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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장,
수진은 아파트에 혼자 와 있다.
아파트는 전과 다름없이 그대로 있다.
수진의 요구대로 임대도 주지 않고 모든 세간들을 그대로 두고 간 것이다.
수진은 아파트 안에서 엄마의 모든 흔적을 치워버린다.
걸려 있던 사진들 중에서도 엄마가 들어 있는 모든 사진들을 치우고 아빠와 단 둘이서 있는 사진과 아빠 사진만을 걸어두고 있다.
집안 어느 곳에든 엄마의 흔적은 모두 치워버린 수진이다.
수진은 아빠 사진을 보며 말을 한다.
“아빠!
아빠는 절대로 죽지 않았지?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올 거지?“
수진은 아빠가 돌아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는 왜 그런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떠난 것인지 아직도 이해를 하지 못한다.
“아빠!
이제 아빠에겐 이 수진이 뿐이라는 것을 아빠는 알고 있어?
이제 아빠를 기다리는 것은 오직 수진이 뿐이야.
할머니도 외할머니도 이젠 아빠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아빠 딸 수진이는 아빠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어!“
수진이는 한참을 아빠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차마 아빠에게 지금 엄마가 결혼식을 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얼마나 실망을 하고 얼마나 참담해 할 것인가를 생각하니 입을 열고 말을 할 수가 없다.
“아빠!
그래도 엄마를 미워하지 않겠어!
엄마는 이제 아빠를 가슴속에 묻어두고 엄마의 행복을 찾아 떠난다고 했어!
그렇지만 아빠!
그런 엄마를 난 미워할 수가 없어!“
수진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세월이 지나도 아빠에 대한 그리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더욱 크게 마음에 자리를 잡아가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다.
금방이라도 저 문을 열고 들어설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수진은 행여 아빠가 오신다면 제일 먼저 이 집으로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집이다.
아빠의 물건 그 어떤 것들도 없애지 않고 고스란히 간직을 해 왔다.
아빠가 쓰던 칫솔과 면도기까지 욕실에 그대로 있다.
안방에는 엄마의 모든 물건들이 치워지고 없고 아빠의 옷들과 소지품들만 그대로 있는 것이다.
수진이에 의해서 이정아는 그 모든 물건들을 치우지 못하고 남겨둔 것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수진이가 모든 것을 관리하고 보관을 해 온다.
수진이는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면 이 집으로 와서 보내곤 한다.
아빠의 체취와 흔적이 있는 이 집이 마음이 편안하고 제일 좋다.
“아빠!
엄마는 떠났지만 수진이가 있으니까 절대로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삶을 포기하면 안 되는 것을 알지요?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 딸이 있어요.
아빠!
슬프고 힘들지만 수진이는 반드시 이겨낼 겁니다.
아빠 딸이니까 아빠의 강인함을 닮아서 그 어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각오를 합니다.
아빠도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그렇게 수진이는 지금 엄마의 결혼식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아빠하고 대화를 나누곤 한다.
대답 없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만 그것이 아빠에게 전달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언제나 아빠를 향해서 말을 하곤 한다.
그 시간 이정아는 결혼식을 끝내고 잠시 피로연장으로 가서 참석해주신 친지들에게 인사를 한다.
시어머니인 심숙희는 마지못해 결혼식에 참석을 했지만 식이 끝나자마자 그래도 돌아가 버리고 피로연에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참으로 아들이 아깝고 억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심숙희다.
아들 옆에선 여자를 그대로 가서 끌어내리고 싶다는 생각뿐인 심숙희는 더 이상 피로연석에도 나가고 싶지 않아 그대로 돌아가 버린다.
유용재의 형과 형수가 그 모든 하객들을 접대를 한다.
어머니께서 몸이 불편하시어 먼저 집으로 모셨다는 말로 죄송스러움을 나타내지만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이정아는 시어머님께서 먼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불안해진다.
자신을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불안한 마음은 더욱 커지고 있다.
유용재 역시 그런 어머니가 내심 불안스럽기는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신부를 데리고 신혼여행길에 오른다.
“이대로 떠나도 되는 것인가요?”
“뭐가 어떻소?
어머니에 대한 것은 생각하지 말아요.
평소에 몸이 좋지 않으셨으니까 아마 많이 힘드셨던 모양이오.
다녀와서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면 되니까 편안한 마음을 가져요.“
그들은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난다.
젊은 사람들처럼 외국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임신을 한 아내가 오랜 시간 비행기에서 시달리게 된다면 태아에게 지장을 줄 것이기 때문에 제주도로 선택을 한 것이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이정아는 심한 입덧을 한다.
신혼여행을 와서도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한다.
유용재는 그런 아내가 안쓰럽고 신혼여행이 더 힘들 것 같아 일정을 바꾸어 하루 일찍 집으로 돌아온다.
삼박 사일의 일정을 하루 먼저 돌아온 것이다.
