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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부처님의 뜻인가요!. 저는 비보가 난무할 때 정동에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모후 기념일에.
미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무의식 중에라도 스님의 영혼에 빛을 주시라고 기도한 것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제행무상 (諸行無常)
명진 스님에게 영원한 빛을 주소서,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우선 이산(이이화) 님께서 "연구공간파랗게날" 에 공유한 글을 올리고 추가 할 것이 있을 때
다른 매체에서의 글 또는 영상을 공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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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구공간파랗게날" 에 공유한 글, 사진 등 ( ~ 260825. 21:16--- 종료 )
2. 언론 매체의 동영상, 글 등 ( 주로 명진 TV 자료 ~ 260825 23:55 종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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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공간파랗게날. 260822. 15:47. 이산(이이화)님이 공유
[속보] 명진스님 제주서 프리다이빙하다 숨져…향년 75세
- https://v.daum.net/v/20260822150907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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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명진스님 제주서 프리다이빙하다 숨져…향년 75세
2026. 8. 22. 15:09
명진스님. 경향신문 자료사진
봉은사 주지를 지낸 명진스님이 22일 제주 바다에서 프리다이빙을 하다 사고를 당해 입적했다. 향년 75세.
22일 제주 서귀포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30분쯤 서귀포시 하예동 하예포구 인근 해상에 사람이 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행인이 바다에 떠 있던 명진스님을 발견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119구급대와 해경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다. 명진스님은 당시 심정지 상태였다. 현장에서 심폐소생술(CPR)을 받은 뒤 오전 10시28분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명진스님의 지인들은 스님이 이날 바다에서 프리다이빙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전했다. 경찰과 해경은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명진스님은 평소 수영을 즐겼다. 기자가 2001년 명진스님을 인터뷰했을 때도 인터뷰 말미에 취미를 묻자 “낙산사 앞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바다 수영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명진스님은 2021년 강원 강릉 사천해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아침마다 바다에서 수영한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한 번 바다에 들어가면 8㎞가량을 헤엄치고 3~4시간씩 물에서 지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서핑도 새로 배우고 있다고 했다.
195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명진스님은 1969년 해인사 백련암으로 출가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뒤 1974년 법주사에서 사미계를 받았다. 1994년 조계종 개혁에 참여했고 중앙종회 의원과 부의장,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 등을 지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 봉은사 주지를 맡았다. 취임 후 사찰 재정을 공개하고 1000일 기도를 진행하는 등 봉은사 개혁을 추진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정부와 종단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정치·사회 현안에도 목소리를 냈다. 2020년 이명박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을 당했다며 국가와 조계종 종단을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조계종은 종단 운영에 대한 비판 등을 이유로 2017년 명진스님을 제적했다. 명진스님은 2023년 제적 처분이 무효라며 소송을 냈고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조계종과 명진스님은 올해 2월 서로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기로 하면서 오랜 갈등을 마무리했다.
명진스님이 머물러온 제주 남선사 등을 중심으로 장례 절차가 논의되고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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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님이 연구공간파랗게 날에 260822. 16:23 공유
명진 스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비보(悲報)입니다.
황망하여 마음이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한 시대, 같은 길 위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지내온
오랜 벗이자
이 나라의 큰 스승이십니다.
어찌 이리 급히 가시나요.
언제 가시든 해탈이요, 열반이며
극락왕생이시겠으나
이승의 연이 이리 생각보다 길지 않으니
가슴이 아프고 아픕니다.
아직 강원도 산골에 있노라고
소식 나눈지 그리 얼마 되지 않은 것만 같은데
언제 또 제주도에 가서 지내시다
이리 묵언(默言)의 몸이 되시어
우리 곁을 떠나시나요.
촛불행동 고문도
스스럼없이 맡아주시고
정세가 어지러우면
이런 저런 말씀도 깊고 깊게 해주시던
그 모습이 여전히 아리도록 가슴에 남습니다.
어디 그뿐이셨습니까.
내란수괴 윤석열을 몰아내는 거리광장에 나오셔서
그자를 향해
“네 이노옴~!”, 하고 큼지막한 죽비를 들어
불길 활활 타오르듯
웅장하게 호통치시던 그 날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같은 종교인이기도 하여
나눈 이야기들도
고맙고
절에서 쫓겨나기 전에
여기 저기 은덕을 베푸신 것도
참으로 고맙고
쫓겨난 뒤
그 한 몸 뉘일 곳 없는
낭인이 되셨을 때도
품넓은 미소를 지으셨던 것도
뇌리에 생생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고
영결식과 노제를 지낼 때 독경하시던
그 목소리가 어찌나 맑고 감동적이던지
내내 기억하노라고 하자
그러셨냐고, 그리 기억해주셔서
고맙노라고 하시던 모습 또한
여전히 가슴에 머물러 있는 명진 스님이십니다.
편히 가시옵소서.
홀로 외롭게 먼 길이 될지
그럴 사이없이
강만 건나면 바로인지 모르나
우리의 슬프나 감사하고 따뜻한
마지막 인사 받으시고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으시옵소서.
이럴 줄 미리 알 리 없으나
이 생애에
더 자주 뵙고 더 자주 우의를 나눌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참으로 그립고 그립습니다, 명진 스님!
_김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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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님이 연구공간파랗게날에 260822. 16:56 공유
‘모른다는 것을 알 뿐’이라는 명진 스님의 화두를 찾아서
명진 스님이 열반에 드셨다는 소식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윤석열의 12•3 쿠데타가 터진 2024년 세모에 전화를 걸어와 잠깐 통화한 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해서 제 무덤을 팠으니 고마운 일 아닙니까? 그렇지 않았으면 5년을 꼬박 견뎌야 했을 텐데 중간에 끝나서 다행입니다. 축하금이나 영치금이라도 넣어 주고 싶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고맙긴 합니다. 사실은 윤석열이 역행보살이었군요. 덕분에 대한민국 국민이 지금 민주주의 공부를 매일 하고 있으니까요.”
그보다 앞서 지난 2022년 제가 체질에 맞지 않은 유튜브 방송을 통해 명진 스님을 소개했던 기록이 남아 있기에 여기 올려, 명진 스님을 그리워하는 모든 분들과 애도의 뜻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정지창의 <사람과 사람 사이> (2022년 11월 23일. 수요일. 19시〜20시)
안녕하십니까?
