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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괜찮아?
지은이 한국미니픽션작가회 10집
크기 145*210mm / 288페이지
발행일/ 2018년 1월 29일
ISBN 979-11-87433-08-8 (03810)
┃가격 12,000원┃
주소/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 222 한국출판협동조합 422호
전화/ 02-722-3588 팩스/ 02-722-3587
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장 이진훈
010 5326 5446
mokleeyd@nate.com
책소개
‘혼자 살기’를 주제로 한 <한국미니픽션작가회> 10집 기념호
<한국미니픽션작가회>가 10집 기념호로 펴낸 작품집이다. ‘혼자 살기’를 주제로 스물여섯 작가가 참여했다. 짧지만 함축된 내용 속에 ‘혼자 살기’의 여러 형태와 의미, 그리고 자각을 담았다. 사회적 현상으로 주로 다뤄지던 ‘혼자 살기’가, 개성이 다른 작가들의 성찰과 해석에 힘입어 보다 중층적인 의미와 깊이를 갖춰나간다.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우리 속 ‘혼자’의 실모습과 혼자와 연결된 가정, 이웃,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26개의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다. 읽다 보면 나 자신의 모습을 여러 차례 발견하게 되는 점도 피할 수 없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혼자일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를 위한 헌정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한 본격미니픽션집이다.
‘한국미니픽션작가회’의 말
<한국미니픽션 작가회>는 순수문학으로서 미니픽션을 시작한 지 어언 13년이 되었고, 마침내 10집의 작품집을 엮게 되었다. 미니픽션은 20세기 후반 라틴아메리카에서 출발한 미니픽션을 본류로 삼고 있다. 미니픽션은 형식이 아닌 내용을, 폭이 아닌 깊이를 좇으며, 하이쿠적인 소설의 압축미를 추구한다. 또한 읽는 사람에게는 사유의 문을 열어주어 독자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며, 현실에 관한 다각적이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만든 정통 문학이다.
추천사
혼자 사는 일은 독신, 독거, 이혼, 사별 등 속의 메마른 명사로 환원하기 어렵다. 살아가는 일이 항상 동사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니픽션 이야기꾼에게 명사는 너무 짧고, 동사는 너무 길다. 형용사가 안성맞춤이다. 참신하면 더 좋고, 도발적이면 더더욱 좋은데, 그 예가 바로 이 작품집이다. 참신하고 도발적인 형용사로 우리 시대 혼자 살기의 다채로운 무늬를 포착한 작품을 연달아 읽는 즐거움이 있다.
-박병규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
저자 소개
구자명
1957년 경북 왜관에서 태어나 서울, 하와이 등지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으며, 대학에서 심리학
을 전공했다. 1997년 『작가세계』에 단편 「뿔」로 등단, 소설집 『건달』 『날아라 선녀』, 짧은소설집 『진눈깨비』 에세이집 『바늘구멍으로 걸어간 낙타』 『망각과 기억 사이』 등을 냈으며, 한국가톨릭문학상 ·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구준회
한국문협, 한국순수문학인회, 갈대시동인회, 광화문시낭송회, 서울교원문학회회원, 한국동
요문화협회, 구상선생기념사업회, 미니픽션작가회 이사.
시집 『우산 하나의 행복』 『사람 하나의 행복』 『그 이후 하나의 행복』 가곡음반 『내 안에 그리움 있다』 외 공저 다수
김민효
서울예술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예술 전공
작가세계에 「그림자가 살았던 집」으로 등단
소설집 『검은수족관』 『그래 낙타를 사자』 『빛나는, 완전범죄』
영문번역본 『WHERE IS OUR HOME』
공저 『놀러가자 피터팬』 미니픽션 『술集』 외 6권
김의규
화가 · 미니픽션 작가. 저서로 어른을 위한 동화집 『양들의 낙원, 늑대 벌판 한 가운데 있다』,
트윗픽션집 『그러니까 아프지 마』, 미니픽션 2인집 『그녀의 꽃』 등이 있다.