친정이나 시댁엘 가야하는데 정아는 먹지를 못해 기운이 없다.
“여보!
우리 집에는 당신이 몸이 좀 괜찮아지면 그때 가자.“
”그래도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는데 어떻게 가 뵙지 않아요?
부모님께서 서운하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마!
내가 이미 전화를 드렸으니까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말고 당신 몸을 먼저 생각하자. 응?“
”정말 그래도 돼요?“
어머니도 그러라고 허락을 하셨어!“
정아는 다소 안심을 하며 아침에도 간신히 일어나 수진이를 위해서 아침을 준비하곤 한다.
유용재는 그런 아내가 안쓰러워 자신이 아침을 준비한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침을 준비하는 아내가 안쓰러운 것이다.
지금까지 혼자 살아왔던 유용재가 아침을 준비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아침을 준비해서 수진이가 늦지 않도록 식탁을 차린다.
수진이는 엄마가 아기를 가진 것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저 모른 척 할 뿐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밤늦어서야 집에 돌아오기에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쓸 시간도 없다.
이제 대학 수능을 준비를 하려면 다른 곳에 마음을 쓸 여유가 없다.
아빠를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해서 멋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수진의 마음이다.
수진은 엄마의 임신을 그저 먼 산의 불구경 하듯 바라볼 뿐이다.
이제 자신이 아니더라도 엄마를 사랑하고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
아침을 누가 챙겨주던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저 아침을 한 술 뜨고 학교에 가면 그뿐이다.
학원을 가서 시간을 내어 저녁을 사 먹는다.
거의 자정이 다 되는 시간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온다.
때로는 거실의 작은 등만 켜져 있고 엄마는 안방으로 들어가 이미 잠이 들어 있는 것 같지만 아무런 불만도 없다.
어차피 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면 따로 나갈 계획이라 더 이상 그 어떤 관심을 가져주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대학교에 합격을 하기만 하면 아파트로 되돌아 갈 것이다.
아빠의 체취와 아빠의 모든 것이 있는 곳으로 가서 혼자서 아빠를 기다리며 살아갈 것이다.
이미 경제적으로도 충분한 모든 여건이 되어 있기에 아무런 걱정도 없이 학업을 지속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역시 아직도 아빠의 명의로 되어 있다.
그것은 영원한 아빠의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이미 아파트를 구입할 때 받은 융자금도 모두 갚은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수진은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을 한다.
또한 수진이 틈틈이 공부를 하는 것은 밀림과 아프리카 오지에 대한 것들이고 그런 것들로 인해서 아빠가 행방불명이 되었기에 자신이 찾아 나서야 할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편 강인태는 이제 그 부족의 많은 것을 배운다.
어느 정도 부족의 언어를 익혀 서로 조금씩 말을 통하게 된다.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나체족이다.
그들은 외부 인을 받아드리려는 생각도 없고 자신들만의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외부 인과 접촉을 하는 것은 결혼을 하기 위해서 뿐이다.
그들 대부분이 혈족인 관계로 다른 부족과의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날 며칠이 걸린다고 해도 다른 부족을 찾아 청혼을 한다.
아주 가끔은 다른 부족이 와서 청혼을 할 아가씨가 있는지 알아보기도 한다.
이제 강인태는 그런 사정들을 알게 된다.
벌써 이곳에 온지가 일 년이 넘는 세월이다.
밀림 속에 있을 때보다는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온전한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볼 수가 없는 강인태의 모습이다.
그 부족 사람들 중 아무도 세상 밖으로 나가 본 사람이 없다.
이제 그들을 강인태의 사정을 알게 된다.
그러나 다른 부족에서 사람이 오기 전에는 세상을 향해서 그 어떤 연락도 취할 수 없는 그들의 생활이다.
강인태는 그들 부족을 따라 나체로 생활을 한다.
입으려고 해도 입을 수 있는 옷도 없고 신을 수 있는 신발도 없다.
강인태는 주변에 널려 있는 야자나무의 넓은 잎으로 중요한 곳을 가린다.
강인태는 혼사를 주선해주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그것만이 세상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직 이 부족에게는 결혼을 할 총각과 처녀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부족들이 있기에 시기가 되면 누군가 올 것이다.
강인태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또한 아내와 수진이와의 대화도 끊이지 않고 사진을 보며 말을 한다.
“수진아!
아빠는 지금 우리 수진이가 몇 살이나 되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동안 세월이 얼마나 지나간 것인지 내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조차 모르겠구나.
그러나 수진아!
이제 집에 돌아갈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그럴수록 아빠의 마음은 더욱 초조하고 견디기 힘이 든다.
아직도 아빠를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거지?“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된다.
그러나 강인태는 말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말을 한다.
그들의 언어 또한 대부분 알아듣고 대화가 가능해진다.
그들의 음악과 풍습 그리고 식생활과 삶의 전부를 알아간다.
일부일처제로 성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 있다.
