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골 술집
내가 젊었을 시절에는 동내나 직장 근처의 음식점과 주점에서 외상을 주는 집이 아주 많았다.
값은 나중에 치르기로 하고 식사나 술이나 물건을 먼저 먹거나 가져가는 게 외상이라서 월급날이면 많은 종업원이 수금을 하러 직장을 찾았다. 그 중 중국집이나 술집이 많았다.
따라서 외상을 주는 집은 자연이 우리들의 단골집이요, 우리들은 그 단골손님이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외상이 거의 없어지고 만 것은 플라스틱 머니라는 카드(Card)가 등장하였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단골손님보다 어쩌다가 한두 번 찾아가는 뜨내기손님이 되고 말았다.
지나가는 길에 15년 전 장위동(서울 성북구)에 살 때 자주 다니던 순댓국집(춘천집)을 찾아 갔다.
그랬더니 주인은 수호지에 나오는 반금련과 그 남편 무대를 생각게 하던 우스갯소리를 잘하던 키가 작달막한 아저씨와, 남편보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주모 춘천댁이 아니다. 남편이 죽었다더니 무심한 세월은 세대교체를 여기서도 이루어지게 한 모양이다.
옛날 거기서 술을 마시다 보면 그 앞 장위시장에서 건어물 장사하는 아저씨가 술꾼을 몰고 손을 휘저으며 왔다. 와서는 말없이 손수 소주 한잔을 맥주잔에 가득 딴다. 그러면 춘천댁이 돼지 머리 고기 한 점을 도마 위에 얹어 주면 그걸 안주하여 소주를 선 채로 단숨에 꿀꺽꿀꺽 들이켜고 각자 돈 천원을 놓고 왔던 길로 가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그것이 한 두 시간 뒤에 다시 되풀이 되곤 했다. 나보다 댓살 적었던 그 건어물 장수 아저씨도 우리동내의 아래가 구멍가게였던 그의 이층집 층계에서 굴러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이다.
그 춘천집 근처에서 곽 쪼가리를 주어 팔던 꼬부랑 할머니도 생각난다.
곽 쪼가리 판 돈 500원을 내고 요기 삼아 막걸리 한 잔 먹고 가는 80 대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가 안쓰러워서 ‘춘춘댁이 대접하듯이 드리라고 5,000원을 몇 번 맡기던 것’이 벌써 30년 전의 일이 되었다.
영등포 시장에 가면 꼭 순댓국집 뚱뚱이 아줌마를 찾곤 했다.
너무 가난해서 둘째 아들을 자기보다 잘 사는 집 양자로 주고 싶다던 50대 초반 아줌마다. 그 아줌마에게 시 한 수를 건네 준 일이 있다.
어렸을 적처럼
바다가 먹고 싶어
영등포시장에 게장 사러 갔다가,
파도처럼 빌려오는 세밑 인파를 뚫고
밝은 웃음 보려고
젊은 가난을 보려고
영등포시장 꼭 닮은, 뚱뚱이 단골 아줌마를 찾아갔다가,
세상살이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하다가
묵은해에 막걸리 한 잔 대접하고 싶다는 고운 말에
게장을 들고 올 힘을 잃고 그 바다를 놓고 왔다.
‘떡볶이 드세요. 순대 드세요. 소주 반병도 팔아요.
홍합은 그냥 드려요.‘
건강한 생활의 소리를 뒤로 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영등포 재래시장에 게장 사러 갔다가.
고양시 일산에 사는 멋 중에 하나는 장날 구일산 재래시장을 찾아다니는 즐거움이다.
구일산장이 3일, 금촌장 1일, 김포, 강화장 2일로 일산장은 닷새마다 일산역 앞 310번 국도를 따라 좌판이 벌어지는데 그 모습이 옛날 시골장터 모습 그대로다.