김정묘
『문학과 비평』에 시로, 『한국소설』에 소설로 등단
시집 『하늘연꽃』 외, 미니픽션 동인지 『나를 안다고 하지 마세요』외 다수
한뼘자전소설 교재형 작품집 『내 이야기 어떻게 쓸까?』 공저
한국소설가협회, 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
김진초
1997년 『한국소설』 로 등단. 소설집 『프로스트의 목걸이』 『노천국 씨가 순환선을 타는 까닭』
『옆방이 조용하다』 『당신의 무늬』 『김치 읽는 시간』 장편소설 『시선』 『교외선』 『여자여름』 출간. 인천문학상(2006) · 한국소설작가상(2016) · 한국문협작가상(2016) 수상.
김혁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장편 「장미와 들쥐」 「지독한 사랑」 「누가 울어」외 중·단편 다수 발표.
배명희
2006년 중앙일보 등단. 창작집 『와인의 눈물』
안영실
1996년 문화일보 중편소설 「부엌으로 난 창」으로 등단
2013년 창작집 『큰 놈이 나타났다』
2013년 프랑스 éitions Philippe Rey에서 공저 『Nocturne d’un chauffeur de taxi』 출간
2015년 한뼘자전소설 『나는 힘이 세다』 이북출간
2016년 소설집 『화요앵담』 출간
심아진
1972년 경남 마산 출생, 1999년 「21세기 문학」을 통해 등단
소설집 『숨을 쉬다』 『그만, 뛰어내리다』 『여우』 『어쩌면 진심입니다』
미니픽션집 공저 『그 길, 나를 곁눈질하다』 『내 이야기 어떻게 쓸까?』 『나를 안다고 하지 마세요』
양동혁
2014년 제6회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윤신숙
『한국산문』에 수필 「클래식 기타와의 여행」으로 등단했다 .
한국산문 이사, 양천문협 이사, 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이다
이진훈
시인, 미니픽션작가. 1956년 경기도 김포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예일여고를 거쳐 영동고등학교 근무. 서울초중등문학교육연구회 회장
이하언
2007년 평화신문 신춘문예 당선. 2007년 토지문학제 평사리 문학대상 수상
2014년 소설집 『검은 호수』 출간
임나라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대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저서. 『하늘마을의 사랑』 『무화과 나무집』 『사랑이 꽃피는 나무』 『광덕 할머니의 꽃자리』 『그림과 함께 보는 정림사 절 짓는 이야기』 『징검다리 저 하늘』 미니픽션동인집 『거짓말 삽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아동문학인회 회원,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 한국조형예술신문(인터넷)편집인
임재희
소설을 쓰며 번역을 한다. 하나는 원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하는
일이다. 그 사이가 멀지 않아 다행이다. 2013년 <세계문학상>을 통해 등단했고, 장편 『당신
의 파라다이스』와 『비늘』을 출간했다. 옮긴 책으로 『라이프 리스트』와 『블라인드 라이터』 등
이 있다.
정성환
경북 영천에서 태어남. 고려대 졸업. 1995년 동서문학에 단편 「알바트로스의 날개」로 등단
「침묵의 소리」 「어제의 시간」 「마지막 카피」 등의 작품을 발표. 창작집 『강구기행』 발간
최옥정
2001년 『한국소설』에 「기억의 집」으로 등단. 허균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소설집 『식물의 내부』 『스물다섯 개의 포옹』 『늙은 여자를 만났다』 장편소설 『안녕, 추파춥스 키드』 『위험중독자들』 『매창』 포토에세이집 『On the road』 『오후 세 시의 사람』 에세이집 『삶의 마지막 순간에 보이는 것들』 소설창작매뉴얼 『소설창작수업』 『2라운드를 위한 글쓰기 수업』
한상준
전북 고창 출생. 19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지에 「해리댁의 忘祭」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으로 『오래된 잉태』 『강진만』 산문집으로 『다시, 학교를 디자인하다』
해설/ 이경재 (문학평론가 · 숭실대 교수)
이성우
대학에서 임상심리학과 명리학을 공부했다. 철학동화를 쓰고 있으며, 동화책으로 『선글라스를 낀 개구리』가 있다.
