 일장기와 태극기를 나란히 놓는가 하며, 또한 일본왕자와 대한제국의 황제를 동등한 위치에 놓고 상대적으로 우리의 황제를 왜소하게 인쇄함으로써 우리의 주권이 서서히 꺼져가는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ball01e.gif 1910년의 일제 강점기 바로 직전의 엽서에는 우리의 태극기가 일본군모 밑에 깔려있고, 열차시간표가 인쇄되어 있어 마치 주권이 다해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ball01e.gif 이렇듯, 우리의 태극기는 주권선언을 위해 제작되었고, 주권상실과 함께 수난을 받았다. 태극기의 수난은 민족의 수난이오, 태극기의 영광은 민족의 영광이었다. 태극기는 민족이요 주권이다.

 

1910년-1945년 : 태극기 투쟁사

 

나라를 빼앗긴 민족은 제 나라의 국기도 제대로 그릴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선열은 몰래 태극기를 그렸으며, 몰래 그려진 태극기를 중심으로 광복의 열정을 불태웠다. 민족은 태극기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다.

    ball01e.gif 독립문의 태극기 - 자주 독립 국가임을 만방에 알리기 위해 파리의 개선문을 본 딴 독립문에는 태극기가 좌우 양편에 돌에 새겨져 있다. 이 태극기의 모양은 독립 신문의 태극기와 같다. 지금의 태극기와 비교해 보면 상하가 뒤집어 져 있는 모양이며, 음양 태극양의의 소용돌이가 매우 역동적인 것을 알 수 있다.

     


    ball01e.gif 항일 독립 운동 태극기 : 1900년경 만들어진 국기로서 일제시대 일본에 빼앗겼다가 1962년 한일문화 협정체결후 1967년 4월 국내에 반입된 태극기
     
    ball01e.gif 1900년대의 태극기 : 고종황제 시절 광무9년 정품 통정대부 벼슬을 지냈던 종로구 홍지동에 사는 박영민씨의 조부 박기준씨께서 사용하던 국기 제작연대 : 1900-1905년, 실물크기 : 정사각형 80cm

    ball01e.gif 1907년 [불원복(不遠復) 태극기] :전남 구례에서 활약한 의병장이 고광순이 일본군과 싸울 때 사용한 태극기이다(1906). 그는 굳은 신념으로 "멀지 않아 국권을 회복한다" 는 글자를 이 태극기에 써 넣었다.

    ball01e.gif '태극기' 최초의 호칭 : 1919년 3월 1일 정오에 맞춰 서울 탑골 공원에서 독립 선언문 낭독과 함께 전국적으로 대한 독립 만세 운동을 펼치기로 하였다. 이 날 참여한 모든 국민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손에 '기'를 들고 나오기로 하고, '기'를 제작하였는데, 그때만해도 '조선국기'로 부르던 국기 이름을 일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태극기'로 부르자고 약속하면서부터 국기의 이름이 '태극기'로 정착되었다.

     
    ball01e.gif 1919년 삼일 운동 때 경북 영덕에서 사용된 김세영의 태극기



    ball01e.gif 1919년 삼일운동 때의 남상락 태극기
     

     

    ball01e.gif 1919년 평양 숭실 학교 태극기 :  삼일운동 이틀 전에 평양의 숭실학교 조만식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반드시 너의 손으로 태극기를 올려야 한다." 이 말씀에 따라 학생 김건이 동료들과 함께 제작하여 1919년 3월 1일 평양 숭실학교 교정에 이 태극기를 높이 내걸었다. 이 태극기는 이후 숭실학교의 마포삼열(모페트)학장 선생님이 몰래 1년 동안 보관하여 오다가 이후, 미국의 아들에게 보내어져 보관되다가 1974년 숭실대학교로 기증되었다.


 