저는 ‘예술마당 솔’에서 매달 넷째 주 수요일에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정지창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우리들의 삶이 사람들과 만나 어울리고 부대끼다 헤어지는 일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세상 인연이 짜여지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제가 만나본 사람들 가운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우리시대의 소중한 분들의 살아온 내력을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조계종 종단에서 쫓겨나 지하 불교방송에서 왕성한 구라빨로 소외된 중생들을 위해 법문을 펼치고 계시는 명진 스님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명진 스님은 지난 2006년 서울 강남의 봉은사 주지로 사찰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천일천배를 실천하여 불교개혁에 앞장선 우리시대의 존경받는 스님입니다. 4년 임기중 3년을 절 밖에 나가지 않고 매일 천 번씩 절을 한 거죠. 그런데 스님은 이 서약을 깨고 스님은 천일기도 중에 단 하루 절집 밖에 나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하여 불교 의식을 집전했는데, 이것은 독실한 불교 신자인 권양숙 여사의 간청에 의한 것이지만, 중생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지요. 스님이 천일기도를 마친 다음 바로 용산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한 것도 스님다운 보살행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과 유착한 자승 총무원장을 비판한 탓에 결국 봉은사 주지 자리에서 쫓겨나고 2017년에는 50년 동안 몸담았던 조계종으로부터 승적을 박탈당했습니다. 개그맨 박명수의 말대로 프리랜서 스님이 된 것이죠. 현재는 대관령에 칩거하면서 <명진 TV>를 통해 법문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 단지불회
명진 스님의 법문 가운데 핵심 화두인 ‘단지불회(但知不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단지불회는 ‘모른다는 것을 알뿐’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會는 만난다는 뜻이 아니라 안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봉은사 주지 시절 송담 스님이 써주신 글씨를 늘 옆에 걸어두고 마음을 다스렸다는 이 화두에 대해서 스님은 『힘 좀 빼고 삽시다』(다산책방, 2016)라는 책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음에서 힘을 빼라!
마음에서 힘을 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모른다. 그 알 수 없는 물음 속으로 끝없이 몰입하다 보면 자연히 힘이 빠진다. ‘안다’라는 생각이 모두 비워지면 내가 정말 ’모른다’는 생각만 오롯이 남게 된다.
모든 앎이 끊어지고 완전히 힘이 빠진 자리, 그 완벽한 비어짐의 자리가 진정 자유이다.”
⃤ 출가
명진 스님은 속명이 한기중입니다.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잃고, 반항과 방황으로 청소년 시절을 보냈지요. 대학입시 공부를 하려고 무주의 관음사라는 절에 들어갔다가 젊은 스님을 만나 공부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받지요. 영어 수학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가고, 졸업해서 취직하고 결혼해서 살다가 죽겠지요, 라고 대답했더니, 결국 죽기 위해 아등바등 공부하는 거네, 그럴 바엔 먼저 나 자신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스님의 말씀에 크게 깨닫고 출가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기왕이면 큰스님 밑에서 배우겠다고 해인사의 성철 스님을 찾아가 1년 동안 행자 생활을 합니다. 그러다가 계를 받기 직전 뛰쳐나옵니다. 앞으로 일본어를 배워 불경 공부를 제대로 해야 제대로 된 중이 된다고 하는 성철 스님의 말에 의구심을 품은 거지요. 하루속히 내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공부를 하고 싶은데 일본어를 배워 불경 공부를 하는 것은 내가 가려고 하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 겁니다. 아마 성철 스님은 제대로 된 학승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인데, 명진 스님은 학승보다는 선승이 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사도 하지 않고 떠났는데,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안 성철 스님은 왜 그냥 보냈느냐고 상좌 스님을 야단쳤다고 합니다.
해인사를 나온 명진 스님은 이 절 저 절 떠돌아다니던 중 영장이 나와 군대에 갑니다. 군대서 못살게 구는 고참을 두드려 패서 영창에 갇혔는데, 월남 파견 부대에 지원하면 용서해준다는 말을 듣고 월남전에 통신병으로 참전합니다. 그리고 제대한 다음 유일한 혈육인 동생이 해군 훈련중에 죽었지요. 저는 1980년대에 대구에서 명진 스님한테 직접 이 얘기를 듣고 나중에 “지극한 슬픔은 진실을 깨닫게 하나니,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라는 제목의 글로 쓴 적이 있습니다.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는 고 허수경 시인의 시집 제목이기도 합니다. 그럼 <국제신문>, 2010, 4. 20. 칼럼의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정말 슬퍼봤소?” 1974년 2월 22일 통영 앞바다에서 해군 예인선(YTL)이 뒤집히는 사고로 동생을 잃은 형은 이렇게 물었다.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막 전역한 스물다섯의 청년인 그는 이미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읜 터라 동생은 유일한 혈육이었다. 스무 살짜리 동생은 해군에 입대한 다음, 미처 수영을 배우기도 전에 이순신 장군을 모신 통영의 충렬사를 참배하고 돌아오다 한산도 앞바다에서 수중고혼이 되고 만 것이었다.
당시의 사고는 전투가 아닌 해난사고로 159명의 해군과 해경이 사망한, 세계해군사에 기록될 만큼 엄청난 참사였다. 유족들은 진해에 마련된 빈소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시신이 화장 처리되어 한 줌의 재가 되어 나올 때까지 몇날 며칠을 울부짖으며 기다려야 했다. 영현부대의 화장용 트레일러를 총동원했는데도 워낙 희생자가 많다보니 화장을 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슬픔으로 먹는 것, 자는 것을 잊어버렸던 유족들도 결국 살아 있는 인간인지라, 시간이 지나면서 허기를 못 이겨 밥을 찾고, 지친 끝에 잠에 곯아떨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밥이 설었네, 반찬이 시원찮네,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자기 육친은 화력이 좋은 몇 번 트레일러로 화장을 해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였다. 때로는 순서를 다투느라 유족들끼리 멱살잡이를 하며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아귀아귀 밥을 퍼먹다가 숟가락을 쥔 채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새우잠을 자다가도 울컥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에 복받쳐 이불을 흥건히 적시기도 하였다.
이런 슬픔과 고통과 분노와 욕망과 본능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그는 문득 자신이 바로 생사의 번뇌에 갇혀 발버둥치는 어리석은 중생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동생의 유골을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한 다음, 속리산 법주사를 찾아 머리를 깎고 출가한다. 그의 법명은 명진이다.