싱싱한 채소, 먹거리 그리고 개와 고양이 장수들, 호루라기를 불며 시작되는 강냉이 뻥튀기 장수. 차가 넘어질 정도로 가득 싣고 파는 죽물 장수 등 재미있는 물건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장날을 찾아온 사람들의 북적임이 옛 장터가 살아 있는 것 같다.
장보러 가는 사람들은 장을 본 후 들리는 곳이지만 나는 막걸리집으로 직행하는 게 일과였다.
그 일산 장에서의 나의 단골 술집이 ‘문산집’이다.
거기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술을 사곤했다. 한번은 이런 나를 오해한 한 젊은이의 신고로 경찰이 달려오기도 하였다.
문산집은 70대 초반의 말 수가 적은 예쁘장한 주모가 순댓국을 파는데 TV 먹거리에도 40년 역사를 자랑으로 소개된 서민들의 순댓국집이었다.
그런 집에 언제부터인가 키가 껑충한 눈이 부리부리한 할아버지가 그 술장사 일을 돕고 있는데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있다.
“저 이가 문산댁 늙은 신랑이레-. 지금까지 장꾼들이 돈 천원 내고 ‘카아-’ 하고 술 마시던 문산집인데 저 영감 이후에 그 멋이 사라졌어.”
어느 날 그 앞을 조촘거리는 발걸음으로 지나가던 80객 할아버지에게 술 한 잔 대접하던 생각이 난다.
몸에서 역겨울 정도로 '확-' 풍기는 똥냄새가 치매와 중풍으로 쓸쓸히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생각나서였다.
그 할아버지의 아들이 문산집 앞에서 장사를 하는데 아들이 재혼하고 할아버지를 30만원 월세 집에 따로 모시고 사시게 한 모양이다.
그래서 밥도 제 때에 못 얻어먹는 모양이어서 눈 가가 ‘휑-’ 하니 꺼져 있는 할아버지였다.
나라에서 노인에게 주는 3만원도 며느리가 챙기는 모양이어서 그 돈을 찾게 도와 드리었다.
동회에 가서 신고하고, 사진을 찍어 주민등록을 내 드리고, 그 지갑에 몇 만원을 넣어드리던 일이 지금은 행복으로 되살아 난다.
그 할아버지도 얼마 후 보이지 않더니 굶어 돌아가신 것 같다고 쑥은 거리는 동내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자식에게 시골의논밭 팔아 내준 장사였다는데-.
순댓국을 먹다가 고기가 남으면 그걸 휴지에 곱게 싸 개 시장을 향하곤 했다.
설사한다고 먹이지 말라고 질색을 하는 개장수 몰래 어쩌면 최후의 만찬이 될지도 모르는 돼지 머리고기를 건네고 싶어서였다.
그러던 것이 이젠 그런 운치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어느 날 문산집에서 머리고기 반 접시에 막걸리를 두어 병 마시다 흥겨워 시 한 수를 짓고 있는데 그 주모의 새신랑에게서 볼멘 핀잔소리를 들어서다.
“오늘이 장날이란 말예요, 장날!”
장사를 백 번 잘하다가도 한 번만 잘못하면 영원히 손님을 잃는다 하지 않던가. ‘100-1=0’ 도 모르고 어찌 장사를 하나.
섭한 마음에 그때까지 내 마음 속에 고이 간직하고 살던 단골집 문산집을 잃고 보니 일산장도 잊고 말았다.
다음 장날에는 일산장을 다시 찾아야겠다.
새로 만든 나의 단골집에 가 본 지 오래라서다. 아내가 5살이 위라는 손이 크고 인심이 넉넉한 50대 후반 뚱뚱이 부부의 술을 팔아주기 위해서. 그들에게는 큰 손님인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다.
첫댓글 좋은 글입니다.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장문의 글을 쓰셨군요! 순대국에 소주가 제일이지요. 이제는 소주3잔 먹으면 많이드는데,
일만님의 주량은 많으신것 같드군요. 나이들어 건강에는 장사가 없다잔아요. 좋은내용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