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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 자손의 시편 (5) 시편 46편
세상의 요동함과 하나님의 한 마디 말씀
찬송 시편 46편
2021-2-19
맥락과 의미
시편 46편은 물결이 휘몰아칠 때에도 하나님이 피난처되셔서 보호해 주시는 것을 찬양합니다.
1. 세상이 흔들려도 우리의 피난처 되신 하나님 때문에 두려워 하지 않음(1-3절)
2.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 되심을 찬양(4-7절)
3. 전쟁을 끝내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피난처 되심을 찬양(8-11)
46편은 “지휘자에게, 알라모트에 맞춘 노래”라는 제목이 있습니다. 알라모트는 “높은 음”이라는 말이어서, 여성이 부르라는 말도 되고, 높은 소리로 부르라는 말도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에게 나그네로 살아가면서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주셨습니다.
1. 세상이 흔들려도 우리의 피난처 되신 하나님 때문에 두려워 하지 않음(1-3절)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 힘, 도움이라고 고백합니다. 환난의 순간을 살아가는 믿음의 공동체에는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알고 고백하는 것이 참된 해결책입니다.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신다는 말은 7, 11절에도 나옵니다. 위기 가운데서 구약 교회는 피난처 되신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바다가 사납게 육지로 밀려 옵니다. 쓰나미가 밀려 오듯 합니다. 산이 산이 흔들리고 바다에 빠지고 것 같습니다. 창조 이전의 혼돈의 상태와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바다와 육지 사이에 모래를 파도가 정하습니다(렘 5:22). 그런데 그 한계가 무너졌습니다. 기존의 질서가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바다와 산의 투쟁은 제국들 사이의 전쟁을 가리킵니다. “두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여 바다가 그 파도를 굽이치게 함 같이 여러 민족들이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에스겔 26:3-5). 두로는 마음이 교만하여서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고 교만하게 생각하였습니다(겔 28:2). 그러나 해일이 바닷가 건물을 휩쓸고 지나가듯이 여러 나라가 밀려 와 두로의 성벽을 헐어 버릴 것이라고 합니다그 성을 바다 가운데 빠뜨릴 것이라고 합니다. 산처럼 안정되었다고 자랑하는 세상 제국을 다른 나라들이 공격하여서 바다 가운데 가라앉히는 일들이 역사에서는 자주 있었습니다.
바다물이 “솟아난다”(3절)은 분노하며 소리치는 것을 말하빈다. 여러 강대국의 물결은 시온 산에 대하여서도 그들의 분노의 물결을 쏟아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안에 계시니 성이 요동하지 않도다”(5절)는 말이 이것을 암시합니다. 세상의 임금들이 시온 산에 거하시는 여호와와 그분의 메시아를 대적하려고 일어났습니다(시편 2편). 그들이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반역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이 세상은 하나님과 그분의 성(城)인 교회를 공격합니다. 온 세상이 연합하여서 하나님의 백성을 삼키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의 모든 질서가 다 무너진 것처럼 보입니다.
노한 듯이 출러이는 파도가 산을 삼킬 듯이 덤비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고백합니다. “우리의 피난처와 힘, 항상 가까이 계신 도움” 그들은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습니다. 그분은 파도보다도 더 능력이 있으신 분이고 항상 가까이에 계신 도움이라고 고백합니다. 큰 파도가 칠 때에 그의 마음도 함께 요동할 법한데, 그들은 잔잔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향하여서 외칩니다.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위 말씀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3 바닷물은 성내고 소용돌이치게 하라.
그 위력에 산들이 떨게 하라. 셀라.
그들은 시온을 공격하려는 세상을 향하여서 말합니다. 계속 성내고 목소리를 높여 보라고 합니다. 다른 나라들을 떨게 해 보라고 합니다. 그 파도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분은 비웃으십니다(참조. 시 93:3-4; 2:4). 하나님을 피난처와 힘으로 삼은 사람은 혼돈을 일으키는 세상의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편에 함께 서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을 향하여 거룩한 조롱을 할 수 있습니다.
2.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 되심을 찬양(4-7절)
4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5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성도가 세상을 조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성을 흐르는 잔잔한 강물을 마시기 때문입니다. 그 강은 나뉘어 흘러서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성소를 기쁘게 합니다.