⃤ 안동 시내에서 소머리를 메고 다닌 스님
지난달 소개한 주재환 화백과 통화할 일이 있었습니다. 주 화백은 다음 달에 명진 스님을 소개한다니까, 그거 아주 잘 됐다면서, 명진 스님 얘기를 할 때 안동 시내에서 소머리를 사서 메고 다닌 일을 꼭 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자기는 그 대목을 읽고 아, 명진이야말로 참으로 우리시대의 진정한 스님이라고 느꼈다는 겁니다.
봉정사에 있던 도반 종지 스님이 간염과 영양실조로 병색이 심각한 걸 본 명진 스님은 잘 먹어야 병이 낫는다는 말을 듣고 안동 시내 정육점에서 소머리를 사서 둘러메고 시내를 다니다 택시를 타고 절로 돌아와 솥에 넣고 삶았답니다. 그런데 웬 중놈이 핏물이 배어 나오는 소머리를 메고 시내를 활보한다고 택시 기사가 소문을 퍼뜨려 시내 포교당의 스님들과 신도들이 항의하러 몰려왔답니다. 병든 스님을 살리려고 그런 거니 양해해달라고 사정했지만, 포교당 주지가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절에서 소머리를 삶느냐, 이놈아!”하고 반말로 욕지거리를 퍼부었답니다. 좋은 말로는 안되겠다 싶어 명진 스님은 “그럼 니 머리를 삶아 먹냐? (이 XX야)” 여기서 “이 XX야”라는 말은 책에는 없는데 제가 갖다 붙인 말입니다. 문맥으로 볼 때 분명히 이란 욕이 나았을 것 같은데 점잖은 스님이 욕을 하면 뭐라고 할까봐 편집자가 뺀 거 같거든요. 하여튼 이렇게 거칠게 나오자 스님들도 기가 질려 물러나더랍니다. 결국 종지 스님은 소머리 삶은 물을 먹고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중이 소머리 삶은 물을 먹어도 되냐고 묻는 이에게 명진 스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소머리를 삶아 먹는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이란 말입니까? 이 세상에 사람 목숨보다 귀한 게 있을까요? 불교니 예법이니 하는 틀에 얽매여 정작 중요한 것을 못 본다면 종교가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 서산 장터의 도인 할머니
제가 명진 스님을 안 지 얼마 안 된 1980년대 중반에 대구 시내 달성공원 앞 여관(해인사 스님들이 대구 나오면 묵는 여관이었지요)에서 들은 얘긴데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명진 스님이 출가한 지 한 5년쯤 된 무렵 서산 부석사에 있는 수경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시장에 들러 수박 한 덩어리를 사 들고 버스터미널로 가는데, 웬 할머니가 수박을 든 손을 치더랍니다, 수박이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났지요. 뒤를 돌아보니 웬 할머니가 “정신 차리고 다녀! 중이 어디 정신을 놓고 다녀?”하고 야단을 칩니다. “보살님은 어디 계십니까?” “제 눈앞에 두고 어디 있느냐고 묻네.” 스님은 그 할머니를 따라 막걸리집으로 들어가서 그 할머니가 따라주는 막걸리를 마시며 지난 얘기를 들었답니다.
그 할머니는 스물셋에 남편을 잃고 유복자로 나은 아들이 군대에 갔다가 지뢰를 밟아 죽었답니다. 자식의 유골함을 끌어안고 몸부림치던 할머니는 미친 사람처럼 한두 해를 지내다가 어느 여름날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에서 물거품이 일었다 꺼졌다 하는 것을 우두커니 지켜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물방울이 물로 돌아가고 물이 다시 물방울이 되는구나. 큰 물방울도 있고 작은 물방울도 있고, 오래 남아 있는 물방울도 있고 금방 사라지는 물방울도 있구나.’ 할머니는 물과 물방울이 둘이 아닌 것처럼 생과 사가 둘이 아님을 깨달은 거지요. 금방 사라지는 물방울과 좀 더 있다 사라지는 물방울도 있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길고 짧은 것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 것이지요. 자식의 죽음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골똘하게 집중하여 생각하다 보니 어느 순간 생사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할머니는 나중에 수덕사에 가서 한글 금강경을 읽어보니 너무 쉽고 재미있고, 어쩌면 내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해 놓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출가하여 선방에서 수행한 선승만 도를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속세의 평범한 장삼이사들도 이 할머니처럼 간절하고 절박하게 생사의 화두를 붙잡고 씨름하다 보면 도를 깨우치는 것이라고 명진 스님을 말합니다.
⃤ 다비식에서 부른 유행가
이것도 대구 시절 스님한테 직접 들은 얘기인데요, 명진 스님이 잠시 모시던 선승 춘성 스님이 1977년 열반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국의 스님들이 서울 수유리에 있는 화계사로 모여들었답니다. 다비식을 하는데 천여 명이 일제히 “지장보살, 지장보살”하고 염불을 외우기 시작했지요. 다비식이나 칠월 백중에 절집에서 지장보살을 부르는 것은 돌아가신 분의 영가를 지옥에서 꺼내어 극락으로 보내달라는 염원의 표현입니다. 지장보살은 중생을 모두 구제하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한 부처님이니까요. 그때 춘성 스님을 오랫동안 모셨던 대선 스님이 명진 스님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어이 명진, 이춘선이가 말이여, 지옥이나 극락에 가실 스님인가? 자기가 알아서 제 갈 길을 가지, 그거 못 갈까 봐 앉아서 지장보살 염불을 해? 수좌가 말이여, 평생 화두 들다가 죽었는데 극락에 가라고 지장보살을 부르면 안 되지. 그거 때려치우게 명진 수좌가 척하니 나서서 분위기를 바꿔봐.”
