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너는 언제부터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했느냐
너는 언제부터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했느냐
너와 나 사이에 세상이 있었는지
세상과 나 사이에 네가 있었는지
너무 밝아서 나는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결코 너를 격하고 있는 세상에게 웃는 것은 아니리
너를 보고
너의 곁에 애처로울 만치 바싹 다가서서
내가 웃는 것은 세상을 향해서가 아니라
너를 보고 짓는 짓궂은 웃음인 줄 알아라
음탕할 만치 잘 보이는 유리창
그러나 나는 너를 통하여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두려운 세상과 같이 배를 대고 있는
너의 대담성 -
그래서 나는 구태여 너에게로 더 한걸음 바싹 다가서서
그리움도 잊어버리고 웃는 것이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밝은 빛만으로 너는 살아왔고
또 너는 살 것인데
투명의 대명사 같은 너의 몸을
지금 나는 은폐물같이 생각하고
기대고 앉아서
안도의 탄식을 짓는다
유리창이여
너는 언제부터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했느냐
<1955>
이 시는 세상과 맞대고 있는 유리창을 소재로 하여 화자가 세상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리창이 세상과 배를 대고 선 것을 보고 화자는 유리창이 언제부터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했는지 궁금해 한다. 유리창은 세상과 나 사이에 있다. 음탕하다 할 정도로 세상과 배를 대서 서 있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유리창의 모습이 너무 밝아서 나는 짓궂은 웃음이 나온다. 나는 결코 너를 격하고 있는 세상에서 웃는 것은 아니다. 네가 나와 세상을 격리시킨 곳에서 너를 보고 너의 곁에 애처로울 만치 바싹 다가서서 내가 웃는다. 세상을 향해서 웃는 것이 아니다. 너는 음탕할 만큼 세상과 배를 대고 서 있다. 그러나 나는 너를 통하여 세상의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세상을 볼 수가 없다. 두려운 세상과 같이 배를 대고 있는 너의 대담성을 가까이 하려고 나는 구태여 너에게로 더 한걸음 바싹 다가서서 너를 그리워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웃는 것이다. 너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밝은 빛만으로 살아왔고 또 너는 살 것이다. 투명의 대명사 같은 너의 몸을 지금 나는 은폐물같이 생각하고 기대고 앉아서 안도의 탄식을 짓는다. 너의 대범성이 나를 안도하게 만든다. 유리창이여. 너는 언제부터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했느냐!
이 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너는 언제부터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했느냐
너와 나 사이에 세상이 있었는지
세상과 나 사이에 네가 있었는지
너무 밝아서 나는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결코 너를 격하고 있는 세상에서 웃는 것은 아니리
너를 보고
너의 곁에 애처로울 만치 바싹 다가서서
내가 웃는 것은 세상을 향해서가 아니라
너를 보고 짓는 짓궂은 웃음인 줄 알아라
유리창아. 너는 언제부터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했느냐? 세상과 나 사이에 네가 있었다. 나는 너가 너무 밝아서 짓궃은 웃음이 나온다. 결코 너를 격하고 있는 세상에게 웃는 것은 아니다. 너를 보고 너의 곁에 애처로울 만치 바싹 다가서서 내가 웃는 것은 세상을 향해서가 아니라 너를 보고 짓는 웃음이다.
‘너는 언제부터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했느냐’는 화자도 모르는 사이에 유리창이 세상과 붙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너와 나 사이에 세상이 있었는지 / 세상과 나 사이에 네가 있었는지’는 화자는 궁금하지 않다는 것이다. ‘너의 몸을 / 지금 나는 은폐물같이 생각하고 / 기대고 앉아서’(4연 4~6행)로 보면 ‘세상과 나 사이에’ ‘유리창’이 있는 것이다. ‘너무 밝아서’는 ‘잘 보이는’(3연 1행), ‘투명’의 의미이다. ‘그러나 결코 너를 격하고 있는 세상에서’ 있는 것은 아니다. 화자는 ‘유리창’으로 ‘세상’과 ‘격하고 있는’ 곳에 있다. 화자에게 ‘세상’은 ‘두려운 세상’(3연 4행)이어서 ‘세상’을 피하여 있다. 그래서 ‘너를 보고 / 너의 곁에 애처로울 만치 바싹 다가서서 / 내가 웃는 것은 세상을 향해서가 아’닌 것이다. ‘애처로울 만치 바싹 다가서’는 것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자신을 ‘은폐’시키려는 행동을 말한 것이다. ‘짓궂은 웃음’은 화자가 유리창에게 짓는 웃음이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음탕할 만치 잘 보이는 유리창
그러나 나는 너를 통하여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두려운 세상과 같이 배를 대고 있는
너의 대담성 -
그래서 나는 구태여 너에게로 더 한걸음 바싹 다가서서
그리움도 잊어버리고 웃는 것이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밝은 빛만으로 너는 살아왔고
또 너는 살 것인데
투명의 대명사 같은 너의 몸을
지금 나는 은폐물같이 생각하고
기대고 앉아서
안도의 탄식을 짓는다
유리창이여
너는 언제부터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했느냐
음탕할 만치 잘 보이는 유리창을 통하여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두려운 세상을 보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내가 두려워 하는 세상과 음탕함을 느낄 정도로 배를 대고 있는 너의 대담성에 놀란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너에게로 더 한걸음 바싹 다가서서 너에 대한 그리움도 잊어버리고 짓궂게 웃는 것이다. 너는 세상과 음탕하게 배를 대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밝은 빛만으로 투명하게 너는 살아왔고 또 너는 살 것인데 투명의 대명사 같은 너의 몸을 지금 나는 세상과 격하게 하는 은폐물같이 생각하고 기대고 앉아서 안도의 탄식을 짓는다.
‘음탕할 만치’는 ‘유리창’이 아무 것도 가리지 않은 ‘투명’하게 ‘세상과 같이 배를 대고 있’기에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너를 통하여 아무것도 / 보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한 이유는 ‘세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화자가 ‘두려’워 하는 ‘세상과 같이 배를 대고 있는’ ‘유리창’에서 ‘대담성 -’을 본다. 그래서 ‘유리창’의 ‘대담성’을 가까이 보려고 ‘구태여 너에게로 더 한걸음 바싹 다가서’는 것이다. ‘그리움도 잊어버리고’는 화자가 ‘유리창’을 발견하기 전에 ‘유리창’을 그리워 했지만 ‘유리창’의 ‘대담성’을 보는 순간 ‘그리움’의 감정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음탕할 만치’ ‘대담’한 ‘유리창’을 보고 웃는 것이다. ‘유리창’은 ‘음탕할 만치’ ‘대담’한 자신의 ‘부끄러움도 모르고 / 밝은 빛만으로’ ‘살아왔고’ ‘살 것’이다. 그런데 화자가 ‘투명의 대명사 같은’ ‘유리창’을 ‘은폐물같이 생각하고 / 기대고 앉아서 / 안도의 탄식을 짓는’ 이유는 ‘유리창’의 ‘음탕할 만치’ 보다 ‘부끄러움’ 보다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한 ‘대담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 ‘대담성’을 화자도 가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다시 ‘유리창’을 부르며 ‘언제부터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했느냐’고 다시 물어보는 것이다.20210406화후09 전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