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152BFB374FA4393F1E)
난지도(蘭芝島)는 홍제천과 불광천이 한강과 만나는 곳에 만들어진 모래 섬이었다.
강 조개가 잡히고 여름철이면 서울의 서쪽이나 화전, 수색에 살던 아이들에겐 물놀이 명소였다.
그 사이엔 샛강이라 불리던 물길이 있어 썰물 때는 바지만 걷어 붙인 채 건널 수 있지만 밀물 때면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개발 시대를 맞아 1978년부터 15년 동안 쓰레기장으로 사용되면서
섬의 모습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지금의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으로 변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021F8394FA43E202E)
황석영의 소설 ‘낯익은 세상’의 주무대는 꽃섬인 쓰레기장 난지도이다.
주인공 소년 딱부리의 동선을 따라 낯선 듯 낯익은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실제 나이는 열네 살이지만 열 여섯이라 속이면서 거친 일상을 견뎌내는 한 소년의 성장소설이자
슬픈 동화로도 읽힌다.황석영은 가장 빈곤한 것 속에서 가장 풍부한 것을 찾아낸다.
문명으로부터 폐기된 사물과 인간의 종착지에 문명에 대한 저항의 오래된 원천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딱부리에게 땜통, 늙은 치와와 ‘빼빼’를 키우는 여자, 김서방네 등을 이어주면서
인간과 정령, 문명과 자연 사이의 경계를 오간다. 숲 속에서 김서방네(정령)들과 함께 노는 아이들은
신과 정령과 귀신이 추방된 인간 세계의 희망이다.
1980년대 서울의 모든 찌꺼기가 모여들던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이다.
1977년 제방을 쌓은 후부터 1993년까지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이용되었다.
서울의 인구와 소비수준의 증가로 쓰레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1993년까지 매립된 쓰레기 양은 1.75㎢ 부지에 9,100만t (8.5t 트럭 1,300만 대 분),
매립된 쓰레기의 평균 높이는 90m에 달했다.
쓰레기 반입량이 늘어나자 더 이상 매립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1992년 11월 일반 생활쓰레기 반입을 중지하고 1993년 3월에는 매립장을 완전히 폐쇄했다
난지도는 지난 1978년 3월부터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받아냈다.
급격하게 휘몰아치던 도시화,산업화의 물결과 더불어 서울이 급격하게 팽창하면서
그만큼 늘어난 대도시의 배설물 '쓰레기'들을 수용해야 했던 난지도다.
15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꽃 피고 새가 날아들던 난지도는
어느 새 높이 90여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쓰레기산 두 개로 변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134B3354FA43EC529)
난지도가 쓰레기 매립지가 된 것은 당시 쓰레기 매립장으로 사용하던 잠실과 장안동 상계동 등의
매립장에 쓰레기가 가득 차자 대규모 쓰레기 매립지를 찾아야 했다.
서울시는 시의 외곽지이면서 교통이 편리한 몇군데 중 난지도를 선택하면서 쓰레기를 쏟아진다.
그 후 난지도82만 3천평의 땅에는 무려 9천 2백만의 온갖 폐기물이 매립되었다.
난지도의 오염은 이제까지 서울이라는 도시가 겪었던 성장의 뒷모습이기도 했다.
난지도 인근 마포구 중동에서 거주하는 이성부 시인은
1979년 난지도의 풍경을 이렇게 그려내고 있다.
그의 시 ‘난지도 - 1979년’ 의 일부를 옮긴다.
"쓰레기에 파묻혀 놀던 개구쟁이들이
쓰레기더미 위에 누워 하늘을 우러른다.
제복의 여학생이 수색 종점에서 내려
십 리 길 걸어, 쓰레기 산 또 십리를 넘어
쓰레기 움막으로 기어든다.
사람과 쓰레기가 한 몸이 되어
파리 떼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
70년대 본격적인 경제개발과 함께 가전제품 등 각종 공산품의 국내 생산이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소비문화가 확산되면서 8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는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일반 쓰레기의 처리가
골치아픈 과제가 되었다. 생활방식의 변화에 따라 쓰레기의 종류도 변했다.
70년대 난지도에 들어왔던 쓰레기의 대부분은 연탄재였지만 이후부터는 가전제품이나
1회용품의 주재료인 합성수지들이 급격히 증가했다.
난지도의 쓰레기 매립은 비위생 단순 매립이다.
일반 생활쓰레기와 산업폐기물을 구분해서 묻지 않고 단순히 되는 대로 쌓아놓았다는 뜻이다.
당초 서울시에서는 국제적인 매립장의 일반적인 높이인 45m까지 쓰레기를 매립하기로 계획했었다.
수도권에 짓기로 했던 매립지 건설이 늦어지면서 난지도에 쓰레기를 계속 쌓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쓰레기들이 모여 거대한 쓰레기 산 두 개를 이뤘던 것이다.
난지도에는 먼지 악취 파리뿐만 아니라 매립된 쓰레기 더미에서 유해가스(메탄)가 발생하여
수시로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하였다.
난지도의 화재는 소방차로는 곤란하여 꼭 불도저를 동원하여 흙으로 진화를 하여야 했다.
이렇게 발생한 화재가 15년간 총 1.390여회로 최고 45일간 지속되기도 하였다.
화재시에는 가정에서 버린 부탄가스통이 폭발하여 하늘로 뛰어올라 처음보는 사람에게는 장관이었지만
화재를 진압하는 사람들에게는 여간 곤란한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난지도의 오염은 이제까지 서울이라는 도시가 격었던 성장의 뒷모습이기도 했다.
경제개발은 도시민에게 풍요를 가져다 주었지만 그와 비례하여 쓰레기의 양도 늘어만 갔다.
난지도는 15년동안 각종 폐기물이 비위생적으로 적재된 결과 쓰레기 가 썩으면서
침출수 악취 유해가스가 발생하여 주변 한강의 수질과 대기가 오염 되었고
가까운 지역의 생태가 파괴된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