그러자 명진 스님은 노스님들이 죽 앉아 있는 다비장 가운데로 나아가 이렇게 외쳤답니다.“거 춘성 스님께서 극락 지옥 그거 못 찾아갈까 봐 지장보살을 염불합니까? 그런 거 집어치우고 지금부터 전국 본사 수좌 대항 노래자랑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러고서 스님은 법주사 대표로 <나그네 설음>을 불러제꼈답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이렇게 해서 엄숙한 다비식장은 순식간에 전국 승려 대항 노래자랑의 시끌벅쩍한 놀이판으로 바뀌어 버렸답니다. 평소 격식을 싫어하고 세속의 예절에 초연했던 춘성 스님에게는 엄숙한 다비식보다는 흥겨운 노래자랑이 어울린다고 생각한 젊은 스님들이 판을 완전히 뒤집어엎은 것이지요. 사실 요즘 조계종단이나 정치판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 당시의 패기 넘치던 젊은 수좌들이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 <하숙생> 노래 감상
명진 스님은 노래를 썩 잘합니다. 유행가를 좋아하지요. 중학생 때 최희준의 <하숙생>을 즐겨 불렀는데, 그 가사가 바로 부처님 말씀과 같다는 걸 후에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잠시 <하숙생>을 들어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라’는 가사는 ‘집착하지 말라’는 법문과 같지 않습니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 삶은 어디서부터 왔는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삶은 한 조각 뜬구름 일어나는 것이며, 죽음은 한 조각 뜬구름 스러지는 것이네. 뜬구름이란 본래 실체가 없는 것 나도 죽고 오고 감도 그와 같다네. 오직 한 물건만은 홀로 뚜렷하여 생사를 따르지 않고 담연(湛然)하다네” 담연하다는 것은 맑다는 뜻입니다. 만물이 나고 죽는다는 이치만이 뚜렷하고 분명한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것입니다.
⃤ 마무리
명진 스님은 현재 대관령에 은거하면서 <명진 TV>를 통해 마음의 힘을 빼자는 법문을 펼치고 계십니다. 스님은 봉은사 주지 시절, 리영희 선생으로부터 40여년 동안 쓰시던 만년필을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절집에서는 스승이 제자에게 의발(衣鉢)을 물려주는 전통이 있는데요, 가사와 바리떼를 물려준다는 것은 법통을 물려준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리영희 선생은 『전환시대의 논리』를 쓸 때 사용한 만년필을 명진 스님에게 물려줌으로써 불의한 권력에 맞서 오직 진실만을 전하라는 뜻을 전한 것이지요.
스님은 세속의 나이로 70을 넘겼습니다만 매일 동해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겨울이면 스노보드를 타며 단순 소박하게 청년처럼 살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 염무웅 선생님을 비롯한 몇 분과 함께 속초에서 스님을 만나 회포를 풀었는데, 올겨울에는 대관령의 설경을 보러 오라고 하십니다. 기회가 되면 뜻맞는 분들과 함께 스님을 찾아뵙고 요즘처럼 답답한 세상을 헤쳐나갈 보약으로 스님 특유의 불교 구라를 생방송으로 듣고 싶습니다.
_정지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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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님이 연구공간파랗게날에 260822.17:00 공유
https://youtu.be/NyBzAYcNO7I?si=lR1HsCXxPYeKYt4O
명진 스님의 사자후 “윤석열, 네 이X 당장 물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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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님이 연구공간파랗게날에 260822. 17:08 사진 공유
김송기온 님이 연구공간파랗게날에 18:01. 22:25. 사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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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님이 연구공간파랗게날에 260822. 21:50 공유
명진스님과 자승스님
자승스님과 한때는 호형호제 사이로 두 분의 관계는 한국불교 현대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하면서도 복잡한 서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2009년 자승스님이 총무원장에 취임하고, 봉은사 주지셨던 명진스님이 MB 정부의 압력설 및 종단 권력의 세속화를 폭로하면서 두 스님의 관계는 결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함께 종단 안팎의 길을 모색하던 가까운 관계에서, 한쪽은 종단권력의 최정점에 서고 명진스님은 그 권력의 비위와 독주를 가장 매섭게 비판하는 야당이자 천적이 되었습니다.
자승스님 체제의 종단에서 명진스님은 제적이라는 중징계를 받으시면서 수행자로서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종단 정치를 쥐락펴락했던 자승스님의 세속적 권력욕과, 불의에 타협 없이 야인의 길을 걸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던 명진스님의 기개는 비단 불교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커다란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자승스님 입적을 계기로 충격을 받으신 명진스님께서는 평화의길 이사장, 명진TV 등 모든 사회단체활동을 내려놓으시고, 강원도 평창의 토굴이나 송담 큰스님이 계신 인제의 깊은 산중 용화선원 등으로 수행차 떠나셨습니다.
과거의 오랜 인연과 깊은 애증, 그리고 타협할 수 없었던 노선의 차이까지 모두 품은 채 이제 두 분 모두 현세의 인연을 뒤로하고 사바세계를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현재 종단의 모습은 자승스님 세력들이 종권을 그대로 쥐고 흔들며 종단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이런 종단을 향해 장군죽비를 내리치시던 명진스님께서 가시는 걸음이 결코 편치 않으실 것입니다.
두 분의 파란만장했던 인연과 갈등의 짐을 모두 내려놓으시고 명진스님께서는 편안히 영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김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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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님이 연구공간파랗게날에 260822. 22:28 공유
1925년 을축대홍수 때 한강은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 강가 나뭇가지를 잡고 매달린 사람 등으로 아비규환의 참상을 이루었습니다. 당시 봉은사 주지였던 청호 스님은 뱃사공들을 찾아가 사람 구하지 않고 뭐하느냐고 호통을 쳤지만, 사공들은 자기 목숨이 먼저라며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청호 스님이 돈을 주겠다고 한 뒤에야 사공들은 배를 띄웠습니다. 이 덕에 목숨을 구한 사람이 708명, 그들과 ‘조선인 명사’들은 후에 청호 스님의 공적을 기리는 작은 문집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지금 봉은사에 보관되어 있는 <불괴비첩(不壞碑帖 ; 무너지지 않을 비문첩)>입니다.
세월이 흐른 뒤 코엑스 앞 금싸라기 땅 위의 사찰로만 인식되던 봉은사를 다시금 ‘중생구제’의 도량으로 일으켜 세운 분이 명진 스님입니다. 저는 그렇게 기억합니다. 명진스님은 용산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 쌍용차·한진중 해고자와 그 가족들을 ‘물에 떠내려 가는 사람’으로 보시고 그들을 구하려 온힘을 다하셨습니다. 그 뒤로도 고통 받는 중생 곁에 언제나 자비의 마음으로 서셨습니다. 봉은사 주지를 그만 두신 이후 여러 사찰을 맡으셨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봉은사와 명진이라는 이름은 함께 붙어 있을 겁니다. 명진 스님을 추모하는 수많은 SNS 글은 이 시대의 <불괴비첩>입니다. 스님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_전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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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님이 연구공간파랗게날에 260822. 22:30 공유
명진스님!
찌렁 찌렁한 울림으로
혼탁한 검찰 파시스트 정권에 죽비를 내려치던 명진스님의 갑진스런 비보에
종일 허탈하다.
