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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10권
18.4. 정진편(精進篇)
〔여기에는 따로 세 가지 연(緣)이 있음〕
18.4.1. 술의연(述意緣)
대체로 인욕을 수행하는 정(情)이 오히려 어둡고 진실을 깨달아 아는 뜻[旨]이 미처 밝지 못하면 그러한 까닭에 게으름을 채찍질하면서 마음으로 하여금 게으르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경에서 말하였다.
“너희 비구들은 꼭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야 한다. 열 가지 힘[十力]과 지혜의 해[日]가 벌써 잠기어 숨어버렸으니, 너희들은 마땅히 무명(無明)에 덮힌 바가 되었다.”
또 말하였다.
“천제(闡提)인 사람은 시체가 종일토록 누워 있는 것과 같으므로 마땅히 도를 이룰 것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석론(釋論)』에서 말하였다.
“속가에 살고 있는 사람이 게으르면 세속의 이익을 잃고 출가(出家)한 사람이 게으르면 법의 보배를 잃는다.”
이렇게 말했으니 그런 까닭에 사나(斯那)의 용맹함을 모든 부처님께서는 칭찬하고 찬양하셨고, 가섭(迦葉)의 정밀하고 지묘함을 여래께서 기술하여 증명하셨다.
옛글에서 말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 늦게 자면서 온 힘을 다하여 몸을 다스려야 비로소 충신(忠臣)이라 하고 효자(孝子)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했으니 그런 까닭에 방일(放逸)함과 게으름은 사람으로서 숭상해서는 안 될 것이요, 정진하면서 애쓰고 수고함은 어느 때나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어찌 그 어리석은 생각으로 방자하게 굴며 방종하는 마음으로 교만을 부려 방탕하게 생활하면서 선근(善根)의 종자로 하여금 다시는 펼쳐지지 않게 하고 도수(道樹)의 가지와 줄기를 더욱더 마르게 해서야 되겠는가?
더구나 목숨이 사왕(死王:閻羅王)에게 속해 있고, 이름이 유부(幽府)에 매어 있음이겠는가?
갑자기 돌아가고 나면 오랜 세월 동안의 자량(資糧)이 단번에 없어질 터인데, 명조(冥曹)에서 고문을 당할 때에 장차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그 때를 당하여 뉘우치고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
그런 까닭에 이제 모든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몸에 남은 힘이 있는 한 미리 앞날에 쓸 자량을 갖추어 놓으라고 권고하노니,
늘 반드시 세 가지 업을 단속하고 살펴서 여섯 때에 어김이 없게 해야 한다.
매양 밤낮으로 아침부터 한낮까지, 한낮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밤까지, 밤부터 새벽까지, 나아가 한 시각ㆍ한 생각ㆍ한 찰나에 이르기까지 세 가지 업을 살피고 단속해야 한다.
얼마나 마음이 선행을 지었고, 얼마나 마음이 악행을 지었는가?
얼마나 마음이 효도를 실천했으며, 얼마나 마음이 거역했는가?
얼마나 마음이 재물과 여색 좋아하는 마음을 싫어하고 여의려고 노력하였고, 얼마나 마음이 재물과 여색 좋아하는 마음에 탐착(貪着)하였는가?
얼마나 마음이 인간과 천상의 선근(善根)이 되는 업을 실천했으며, 얼마나 마음이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들어갈 착하지 못한 업을 지었는가?
얼마나 마음이 명예와 나에 집착하는 마음을 싫어하여 여의려고 노력하였으며, 얼마나 마음이 명예와 나에 집착하는 마음을 탐하고 구했는가?
얼마나 마음이 삼승(三乘)으로 세간을 벗어나려는 마음을 기꺼이 닦았으며, 얼마나 마음이 삼승을 업신여기고 깊히 세간의 마음을 좋아하였는가?
이와 같은 선과 악이 밤낮으로 서로 어기는 것이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늘 모쪼록 단속하고 살펴 방일하거나 삿된 그물에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할 것이며,
항상 세 가지 업을 살펴 서로 번갈아가며 경계하고 힘써 마음과 입을 훈계해야 할 것이다.
