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의 창녕조씨 사직공파는 창녕조씨 갱기 1세인 송무, 송군,
송학 중 송학(松鶴)을 1세로하여, 2세는 필화(弼和), 3세는 적(適),
4세는 익기(益奇), 5세는 단(端), 6세는 신량(臣亮)이며,
7세가 사직공파의 파조인 사직공 조려(曺呂)이다.
상원재(上元齋) ~ 사직공파 종중재실
의령 화정면 상정리에는 430여 년전 사직공파의 지파인
현감공파(縣監公派) 4세손인 조계헌(曺季憲)이 이곳
상정리로 입향하여 정착하면서 창녕조씨 세거지가 되었다.
벽송당(碧松堂)
현감공파 1세인 조충가(曺忠可)는 당시 함안에 거주하였는데,
2세 조달하(曺達夏, 1469~1494)는 의령 가례면 수성리로 이거하였고,
4세손인 조계헌(曺季憲,1537년생, 후릉참봉)은 둘째 아들로
임란 시 함안 남쪽 7㎞ 거리에 있는 화정면 상정리로 이주하였다.
벽송당(왼쪽)과 상원재(오른쪽)
상원재 정문인 자운문(紫雲門)
벽송당 정문인 자화문(紫和門) ~ 창령조씨 의령종회 현판
상원재 전경
창녕조씨 상정세거 기념비(昌寧曺氏 上井世居 紀念碑)
이 비는 430여 년전 조계헌이 화정면 상정리에 입향한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상정마을입구, 상원재 사이에 설치(2025년)하였다.
세거기념비와 건립취지문은 후손인 서예가 한메 조현판의 글씨이다.
세거지 기념비 옆의 건립 협찬자와 시비
의령 창녕조씨 고가 ~ 경상남도 민속문화유산 표지판
의령 상정리 조씨 고가(宜寧 上井里 曺氏 古家)는 조선 후기에서
근대기에 건축된 경남 의령군 화정면에 있는 창녕 조씨 고가이다.
1993년 경상남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어있다.
이 건물은 대문채, 사랑채, 마굿간채, 중문채, 안채, 고방채,가묘,
별채, 광채 등 9채로 구성된 남부 지방의 전형적인 사대부가이다.
의령 상정리 창녕조씨 고가 대문채
창녕조씨(昌寧曺氏) 현감공파(縣監公派) 1세 조충가(曺忠可)가
함안에 거주하였으며, 2세 조달하(曺達夏, 1469~1494)는 의령 가례면
수성리로 이거하였고, 4세 조계헌(曺季憲, 1537년생, 후릉참봉)은
둘째 아들로 임란 시 남쪽 7㎞ 거리에 있는 화정면 상정리로 이주하였다.
사랑채
사랑채 마루
이 집은 셋째 아들 5세 조사영(曺士英)의 후손인 10세 조유성(曺有成,
1750~1808)이 살림을 많이 일구어 현재의 주택을 신씨로부터 매입하였다.
14세 조균호(曺均灝, 1854~1899)는 1890년대에 사랑채를 신축하였다.
사랑채와 중문채 사잇문
15세 조기현(曺岐鉉, 1872~1953)은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으로
3·1운동으로 3년간 옥살이를 하였는데, 1915년에 별채를 중수(重修)
하였고, 1924년에 가묘(家廟)를 건축하였으며, 1948년에 사랑채를,
1949년에는 안채를 중수하였으며 현 종손은 19세 조병구(曺炳球)이다.
안채
별채
안채와 고방채 등
현재 상주하지는 않는것 같지만 마루나 건물등은 잘 관리되고 있었다.
장독대
잘 가꾸어진 사랑채앞 화단
대문 고리
들판의 아주까리(피마자)
통정대부 절충장군 창령조공 하백(夏伯)비명, 옆은 효자 묘갈비
조하백(曺夏伯,1672~1748)은 조계헌(曺季憲)의 증손으로,
조정에서 통정대부, 절충장군 두 벼슬을 내리고 부호군으로
삼았으며, 이어 집을 내려 포상하였다.
선무원종공신 증승정원 좌승지 조공 휘사남 사적비
조계헌의 큰아들 조사남(曺士男, 1560~1592, 장악원 주부)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의 좌장군(左將軍)으로 참전하여
기강전투(岐江戰鬪)에서 공을 세우고 순절하여 선무공신에
책록되어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에 증직되었다.
승지공 사적기
우당 조재학선생 기념비(迂堂 曺在學先生 紀念碑)
우당 조재학(曺在學,1861~1943)은 조계헌의 10세손, 조익환의
3남으로, 고종황제의 밀조(密詔)를 받은 독립의군부 총대표 였으며,
한국유림 파리장서독립운동에 참여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후 별세하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한자는 분명 우당(迂堂)이 맞은데 안내판에는 모두
"오당"이라 표기가 되어있어 그 연유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