속세에 엄격한 경계를 두지 않으시고
소탈하게 민생의 무게를 나누어 지시려는
자비심과 정의로움이
광장을 격리시려는 세력에게는 못마땅하고 불온시 여겼겠지만
정의가 목마른 중생에게는
다정하고 따뜻한 기둥이었다.
감사했습니다.
이제 짐 내려놓으시고
부디 극락왕생하소서!
_추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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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님이 연구공간파랗게날에 260822. 22:34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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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님이 연구공간파랗게날에 260823. 05:47 공유
이렇게 입적하시다니
부처님 뜻인가요?
2015년 7월 30일,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가장 잔인한 학살지의 하나였던
빈호아사 마을 집단무덤에서
무릎 꿇고 눈물 흘리던 모습,
그 마을 초등학교를 찾아
멀뚱하던 아이에게
해맑은 웃음을 지어시던 모습.
제가 눈을 감을 때까지
스님! 저는
도저히 잊을 수 없습니다.
_송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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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님이 연구공간파랗게날에 260823. 05:49 공유
최근 통화만 했는데 급작스레 부고라니...
10여년 전 지금은 고인이 된 자승 전 총무원장 시절에 조계종단 자정운동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자승 스님으로부터 핍박 받던 명진스님과도 가깝게 지낸 인연.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에 의한 민간인 불법 사찰 대상 30여명 명단에 같이 올라갔던 인연도 있어 서로 통하는 바도 많았고... 총무원으로 인해 고생하던 모습과 함께, 본인의 '스님은 사춘기'를 조금은 부끄럽다는 듯이 건네주던 모습이 늘 기억에 있다.
비록 예상치 못한 소식이지만, 나 역시 나의 내일을 모르면서 감히 안타깝다, 마음 아프다 식의 뻔한 말은 안하련다. 누구나 그렇듯이 오고 감 없이 오고 가는 것. '단지불회(但知不會)'는 달마의 불식(不識)과 다르지 않으니 입추 지난 밤 바람이 시원할 뿐,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다.
_우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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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님이 연구공간파랗게날에 260823. 08:48 공유
<명진 스님 영결식 다비식>
오늘 제주도에서 스님을 모시고 서울 봉은사로 운구합니다. 봉은사에서 8/23(일)~8/25(화)일 기간 '종단장과 시민사회장'으로 명진스님 장례식이 결정되었습니다. 영결식과 다비식도 봉은사에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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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 관련 일화는 수도 없이 많지만, 스님의 어떤 뜻을 짐작할 수 있어서 평론가 정지창 선생이 쓰신 글 중에서 명진 스님 관련 일화를 하나 소개합니다. 저는 몸을 맘대로 움직일 수 없어 영결식도 다비식도 참석하지 못합니다. 슬픈 마음을 정지창 선생의 글로 대신합니다. 스님 보고 싶습니다.
“명진 스님은 노스님들이 죽 앉아 있는 다비장 가운데로 나아가 이렇게 외쳤답니다. ‘거 춘성 스님께서 극락 지옥 그거 못 찾아갈까봐 지장보살을 염불합니까? 그런 거 집어치우고 지금부터 전국 본사 수좌 대항 노래자랑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러고서 스님은 법주사 대표로 <나그네 설음>을 불러제꼈답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이렇게 해서 엄숙한 다비식장은 순식간에 전국 승려 대항 노래자랑의 시끌벅쩍한 놀이판으로 바뀌어 버렸답니다.”
_김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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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한 님이 연구공간파랗게날에 260823. 09:19 공유
명진 스님의 입적을 애도합니다
한베평화재단 창립이사이자 오랜 평화의 동반자였던 명진 스님께서 오늘 입적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깊은 슬픔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베트남전 참전군인이기도 했던 명진 스님은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과 민간인학살의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깊이 성찰했으며, 피해자들에게 먼저 다가가 사죄하는 용기를 보여주셨습니다.
2015년, 베트남의 피해생존자들이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스님은 두 분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죄의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가해의 역사를 마주하는 일이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순간이었습니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기꺼이 한베평화재단 창립이사로 함께해,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의 존엄을 회복하며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평화의 길을 내는 일에 한결같이 마음을 보태주셨습니다.
스님은 우리에게 과거의 잘못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사과와 참회가 어떻게 평화를 향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 용기와 가르침을 한베평화재단은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스님과 함께 걸어온 길을 잊지 않겠습니다.
스님께서 내어주신 평화의 마음을 이어가겠습니다.
평화의 길을 함께 걸어주신 명진 스님,
부디 평안히 쉬십시오.
한베평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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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님이 연구공간파랗게날에 260823. 11:00 공유
명진 스님의 입적을 애도하며
각종 매체와 개인 SNS를 통해 명진 스님의 입적을 애도하는 글과 사연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부당한 현실 앞에서 슬픔을 외면하지 않으셨고, 그 슬픔의 곁에서 함께 위로하며 때로는 함께 맞서고 행동하는 실천적 가르침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삶과 뜻은 스님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오는 11월 예정되어 있던 강좌를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기에, 이렇게 갑작스럽게 스님을 떠나보내게 되어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스님께서 걸어오신 길과 남겨주신 가르침을 기억하겠습니다.
명진 스님의 입적을 깊이 애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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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구 님이 연구공간파랗게날에 260823. 12:06공유
[전국시국회의 논평]
명진스님의 입적을 깊이 애도합니다.
명진스님께서 오늘 제주 바다에서 입적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깊은 슬픔과 애도를 표합니다.
명진스님은 평생 수행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불교계의 개혁을 위해 앞장섰고, 권력과 기득권의 부당함에 맞서 거침없이 목소리를 냈습니다.
봉은사 주지 시절에는 사찰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행도량으로서의 본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종단과 권력의 부당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가권력의 불법적인 사찰을 받았고, 종단으로부터 제적이라는 징계까지 받았지만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말보다 삶으로 답했습니다.
약한 이들의 곁에 서고, 부당한 권력에 맞서며,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옳다고 믿는 길을 걸었습니다.
명진스님은 떠나셨지만 그가 남긴 질문과 가르침은 우리 곁에 남을 것입니다.
명진스님이 평생 지켜온 정의와 양심의 정신을 기억하겠습니다. 권력 앞에 침묵하지 않고, 약자의 편에 서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했던 스님의 삶을 깊이 새기겠습니다.
명진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유가족과 스님의 뜻을 함께해 온 모든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삼가 명진스님의 입적을 깊이 애도합니다.
