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 차마고도 트레킹을 다녀오다
여행이란 본시 집 떠나면 개고생이고, 집에 있으면 끊임없이 일상탈출을 시도하는 인간 심리의 딜레마인가.
그래도 각 개인의 성격에 따라 확 저질르고 그 저지른 것에 대한 통쾌함으로 위안 삼기도 한다.
작년에 처음 갔을 때에는 너무도 설레어 풍경 하나라도 놓칠세라 버스에서 잠깐 조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는 첨단문명이 발달한 화려하고 편리한 도시보다는 좀 불편해도 오지가 더 좋다.
오지는 덜 개발되어 자연풍광이 살아 있고 그 속에는 애초에 있던 초목과 원주민의 삶의 더께가 차곡차곡 쌓여
그 문화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불편하기는 하여도 할머니, 어머니가 살아왔을 그 생의 과정을 여행을 통해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연민과 동질성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차마고도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茶馬古道, 차와 말이 다녔던 오래된 옛길.
그 옛날 마방들이 저 깎아지른 좁은 길을 통해 말과 차를 티벳으로 운반하던 교역로를 따라 걷는다.
아래는 호도협이 보이고 강 건너 맞은편은 옥룡설산(5596m)의 위엄있는 자태를 바로보며 하루하고 반나절
을 꼬박 걸었다.
걷다가 저 아래 강물을 내려다 볼라치면 현기증이 일고 아득한 천 길 낭떠러지가 보인다.
위험천만한 길이지만 그래도 조심조심 스릴을 만끽하며 걷는다.
여행자중 어떤 이는 차마고도 여행을 위해 50일간 금주를 하고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방법을 익혀왔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아 무탈하게 완주하였다.
저 산위의 구름과 신비함을 느껴보기 위해 시간과 돈과 체력을 아끼지 않고 힘들여 걷는 길...
저 곳에 가보지 않은 이는 그 기분을 알지 못하리.
옥룡설산 건너편에 있는 하바설산을 돌아서 내려오는 모습이다.
2월 중순인데 완연한 봄기운이 돌았다. 큰 나무는 별로 없고 오죽(검은 대나무)숲이 많았다.
우리가 걸은 길은 2800m 고지인데 힘은 들었지만 다들 이국적인 자연환경에 잘 적응하고 소화하였다.
하바설산의 눈이 녹아 내린 폭포구간을 지나고 있다.
운남성 바위가 온통 석회암이었지만 설산의 빙하가 녹아 내린 저 물은 무색무취로 부드러운 맛이었다.
저 폭포를 지나기 전, 갑자기 주먹만한 돌덩이가 빠른 시속으로 우수수 튕겨져 내려와 한 순간 긴장하였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산위의 흑염소가 지나가면서 돌맹이가 떨어진 것이었다.
꼬박 한나절을 걸으니 배도 출출하고 쉬어 갈 산장이 나왔다.
운남성의 음식은 대부분 야채 중심이다. 감자볶음, 유채나물, 양배추볶음, 야크 고기를 말려서 저장해 놓은 것을 얕게 썬것과 돼지고기 볶은 것, 달걀과 토마토 볶음, 가지 볶음, 국물있는 탕 등 7~8가지 정도이다.
음식에 강한 향신료는 빼어 우리 입에 잘 맞았다.
그럼에도 김치와 볶은 고추장을 싸 온 분이 있어서 고추장에 비벼먹는 사람이 여럿 보였다.
뒷산의 배경은 옥룡설산이다.
차마고도 트레킹은 하염없이 옥룡설산을 바라보며 걷는다. 나시족이 신성시하는 산이라고.
아직은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산.
저녁 때가 가까워서 숙소인 하프산장에 이르렀다. 오른쪽에 하프산장이 보인다.
건물은 외관상 허름해 보이지만 실내에 들어가면 큰 창에서 보이는 웅장한 옥룡설산이 병풍처럼 쳐있어 전망이 끝내준다. 또한 2개의 침대가 있는 넓은 방은 공간의 여유가 느껴지는 맘에 든 방이었다.
높은 산악지역인데도 주민이 꽤 살고 있었다.
1년 전 정월대보름에 갔을 때는 "우루루쾅꽝~따다당" 산이 흔들릴 정도의 굉음에 혹시 전쟁이라도 났나 잔뜩 긴장했는데 악귀를 쫓는 주민들의 정월대보름 폭죽놀이였던 것. 중국은 역시나 놀이도 스케일이 컸다.