마음의 생각을 입으로 말하는 것이니, 그대들은 항상 선만을 말할 것이요 법이 아닌 것을 말하지 말 것이며,
입은 도리어 마음을 말하는 것이므로 그대들은 바른 법(法)만을 생각해야 할 것이요, 법이 아닌 것은 생각하지 말 것이며,
마음은 다시 몸을 말하는 것이므로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하되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이 나의 마음을 스스로 억제하고 나의 입을 스스로 조심하며 나의 몸을 스스로 금지해야 한다.
이와 같이 스스로 책망해야 족히 높은 데로 오를 수 있거늘 어찌 수고로이 다른 이조차도 막아버리면서 전횡하여 원망과 미움을 사느냐?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였다.
“몸으로 선을 실천하고 입으로 선을 실천하며 뜻으로 선을 실천하면 결정코 좋은 세계에 태어날 것이요,
몸으로 악(惡)을 실천하고 입으로 악을 행하며, 뜻으로 악을 실천하면 결정코 악한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또 마치 잘 달리는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빨리 달리므로 노둔한 축생에게 온갖 매와 회초리를 가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만일 스스로 경계하지 않고 반드시 남의 꾸지람을 빌려야 한다면 도리어 부딪치는 괴로움만 더할 것이요, 그 죄는 더욱더 깊어지게 될 것이다.
18.4.2. 해타연(懈惰緣)
『보살본행경(菩薩本行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대체로 게으름이란 온갖 행위의 허물이 된다.
속가에 살면서 게으르면 옷과 밥을 공급받지 못하고 산업도 일으키지 못하며,
출가한 사람이 게으르면 나고 죽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온갖 모든 일들은 모두가 정진으로 말미암아 흥기(興起) 할 수 있다.’
이 때 제석(帝釋)이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가장 훌륭한 도를 구하려 하면
그는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나니
몸 버리기를 더러운 흙처럼 해야
나라는 것이 없음을 깨달아 알 것입니다.
아무리 재산과 보배를 보시한다 하여도
그 일이야 그러 어려운 일이 아니요
용맹스럽게도 이와 같이 한 사람만이
정진(精進)하여 빠르게 부처님이 될 것입니다.”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게으르고 착하지 못한 행을 심으면 일에 손해가 있을 것이요,
만약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이야말로 가장 정밀하고 미묘한 일이니라.
왜냐 하면 미륵보살(彌勒菩薩)은 서른 겁(劫)을 지나야 마땅히 부처가 될 것이니, 내가 정진의 힘과 용맹스런 마음으로써 미륵으로 하여금 내 뒤에 부처가 되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마땅히 정진을 생각하고 게으름을 피우지 말아야 한다.”
또 『비유경(警喩經)』에서 말하였다.
“가섭(迦葉)부처님 때에 어떤 형제 두 사람이 있었는데, 둘 다 사문(沙門)이 되었었다.
형은 계율을 잘 지키고 좌선(坐禪)하면서 한결같이 마음으로 도를 구했으나 보시는 하지 않았고, 동생은 보시하여 복은 닦았으나 계율 깨뜨리기를 좋아하였다.
형은 석가모니를 쫓아 출가하여 아라한의 과위를 증득하였으나 의복이 항상 넉넉하지 못했고 음식도 언제나 배부르지 못했다.
동생은 코끼리로 태어나서 코끼리의 센 힘 때문에 원수와 적을 물리쳤다.
그래서 국왕의 사랑을 받아 금과 은의 귀중한 보물과 영락(瓔珞)으로 장식되었고 그의 몸에 수백 호(戶)의 읍(邑)을 봉작하여 그의 필요에 따라 무엇이든 코끼리에게 공급하게 하였다.
그 때 형 비구는 큰 흉년을 만나 이리저리 걸식하며 다녔으나 이레 동안이나 음식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마지막에야 거친 음식을 조금 얻어 겨우 목숨만은 부지하였다.
그는 이 코끼리가 전생에 자신의 아우였들을 알고 곧 코끼리에게로 가서 코끼리의 귀를 붙잡고 말하였다.
‘나는 옛날에 너와 함께 죄를 지었었다.’
코끼리는 비구의 말에 대하여 생각하다가 곧 전생에 이미 지은 과거의 인연을 알고는 시름하고 걱정하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러자 코끼리를 돌보는 이가 두려워하면서 곧 왕에게로 가서 그 일을 아뢰니, 왕이 코끼리를 돌보는 이에게 물었다.
