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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홀로 죽으면 나의 일이 시작된다”...특별한 일을 하는 어느 청소부의 에세이
‘2019년 사망 원인 통계, 하루 평균 자살자 37.8명,자살률 수치 OECD 1위
작가 “금은보화에 둘러싸인 채 뒤늦게 발견된 고독사는 본 적이 없다”...도와달라 눈 맞추는 이 살펴야
서울 여의도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에 설치된 SOS 생명의 전화.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언젠가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굳이 기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지난 9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사망 원인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작년 하루 평균 자살자가 37.8명이었고, 인구 10만 명을 기준으로 한 자살률은 28.9명이었다. 이 자살률 수치가 OECD 1위였다. 또한 자살은 국내 사망 원인 중 5위를 차지했다. 통계대로라면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서 스스로 죽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이번에 읽은 ‘죽은 자의 집 청소’ 저자는 자살자들과 관련이 깊다. 이 책을 쓴 김완은 ‘특수청소’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다. 특수청소는 일반청소와 대비되는 용어다. 일반청소업은 ‘세법’에 적용받는 업종이지만 특수청소는 아직 해당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직종별 직업사전’에도 ‘유품정리사’라는 이름으로 최근에야 등록이 되었다. 예전에 없던 새로 생긴 업종이다.
'죽은자의 집청소'.김영사 펴냄
특수청소는 범죄현장 뒷정리 혹은 쓰레기나 오물로 가득한 집을 청소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홀로 사망한 후 오래도록 방치된 사람들의 집에서 그 흔적을 치우고 지워주는 일을 하기도 한다. 혹시 집 청소가 특수하면 얼마나 특수할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조금만 읽어본다면 “아, 특수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느낄 것이다.
죽은 사람의 몸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출한 것처럼 잠을 자듯 온전하게 유지되지 않는다. (중략) 엄청난 양의 피와 액체가 몸에서 쏟아져 나온다. (중략) 온갖 오물을 배설해 놓는다. (97쪽)
저자 김완은 전업 작가를 꿈꾸며 취재차 방문한 일본에서 ‘죽은 이가 남긴 것과 그 자리를 수습하는 일’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김완은 현재 특수청소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 일에서 얻은 성찰을 에세이집 ‘죽은 자의 집 청소’로 내었다.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저자가 묘사한 현장이 눈에 선하게 보이고 냄새가 확 다가오는 듯하다. 만약 사망자가 빨리 발견되었다면 그리고 그 현장이 그리 참담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가족들이 뒷수습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아무도 모르게 사망하는 사람이 많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홀로 살다 병으로 죽거나.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육체가 부패하며 풍기는 냄새가 동네에 만연해야 주변 사람들이 그 죽음을 눈치채게 된다. 그런데 그 광경의 참담함이 그 냄새의 날카로움이 한때 사랑했을 가족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현장을 청소업자에 맡기게 되는 것이다.
저자 김완은 그런 현장에서 온갖 것들을 치우며 한때는 생명이 있었을 죽은 이를 떠올리려 한다. 저자는 전기와 가스가 끊긴 것에서 죽은 이의 곤궁함을, 먹다 만 약봉지에서 죽은 이의 체념을, 굴러다니는 메모에서 죽은 이의 회한을 떠올린다.
어느 특별한 청소부 이야기. 사진=김영사
세밀하게 묘사된 현장 이야기를 읽다 보면 ‘개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사회적 건강’도 고민하게 된다. 우편함에 수북이 꽂힌 독촉장과 미납 고지서, 끊긴 지 오래된 수도와 전기 등. 작가는 “금은보화에 둘러싸인 채 뒤늦게 발견된 고독사는 본 적이 없다”며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고 한다.
가족, 친지는 발길을 끊은 지 오래여도 채권자들만큼은 채무자의 건강을 악착같이 챙긴다는 대목에서는 그야말로 ‘웃픈’ 감정이 든다.
나 같은 일을 하면서 유족이 시신 수습을 거부하는 상황을 보는 일은 별스럽지 않다. 진작 인연이 끊긴 가족과 생면부지의 먼 친척이 느닷없는 부음을 듣고는 “네, 제가 장례를 치르고 집을 정리하는 데 드는 모든 비용을 책임지겠습니다” 하고 선뜻 나서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혹시 빚을 떠안지 않을까’ 하며 빛의 속도로 재산 포기 각서를 쓴다. (43쪽)
사람이 죽어 나간 곳만 특수청소의 영역은 아니다. 이 책에는 글로 읽어도 얼굴 찌푸리게 되는 특수청소 현장이 그려진다. 거대한 쓰레기 산으로 꽉 찬 집, 오줌이 든 페트병 수천 개로 가득한 집, 고양이 사체 여럿이 널브러진 집….
‘죽은 자의 집 청소’는 같은 시대, 같은 사회를 함께 산다고 믿기 어려운 상황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알려준다. 이들이라고 처음부터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터. 그렇게 생각하면, 당장은 평범하게 사는 우리 모두와도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사회적 고립을 만든 것이 무엇인지, 그런 상황을 예방할 수는 없었는지 구조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외치는 듯하다.
김완 작가. 사진=김영사 블로그
‘죽은 자의 집 청소’에는 특수청소를 하는 저자의 일상도 그려진다. 종종 방송에서도 언급되는 일이라 연락하거나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기자, 드라마 작가, 박사, 행정기관 실무자 등등. 그만큼 ‘특수청소부’라는 독특한 직업에 대해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점을 담고 있다.
저자가 수없이 받았을 질문과 관련한 에피소드들은 ‘직업 정신’ ‘일의 철학’도 함께 생각하게 한다. 또한 정신적으로 고된 일을 마친 뒤 작가가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하는 노력, 투철한 직업 정신 때문에 생긴 해프닝 등에선 작가의 따스한 휴머니즘도 느껴진다.
나쁜 시키.
(중략)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살아 있구나. 새삼스레 메시지에 찍힌 글자를 하나하나 읽어본다. 비로소 한숨을 크게 내쉰다. 다시 숨을 들이마시자 가슴 한가운데가 몹시 아리다. 살아 있으니 메시지를 보내고, 또 살아 있으니 이렇게 메시지를 받는다. (184쪽)
어느 여인이 자살 시도하려는 것을 알아챈 저자가 경찰과 합세하여 구조한 이야기다. 자살시도자에게서 욕설이 담긴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지만 저자는 안도했다는.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 우리 사회에 대한 고찰, 직업을 대하는 태도까지. 살면서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것들이 담긴 책이었다.
주말인 오늘 아침 어느 지방에서 벌어진 청년들의 집단 자살 뉴스가 들려왔다.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그곳에 모여서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며 도와달라고 눈을 맞추려 했을 수도 있다.
주위를 향한 관심과 진심 어린 말 한마디가 어쩌면 어떤 이의 마지막 선택을 포기하게 하는 첫걸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dh92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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