이 성은 에덴동산의 모습입니다. 세상에서는 이 성으로부터 여러 시내들이 흘러서 강물로 모여들고 바다로 갑니다. 에덴동산에서는 한 강이 넷으로 나뉘어 흐르면서 동산을 넉넉히 적시었습니다(창 2:10). 하나님과 함께 하는 행복이 이 성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인 예루살렘은 산 위에 건설되었습니다. 실제 강이 갈라져 나오지 않습니다. 이 강은 하나님의 임재(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영적인 강물입니다.
에스겔서 47장을 보면 물이 성전에서부터 흘러나와서 동으로 흐릅니다. 그 물이 강둑 좌우의 나무에 물을 공급하여 나무를 무성하게 합니다. 심지어 사해도 다시 살아나게 합니다.
생명을 주는 이 강물은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킵니다. 고요한 강물이 흐르는 하나님의 도성에는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평안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두르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나라는 흔들리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비록 캄캄한 밤과 같은 시기를 지난다고 하더라도, 밤이 지나면 동이 트듯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돌아보시는 아침이 옵니다.
6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6절에서 이방 나라들이 다른 나라를 향하여서 분노하며 소리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소리를 내시니까 땅이 녹았습니다. 산들이 바다에 빠지는 정도가 아니라 온 땅이 녹고 잠잠해졌습니다. 땅이 녹은 것은 전쟁을 끝내는 것을 말합니다(8절)
7절에서 확신 있게 말합니다.
7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세상의 권력은 파도처럼 위세를 부리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도성을 흐르는 그 샘물을 마신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라고 고요하지만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3. 전쟁을 끝내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피난처 되심을 찬양(8-11)
8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9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땅을 황폐케 하시고 이 땅에서 전쟁을 끝내셨습니다. 활을 꺾고 창을 부러뜨리고 수레를 불로 살라 버리셨습니다. 세상 나라들이 서로 싸우고 하나님의 나라도 공격하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그러한 나라를 불로 살라서 모두 황폐케 하셨습니다. 온 세상에서 전쟁이 그쳤습니다.
전쟁을 “끝냈다”에서 안식일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전쟁을 끝내시고 영원한 안식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땅이 녹은 후에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주님을 거스르는 세력이 없고, 이방 나라들도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만을 높일 것입니다.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세상의 폭력과 조롱을 당하면서 요동하고 맞대응하려는 사람들(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말씀하십니다. “멈추고서 내가 한 일을 묵상하라”. 6절에서 분노하며 소리치던 “뭇 나라” 중에서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녹이셨던 그 땅은 하나님께 굴복하며 높일 것입니다.
그 명령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11절과 같이 노래합니다.
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7절과 같은 내용이지만 여기서는 이방인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의 도성을 향하여서 큰 소리로 덤비던 이방인들이 야곱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라고 함께 찬송할 것입니다. 지금은 흉용하는 파도가 세상에서 소리를 높이는 것 같아도 “너희는 멈추어라”는 여호와의 목소리에 모든 전쟁의 소리는 잠잠해 질 것입니다. 앞으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가득할 것입니다(이사야 11:9). 이것을 바라보며 성도들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임마누엘)을 찬송합니다.
4. 요동하는 세상과 하나님의 한 마디 말씀
1) 흔들리게 하는 마음과 흔들리는 마음
우리 성도도 세상에 의해 흔들립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조롱하고 비방할 때 그 소리가 내 마음에서 파도처럼 혼돈을 일으키곤 합니다. 세상을 의지하면 더 흔들립니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폭풍만 잠잠케 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의 세력을 보고 요동하는 나의 마음도 잠잠케 하시는 분입니다 “바닷물은 성내고 소용돌이치게 하라. 그 위력에 산들이 떨게 하라” 하고 세상을 조롱하면서 이 나그네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물을 마시지 못한 평온한 마음을 갖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까지도 요동케 합니다. 이사야 57:20-21에서 이렇게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우리에게 이 평안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의 문제에 끼어들어서 문제를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점잖게 말하지만 마음 속에는 자기를 자랑하거나 욕구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누가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면 그 말이 내 속에서 파도처럼 파장을 일으킵니다. 나의 영혼을 삼키려 합니다. 다른 사람을 파도처럼 산채로 삼키려고도 합니다.