    ball01e.gif 1919 태극기를 인쇄하기 위한 목판각과 - 3.1운동 당시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대량으로 찍어내기 위하여 만든 목각판. 이렇게 인쇄된 태극기를 손에 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ball01e.gif 김구 선생님의 성함이 새겨진 태극기 : 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1941년 3월 16일 안창호의 부인인 이혜련 여사 에게 보낸 친필서명 태극기. "망국의 서러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인력.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 말세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광복을 완성하자" 는 말을 어디에서나 한국인을 만나는 데로 전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ball01e.gif  광복군 이름이 새겨진 태극기  : 1945년 중국 방부에 있던 광복군이 광복에 대한 소감과 이름을 기록한 태극기. - 4괘의 배치는 이괘와 감괘의 위치가 지금과 바뀌어 있고, 태극 음양의 머리꼬리의 소용돌이도 바뀌어 있다.
    ball01e.gif [광복군 총사령부] 총무처 직원 일동 사진의 태극기 :1940년 12월 26일 서안(西安)에서 찍은 [광복군 총사령부] 총무처 직원 일동 사진. 대일 공작 추진을 위해 한 덜 전인 11월 29일 [광복군 총사령부]는 전방 전선인 서안으로 옮겨 왔다. 총사령관 대리는 황학수 장군이었다. 이청천 총사령과 이범석 참모장은 중경에 남아 중국 군사위와 군사협의를 진행했다.

     

    ball01e.gif 1943년 삼일절 경축 전시공채에서의 태극기 : 1943년 호눌룰루 [한·미 전시공채위원회]는 삼일절 경축 전시공채 발매를 개시하고 '동경폭격을 위한 비행기 구입을 도웁시다."는 선전지를 살포했다. (이때의 태극기는 건곤리감 4괘배치는 현재와 같으나, 음양태극은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ball01e.gif 상해 임시 정부 요인상과 독립 선언서에 새겨진 태극기

    ball01e.gif 김구 선생님, 안중근의사와 태극기

    

    ball01e.gif열사, 윤봉길 의사 이봉창 와 태극기

   

 

1945년 이후 : 해방 후의 태극기 역사

    ball01e.gif우리는 드디어 해방을 맞이했다. "만세, 만세" 1945년 일제는 망하고   


ball01e.gif 김구선생님은 손에 태극기를 들고 돌아 오시고, 국민들은 밥 공기를 엎어서 그토록 그립든 태극기를 그렸다.


    ball01e.gif 8·15 광복으로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3의사의 유골도 조국에 돌아와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ball01e.gif 1946년 1월 11일 미 군정청은 태극기 정식 게양하고.......

    ball01e.gif 조국은 해방되었지만, 미소신탁통치의 역사적 틈새를 비집고 조국은 점점 남북으로 금이 가고 있었다.그러나 태극기는 남북한 관계없이 게양되었다. 북한의 김일성도 태극기 앞에서 연설을 하였으나,
    ball01e.gif 48년 7월 24일 결국 북한은 태극기를 내리고 인공기를 게양하였다. 국기가 둘로 갈라지면서 조국 또한 둘로 갈라졌다.

 
 

    ball01e.gif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정부에서는 이때까지 조금씩 다른 도안으로 사용되어 온 태극기 문양을 통일시키기 위하여 당시 문교부에 사학자. 미술가. 언론인 등 사계 권위자 42명으로 "대한민국 국기 시정위원회(大韓民國國旗是正委員會)"를 구성. 설치한 후 전문적인 검토를 거침과 아울러 국민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수차의 회의를 거듭하여 오늘날과 같은 태극기를 국기로 채택하기로 하고, 1949년 10월 15일 이를 정식으로 공포하였다.
    (시정위원도 태극소용돌이에관한 상식이부족하여 태극이 뒤바뀌었다.) 
    국가상징물을 수정하기에는 넘늦었다.



  • 년 2월 21일 국기의 제작· 게양방법 등 기본적인 사항을 정한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 11361호)를 제정· 공포하여 오늘에 이그 후1984르고 있다.
  • 나라의 상징이며 민족의 얼이 깃들어 있는 태극기를 자랑스럽게 게양고 예절을 지키는 일은 나라 사랑의 작은 실천이며 조국에 대한 우리 모두의 마음을 손쉽게 표현하는 길이라 하겠다.  
<국기 관련 규정 연혁>
 
1949. 10월 : [국기 제작법] 공포 (문교부 고시 제2호)
  ball03b.gif 1950. 1월 : [국기 게양방법] 공포 (국무원 고시 제8호)
  ball03b.gif 1966. 4월 : [국기 게양 방법에 관한 건] 공포 (대통령 고시 제2호)
  ball03b.gif 1984. 2월 : [대한민국국기에 관한 규정] 제정 (대통령령 제11361호)
  ball03b.gif 1987. 4월 : [대한민국국기에 관한 규정] 제정 (대통령령 제12148호)
    ※ 국기 강하시각 등 개정
  ball03b.gif 1989. 3월 : [대한민국국기에 관한 규정] 제정 (대통령령 제12642호)
    ※ 국기의 실내게양 방법 등 개정
    ball01e.gif 6·25 전쟁 속의 태극기 :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의 최대 비극인 동족 상잔의 전쟁을 도발하였다. 피난 속에서도 미래 조국의 주인공들에 대한 교육은 계속되었는데.... 천막을 치고 태극기를 걸고 수업을 하는 당시 소래초등학교의 모습
    .

