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살이 국토를 정화하고 중생을 제도하고자 커다란 서원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불교의식에서 사홍서원을 발원한다. 다음 중 사홍서원에 들지 않는 것은?
① 중생이 가없어도 건지고야 말리
② 계율을 지키기 힘들어도 지키고야 말리
③ 번뇌가 끝없어도 끊고야 말리
④ 불도가 위없어도 이루고야 말리
2. 다음 경전에 나타나는 여러 부처님의 설명이다. 거리가 먼 것은?
①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교주이다.
② 비로자나불은 법신불로 미래불이다.
③ 비바시불은 과거 7불 중 제1불이다.
④ 시기불은 과거 장엄불에 출현한 일천불 가운데 제999불이다.
3. 다음 중 고려시대에 성립된 불교종파는?
① 정토종 ② 5교 ③ 천태종과 조계종 ④ 법성종과 화엄종
4. 숭유억불 정책 아래에서도 세조는 국역역경기관을 설치하여 불경을 번역하였다. 이 기관의 이름은?
① 의정부 ② 대장도감 ③ 비변사 ④ 간경도감
5. 다음 중 중관학파에 속하지 않는 파는?
① 귀류논증파 ② 자립논증파 ③ 유가행중관파 ④ 상키야학파
6. 다음 중 중국의 역경에 대한 서술이다. 가장 타당한 것른?
① 지루가참은 소승경전을 중심으로 번역하였다.
② 한 대의 역경사업은 거의 낙양에서 이루어졌다.
③ 축법호는 안세고가 번역한 〈정법화경〉을 재번역하였다.
④ 주사행은 월지국인으로 〈반야경〉을 번역하였다.
7. 당대의 현장과 더불어 대번역가로, 후진 요흥의 부름을 받아 장안에 들어가 국사의 대접을 받고 소요원과 대찰에서 경론의 번역에 종사하여 역경사에 있어 하나?
8. 명나라 때 사람으로 유교와 불교의 융합을 주장하였으며, 화엄과 선의 융합도 제시하였다. 그의 저서에는 〈혜능가경〉, 〈원각경직해〉, 〈법화경통의〉, 〈조론약주〉, 그리고 유교와 불교의 융합의 입장에서 쓴 〈중용직해〉, 〈노자해〉, 〈장자내편주〉등이 있다.
9. 다음 중 중국선종사의 초조부터 6조까지의 인물로 맞게 배열된 것은?
① 달마 – 승찬 – 혜가 – 도신 – 홍인 - 혜능
② 달마 - 혜가 – 승찬 – 도신 – 홍인 - 혜능
③ 달마 - 혜가 - 도신 – 승찬 - 홍인 - 혜능
④ 달마 - 혜가 - 도신 – 홍인 – 승찬 - 혜능
10. 다음 중 칠설탱화에 대한 설명이다. 내용이 잘못된 것은?
① 칠성탱화는 신중탱화에서 분화되었다.
② 도교의 칠성을 불교의 칠여래로 신앙하고 있다.
③ 칠성신앙은 북극성, 해, 달, 등을 불교의 불보살의 지혜와 복덕의 상으로 나툰 것으로 볼 수 있다.
④ 칠성탱화는 삼성각에 모실 수 없다.
< 사진; 포교사전진대회중 수고하신 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 정 답 ]
1) ②
사홍서원 ; 모든 보살의 4가지 큰 서원.
1)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2)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3)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4)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2, ② 비로자나불은 대승불교에서는 〈화엄경〉에서 시방제불을 전체적으로 포괄하는 법신불로 등장한다.
밀교에서는 아득한 옛날에 부처가 되었다고 하는 5선정불의 중앙에 위치하는 부처로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비로자나불만을 따로 모시기도 한다.
미래에 나타날 부처님. 특히 미래에 나타날 미륵불은 이미 도솔천에서 대기 중에 있으며 56억 7천만 년 뒤에 이 세상에 와서 사람을 구원한다고 한다
3, ③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불교 종파는 천태종과 조계종이다.