2026년 8월 22일
국민주권사회대개혁 전국시국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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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훈 님이 연구공간파랗게날에 260823. 13:31 공유
[부고] 수좌 명진 종교시민사회장 안내
삼가 아뢰옵니다.
명진스님께서 불기2570(2026)년 8월 22일(음력 7월 10일) 세수 75세, 법랍 52세로 사바세계의 연을 다하시어 입적하셨기에 삼가 알립니다.
◦ 법명 : 명진스님
◦ 은사 : 탄성스님
◦ 입적일시 : 2026년 8월 22일 (음력 7월 10일) 오전 10시30분
◦ 세수 : 75세
◦ 법랍 : 52세
◦ 빈소 : 강남 봉은사 선불당
◦ 영결식 : 2026년 8월 25일 오전 10시
◦ 다비식 : 대한불교조계종 제 5교구본사 법주사
◦ 문도대표 상좌 : 선용 010 4207 2875
봉은사 연락처 : 02-3218-4800
법주사 연락처 : 043-543-3615
기타문의 : 황찬익 010 5280 8812
시민사회단체 연락처 : 양기환 010 5307 3595
* 13시 이후 분향소가 준비되면 현장 조문이 가능하오니 취재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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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이이화) 님이 연구공간파랗게날에 260823. 21:52 공유
명진스님의 프리다이빙 설명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0~10m를 양성부력이라고 하여 슈트와 폐 속 공기때문에 위로 뜨려는 힘이 강하고,
10m~15m 지점을 중성부력이라고 하여 수압으로 인하여 슈트와 폐가 압축되어 뜨지도 가라앉지도 않은 중성부력이라고 하여 무중력상태가 된다고 하며,
15m 이상 깊이 내려가면 부력이 음수가 되어 발차기를 하지 않아도 아래로 빨려들어가게 되어
프리폴(Free Fall)구간이라고 하여 마치 고공
낙하할 때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한다.
이럴 때 두려움이 있다고 하며
스님께서 20m를 넘기면서 프리다이빙이 도를 닦는거와 같다고 설명하며, 수행자가 조심조심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프리다이빙도 완전히 몸에 힘을 빼고 마음을 비워야 즐길 수 있는 그야말로 도닦는 스포츠라고 강조 하셨다.
스님은 힘을 빼고 삽시다 라고 했는데 정작 자신은 아직 힘이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프리다이빙을 통해 알았다고 솔직하게 말씀 하셨다.
물 속 깊이 깊이 내려가면 흙탕물로 앞도 안보이고 뒤도 안보이는 상황에서 두려움이 있다고 하시며 수행자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마음의 자유를 느낄 때 겸허질 것이라고 하셨다.
프리다이빙이 호화 스포츠를 즐기는 종목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 하시며 40m 이상 들어가는 프리다이빙 전문 강사들은 욕망이 없고 생각도 없는 무심도인 같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노년에 프리다이빙을 하게 되어 행복하다고 하시며 생체리듬과 신진대사 등,
여러 신체적 기능이 젊은 사람들과 큰 차이가 있지만 꾸준하게 노력하면 두려움도 극복하고 새로운 정신세계도 지닐 것이라고 하셨지만 신체적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백중 사리 밀물이 몰려오는 너울성 파도에 돌아 올 수 없는 용궁으로 가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명진스님을 추모하며 프리다이빙을 좋아하는 분들께 응원을 보낸다.
프리다이빙 상식선에서 꼭 알아야 할 것 댓글로 알려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_행운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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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이이화) 님이 연구공간파랗게날에 260824. 06:45 공유
언제 잠들었을까?
명진스님 입적 소식에
가슴 한 켠이 서늘하고 내내 섭섭한 채로
무씨를 심고 손님을 맞이하고 종이를 만졌다.
몸을 고달프게 굴지 않았어도 왠지 피곤하여 일찍 누웠었다.
깨어나니 오전 02:30분,
팽나무 씨앗을 품은채 어느 쓸쓸한 해안에서 죽음을 맞이한
개똥지빠귀처럼 나도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내 두꺼운 업의
껍질이 깨어지며 움이 틀까?
스님은 어디로 가셨을까?
심연의 바닷속에서 숨을 정지한 채 그대로 깨어나지 않고
열반에 드셨을까? 아차 올라가야지 하는 무중력의 가중속에서
순간 죽음의 공포를 느끼셨을까? 스님의 마지막 한 소식이 궁금하다.
아마도 순간의 일념 구 백 생을 던지고 곧 열반락에 드셨으리라 믿는다.
사람들은 바닷물 위에 뜬 스님의 시신을 들고
스님의 생전을 회고하며 아쉬워하며 애도하고 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아쉬운 마음을 갖는 것은
불합리한 세상, 어거지 종단, 그 속에서 피어낸 스님의 행적이
맑고 곧고 호탕하며 따듯했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한 세상 좋은 남자의 몸 받아 나와 인생 최고 경지에 도전한 사나이,
그만하면 잘 태어나 잘 살다 가셨다고 칭송할만 하다.
창문을 열고 내어다 보니 새벽 어둠이 짙다.
별도 없고 달도 없는데 풀벌레 소리 선명하게 들려온다.
안 보인다고 없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듯이,
지금 분명히 들린다고 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듯이,
생명이란 존재란, 그렇게 돌고 돌고 돌아도 있는 것이고
밤을 건너, 강을 건너, 인연을 건너, 눈물과 외로움을 건너
끝없는 나그네 길을 걷고 걷고 걷는 것이다.
팽나무가 스스로 죽음 같은 겨울의 정지와 봄마다 찾아오는
새생명의 활기를 깨닫게 되듯이 인생을 살고 살고 살다보면
누구나 존재의 실상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편안해 지는 경지에 도달했을때
비로소 생사가 자유롭고 순간 순간이 새롭지 않겠는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명진스님,
참 대장부다운 길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오시고 다시 만날 것을 믿기에 여여하렵니다.
멋진 한 생, 칭송하오며 열반 축하드립니다.
후학 영담 삼가 분향 _((()))_
_김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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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이이화) 님이 연구공간파랗게날에 260825. 19:58 공유
2026.8.25. 속리산 법주사.