집주변 텃밭에는 유채꽃과 여린 목이 올라 온 보리가 파릇파릇하였다.
건조하고 메마른 산에 푸른 식물이 마을에 생기를 돌게하였다.
세계 3대 트레킹 코스의 하나인 호도협.
이 협곡 중간에 커다란 바위가 놓여있는데 그 곳을 호랑이가 건넜다해서 호도협이라 불린다.
호도협에서 저 산위 우리가 걸어왔던 길을 올려다보니 아득히 높았다. 저 위에서 이 강물을 내려다봤을 때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현깃증이 일었었다.
호도협 난간에는 소원을 비는 기념물을 메달아 놓아 더 이상 메달 여지가 없어 보였다. 흡사 남산의 자물쇠가 떠올랐다.
정치체제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상술은 어디든지 통하는가보다.
하프산장에서 하루를 묵었다. 옥상에 오르면 옥룡설산이 바로 앞에 우뚝서 있어 그 위엄에 압도 된다.
타국의 먼 오지에서 옥룡설산을 병품 삼고 밤하늘의 별을 빛 삼아 하프산장 옥상에서 여자들만의 짧았던 수다방이 그립다. 게서 못다한 이야기를 언제 어느 골에서 또 풀수 있을까.
이전에 몰랐던 사람이라도 여행을 통해서 만나면 서로 격이 없이 언니가 되고 동생이 되고 정다운 이웃이 되는
것은 여행이 주는 어떤 특별함 때문이리라.
하프산장 숙소에서 바라 본 바깥 경치
나물반찬으로 자주 나오는 유채꽃이 어느 집이나 텃밭에 있다.
이런 곳은 비료를 주지 않으므로 청정한 먹거리다. 리장에서 어느 분이 거리 노점에서 당근을 샀는데
크기가 손바닥 만하고 가늘었지만 아주 달아서 기억에 남는다.
리장역.
석림에서 일정을 마치고 밤새 2층 침대열차를 타고 9시간에 걸쳐 도착한 시간은 새벽.
새벽 공기는 어느 지역을 불문하고 맑고 상쾌하구나.
해발2400m에 위치한 나시족이 사는 마을이자 오래된 마을...여강.
몇 년전 중국 쓰찬성 대지진 때 복구작업을 하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 의해 알려진 곳이다.
대지진 때 콘크리트 건물은 무너졌지만 2층 또는 3층의 오래된 목조건물은 멀쩡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백사마을(바이샤), 리장고성, 수허구전(속하고진)을 돌아봤다.
리장의 밤 풍경은 사람을 들뜨게 한다.
오래된 목조 건물에 화려한 색감의 황금조명이 아름답다.
소수민족의 마을 한 가운데는 반드시 마을 광장이 있다. 언어와 문자를 가진 같은 민족끼리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자 그들의 전통문화를 이어오는 소통의 한 방식일 것이다.
마을에는 마을을 관통하는 수로가 있다.
옛날에는 상수도와 하수도 역할을 했다고 한다. 수로 양쪽에는 집이 쭉 배치되어 있고 집앞에는 화단이 조성되어 있다. 가지가 죽죽 늘어뜨린 버드나무가 인상적이다. 중간중간 다리도 놓여있다.
길은 직사각형의 한아름 크기의 돌이 마을 전체에 깔려있는데 하도 닳아서 대리석처럼 반들반들 미끄러웠다.
마을길은 지금도 마차가 다닐 정도로 넓다.
많은 건물들이 이미 상업화되어 대로변 건물은 유흥주점과 음식점, 상점, 라이브카페가 즐비하고 골목안쪽은
숙식을 겸하는 시설로 사용하고 있다. 호기심에서 어떤 집을 들여다봤더니 규모가 얼마나 큰지 마당에 연못과
정자가 있었다.
가옥구조는 "ㅁ"자 형태로 마당을 모두 돌로 덮고 화분을 이용하여 나무를 심었다.
이 사진은 2층의 목조건물인데 1층은 상점이고 2층은 살림집이다.
처마에 설치한 조명이 화려하다.
현지인은 거의 없고 상업자본이 들어와 관광객을 유혹하는 관광지로 변했다.