천태종은 고려 전기의 대표적인 불교의 일파로 대각국사 의천이 창시한 종파이다.
조계종은 무신 집권기에 보조국사 지눌이 창시하였다.
<공통점> 천태종과 조계종은 모두 당시 갈등이 심했던 교종과 선종을 통합하려 하였다는 것과 당시의 불교계에 대한 정화 운동을 전개하였다는 것이다.
<차이점> 교리상의 차이점으로 천태종의 창시자인 의천은 교관겸수를 주장하였다.
반면, 조계종을 창시한 지눌은 정혜쌍수와 돈오점수를 주장하여 선종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하려 하였다.
천태종은 고려 전기 숭불 정책의 추진으로 문벌 귀족들의 후원을 받았고, 조계종은 무신 정변 이후 무신정권이 천태종의 세력을 누르기 위해 정책적으로 후원하였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4. ④ 간경도감(刊經都監)은 조선 시대 초기에 불경을 한글로 번역 · 출간하기 위해 세워진 국립 기관이다.
1461년부터 1471년까지 총 11년간 존속하였다. 간경도감은 세조(재위 1455~1468) 때 설치되었는데, 세조는 불교를 독실히 믿어 처음부터 사찰 및 승려의 보호에 힘썼으며, 또 간경도감(刊經都監)을 통해 각종 불경을 한글로 번역해 내는 등, 세조의 통치 시기는 조선 시대 불교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간경도감을 통해 한글(훈민정음)로 번역하여 간행한 《법화경(法華經)》·《수능엄경(首楞嚴經)》·《금강경(金剛經)》 · 《원각경(圓覺經)》·《심경(心經)》·《영가집(永嘉集)》 등의 경전은 세조의 어역(御譯)으로 당시 고승(高僧)이었던 신미(信眉) · 수미(守眉) · 홍준(弘濬) 등과 대신(大臣) 윤사로(尹師路) · 황수신(黃守身) · 김수온(金守溫) · 한계희(韓繼禧) · 성임(成任) 등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5. ④ 중관파는 후일 공의 입장을 파악하는 방법의 상위(相違)에 따라 불호(佛護·Buddhapālita: 470-550)의 계통을 이어받은 쁘라상기까(Prasaṅgika)와, 이를 비판한 청변(淸辨·Bhavyaviveka: c. 500–c. 578) 계통의 스바딴뜨리까(Svātantrika)의 두 파로 나뉘었다.[2] 불호는 공은 입장이 없는 입장에 있으며 타(他)를 파석(破析)함으로써만 표출(表出)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청변은 공이란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이라 했다.
쁘라상기까는 필과성공파(必過性空派) · 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 · 구연파(具緣派) 등으로 한역되어 불렸고, 스바딴뜨리까는 자재논증파(自在論證派)[2] ·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 · 의자기파(依自起派) 등으로 한역되어 불렸는데, 이 명칭들은 두 파의 입장 차이를 보여준다.
상키야 학파 - 이 학파의 개조는 카필라(Kapila)이다. 이들은 본질적으로 무신론자이다. 그래서 이들은 푸루샤(Purusa)와 프라크리티(Prakrti)의 두 가지 원리로부터 세계가 창조되는 25가지의 순서를 주장하였다
6. ② 지루가참 - 147년 후한의 뤄양으로 와서 183년(중평 3년)에 이르기까지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무량청정평등각경(無量淸淨平等覺經)·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수릉엄삼매경(首楞嚴三昧經)·아축불국경 등 14부(일설에 따르면 23부)의 경전을 번역하였다. 그가 사용하였던 원전은 거의 대승경전이었으므로, 이런 의미에서 그는 중국에 대승경전을 전한 최초의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축법호(竺法護: 266년 ~ 313년는 서진 시대에 활약한 역경승이다.