‘먼저 이 코끼리률 범한 사람이 없었느냐?’
코끼리 돌보는 사람이 대답하였다.
‘달리 다른 사람은 없었고 오직 어떤 사문 한 사람이 코끼리의 곁에 와서 잠깐 머물다가 떠나간 일이 있을 뿐입니다.’
왕은 곧 사람을 보내 그 사문을 찾아오게 한 뒤에 물었다.
‘코끼리 곁에 가서 무슨 말을 하였소?’
사문이 대답하였다.
‘나는 코끼리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함께 죄를 지었었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는 사문이 왕에게 위에서와 같은 일들을 자세하게 갖추어 설명해 주자 왕은 마음 속으로 곧 깨달아 그 사문을 놓아 주었다.”
또 『불설마유팔태비인경(佛說馬有八態譬人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말에게는 좋지 못하고 사악한 여덟 가지 형태가 있다.
어떤 것들이 그 여덟 가지인가?
첫 번째 형태는 굴레와 고삐를 풀 때에 수레를 끌고 달아나려고 하는 것이요,
두 번째 형태는 수레의 멍에를 씌울 때에 날뛰면서 그 사람을 물려고 하는 것이며,
세 번째 형태는 문득 두 앞발을 치켜 들고 수레를 끌고 달아나는 것이요,
네 번째 형태는 문득 수레 굴대의 빗장을 짓밟는 것이며,
다섯 번째 형태는 사람이 서서 멍에를 가지고 몸을 어루만질 때에 수레를 뽑아 던지고 물러가는 것이요,
여섯 번째 형태는 문득 곁길로 가면서 삿되게 달리는 것이며,
일곱 번째 형태는 문득 수레를 끌고 달려가다가 질펀한 진흙탕을 만나면 멈추어 선 채 가지 않는 것이요,
여덟 번째 형태는 구유를 달아놓고 먹이를 먹이려고 할 때에는 뚫어지게 보면서 먹지 않다가 그 주인이 끌고 가서 멍에를 씌우려고 할 때에 갑자기 헐떡거리면서 먹이를 먹으려고 하나 먹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사람에게도 좋지 못하고 사악한 여덟 가지 형태가 있느니라.
어떤 것들이 그 여덟 가지인가?
첫 번째 형태는 부처님의 경전 설하시는 것을 들으면 곧 달아나고 즐겨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니,
마치 말이 굴레와 고삐들 풀면 수레를 끌고 달아나려고 하는 때와 같은 것이요,
두 번째 형태는 경의 뜻을 설명해 주는 것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말의 방향[趣向]조차 모르고 곧 성내면서 뛰어 돌아다니고 즐겨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니,
마치 말에다 수레의 멍에를 씌울 때에 날뛰고 돌아다니면서 그 사람을 물려고 하는 때와 같다.
세 번째 형태는 경전 설하는 것을 들으면 곧 거스르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니,
마치 말이 두 앞발을 치켜 들고 수레를 끌고 달아나려고 하는 때와 같은 것이요,
네 번째 형태는 경전 설하는 소리를 들으면 문득 꾸짖는 것이니,
마치 말이 수레 굴대의 빗장을 짓밟는 때와 같은 것이다.
다섯 번째 형태는 경전 설하는 것을 들으면 곧 일어나 가버리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서서 멍에를 가지고 말의 몸을 어루만질 때에 수레를 뽑아 던지고 물러가는 때와 같은 것이요,
여섯 번째 형태는 경전 설하는 것을 들으면 즐겨 들으려 하지 않고 머리를 낮추어 곁눈질을 하면서 귓속말을 주고 받는 것이니,
마치 말이 곁길로 가면서 삿되게 달리는 때와 같은 것이다.