남편이 죽으면 절대로 재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그들만의 풍습이고 그런 가족들을 위해서 부족 전체가 나눔을 하며 살아가게 한다.
가슴이 따뜻하고 참으로 순박한 부족이다.
모든 것을 기록하고 싶지만 그런 수 있는 도구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모두 없어져 버린 것이 참으로 아쉽다.
생명과 같은 카메라마저 지니고 있지를 못하고 계곡에 떠밀려 버렸던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모든 것을 놓아야만 했다.
이제 그 모든 것들이 아쉽다.
강인태는 머릿속에 하나하나 그리고 차곡차곡 쌓아둔다.
그리고 반드시 살아 돌아간다면 언젠가는 또 다시 모든 장비를 준비해서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강인태가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시간들 속에 있을 때 이미 이정아는 전남편에 대한 모든 것을 잊고 이제 입덧이 가라앉고 조금은 편안하고 행복한 삶속에 안주하고 있다.
몸이 편안해지자 비로소 수진이의 귀가 시간이 생각이 난다.
열한시가 넘어서자 기다려지는 딸이다.
“자지 않고 뭘 하고 있소?”
유용재가 거실로 나오며 말을 한다.
“수진이를 기다리고 있어요.
엄마로서 고등학생이 된 딸을 두고 일찍 잠을 잔다는 것이 참으로 미안한 일이지요.
이학년이라도 해도 자정이 다 되어서 돌아오는 딸을 기다려야 하는 엄마가 내 몸이 힘들다고 일찍 잠을 자면서 딸에게 무관심했던 것 같아요.“
”아, 내가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소.
내가 마중이라도 나가야겠군!
헌데 수진이 학원이 어디지?“
유용재 또한 비로소 그동안 수진이에게 무관심했다는 것이 생각난다.
참으로 아빠로서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비록 수진이가 아빠라고 부르지 않고 인정하려들지 않지만 어디까지 딸이라고 생각하는 유용재다.
“당신이 그동안 나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아마 그것은 핑계가 아닐까?
아직은 아빠로서 준비가 안 된 것 같군!“
부부는 수진이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눈다.
이제 밥을 먹는 아내의 모습이 아름답다.
입덧이 끝나고 이정아는 음식을 잘 먹는다.
그런 아내를 위해서 무엇이라도 사다주는 유용재다.
한 밤중이라도 아내가 원하는 것이면 마다하지 않고 나가서 사 온다.
수진이는 평소처럼 현관의 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고 들어선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엄마와 아저씨가 거실에 있는 것을 보고 다소 놀라는 표정을 보이지만 이내 고개만 숙이며 인사를 한다.
“우리 딸 많이 늦었구나!”
정아는 정겨운 음성으로 말을 하며 몸을 일으킨다.
수진이는 그런 엄마를 잠시 바라보다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수진아!
나와서 야참을 먹어!“
“아뇨!
저녁을 든든하게 먹었어요.“
”엄마가 모처럼 준비를 했는데 조금이라도 먹어 봐!“
“엄마!
너무 많이 먹으면 졸려서 공부를 할 수가 없어요.
미안하지만 그만 나가주실래요.“
수진은 냉정하게 말을 한다.
정아는 그런 수진을 보며 감히 다가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결혼을 하고부터 엄마에게 냉정해진 딸의 모습이다.
그것은 수진을 나무랄 일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정아는 뭔가 서운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남편 앞에서는 그런 내색을 할 수가 없다.
지금 남편의 딸이 아니라는 것이 이럴 때 실감이 난다.
“왜 혼자 나와요?”
“배가 부르면 공부가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리고 지금 또 공부를 하다가 잔다고 하니 시간을 빼앗을 수가 없지요.“
”그러고 보니 대학입시를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겠어!
수진이 건강을 위해서 영양식이라도 준비를 해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지요.
주말이 되어야 먹을 수 있으니 그렇게 하지요.“
그래도 수진이에게 마음을 써주는 남편이 고맙다.
이정아는 수진이를 위해서 영양식을 해 주려는 준비를 한다.
찬바람이 났으니 사골과 소꼬리를 사서 푹 고아서 아침마다 한 그릇씩 먹게 해 주려는 생각이다.
멀리 마트까지는 가지 않고 아파트안의 단골 정육점에 부탁을 한다.
마침 다음날 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다음날 가서 구입을 해가지고 온다.
하루 정도 물에 푹 담가서 핏물을 빼고는 커다란 들통에 푹 고기 시작한다.
그렇게 사골과 소꼬리와 씨름을 하고 있을 때 현관의 부저소리가 난다.
“응? 누구지?”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기 전에 누군가를 확인한다.
“누구세요?”
“나다, 문열어라!”
시어머님의 음성이다.
이정아는 황급하게 현관의 잠금 쇠를 풀고 문을 연다.
“어머님!”
심숙희는 이정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집안으로 들어선다.
주방에서 뭔가를 끓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심숙희는 주방으로 들어가 끓고 있는 것을 확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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