월지국(月氏國) 출신으로 지법호(支法護)라고도 불리었으나, 스승인 축고좌(竺高座)의 “축”(竺)을 따서 보통 축법호라고 부른다. 그는 둔황에서 활약하였기 때문에 둔황보살(敦煌菩薩)이라고도 한다. 둔황으로부터 장안 · 뤄양(洛陽)에 걸쳐 유랑하면서 경전의 번역과 포교활동을 하였다.[2] 그의 손으로 번역된 경전은 《반야경》·《법화경》·《유마경》·《무량수경》 등 초기 대승경전에 속하는 것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모두 154부에 달했다고 한다. 구마라습 이전에는 질과 양에 있어서 최대의 역경승이었다. 중국 진대(晉代) 중국에 관음(觀音)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그가 《정법화경(正法華經)》을 번역한 이후의 일이라 한다
최초의 서역구법승인 삼국위(三國魏)의 주사행(朱士行, 203~282)은 〈도행반야경〉을 강독하다가 문구가 간략해 그 의리가 통하지 않아 완본의 범본을 구하기 위해 260년과 282년 2회에 걸쳐 우전(于, 신강성 코탄)에 가서 〈대품반야경〉을 사경해 얻었다.
7. 구마라집 구마라집은 현자로서 인도학 및 베다학에 관하여 백과전서적인 지식을 가졌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산스크리트 불교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한 4대 역경가들 가운데 가장 정평이 나 있는 사람으로서, 불교의 종교사상과 철학사상이 중국에 전파된 것은 대부분 그의 노력과 영향력에 크게 힘입었다.
중국 카슈가르에서 소승불교를 공부하다가 수리아사마라고 하는 대승불교도에 의하여 불교의 중관학파로 개종했다. 인도에 유학하면서 두루 여러 선지식을 참례하여 여러 방면에 대해 잘 알았고, 특히 기억력이 뛰어나 인도 전역에 그의 명성이 자자했다. 그 명성은 중국에까지 퍼졌고, 후진의 요흥은 그를 국사로 봉하고 소요원에 머물게 하며 승조, 승엄 등과 함께 역경에 전념하게 했다. 그리하여 그는 403년(후진5)부터 <중론>, <백론>, <반야경> 등 35부 348권에 달하는 방대한 경전을 번역했다.
8. 감산덕청 감산 덕청(1546 -1623)도 변융, 소암, 운곡 등에게서 배웠으며, 뒤에 여산에 초암을 짓고 오직 염불행에 힘썼다. 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대단한 활동가로 불사를 많이 했다. 저서로 [법화경통의] 7권, [원각경직해] 7권, [조론약주] 6권, [감산대사몽유집] 55권, [감산어록] 20권 등이 있는데 모두 선, 화엄, 염불의 화통에 의한 조화를 이뤘다. 또 [중용직해] [노자해] [장자내편주]도 있다.
9. ② 중국 선종은 보리달마를 초조로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에게 선법이 이어졌다.
10. ④ 독성각·산신각·칠성각이 있으며, 대개 삼성각에 삼신을 같이 모신다. 독성각은 불교에서 말하는 독각을 모신 곳이다. 독각은 석가모니처럼 스승 없이 홀로 깨우친 자를 말한다. 산신각은 단군이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하는 산신을 모신 곳이다. 칠성각은 북두칠성에 축원하는 도교의 신앙을 받아들여 북두칠성을 불교의 여래로 조화하여 모신 곳이다. 따라서 삼성각은 불교가 수용되는 과정에서 토착신앙이나 민간신앙과 융합하여 빚어진 변용이다.
중국에서 당대에 칠성을 맡는 도교의 칠원성군(七元星君)을 7여래로 변용시키고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로 하여금 이들을 주재하도록 하는 구도를 만들었다. 『북두칠성연명경(北斗七星延命經)』에서는 일체중생의 중죄를 소멸하는 것이 북두칠성의 위신력이고 대소 생명이 모두 북두필성의 소관이라 한다. 그래서 이런 경전을 읽고 공양하면 지옥에서도 극락으로 구제되고 살아서는 질병을 없애주고 재산을 보전해주며 자식을 만들어주고 모든 재난을 없애준다고 설한다.
< 사진 : 포교사단전진대회후 광복로 나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