     

    ball01e.gif  학도병이 사용한 태극기(1950년)  : 한국동란(6.25) 당시 제3차 학도병 지원시(1950. 9) 학도병들이 조국을 구하기 위한 전쟁에 나서기 직전 구국의 결의를 기록한 태극기.

    

    ball01e.gif 서울수복 태극기(1950년) : 그 해 9월 27일 다시 서울을 되찾게 되고 중앙청 앞에는 태극기가 게양된다. 해병 2대대 6중대 1소대 소위 박정모(왼쪽)와 수병 최국방(오른쪽
     
    ball01e.gif 조국 근대화의 태극기 : 그리고 동족 상잔의 민족 좌절은 한 때의 역경, 다시 민족은 일어 선다. 1970년의 경제 개발은 우리 겨레의 삶을 정적인 삶에서부터 동적인 삶으로, 농업 중심에서 공업 중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1972년 시흥군(지금의 시흥시) 월곳·장곡동에 대형 꽃다발과 태극기를 앞에 꽂고 안양에서 버스가 처음 들어 오던 날. 흙 먼지 속에서도 아랑곳 않고 버스와 함께 달리는 아이들 모습이 힘찬 조국의 미래를 기약하는 듯 하다. "와! 우리 마을에도 버스가 다닌다. 버스가..." 하면서
     

     

    ball01e.gif 민족은 태극기를 중심으로 세계의 기적을 창출하였다. 한강의 기적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한민족의 역량을 세계 만방에 과시하였다. 지금은 잠시 역경에 처해 있지만, 21세기는 분명코 한민족, 태극민족의 세기가 되리라. - 1988년 서울 올림픽 10주년 기념 엠블림에 사용된 태극 문양과 2002년 월드컵 FIFA 공식 엠블림
          
     

     

    국기 태국기의 고증

    여섯가지 태극기를 하용하고 있어서 대통령은 제작법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국기 태극기는 1949년부터 규격국기를 사용하게 된다. 

    국기 태극기의 변천과정

     *1882년부터 1949년까지 약 6번에 걸쳐 태극 소용돌이가 변했다.

    *1883년1월17일(음력) 고종황제가 왕명으로 조선의 국기가 태극기다

    *(국기를 그리는 규격이나 틀이 없어서 그리는 사람마다 다른 태극기를 사용했다.

    역사적 태극기17점 문화재등록

     1883년음력1월17일 왕명으로 태극기 조선의 국기로 공포하여 현재로 125넘께 태극기사용

    *일제식민지36년간 독립운동을 하며 목숨받친 선열들의 선혈로 지켜온 태극기들이다.

    최초의 태극기 

     흑백인 조선국기를 칼라로 그래픽된 태극기

    *최초의 흑백이였던 조선국기를 그래픽한 태극기다.

    1882.박영효 태극기

     

    1948년8월15일 대한민궉정부수립

    국기 태극기와 국가 애국가 및 국회무궁화로 채택하였다.

    그러 법제정과 그 어떠한 틀이어뵤이 장부립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가상징물이 된것이다.

    그러나 각양각색의 국기를 사용하였다.

    안타깝게 생각한 이승만 초대대통령의 지시로 국기심의위원회를 각계인사들로 구성했다.

    그리고 정부수립 1년이 지나서 국기태극기의 작도법을 제정하였다.

    대한민국국기가 통일된것이다. 

    대한민국 국기제작법 문교부고시 제2호(1949년10월15일)

    그러나 부족한점을 보완개정하여 현재는 "대한민국국기에관한규정"은 태통령령으로 정한다.

     

    국기 태극기를 쉽게 그리는 방법

    作圖法規格制1949年10月15日大韓民國 國旗의 定 文敎部告示製2號

    국기를 쉽게 그리는 요령

     ★국기 태극기의 깃발 바탕

    가로3 세로2의 직사각형이다.

     ★ 네귀에다 두개의 대각선을 ?고 대각선이 교차되는 중심에다 기폭반의 원을 그린다.

     태극지름은 기폭반이다.

