感興(감흥)=白居易(백거이)
吉凶禍福有來由(길흉화복유래유),
길흉화복은 까닭이 있어 따라 오는 것이니,
但要深知不要憂(단요심지불요우)。
단지 깊이 알아보되 근심하지는 말아라.
只見火光燒潤屋(지견화광소윤옥),
불길이 윤택한 집을 태우기는 하여도,
不聞風浪覆虛舟(불문풍랑복허주)。
풍랑이 빈 배를 엎었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네.
名為公器無多取(명위공기무다취),
명예는 공적인 물건이니 많이 취하지 말라,
利是身災合少求(이시신재합소구)。
이득은 내 몸의 재앙이니 조금만 구함이 합당하다.
雖異匏瓜難不食(수리포과난불식),
사람은 표주박과는 달라서 먹지 않기는 어려우나
大都食足早宜休(대도식족조의휴)。
대강 배부르면 일찌감치 그만 먹음이 마땅하네.
백거이는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인
불광여만佛光如滿의 제자로
조과도림鳥窠道林과 도道에 관한 문답
백거이가 조과 도림 선사의 명성을 듣고 찾아가니,
선사께서는 높은 나무 위에 올라앉아 좌선을 하고 있었다.
“스님, 나무 위 계신 곳이 대단히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대가 서 있는 그곳이 더 위태로와 보이는구려.”
“저야 두 다리로 대지 위에 버티고 안전하게 서 있는데
어째서 위태롭다는 말입니까?”
“한 생각 일어나고 한 생각 꺼지는 것이 생사이며,
한 숨 내쉬고 한 숨 들이쉬는 것이 생사입니다.
생사의 호흡지간에 사는 사람이 (땅 위에서인들)
어찌 위태롭지 않다고 합니까?”
백거이는 선사의 도력에 속으로 놀라며 다시 물었다.
백거이: “어떤 것이 도입니까?”
[여하시불법대의如何是佛法大義]
선사: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입니다.”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백거이: “그거라면 세 살 먹은 아이도 아는 것이 아닙니까?”
선사: “세 살 먹은 아이도 말할 수는 있지만,
팔십 먹은 노인도 행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삼세소해수능설三歲小孩雖能說
팔십노옹주부도八十老翁做不到]
안분지족[이준식의 한시 한 수]〈75〉

‘감흥(感興)’·백거이(白居易·772∼846)
吉凶禍福有來由,
但要深知不要憂.
只見火光燒潤屋,
不聞風浪覆虛舟.
名爲公器無多取,
利是身災合少求.
雖異匏瓜難不食,
大都食足早宜休.
길흉화복엔 다 이유가 있는 법,
그걸 잘 알고는 있으되 걱정할 건 없지.
불길이 고대광실을 태우는 건 봤지만
풍랑이 빈 배를 뒤엎는단 소린 듣지 못했네.
명예는 모두의 것이니 많이 가지려 말고
이익은 몸의 재앙이니 조금만 가져야지.
내걸린 표주박과 달리 안 먹을 순 없지만
대충 배부르면 멈추는 게 마땅하지
‘길흉화복의 근원을 깊이 성찰하되 걱정하진 말라.’
용렬한 욕망에 허덕이기 쉬운 필부필부(匹夫匹婦)를 향한 시인의 일갈이
마치 화두(話頭)처럼 다가온다. 고대광실은 때로 불타 없어질 수 있으나
빈 배는 풍랑을 걱정하지 않는다. 가득 채운 배는 뒤집히는 순간 침몰하지만
빈 배는 가벼운 만큼 풍랑에 적응하기도 쉽고 뒤집혀도 유연하게 원상을 회복한다.
명리(名利)는 피하기 어려운 인간의 생래적 욕구이니 멀리하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표주박의 비유는 ‘논어’에서 나왔다. 내가 감당할 수 있고 또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그냥 표주박처럼 높다랗게 걸려 있기만 하고 식용으로 쓰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공자는 말한다. 그러니 인재가 아예 뒷짐을 지고
세상을 외면하는 것도 온당한 처세랄 수는 없다.
다만 능력과 권한 밖의 일에 간여하면 재앙일 수 있으니 안분지족하는 게 상책이다.
시는 현실 참여에 적극성을 띤 유가적 사유의 틀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자연의 이치에 순응한다는 노장(老莊) 사상도 아우르고 있다.
길흉화복, 명예, 이익, 재앙 등 시에 어울릴 성싶지 않은 관념적 용어 때문인지
시적 ‘감흥’보다는 시인의 통찰력이 한결 더 돋보인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