대낮의 리장거리 모습.
상점과 까페, 안쪽에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차마고도 박물관 입구에서...대부분 사진과 그 옛날 마방이 사용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형문자...이것이 동파문자다.
나시족은 지금도 그들의 문자인 동파문자를 일부 사용하고 있다.
상점 간판이나 이정표를 보면 한자 간자체와 동파문자가 함께 표기되어 있다.
리장 먹자골목의 꼬치구이 가게.
영등포의 조선족이 많이 사는 대림동, 신길동을 보면 양꼬치구이 집이 많이 있어 낯설지 않다.
한 꼬치의 양이 상당해 보인다. 워낙 식사 때마다 잘 먹어서 고기만 봐도 고개가 돌아간다.
마을 중간중간에 3개의 노출 물웅덩이 삼안정(三眼井)이 있다.
동네 공동우물로 사용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맨 왼쪽이 가장 깨끗해 보이고 그 다음 중간, 맨 오른쪽은 걸레 등을 빠는 가장 오염된 물로 보인다.
나시족이 마을 광장에 모여 춤추는 모습.
어떤 마을을 가봐도 마을 중앙에 광장이 있다. 저녁 때가 되면 마을 주민들이 광장에 모여 민속음악에 맞춰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동작이 단순하고 반복되어 쉽게 따라할 수 있다. 여행객도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이렇게 함께 모여 춤을 춤으로써 공동체적 유대를 강화할 수 있으리라.
나시족 모자가 둥그런 빵모자에 앞에 챙이 있는데 당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모자와 같다.
국민당에 쫓겨 대장정 길에 오른 모주석이 나시족의 도움을 받아 나시족 모자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백사마을을 구경하던 중 현지 가이드가 지나가는 나시족 전통 복장을 입은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옛날 시골
할머니와 같은 소박한 모습이었다. 할머니의 허락을 받고 우리 일행은 우르르 할머니와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다 찍고 나자 할머니가 돈을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순간 모두들 당황했다. 세상에나~~
관광객들이 이 할머니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호도협에서 샹그릴라로 가던 중 잠시 휴식하면서 바라 본 설산.
휴식하면서 화장실에 들렀는데 직사각형의 구멍뚫린 시멘트가 일렬로 나란히 있고 옆과 뒤의 칸막이가 없다.
화장실에 들어서면 일을 보는 사람들의 엉덩이를 훤히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서로 민망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 곳 문화가 그런 걸 어쩌랴. 적응하는 수 밖에.
신기하게도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통풍이 잘 돼서 그런가.
또 하나,
샹그릴라는 해발 3500m의 고지대다. 일정상 샹그릴라에서 1박을 하였다.
일행들 모두 차마고도는 무사히 걸었지만 샹그릴라에서는 고산증상이 나타났다.
저녁식사 때가 되자 여성 한 분이 식사를 못하였다.
사전에 약을 복용했는데도 밤새 머리가 아프고 구토를 하였다고 한다. 밤 12시와 새벽1시에 각각 환자가 또
발생하여 손가락을 따서 피를 뽑았다. 날이 밝자 아침식사마저 하지 못한 여성은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급기야 낮은 지대로 내려가야만 하였다.
샹그릴라를 내려와서 좀 어떠냐는 안부에 밝게 웃으며 "이 곳이 아니면 언제 (고산병) 경험해 보겠어요."
샹그릴라의 대사원 입구.
샹그릴라는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소설속 이상향인데 중국 정부가 중티엔을 샹그릴라도 개명하였다고 한다. 샹그릴라는 대부분이 라마교를 믿는 장족이 산다. 라마교는 활불(살아있는 부처)를 믿는다.
활불은 거주하는 집 지붕에 깃발 색깔로 표시되어 있고 주민들의 영적 상담을 받는다고 한다.
마을 어귀 백탑에 걸려있는 오방색 깃발... 타르초
깃발 하나하나에 경전이 쓰여있다. 흡사 우리나라의 옛 성황당 같은 느낌이랄까.
사원에는 거대한 불상과 함께 망명한 달라이 라마 얼굴이 아닌 다른 라마승 사진이 모셔져 있다.
동양 최대의 마니차..티벳 불교에서 사용되는 원통형의 불교 도구.