일곱 번째 형태는 경전 설하는 것을 들으면 곧 끝까지 난처하게 하려 하다가도 그에게 물으면 상응(相應)한 대답을 하지 못하면서 죽기를 작정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니,
마치 말이 질펀한 진흙탕을 만나면 곧 멈추어 선 채 다시금 가지 않는 경우와 같은 것이요,
여덟 번째 형태는 경전 설하는 것을 들으면 즐겨 들으려 하지 않고 도리어 음란하고 방일한 생각을 많이 내면서 듣고 받으려고 하지 않다가 죽어서 악한 세계에 들어갈 때에야 비로소 성급하게 배우고 물으며 도를 행하려고 하나 도를 행할 수 없는 것이니,
마치 말이 구유를 달아 놓고 먹이를 먹이려고 할 때에는 뚫어지게 보면서 먹지 않다가 그 주인이 끌고 가서 멍에를 씌우려고 할 때엔 갑자기 헐떡거리면서 먹으려고 하지만 역시 먹을 수 없는 경우와 같느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말에게 여덟 가지 나쁜 형태가 있고 사람에게도 여덟 가지 나쁜 형태가 있는데, 그것이 이와 같음을 설명하였느니라.’
그러자 비구가 그 경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를 올리고 떠나갔다.”
18.4.3. 책수연(策修緣)
『비유경(警喩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나열기국(羅閱祇國)의 사문(沙門)이 앉은 채로 스스로 맹세하여 말하였다.
‘나는 도를 증득하지 못하면 끝내 잠을 자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길이 여덟 치쯤 되는 송곳을 만들어 가지고 두 넓적다리를 찔렀으므로 그 아픔으로 잠을 자지 않다가 일 년 만에 도를 증득하였다.”
또 『박구라경(薄俱羅經)』에서 말하였다.
“박구라가 말하였다.
‘나는 출가해서부터 지금까지 팔십 년 동안 한 번도 옆구리를 침상에 대고 누웠거나 등을 대고 기댄 적이 없었다.”
또 『유교경(遺敎經)』에서 말하였다.
“너희들 비구가 만일 부지런히 정진하기만 하면 일에 어려움이 없으리라.
그런 까닭에 너희들은 항상 부지런히 정진해야 하나니, 비유하면 마치 작은 물도 항상 흐르면 돌을 뚫는 것과 같으며,
또 수행하는 사람이 마음에 지주자주 게으름을 피우거나 중단하는 것을 비유하면 마치 나무에 구멍을 뚫어 비벼서 불을 일으키고자 하되 미처 뜨거워지기도 전에 중단하면 아무리 불을 얻고자 해도 불을 얻기 어려운 것과 같나니,
이것을 정진이라고 말한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몸으로 정진하는 것은 작은 것이요 마음으로 정진하는 것은 큰 것이며,
밖의 정진은 작은 것이라도 안의 정진은 큰 것이다.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의업(意業)의 힘은 크기 때문에 마치 선인(仙人)이 성을 낼 때에는 큰 나라를 갈아서 없어지게 하는 것과 같느니라.
또 몸과 입으로 오역죄(五逆罪)를 지으면 그 과보가 커서 일 겁 동안 아비지옥(阿鼻地獄)에 있게 되거니와 의업의 힘을 받으면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에 태어나서 팔만 대겁(劫) 동안 수명을 누리며 또한 시방의 부처님 국토에 살고 있으면서 수명이 한량없을 것이니, 이런 까닭에 몸과 입으로 정진하는 것은 작은 것이 되고 뜻의 정진은 큰 것이 된다.
이와 같이 모든 경전에서 정진을 크게 찬탄하였으니, 한결같은 마음으로 바르게 생각하면 빠르게 도과(道果)를 증득할 것이다. 그러니 꼭 많이 들을 필요는 없다.’
또 『비바사론(毘婆沙論)』에서 말하였다.
“마치 두 사람이 함께 한 방향으로 가면서 한 사람은 빠른 말을 타고 다른 한 사람은 느린 말을 탔을 때 비록 느런 말을 탔다 하더라도 먼저 출발하였기 때문에 먼저 목적지에 이르는 것과 같다.
해탈을 믿는 사람이 부지런히 정진을 실천하면 먼저 열반에 이를 것이니, 곧 주리(周利:周利槃特迦) 등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또 『육도경(六度經)』에서 말하였다.
“또 네 가지 정진(精進)이 있어서 지혜를 원만하게 갖추게 한다.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많이 듣는 것에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이요,
둘째는 총지(總持)에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이며,
셋째는 즐겁게 설법하는 일에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이요,
넷째는 바른 실천에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이다.”