(사진_최헌국 등) ------------------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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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한 님이 연구공간파랗게날에 260825. 21:16 공유
"광야를 가는 코뿔소 같던 그대여.잘 가시오" 현장 울린, 도올 김용옥 선생의 추도시 낭독
https://youtube.com/watch?v=Z4GiXiYus1Q&si=oBEo90iIuyKNpa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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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 개혁·사회 참여' 명진스님 입적‥"더 나은 세상 위해 목소리" (2026.08.22/뉴스데스크/MBC)
https://youtu.be/3-WAAntYenU 0:34
MBCNEWS
2026. 8. 22.
불교계 개혁과 사회 참여에 앞장서온 명진 스님이 오늘 입적했습니다.
명진 스님은 오늘 오전 제주 서귀포 해상에서 프리다이빙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해경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1969년 출가한 명진 스님은 조계종 개혁을 주도했고, 2006년부터 봉은사 주지였을 당시 이명박 정권을 비판해 국정원 불법 사찰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SNS에서 "늘 뜨거운 청년의 마음으로 더 나은 세상과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셨다"며 고인을 애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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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주지 지낸 명진스님 입적…제주 해상 프리다이빙 사고 추정 / 연합뉴스TV
https://youtu.be/Gaff_rmoMrQ 0:37
연합뉴스TV
2026. 8. 22.
봉은사 주지를 지낸 명진스님이 입적했습니다.
명진스님은 오늘(22일) 오전 제주 해상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습니다.
해경은 당시 착용 장비 등을 볼 때 프리다이빙 연습 도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경위를 조사중입니다.
스님이 머물던 제주 남선사 등에서는 장례 절차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명진스님은 1969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해 조계종 중앙종회 부의장, 봉은사 주지 등을 지냈으며, 2017년 총무원 비판으로 승적을 박탈당했지만, 소송 끝에 자격을 되찾고 종단과 화해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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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주지 지낸 명진스님 입적…제주서 프리다이빙하다 사고 [MBN 뉴스센터]
https://youtu.be/XGWG2SFQ2q0 2:04
MBN New
2026. 8. 22.
【 앵커멘트 】
봉은사 주지를 지낸 명진스님이 오늘(22일) 제주 바다에서 사고로 입적했습니다.
고인은 평소 프리다이빙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해경은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승민 기자입니다.
【 기자 】
오늘 오전 9시 40분쯤, 제주 서귀포시 하예포구 앞바다에서 사람이 의식 없이 물에 떠 있다는 112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구조 당시 이미 심정지 상태로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오전 10시 반쯤 끝내 숨졌습니다.
▶ 인터뷰(☎) : 소방 관계자
"처음에지나가던 행인이랑 경찰분들이 이렇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고. 이송했는데 사망했습니다."
신원 확인 결과 사망자는 봉은사 주지를 지낸 명진스님으로 확인됐습니다.
스님은 발견 당시 다이빙 슈트 등 프리다이빙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 인터뷰(☎) : 해경 관계자
"발견 당시에 슈트랑 오리발 같은 걸 착용하시고 계셨고…."
명진스님은 평소 바다 수영과 프리다이빙을 즐겨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해경은 타살 등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950년 충남 당진 출생인 명진스님은 1969년 출가해 베트남전에 참전한 뒤 2006년부터 서울 봉은사 주지를 맡았습니다.
주지 시절 이명박 정부와 종단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다 국정원의 불법 사찰을 받는 등 갈등 끝에 2017년 승적이 박탈됐지만, 소송을 거쳐 올해 초 승적을 회복했습니다.
조계종과 소속 교구본사인 법주사, 스님이 머물던 제주 남선사는 장례 절차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MBN뉴스 이승민입니다. [lee.seungmi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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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민의 영원한 벗‘ 명진 스님 입적 - “현장이 곧 수행터” - 평등.평화.자비 ‘평생 실천‘
https://youtu.be/I80eDmyVrH0 1:57:40
장윤선의 취재편의점
2026. 8. 22. 3개 제품
[추모] ‘시민의 영원한 벗‘ 명진 스님 입적
“현장이 곧 수행터”
평등.평화.자비 ‘평생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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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822 입적. 봉은사 전 주지 수좌 명진 스님
https://www.youtube.com/shorts/USnK2yji7pI
BBS qnfryqkdt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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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권력에 맞선 명진스님 잠들다
https://www.youtube.com/shorts/liBNf26-bX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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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다에서 잠든 싸우는 스님
https://www.youtube.com/shorts/Rryo4vyN4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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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이 남긴 충격 반전
https://www.youtube.com/shorts/f5VFTTMg61s?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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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의 짧은 법문
https://www.youtube.com/shorts/a5sSKB3vUH8?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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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도착 명진 스님
https://www.youtube.com/shorts/auQsJwGaJDg?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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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스님 추모 분향소 _ 봉은사 선불당
https://www.youtube.com/shorts/TaG-rk4G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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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누구인가. 제주에서 프리다이빙 사고로 입적
https://youtu.be/O1cxqlNjMLQ 9:57
소종섭의 상식학교
026. 8. 23.
이 동영상에 추가된 설명이 없습니다.
AI 생성 동영상 요약
경우에 따라 품질과 정확성이 다를 수 있습니다.
소종섭의 상식학교는 사회민주화와 불교 개혁에 앞장섰던 명진 스님의 생애와 주요 활동을 되짚어봅니다. 종단 내 갈등부터 정치권과의 교류, 그리고 수행자로서의 면모까지 명진 스님이 걸어온 파란만장한 여정을 입체적으로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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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큰 어른" 명진스님 입적 애도…종교·시민사회장으로 치른다 [뉴스쏙] / 연합뉴스TV(YonhapnewsTV)
https://youtu.be/qvH9Mf8iHTU 6:58:25
: 10시간 전 (260823. 20:40 현재)
어제(22일) 제주 서귀포에서 입적한 봉은사 전 주지 명진스님의 장례가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집니다. 명진스님 측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서귀포의료원에 안치된 법구(法軀·스님의 시신)는 유가족 동의 등 행정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이날 중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운구될 예정입니다. 스님이 2006∼2010년 주지를 지낸 봉은사에 분향소가 마련되며, 영결식 날짜는 25일로 잠정 결정됐습니다. 스님은 어제 오전 9시 38분 제주 서귀포시 하예동 하예포구 인근 해상에서 물에 떠 있는 채로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오전 10시 28분쯤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자세한 소식 '뉴스쏙'에서 전해드립니다.