마니차를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나도 마니차를 돌리는데 힘을 모았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건 인간은 모두 기복신앙을 추구하며 신에게 의탁하기 마련인가보다.
드 넓은 초원에서 말타기.
사실상 말 타고 달려보지는 못하고 걷기만 하였다. 말은 크기가 작은 조랑말처럼 보였다.
여행객을 위해 어디선가 마부가 한 차로 왔는데 그 중에는 어린 꼬마 마부도 섞여 있다.
유치원생 정도의 어린꼬마였지만 말을 다룰 줄 알았다.
이 곳 상그릴라는 집들이 크고 넓은 초원이 특징이다.
게다고 모든 가축을 방사하여 키우고 있었다. 동물권이 확실히 보장되는 지역인 셈이다.
닭, 야크, 돼지, 소, 말이 넓은 초원에서 자유롭게 먹이를 구하고 있다. 넓은 반경의 울타리가 있지만 사실상 방목에 가까웠다.
샹그릴라에 도착한 저녁에는 야크 샤브샤브를 먹었는데 고기가 쫄깃쫄깃하고 비계가 없으며 단백하였다.
송찬린스..티벳의 작은 포탈라궁이라 불린다.
맨 오른쪽 건물에 거대한 부처상이 있다. 우리나라의 절에 모셔진 부처님 크기의 열 배는 넘어 보였다.
사원내부는 으스스한 냉기가 스몄지만 붉은 가사를 걸친 스님이 청소도 하고 방문객을 맞고 또 어떤 스님은
희미한 불빛에서 독경하고 있었다. 사원내부는 침침하고 여기저기 작은 불상이 놓여 있는데 불상앞에는
관광객이 던졌을 법한 지폐와 동전이 쌓여 있고, 사원의 화재를 대비한 큰 물통에도 지폐가 빠져있었다.
반가웠던 건, 사원 안내 말이 한글로도 표기되어 있었다. 한국 불교계가 힘을 쓴 것인가...
샹그릴라의 2층 목조 상가 건물인데 문에 섬세한 조각무늬가 새겨져 있다.
곤명에서 가까운 석림이다.
1만년 전 바다가 융기되어 석회암이 풍화작용으로 아름답고 기묘한 형상을 이룬 거대한 돌 숲.
이족이 많이 산다.
이 곳 석림에도 마을 광장이 있다.
마침 젊은 남녀가 민속음악에 맞춰 민속춤 공연중이었는데 보게 되어 행운이었다.
음악이 낯설지 않고 좋았다. 게다가 청춘남녀의 춤이 마음을 들뜨게 하였다.
중국 운남성 석림에서 매화를 보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알리는 꽃, 매화...꽃망울이 눈부시게 빛나 흡사 나무에 진주가 메달린 것처럼
보였다. 몇 년 전 나는 봄마중으로 남도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선암사의 홍매의 고혹한 자태를 보기 위해서.
그 매화를 이곳 멀리까지 와서 보니 이웃 사람을 만난 듯 반가왔다.
석림의 넓은 광장
1년 만에 다시 본 현지인과 아기.
아기가 많이 자랐다. 엄마는 변함이 없었다.
시내구경을 하다가 사탕수수를 샀다.
대나무처럼 보이는 것이 사탕수수다. 껍질을 벗기고 토막내 준다.
7박8일의 긴 여행으로 여러 곳을 여유있게 돌아봤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옥룡설산과 아무리 걸어도 좋은 차마고도,
가축들의 이상향인 샹그릴라,
아름다운 마을이 상업화로 물든 리장고성,
자연이 빚은 예술작품 석림,
모두들 안전하고 무탈하게 여행을 마쳐 줘서 감사하다.
"백문이 불여일견"
첫댓글 고생 많았어요... 사진 좋고, 맑은 공기가 여기까지 퍼지는듯...
근데...차마고도(茶馬古道)인듯 ㅎㅎ
ㅋㅋ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보니 사진도 많이 빠졌네요
리장 고성의 밤엔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는지,
낮과 밤이 전혀 다른 모습 이었어요
다시 다녀오셨다니 대단합니다 자연이사님
다들 즐겁게 보네신것같아 저도 덩달아 좋네요.~^^ 아쉬운게 카메라 충전기를 빠트려서 젤 아쉬웠습니다.
다시 보니 감흥이 또다시 ㅎㅎㅎㅎ 부럽기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