또 『육도집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며 듣고 외워야 하고 게으름을 피워 번뇌 [陰蓋]에 덮이지 말아야 하느니라. 내가 기억해 보니 과거 수없이 많은 겁(劫) 이전 어느 때에 부처님 한 분이 계셨으니, 그 명호는 일체도왕(一切度王)이었다.
그 때 대중들 중에 두 비구가 있었는데, 한 비구의 이름은 정진변(精進辯)이었고 다른 한 비구의 이름은 덕락지(德樂止)였다.
그들은 함께 법을 들었는데,
정진변은 경전을 듣고 기뻐하였으므로 바로 그 때 그 자리에서 아유월치(阿惟越致:不退轉)를 증득하여 신통력을 구족(具足)하였고,
덕락지는 잠 속에 빠져서 깨어나지 못하였으므로 혼자만 얻은 것이 없었다.
그 때 정진변이 덕락지에게 말하였다.
〈부지런히 정진해야 마땅하거늘 어째서 잠만 잔단 말이오?〉
그 때 덕락지는 그의 가르침을 듣고 곧 경행(經行)하였으나 다시 멈추어 선 채 졸음이 와서 스스로 안정을 취할 수 없게 되자
우물 곁으로 나아가 앉아서 선정을 사유(思惟)하려 하였지만 또 졸을이 왔다.
그 때 정진변은 좋은 방편으로 가서 그를 제도하기 위하여 벌의 왕으로 변화하여 그의 눈으로 날아가 쏠 것처럼 하자,
그 때 덕락지는 놀라 깨어나서 앉아 있었지만 이 별의 왕을 두려워한 것도 한 순간이요 다시 잠이 들였다.
그 때 꿀벌이 겨드랑이 아래로 날아 들어가서 그의 가슴과 배를 쏘있다.
그러자 덕락지는 놀라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감히 다시는 잠을 자지 않았다.
그 때 샘물 안에는 여러 가지 빛깔의 꽃이 있었는데 갖가지 꽃이 선신하고 깨끗하였다.
그 때 꿀벌의 왕은 꽃 위로 날아가 앉아서 감로(甘露)의 맛을 보았다.
그 때 덕락지는 단정하게 앉아서 그것을 바라보면서 다시 날아올까 두려워서 감히 다시는 졸지 못했고 꿀벌의 왕은 단맛을 보느라 꽃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꿀벌의 왕이 잠깐 동안 졸다가 진흙탕 속에 떨어져 온 몸이 진흙탕에서 목욕을 하게 되었다. 그런 뒤에 다시 그 꽃 위로 날아가 앉자
때마침 덕락지는 곧 꿀벌을 향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 감로(甘露)를 먹고 있는 이여
그 몸이 안온(安穩)함을 얻었구나.
마땅히 다시금 그것을 가지고 돌아가서
아내나 아들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어쩌다가 진흙탕 속에 떨어져서
스스로 그 몸을 더럽힌다는 말이냐?
이와 같이 잔꾀를 부리다가
저 감로의 맛만 망가지게 하였구나.
또 이와 같은꽃에서는
마땅히 오래도록 머물러 있지 않아야 하나니
해가 지고 꽃이 도로 오무라들게 되면
이무리 나오려 해도 나올 수 없으리.
마땅히 다음날 다시 햇볕이 나야
그 때에야 다시 나을 수 있을 터이니
긴긴 밤 내내 어두운 곳에서 피로해 하며
이와 같이 극심하게 수고롭고 괴로워하리.
그 때 꿀벌의 왕은 덕락지를 향하여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부처님이란 비유하면 감로와 같으므로
법을 들으면 싫어함이 없나니
마땅히 게으름을 피워서
온갖 중생에게 이익이 없는 일 해서는 안 되네.
다섯 갈래 세계의 나고 죽는 바다는
비유하면 마치 더러운 진흙탕에 떨어진 것 같나니
애욕에 얽히고 쌓이게 되면
지혜가 없어져서 매우 햇갈리게 되랴.
해가 돋아 온갖 꽃이 피는 것은
비유하면 마치 부처님의 색신(色身)과 같고
해가 져서 꽃이 도로 오므라드는 것은
세존께서 반열반(般涅槃)에 드는 것과 같네.
