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시42:1-11)
시작하는 말
어느 식품 전문회사가 광복절을 맞아 9일부터 13일까지 5일간 홈페이지를 통해 주부를 대상으로 ‘가장 해방되고 싶은 대상’과 ‘해방되면 하고 싶은 일’ 등 설문조사를 한 결과, 주부들은 ‘현재의 나 자신’을 벗어나고 싶은 첫 번째 대상으로 손꼽았으며, 두 번째가 시댁이었습니다. 추하게 늙어가는 자기 자신이 가장 싫고, 시댁이 그 다음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성도들만 설문조사를 했으면 대답이 달라 졌을 겁니다.
해방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로 ‘한창 때의 젊음 되찾기’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중년 주부들의 절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중년 주부들의 현주소입니다.
그런데 지나가버린 젊을 되찾을 수 있습니까? 바람을 잡고, 허공을 치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한국 지질학의 선구자 이상만 서울대 명예교수는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서 가져온 광물질 5g을 받아 연구한 대단한 지질학자입니다. 그의 나이 86세로 며칠 전“모든 먹는 것을 잘 먹으면 에너지가 돼서 화색이 돌지요. 값진 경험의 총화가 나이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이도 잘 먹으면 영화의 결정체라는 겁니다.
잠언16:31절에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낙심될 때
하나님을 소망하라.
미국 남부 뉴올리언주의 한 거리에는 허술한 옷차림을 한 채 서 있는 한 여인의 동상이 있습니다. 이 부인의 동상이 바로 한 평생 불상한 고아들을 위하여 생애를 바친 ‘마가렛 어빙’여사를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동상입니다.
마가렛은 부모를 따라 어렸을 때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으나 불행하게도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됩니다. 그러나 갖은 고생을 했지만 좋은 남편을 만나서 아이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았으나 또 한 번의 불행이 마가렛을 덮쳤습니다.
그 당시 유행하던 돌림병이 남편과 아이들의 생명을 모두 빼앗아 갔습니다. 마가렛에게는 신의 섭리가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그는 몇 날 밤을 눈물로 지새우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렇다 이렇게 슬픔에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여 내 남은 삶을 바치자고 결심하고 고아원을 찾아가서 그 들을 보살피면서 남은 생을 가치 있게 보냈습니다. 그의 일생이 귀감이 되도록 동상을 만들어 세워 놓았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낙심을 다른 이들의 희망과 소망의 불쏘시개로 삼았습니다.
시편42:11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시인은 자기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격려하고, 독려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질책합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느냐? 어찌하여 다운되어 있느냐? 아직도 할 일이 많지 않느냐?
불안할 때
하나님을 소망하라.
인류 역사상 유명한 건축물들은 불안 해소를 위해 세워진 경우가 많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바로의 죽음에 대한 불안해소를 위해 세워졌습니다. 만리장성은 중국 황제의 정치적 불안해소를 위해 세워진 건축물입니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도 흩어짐에 대한 불안해소를 위해 쌓기 시작한 탑입니다. 내 주변에 누군가가 모여 있어야 하고, 무언가를 모아 놔야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뿌리 깊은 불안 때문입니다.
불안감이 강해질수록 모아 놓은 것을 지키기 위한 성벽도 비례해서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높은 곳에 오르려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벨탑입니다. 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뒤 하늘에 닿는 건물을 지어 보겠다는 인간의 교만과 어리석음의 산물이지만 얼마의 높이로 지었는지는 기록에 나오지 않습니다.
위치는 유프라테스 강변의 바빌론 지역 이라크 바그다드 남쪽으로 추정됩니다. 인류 최초의 마천루(摩天樓) 건설 시도가 중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못다 한 선조의 꿈을 이루려는 듯 중동 산유국들이 인간이 살기 힘든 사막에 초고층 빌딩을 다투어 세우고 있습니다. 2년 전 첨탑을 포함해 높이 829.84m(162층)로 지어진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가 완공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등극했습니다. 그러자 중동의 맹주를 자부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홍해 연안 지대에 무려 1,609m 높이의 ‘킹덤타워’를 짓기로 왕실에서 승인을 했다고 합니다. 17만 평방미터 위에 세워질 총면적 5,300만 평방미터에 사무실, 호텔, 주거지역등으로 이뤄질 275층 건물로 약8만 명이 입주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중동 국가들이 현대판 바벨탑을 지어 올라가는 이유는 “통치자로서 위엄과 권위를 과시하고 주변 국가와의 국력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차원에서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현대판 바벨탑인 킹덤타워(Kingdom Tower)를 완공한다한들, 앞으로 그보다 더 높은 바벨탑을 쌓아 올라간들 인간이 느끼는 불안이 해소 될 리 없습니다. 어쩌면 킹덤타워에 올라가면 더 불안해 질지도 모릅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 1813-55)는 “인간이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오직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적인 신앙과 그분의 은혜를 받으면 어떤 시련이 와도 능히 불안을 극복 할 수 있습니다.
시편42:11절에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살다보면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해소시킬 수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하나님을 소망하라.
‘투르니에’는 스위스의 내과 의사이자 정신의학자이며 유명한 저술가입니다. 그가 쓴 책 중에 “듣는 귀”라고 하는 제목의 신앙 간증집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는 금실 좋은 남편과 아내로 소문났습니다. 한번은 그리스에 휴가를 갔다가 그의 아내가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죽기 직전에 아내는 평화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남편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숨을 거두기 전, 그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천국에 도착하면 먼저 가 계신 시부모님을 만나 정말 즐거울 것 같아요”.
그 말에 그의 남편 ‘투르니에’ 박사는 굉장한 영감을 받았습니다. 아내가 죽음을 마치 기차를 타고 제네바에 다시 돌아가는 것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재회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내를 보낸 후 그의 믿음은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에 대한 믿음이 강해질수록 그의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해방되는 놀라운 자유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시편42:5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자기의 영혼을 스스로 격려했습니다.
끝맺는 말
한때 테니스 세계의 정상을 차지했었으나 자살을 시도했던 ‘보리스 백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윔블던에서 두 번이나 우승을 했습니다. 그중 한 번은 가장 나이 어린 선수였습니다. 나는 부자였습니다. 필요한 모든 물질을 소유했지만 아주 불행했습니다. 제 마음에는 평화가 없었습니다. 저는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였습니다.”.
무엇이 부족했을까요? 사람이 그렇게 많이 소유하고도 여전히 불만스럽고, 자살까지 기도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소망이 없었습니다.
유명한 소설을 쓴 한 작가는 소년 시절에 알았었으면 하는 것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정상에 도달해 봐야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들은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고구마 꽃입니다.
고구마 꽃은 가끔 볼 수 있습니다.
화분에 오래 기르면 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