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나뭇잎을 보면 마음이 아리다 / 김정란(시인)
오월은 봄과 여름 사이에 있다. 오월은 겨울의 추억이 정말로 멀리 떠나간 자리에서 새 생명의 희망이 절정에 올라가는 시기이다. 4월까지만 해도, 겨울은 심술궂게 사물의 뿌리에서 죽음의 입김을 뿜어댄다. 4월까지만 해도, 생명은 주춤거린다. 봄의 아름다움은 아직 겨울의 사나운 훼방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4월의 생명은 아직 겨울의 눈치를 본다. 그러나, 오월이 되면, 심술궂은 겨울은 정말로 멀리 쫓겨 간다. 꽃들은 앞 다투어 피고, 사물들은 움츠리고 있던 어깨를 한껏 펴고, 화사한 생명의 직관을 향해 자신감 있게 또박또박 다가간다. 오월의 나뭇잎들을 보면, 나는 가슴이 아리다.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것일까? 어쩌면 저렇게 순결한 것일까? 저것들이 어떻게 세계의 무지막지함 앞에서 버틸 수 있을까?
유월이 오면, 사물들은 벌써 뻔뻔스러워진다. 유월의 자연은 이미 여름 속으로 성큼 들어가 그사이 충분히 빨아올린 대지의 양분으로 짙은 초록색으로 변한다. 유월의 자연은, 벌써 <개체>의 분명한 욕망을 드러낸다. 유월의 자연은 자기반성을 하지 않는다. 유월의 자연은 자신의 <있음>을 벌써 너무 천연덕스럽게 주장한다, 오월의 여림을, 망설임을 잃어버린 자연. 나는 유월이 되면, 벌써 자연이 드러내 보이기 시작하는 그 천연덕스러운 자신만만함이 견디기 힘들어진다. 자연은, 이미, 너무, 뻣뻣하다.
그래서 나는 오월과 유월 사이에, 잠깐, 내가 생에 대해 가지고 있는 비전과 완전하게 일치하는 자연 속에 있다. 오월은 나에게, 내가 원래 어떤 인간이 되고 싶었던가를 확신을 가지고 꿈꾸게 한다. 나는 내 퍽퍽한 존재 아래에 아직 생생하게 눈뜨고 있는 보송보송한 존재에 대해 조용히 한참동안 생각한다.
아아, 나도 오월의 잎사귀들 같이 되고 싶어. 유월이 되어 이미 굳어진 형태 안에서, "나는 나야, 어쩔래?"하지 않는 여린 잎사귀들.
옅은 연두색 / 조금 더 짙은 연두색 / 노르스름한 연두색 / 이런저런 규정되지 않는 연두색 잎사귀들.
나는 이래도 저래도 좋아, 나는 존재의 어느 버전이 되던 괜찮아, 라고 말하는 얌전하고 겸손한 잎사귀들.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잎을 피워 올리는 감탄에 가득한 순결함. <나>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나는 있을까 말까 생각중이야"라고 말하는, 부드러운, 부드러운…….
그러나 그것들은 그러면서도 얼마나 자신 있게 겨울의 횡포를 이미 이겨낸 것인가? 부드러움의 힘으로 강퍅한 죽음의 힘을 이겨낸 작고 여린 잎사귀들. 이미 분명히 <나>이면서도 힘으로 남을 다치지 않게 하는, 가장자리가 엷게 문대진 <나 -너>, 아니 <나 -너>들.
오월은 나에게 완벽한 여성성을 생각하게 한다. 나에게 여성은 오월처럼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운 존재들이며, 나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있되,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서 남의 존재를 무시하지 않는, 인간의 인간됨을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사람들이며, 삶의 성취에 있어서, 나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며, 그리고 삶에 관하여 오월의 나뭇잎처럼 늘 처음 시작하는 신선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은, 겨울과의 단호한 투쟁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여성의 진정한 부드러움은 남성들이 지금까지 말해왔던 것처럼, 남성의 힘에 추종하고 기대는 수동성이 아니라, 불의에 관하여 단호한 태도를 전제로 하는 적극적 부드러움일 때라야만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진정한 여성성은 남성들이 절대적 권력을 가진 세계의 불의를 용인하지 않는다. 진정한 여성성은 자신의 진정한 부드러움을 지켜내기 위하여 겨울의 억압과 오랫동안 단호하게 싸운다.
우리의 오월에서는 슬픈 울음소리가 들린다. 당신이 세계를 사랑하는 정말 좋은 여성이라면, 당신은 그 울음소리에 진정으로 대답해야 한다. 여성은 여성 자신의 덕성 안에 이미 만물의 어머니로서의 힘을 지니고 있다. 그 울음소리를 사랑으로 씻고 또 씻어내자. 남자들이 이미 손 털고 떠난 역사의 그 사건으로부터 아직도 곡소리가 들려온다. 여성들이 아니면 누가 그 울음을 잠재울 것인가.
첫댓글 시인이 쓴 수필은 아무래도 詩的 서정성이 두드러집니다.
주제 역시 상투적인 교훈이나 계몽적 메시지를 벗어나 있고요.
체험의 절실성이나 감동은 덜하지만,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이해는 배울만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