    그림처럼 일원속에 대각선에다 반지름의 두개의 원을 그리면  소용돌이 완성

     위의 원은 반원을 위는 위를 지우고 아래 원은 아래반원을 지우면 태극 밑그림 

     ★ 두 개의 반원을 지우고 위는 담홍색 아래는 아청색 색칠로 태극완성

    깃발의 폭은 태극지름 두배 길이는 태극지름3배입니다.

    ★ 4괘 자리를 그리려면 괘본을 만들어 ?각선에다 본을 대고 그리면 쉽다. 

    태극길이는 원의 반지름 괘의 너비는 원의1/3로 그립니다.

     ★ 효3개로 짜진 것이 하나의 괘가된다.

    위에 괘는 이괘이며 아래 건곤감이의 괘처럼 그린다.

    이때 4괘를 건괘 건괘로 그리자.  

    이때 4괘를 건괘로 그리고 음효를 도장을 새기듯이   파낸다(지움)

     건괘    곤괘  감괘    이괘

     위의 4괘를 제자리에다 배치하여 그리면 완성

    괘그림대로 괘자리에다 그린다.

    괘너비1/4이 효의 너비로 괘너비1/8이 효와 효사이 그리고 벌어진 음효사이다.

     바탕에 남아있는 대각선을 지우면 규격국기 완성

     그림처럼 칠을 하기 이전에 두개의 대걱선을 지우고 칠을 해야 깨끗하다.

    ★ 대한민국 국기 권장규격  

    黑白印刷方法

    第66週年 光復節 國旗 너무 안달아 有感

    民族精氣 民族精神 口號에그친 國民安保 和合統一 멀기만하다.

    國旗構成要素

    2號 國旗作圖法制定制作1949年 10月15日 文敎部告示第規格國旗太極旗

    國旗의 白色바탕 

    대한민국 영토(領土)를 상징

     

     紅靑陰陽의 太極

     

     

    1949년국기시장위원들의 실수로 태극소용돌이를 잘목 구잘못 그려서 태극위치 역행으로

    나라의 크고작은 사건들이 되풀이한다.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국기시정위원42인의 무지가 빚어낸 결과다,

  • 태극이 시계방향으로 회전해야 하는데 반대로 역행을 한다

  • 드리킬수없는 국가적 운명이다.

    •  

       

  • 대한민국 국민(國民)을 상징

     

    乾坤坎離의4卦 

    대한민국 정부(政府)를 상징 

     

    國旗의 構成은

    1.바탕은 大韓民國의 領土

    2.靑紅 太極은 大韓民國의 國民

    3.乾坤坎離의 4卦는 大韓民國의 정부

     

    의미> 創造力이 無限한 國民이 사는 나라는 世界平和를 尊重하는나라로  政府가 그 나라의 國民을 언제 어디서나 사시사철 밤과 낮으로 保護하는 것이 國旗 太極旗의 構成要素로 大韓民國의 永遠한 發展의 標像으로 홍益人間의 指標가 國旗 構成의 意味다.

     

    國旗의 五大精神

     

     國旗의 바

    1. 평화의 정신(平和之 精神)

     

    國旗의 一圓

     

    2. 단일의 정신(單一之 精神)

     

     國旗의 紅靑太極

    •  

       3. 창조의 정신(創造之 精神)


      乾坤의 卦

      4.무궁의 정신(無窮之 精神)

       

       離坎의 卦

      5.광명의 정신(光明之 精神)

       

      팔괘(八卦)
      이름 표상 자연 성정 가족 방위
      건(乾) ? 하늘(天) 건(健) 아버지 서북
      태(兌) ? 늪(澤) 열(悅) 소녀
      리(離) ? 불(火) 려(麗) 중녀
      진(震) ? 번개(雷) 동(動) 장남
      손(巽) ? 바람(風) 입(入) 장녀 동남
      감(坎) ? 물(水) 함(陷) 중남
      간(艮) ? 산(山) 지(止) 소남 동북
      곤(坤) ? 땅(地) 순(順) 어머니

      서남

       

      1882년 8괘도 도안하여 조선팔도로 의미를 주었으나 태극과 팔괘가 동그라미 모양으로 원거리에서 식별하기가 어렵다는 생각 때분에 방위와 4계와 4절기로 그렸다거 전한다.

      그리고 태극의 음양 소용돌이는 완의 용포와 신하의 관복색 바탕은 백성들의 옷색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괘는 양효와 음효를 세개로 겹치면 한마의 괘가 형성되었으며 모든 괘의 근본은 팔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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