이현신
건강심리전문가. 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 번역서 『모래알갱이가 있는 풍경』이 있다.
정혜영
인테리어 및 건축 잡지 기자를 거쳐 편집장과 발행인을 지냈다. 현재 중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김채옥
임상심리전문가. 경기대학교 교양학부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서울시은평병원 진료부
에 재직하고 있다. 『엄마 네 맘을 알아?』를 공역했다. 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이다.
노길용
구상선생기념사업회 사무차장. 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 디지털콘텐츠 기획·디자이너.
이청수
30년 일한 방송사를 정년퇴임한 후 또 다른 30년을 위해 사진찍기, 글쓰기 등으로 새로운
삶을 모색 중.
조데레사
천주교 의정부교구에서 소공동체 월간지 편집위원을 지냈으며 중학교 아이들에게 논술과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차례
구자명/ 너와 나의 예정된 가을 15
구준회/ 혼밥의 결말 25
김민효/ 옆집남자의 가족사진 35
김의규/ 행복 아파트 49
김정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듣는 밤 57
김진초/ 하이고 69
김 혁/ 어떤 고독사 77
배명희/ 해피 버스데이 85
안영실/ 뼈의 춤 95
심아진/ 친구에게 가는 길 105
양동혁/ 살아 있는 남자 115
윤신숙/ 밤의 아리아 123
이진훈/ 기쁜 나의 저승길 133
이하언/ 더불어 홀로 살아내기 147
임나라/ 그녀와 그녀를 만나다 155
임재희/ 선셋증후군 163
정성환/ 이상형을 찾아서 171
최옥정/ 까스명수 181
한상준/ 틀린 옛말 없다더니 191
해설 ・ 이경재(문학평론가 · 숭실대 교수)
/ 미니픽션이라는 렌즈를 통해 본 ‘혼자 살기’의 다양한 빛깔 198
미니픽션 신인작가를 추천하며/이진훈 220
심사평 222
이성우/ 기억 저편의 낙원 229
이현신/ 너와 나 239
정혜영/ 파리발 나의 독립일 245
김채옥/ 홀로라는 이름 253
노길용/ 어제의 밤은 누가 돌보았나 263
이청수/ 9회 말 271
조데레사/ 새벽 6시 279
책 속으로
너와 나의 예정된 가을 ・ 구자명
변호사가 물었다. 이혼을 원하시나요? 졸혼을 원하시나요? 나는 아직은 잘 모르겠고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고 대답했다. 계약결혼만기가 되었는데 어떻게 좋게 갈라질 수 있겠는지 궁리중이라고 솔직히 말하지를 못했다. 다만 현재 상태에서라도 내가 거처할 작은 독립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비용을 남편에게 요구할 법적 권한이 있는지를 알고 싶다는 말만 했다. 정말로 그게 다였다. 남편이 사라진 날 이전까지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혼밥의 결말 ・ 구준회
“어, 밥상 올리는 것 오늘이 끝이야. 혼밥도 못 먹는 귀신도 있어. 당신이 우리 어머님 제사상 지난 16년 동안 안 차렸거든. 오늘까지 열여섯 번째 제사상이었어. 맛 있었어? 산소의 어머니가 그러시더라. 헤어지기 전에 내가 어머니 제삿날마다 올리는 제삿밥, 당신한테 원없이 해먹여 보내라고. 내일 법원 판결문 올 거야. 이젠 당신 입, 가고 싶은 데로 가.”