▲'불교계 대표 사회운동가' 명진스님 입적…"프리다이빙 사고 추정"(김종성 기자 26.08.23)
▲이 대통령, 명진 스님 입적에 "큰 어른 떠나"(26.08.23)
▲봉은사 주지 지낸 명진스님 입적…제주 해상 프리다이빙 사고 추정(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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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적 명진스님 봉은사 분향소 첫날
https://youtu.be/PMnZ71XLsj8 2:02:26
만인을위하여
2026.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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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적 명진스님 봉은사 분향소 둘째 날
https://youtu.be/XM6O6mvekzQ 49:27
만인을위하여
2026.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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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생중계] "잊지 않겠습니다" '봉은사 전 주지' 故 명진스님 추모의 밤 (2026. 8. 24. 오후)
https://youtu.be/qwXMapzI338 2:06:25
오마이TV
실시간 스트리밍: 3시간 전 (260824. 22:10 현재)
[현장 생중계] "잊지 않겠습니다" '봉은사 전 주지' 故 명진스님 추모의 밤 (2026. 8. 24. 오후)
AI 생성 동영상 요약
경우에 따라 품질과 정확성이 다를 수 있습니다.
평생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민주화와 인권, 평화 통일 운동에 헌신했던 명진 스님의 행적을 기리는 추모의 밤 현장입니다. 고인과 생전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시민 사회 인사들과 동료들이 모여 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마지막 길을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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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스님, 자유롭게 놀다 명진답게 가다. 제기발랄 명진모멘트모음
https://youtu.be/eoRLtAMjR6U 17:56
모니묭뉴스
2026. 8. 24.
어떤 권력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시대의 참어른, 명진 스님이 제주 바다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습니다.
이명박 정권을 대놓고 비판하다 봉은사 주지에서 쫓겨나고, 조계종에서 제적당하면서도 끝까지 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그의 삶.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신랄한 일갈부터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얽매임 없던 '비주류' 명진 스님의 꼿꼿한 발자취를 되돌아봅니다.
타협하는 위선의 시대, 진정 우리가 그리워하는 '어른'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하늘을 지붕 삼아 자유롭게 떠난 명진 스님의 마지막 묵직한 메시지를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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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봉은사 前 주지 수좌 명진스님 영결식 | 2026.08.25 (화) 오전 10시 | 서울 봉은사
1:33:00
이전 실시간 스트리밍: 14시간 전( 260825:23:55 현재)
명진스님께서 불기2570(2026)년 8월 22일(음력 7월 10일) 세수 75세, 법랍 52세로 사바세계의 연을 다하시어 입적하셨기에 삼가 알립니다. 영결식은 오는 25일 오전 10시 봉은사에서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지며, 다비식은 출가 본사인 속리산 법주사에서 봉행됩니다. 명진스님은 전국 제방선원에서 40안거를 성만하였고, 민주화운동과 종단 개혁 등 사회적 실천과 직언에 힘써온 인물입니다. 스님의 수행과 사회적 실천의 뜻을 가슴에 새기며, 명진스님의 극락왕생을 마음 깊이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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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봉은사 前 주지 수좌 명진스님 다비식 | 2026.08.25 (화) 오후 15시 | 대한불교조계종 제 5교구본사 법주사
1:48:31
이전 실시간 스트리밍: 9시간 전 ( 260825:23:55 현재)
명진스님께서 불기2570(2026)년 8월 22일(음력 7월 10일) 세수 75세, 법랍 52세로 사바세계의 연을 다하시어 입적하셨기에 삼가 알립니다. 영결식은 오는 25일 오전 10시 봉은사에서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지며, 다비식은 출가 본사인 속리산 법주사에서 봉행됩니다. 명진스님은 전국 제방선원에서 40안거를 성만하였고, 민주화운동과 종단 개혁 등 사회적 실천과 직언에 힘써온 인물입니다. 스님의 수행과 사회적 실천의 뜻을 가슴에 새기며, 명진스님의 극락왕생을 마음 깊이 발원합니다.🙏
다비식 : 2026년 8월 25일 오후 15시 대한불교조계종 제 5교구본사 법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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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은 내 인생 가장 위대한 친구" - 도올 김용옥 선생의 추모
1:48
알남TV-시사IN사이트
2026. 8. 25.
"슬프지만 기쁜 마음으로 그를 보냅니다."
시대의 큰 스승이자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던 명진 스님의 입적을 깊이 추모합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명진 스님을 가리켜 "내 일생의 가장 위대한 친구이자, 우리 시대에 남겨진 하나의 기적"이었다고 회고합니다.
늘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 심오하고 냉철한 실존적 결단을 담아냈던 명진 스님. 어떠한 흔들림 없이 도(道)를 지켜왔던 그의 곧은 삶과 깊은 향기는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남아 울림을 줄 것입니다.
명진 스님이 남기신 뜻과 삶의 궤적을 함께 기리며, 도올 선생의 마지막 추모와 그리움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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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스님! 아미타불의 정토에서 평안한 삶을 누리소서" [도올김용옥]
6:30
도올TV
2026.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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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기적이라오, 있을 수 없는 생멸의 기적, 그대는 불생불멸의 반야, 그대는 영원한 조선의 현묘지도, 그대는 풍류, 그대는 바람이어라" [도올김용옥]
4:38
도올TV
2026.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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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가는 코뿔소 같던 그대여... 잘 가시오" 현장 울린, 도올 김용옥 선생의 추도시 낭독
04:05
2026. 8. 25.
🔴 전체보기 - https://youtube.com/live/vHNDMg2WO6U 25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봉은사 전 주지' 명진스님의 영결식이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엄수됐다. 이 영상은 도올 김용옥 선생의 추도시를 담고 있다. (영상 촬영 : 정지원 / 영상 편집 : 김윤상, 공민식
봉은사 전 주지 명진스님의 영결식이 25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엄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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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 스님에게 띄우는 시(연산의 춤)
https://www.youtube.com/shorts/8vs_6WozWl4?feature=share
BTN 현장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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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때 피어 하늘 한번 보고…" 명진스님 영결식장을 적신 장사익의 절절한 목소리
3:48
2026. 8. 25.
🔴 전체보기 - https://youtube.com/live/vHNDMg2WO6U 25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봉은사 전 주지' 명진스님의 영결식이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엄수됐다. 이 영상은 소리꾼 장사익씨의 추도가를 담고 있다. (영상 촬영 : 정지원 / 영상 편집 : 김윤상, 공민식)
봉은사 전 주지 명진스님의 영결식이 25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엄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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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익 조가 (낙화) --- 가사 화면에 표시됨
https://www.youtube.com/shorts/0hrArPI5DGk?feature=share
BTN 현장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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