2) 야곱의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성령을 의지함
나의 마음이 흔들릴 때에 하나님을 나의 힘과 피난처라고 고백하면서 주님께 피합니다. 하나님의 도성을 흡족히 적시는 물은 성신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7장에서는 초막절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외치셨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신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신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 7:37-39)
주님을 믿는 자의 속에서 성령님의 생수가 넘치게 흐릅니다. 육신으로 행하면 다른 사람을 삼킵니다. 성령님을 따라 행하면 그의 속에서부터 흘러넘치는 생수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파됩니다. 다른 사람을 참된 믿음으로 인도하는 데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3) 주님의 한 마디 말씀과 승리의 노래
하나님의 성에 대한 세상의 공격이 정점에 이른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내려오라. 그러면 믿겠노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조롱의 말이 예수님의 영혼에 넘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시면서 숨을 거두셨습니다(마 27:40-46).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세상의 조롱과 공격은 곧 그들의 멸망이고 심판입니다. 세상의 흉용하던 물은 사라지고 성전에서 흐르는 물이 온 세상을 가득 채웁니다.
마지막 날 세상 나라가 바다 모래처럼 성도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둘러쌌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모두 패망합니다(계시록 20:7-10).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한 마디 말씀하시면 이 세상은 지금과 같은 상은 없어지고 의가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이 전개될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강물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요한계시록 22:1-2). 생명수 샘물을 성도에게 값없이 줄 것입니다(요한계시록 21:5-6).
믿고 복종할 일
우리가 천국에 갈 때 까지 사단과 그의 수하에 있는 세상은 우리 삶을 흔듭니다. 그러나 두려워 하지 맙시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어려움과 사단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삼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굳게 붙잡읍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그 거룩한 성 안에 들어와 있음을 다시 고백합시다. 믿는 우리에게 성령님의 생수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며 매일 우리에게 주신 직분들 다합시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을 하나님께 굴복시킬 것입니다. 그들도 하나님을 높이며 우리와 함께 찬양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대적하는 나라와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 마지막 날이 지난 후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 것입니다. 마귀와 죄와 죽음이 우리를 흔들지 못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 나오는 생명의 물을 마시며 하나님과 교제할 것입니다.
이 소망 가운데서 우리는 고백합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힘, 도움이십니다.
<참고> 시편 46편의 구성
“하나님”이라는 말이 7번 나오고, “여호와”라는 말이 3번 나옵니다. “우리의 피난처”라는 말이 3번, “흔들린다”다 이라는 말도 3번 나옵니다. “셀라”라는 말도 세 번 나옵니다. “셀라”는 악상 기호로 추정됩니다. 7, 3, 10 모두 완전을 나타내는 수입니다. 세상의 혼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한 평화가 있음을 나타냅니다.
<참고> 시편 46편은 루터의 종교개혁
시편 46편은 종교개혁의 시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시편 46편에 기초하여서 작곡한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종교개혁 기념일에 자주 부릅니다. 루터 박사는 1517년 비텐베르크의 성곽 교회(Schlosskirche)에 95개조를 붙이고 개혁의 길에 들어섰고, 10년이 지난 1527년에 이 찬송을 작곡하였습니다. 10년이 지나면서 그는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성격이 드러날수록 로마 교회의 반대가 더 심하여 졌습니다. 농민과 평민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루터 선생을 그들의 지지자라고 말하는 일도 생겼습니다. 토마스 뮌처를 중심으로 한 과격한 사람들도 루터를 공격하였습니다. 그러한 격동과 어려움의 시기에 그는 하나님을 피난처와 힘과 도움으로 삼았습니다.
루터 선생은 이러한 시편 46편의 내용을 잘 이해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힘을 얻어서 개혁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로마 교회의 핍박과 다른 사람들의 오해와 몰이해 속에서도 루터 선생은 오직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나아갔습니다. 보는 것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면서 나아갔습니다. 루터 선생은 이 시편에서 배운 것을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으로 표현하였습니다. 3절에서는 “이 세상의 임금 분 낸다 하여도 “너 심판 받았다” 한 마디 주 말씀 사탄을 무너뜨린다” 하고 찬송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는 세상을 조롱하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원수가 취해도 진리는 영원해,
그 나라 상속하리라. 아멘.
중산층의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은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이 변화하면 굉장하게 요동합니다. 그 사람은 자기의 손으로 이룬 것을 자랑하는 사람임을 드러낸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자기의 힘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 피하는 사람이 주님께 쓰임을 받아서 이룰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95개조의 첫째 조항처럼 자기의 죄를 평생 깨닫고 회개하면서 주님께 피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에서 나오는 샘물로 만족하며 살 수 있습니다(계 22:17). 자기의 손으로 이룬 것을 자랑하려는 마음이 없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말씀을 믿고 거기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을 주님께서 사용하여서 일을 이루십니다. 개혁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묵상하면서 오늘도 그 길을 걷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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