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색 봄의 정취, 춘정(春情) -
몽중루의 서울숲의 봄 향연, (2) 사사록 실버들 그늘의 단상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했다. 은쟁반(銀錚盤)의 옥구슬도 꿰지 않으면 한낱 돌구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
유록(柳綠) 신춘이다. 바야흐로 실버들이 연초록 구슬(葉芽)들을 올올에 꿰어 봄바람에 채질을 한다. 실버들 사사록
(絲絲綠)이다.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수양버들에 얽힌 옛 시(詩) 한 수가 생각난다. 때는 고려 중기, 삼국사기(三國
史記)의 저자 김부식(金富軾.1075~1151)과 정지상(鄭知常 ?~1135.)에 얽힌 얘기다. 그 둘은 고려의 문신들이자 당대
제일의 문인들이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정적(政敵)이 되어 묘청의 난(서경천도 西京遷都)에 연루된 정지상은 김
부식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의 죽음과 후일 김부식의 죽음에 얽힌 시다.
춘정(春情)에 겨운 김부식이 시 한 수를 읊었다. 버들 색 천만사 올올이 푸르고(유색천사록柳色千絲綠), 도화는 만점
으로 붉게 피었네(도화만점홍桃花萬點紅)다. 그런데 후일 이 시를 본 정지상은
유색천사록(柳色千絲綠)은 유색사사록(柳色絲絲綠)으로,
도화만점홍(桃花萬點紅)은 도화점점홍(桃花點點紅)으로 일자사(一字師)를 하여 시의 격(格)을 높혔다.
그렇다. 춘정이 흥겨워도 실버들 일천가지는 언제 다 셀 수 있고, 도화꽃 일만 송이 언제 다 헤아릴까! 그저 실버들 가
지가지 모두 푸르고, 도화는 점점이 붉고 붉을 뿐이다.
봄이면 해마다 걷던 길, 올해도 봄의 정취에 취하려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강어귀의 옛 뚝섬을 찾았다. 서울숲이다.
꽃사슴농원 생태 연못가에는 지금 실버들이 한창 피어 봄바람에 채질을 하고있다. 유유낙일에 '유색사사록' 이다. 그
런데 그 대구(對句)에 나오는 도화가 없다. 살펴보니 그 연못가엔 살구나무 한 그루가 환히 연분홍 꽃을 피우고 서 있
다. 살구나무, 앵화(杏花)다. 도화(桃花) 대신 행화(杏花)라니, 씩~혼자 웃었다. 행화가 점점홍(杏花點點紅)이다.
화류쟁춘(花類爭春)의 봄날이 숨가쁘다. 내 마음도 따라 바쁘다. 오라는 곳 없어도.
촬영, 2019, 04, 03. am 08 : 30.
- 서울숲 능수버들
- 살구나무꽃
- 살구나무 꽃봉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