옆집남자의 가족사진 ・김민효
나와 덤덤이는 서로에게 잘 길들여진 게 틀림없다. 24시간 같은 공간에 있지만 우리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매우 단순하다. 최소한의 단어로도 소통이 가능하며 대화에 쓰이는 단어도 대부분 긍정적이다. 설령 말실수를 한다고 해도 뒤끝을 걱정하지 않아서 좋다. 아쉬운 점이라면 내게서 사회적대화의 기술이 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살다보면 대화의 기술뿐만 아니라 사람의 말을 점점 잃어버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행복아파트 ・ 김의규
나의 행복은 간단하고 저렴한 만큼 극대치로 오르는 반비례의 법칙이 적용됐다. 남의 소소한 행복은 내가 견뎌낼 만한 작은 불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때문에 내가 크게 행복하기를 원치 않음도 누군가 치를 큰 불행과 함께함을 바라지 않는 까닭이겠다.
무반주첼로 모음곡 ・김정묘
창문에 걸어놓은 포충낭이 한 개 남은 네펜데스 미란다까지 그녀가 떠나기 전 그대로다. 그녀가 늘 그랬듯이 환생한 듯 돌아오리라, 나는 믿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물건은 곧 그녀의 삶이었고, 주인을 잃은 물건들을 나는 무덤 속 부장품처럼 끌어안고 스스로 순장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이렇게 의문부호로 어정쩡하게 그녀의 떠남을 정리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위장한다. 몸의 기억은 생각으로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이고 ・김진초
땀의 시간을 밟고 차근차근 올라섰지만 벼랑을 디디는 순간 끝나는 인생이었다. 나를 바치고 얻은 모든 것에서 하차해야 했다. 희망을 놓칠 때 절망도 함께 놓쳤는지 누굴 원망할 기운조차 없었다.
어떤 고독사 ・ 김혁
-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떳떳해. 암, 그렇고말고. 내가 수행한 그 많은 일들은 사실 국가의 명령을 받들어서 저지른 거지. 내 책임이 절대 아니야. 따지고 보면 나도 일종의 피해자야.
- 오, 불쌍한 내 영혼이여!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조금만 기다려라. 널 자유롭게 풀어 줄 테니까.
해피 버스데이 ・배명희
여자는 남편의 몸을 만졌던 손으로 자신의 뺨을 감쌌다. 아이의 작은 몸을 껴안던 느낌이 살아났다. 얼마만인가.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 것이. 여자의 두 눈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달빛에 눈이 부셔서 눈물이 난다면 믿을까? 여자는 달빛 속에 오래 서있었다.
뼈의 춤 ・ 안영실
사람들은 사방팔방에 길을 뚫어놓아 자신이 만든 길이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오늘 선택한 길이 과거의 모든 길을 새롭게 바꾸었으므로 사람들에게 완전한 길이란 없었다.
친구에게 가는 길 ・ 심아진
여태 침묵을 지키던 S마저 “직진.”이라고 말했으므로, 나는 소신은 없고 성질만 조금 있는 자의 전형을 그대로 밟아 한 바퀴를 더 돌았다. 모든 곳에 출구가 있었지만, 나를 위한 출구는 없는 듯했다.
살아 있는 남자 ・ 양동혁
- 당신은 이미 죽어있는 것 같습니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 예? 무슨 소리죠? 저 살아 있습니다. 보세요. 심장도 잘 뛰잖아요.
- 어휴, 그렇죠. 심장은 잘 뛰죠. 그런데 심장이 뛴다고 살아 있는 건 아니잖아요.