여래께서 계산 세상 만나게 되었으니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고 받아들여서
수(睡)ㆍ음(陰)ㆍ개(蓋)를 제거해야 하며
부처님께서 항상 계시리라고 말하지 않아야 하랴.
심오한 법의 요긴한 지혜는
물질[色]로써 인연을 삼지 않아야 하나니
그 집착이 있는 이를 나타낸 것은
마땅히 훌륭한 방편인 줄 알아야 하네.
훌륭한 방편으로 제도하는 것은
이익이 있는 것이요 황당한 거론이 아니니
이러한 변화를 나타내 보이는 것은
그 또한 일체 중생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라네.
그 때 덕락지는 그의 말을 듣고 곧 생겨나지 않는 법인[不起法忍:無生去忍]을 증득하고 다라니(陀羅尼)를 체득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정진변(精進辯)은 바로 지금의 내 몸이었고, 덕락지(德樂止)는 바로 지금의 미륵(彌勒)이었느니라.
나는 그 때 미륵과 함께 경법(經法)을 들었으나 미륵은 잠을 잤기 때문에 그 혼자만은 얻은 것이 없었다.
나는 훌륭한 방편을 행하여 구제하여 건져주지 않았으므로 미륵은 지금까지 나고 죽는 가운데 있으면서 아직껏 해탈하지 못했느니라.’
또 『법구유경(法句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외국(外國)에 어떤 청산사(淸信士)가 있었다. 그는 삼보를 공양하면서 한 번도 싫증낸 적이 없었다. 그 때 어떤 사문과 친구가 되어 신통을 체득하였고 나고 죽음이 이미 끝나 있었다.
때마침 청신사는 너무도 피곤한 나머지 병이 들어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아무리 약을 써서 치료했으나 전혀 차도가 없었다.
그 때 그의 부인은 곁에 있으면서 몹시 슬퍼하고 애통해하고 괴로워하면셔 부인에게 말하였다.
‘함께 부부가 되었다가 혼자만 이런 고통을 받으십니까?
그대가 만약 무상(無常)하게라도 되면 나는 어디에 의지하며, 또한 아들 딸도 외로워질 터인데 그 누구들 믿어야만 하겠습니까?’
남편은 아내가 슬퍼하고 그리워한다는 말을 듣고 그 때 곧 죽어 그 혼신(魂神)이 다시 아내의 콧속으로 들어가 한 마리의 벌레로 변하였다.
그러나 아내는 매우 슬퍼하고 통곡하면서 스스로 억제할 줄을 몰랐다.
그 때 도인(道人)이 가서 그 부인을 만나 그녀의 남편이 죽은 뒤에 콧속에 사는 벌레가 된 것을 알고 잘 달래어 근심을 털어주려 하였다.
부인은 도인이 온 것을 보고 더욱더 슬퍼하고 애통해 하면서 말하였다.
‘어떻게 하오리까? 화상(和上)이시여, 남편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 때 부인이 흘린 콧물과 함께 콧속의 벌레가 땅에 떨어졌다. 부인은 부끄러 워하면서 발로 밟으려고 하자
도인이 말하였다.
‘그만두시오. 제발 죽이지 마십시오. 이 벌레는 당신의 남편인데 이렇게 벌레로 변화한 것입니다.’
부인이 도인에게 아뢰었다.
‘저의 남편은 경전을 받들고 계율을 잘 지켰으며, 정진한 것은 그 누구도 마치기 어려웠는데 무슨 인연으로 죽어서 이 벌레가 되었습니까?’
도인이 대답하였다.
‘당신이 은혜와 사랑으로 슬퍼하고 애통해 하면서 슬프게 울부짖었으므로 은애(恩愛)하는 마음이 일어나 그 때문에 목숨을 마친 뒤에 곧 벌레의 세계에 떨어진 것입니다.’
도인은 벌레를 위하여 경전을 설하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마땅히 천상에 태어나서 여러 부처님의 앞에 있어야 합니다.
다만 은혜와 사랑에 안주하다 이 벌레의 세계에 떨어졌으니 그 또한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벌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열리고 뜻으로 이해하게 되어 다시 스스로 자책하면서 즉시 목숨을 마치고 곧 천상에 태어났다.
그런 까닭에 자신을 반성하고 남을 위할 것이며 게으름을 피워서 스스로 다가오는 과보를 손상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