- 아니, 보면 알잖아요. 살아있으니까 이렇게 말도 하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사실 검사를 할 필요도 없어요. 당신 말고 또 누가 당신이 살아있다고 생각합니까. 사실, 죽어도 아무 상관없잖아요. 직업도 없고 결혼도 못 했고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밤의 아리아 ・ 윤신숙
무연고자로 죽은 혼령들이 이승에도 저승에도 머물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다 아직은 하느님께 가기가 억울하다며 하나 둘 모여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비록 지상에서 가난하게 살았어도 혼자 사는데 익숙했던 그들이었지만 저승 문턱에 다다르자 이렇게 힘을 모으게 될 줄은 그들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기쁜 나의 저승길 ・ 이진훈
- 아이구, 내가 부끄럽네. 나는 젊어 흥청망청하다가 늙어 혼자 되고, 정 사장 자네는 젊어 혼자 이 식당에 갇혀 일벌레로 살다가 많은 이웃을 얻었구만. 한눈 팔지 않고 한 우물만 판 덕일세.
더불어 홀로 살아내기 . 이하언
와하하,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텔레비전 안에서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그들 앞에 한 사람이 오물을 뒤집어쓰고 쩔쩔매고 있었다. 아마 어떤 게임에서 져서 벌칙을 받고 있는 거 같았다. 그 외엔 모두가 즐거워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알 수 없어 그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와 그녀를 만나다 ・ 임나라
「쓸쓸하고 고독했던 윤지당 그녀였기에 아마도 부뚜막이 그녀의 식탁이었을는지도 모른다. 호롱불도 켜지 않았을 어둑한 부엌에서 홀로 눈물의 밥을 먹으며 아녀자의 몸으로 남성에 버금가는 수행의 학문에 정진해 나아갔으리.」
선셋증후군 ・ 임재희
누군가에게는 보람찬 하루를 끝맺는 충만한 시간인데 그에게는 자꾸 가슴이 벌렁거리며 쪼그
라드는 슬픈 시간이었다. 담배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손은 어느새 담배 한 대를 꺼내들었다. 부러 나뭇잎들이 금빛으로 떨고 있는 모습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황금빛 훈장들이 나무에 달려있었다. 너무도 슬픈 황금빛이라는 생각만 들었고 그래서 모든
슬픔은 노란빛일 것만 같았을 때 눈앞이 흐려졌다.
이상형을 찾아서 ・ 정성환
예수가 결혼했냐. 고타마 싯다르타는 처자식을 두고도 출가하지 않았느냐. 결혼 안한 사람이 어디 그뿐이냐. 데카르트, 칸트, 니체, 보들레르, 랭보, 바이런, 플로베르, 카프카, 고갱, 다빈치, 리스트, 뉴턴……. 그러면 친구들은 K의 입을 틀어막고 이렇게 공격한다. 야, 네가 그 사람들과 같은 급수냐? 그러면 K는 또 항변한다. 야, 급수는 다르지만 적어도 독신이라는 하나의 동질성은 그들과 공유하고 있다 이 말이야. 너는 결코 그 사람들과 이런 동질성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라 이거야!
결혼은 포위당한 성과 같다. 밖의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려 하고, 안의 사람은 밖으로 나오려 한다.
까스명수 ・ 최옥정
마침내 그는 손을 펴고 편히 누웠다.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지만 눈을 뜨지 않았다. 70년은 너무 길었다. 하루하루는 너무 금방 지나갔다. 지금처럼 아무것도 느낄 틈 없이 무언가가 다가오고 곧 사라졌다. 이제 그의 몸도 그리 될 것이다. 누가 그의 팔을
흔들었다. 말소리는 멀어졌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평온함이 그의 몸을 둘러쌌다. 그는 딱 한 번 눈을 떴다가 감았다. 흐릿한 하늘만 눈에 가득 찼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옛말 없다더니 ・ 한상준
으흑. 고양이 피하려다 호랑이 만나고, 가랑비 피하려다 소낙비 만났다는 옛말, 틀린 옛
말 없다더니, 아주 맞다. 주먹 없으면 언감생심, 이빨이라도 지녀야지 이것저것 쥐뿔도 없는 놈이 산속에서 날폼 잡고 혼자 살려는 심중부터가 애당초 틀렸다는 게 속담처럼 맞다는 것이렷다, 쓰바.
기억 저편의 낙원 ・ 이성우
얼마나 잠들어 있었을까. 문득 잠을 깨보니 칠흑같이 어두운데 사방이 온통 물이다. 아
니 나마두의 눈에는 바다로 보였다. 검은 바다에서 노란리본을 단 손들이 무수히 뻗어 나와 나마두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파랗게 질린 나마두는 바다를 표류하고 있는 쪽배에 간신히 올라 갑판에 몸을 말아 웅크렸다.
너와 나 ・ 이현신
너의 마음을 살피려 하지도 않고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너를 보내던 날. 너의 절망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너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네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는지. 치열했던 너의 삶을 기억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파리발 나의 독립일 ・ 정혜영
내가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어떤 상태에서 그렇게 전화를 해댔는지는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 제 걱정은 말라며 딸이 전화를 끊었을 때, 나는 가슴이 서늘해지며 작은 새 한 마리가 내 심장을 뚫고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홀로라는 이름 ・ 김채옥
현관문에 녹슨 열쇠를 꽂으며 혹시 문이 열려있나 잠깐 쓸데없는 생각이 스쳤다. 열쇠를 돌리자 딸깍 소리와 함께 잠겼던 문이 열렸다. “여보, 나 왔어요.”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불쑥 튀어나온 말에 정작 놀란 건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가 뱉은 말은 텅 빈 거실과 빈 방들을 맴돌아 와 다시 그녀의 가슴 깊은 곳으로 아프게 파고들었다. 목울대에선 뜨거운 무엇이 울컥 올라왔다. 아직도 집안 곳곳에는 남편의 온기와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그녀는 남편이 토끼잠을 자곤 했던 소파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그러곤 외출한 그녀를 기다리느라 남편이 서성거리던 창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어제의 밤은 누가 돌보았나 ・ 노길용
그가 졸며 온 몸으로 지휘하는 버스가 도시 곳곳을 살핀다. 가로수를 부여잡은 사람, 누구에겐가 전화를 거는 사람, 뭔가를 계속 중얼거리는 사람. 밤을 거니는 이들의 발걸음은 위태롭다. 방향성을 잃은 딛음은 마치 시체들이 걷는 듯 했다.
9회 말 ・ 이청수
이 긴장된 대결의 결과는 한 순간에 결정될 것이다. 어쩌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돌발적인 변수에 의해 의외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 결과에
따라 각자는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몫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새벽 6시 ・ 조데레사
결국, 나는 이일에 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새벽 6시 경에 눈이 떠지는 상황은 계속 반복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은 마치 매일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리움 같은 것이 되어가는 듯 했다. 또한, 그 그리움은 나의 가슴을 뛰게 했고, 마치 내 안에 남아있는 ‘나의 희망’을 찾아가는 듯 설렘이 뒤섞인 기다림이었다. 심지어는 그가 다시 오면 문을 열어주어야겠다는 생각까지도 하고 있었다. 그리움… 내가 혼자 살기를 결심하고 가장 먼저 버려야만 했던 감정이었다.
리뷰/ 미니픽션이라는 렌즈를 통해 본 ‘혼자 살기’의 다양한 빛깔
이경재 (문학평론가 · 숭실대 교수)
-이제 ‘홀로 살기’는 문학이 집중해서 성찰해야 할 인간 삶의 핵심적인 테마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미니픽션작가회의가 ‘홀로 살기’라는 주제로 『미니픽션 10집』을 만든 것은 참으로 시의적절 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미니픽션작가회는 미니픽션의 전통이 강하지 않은 한국에 미니픽션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참으로 소중한 단체이다. 10이라는 숫자는 한 단계의 완성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숫자이다. 『미니픽션 10집』은 한국 문단에 미니픽션이라는 장르가 단단한 뿌리를 내리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증표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후반 라틴아메리카에서 시작된 미니픽션은 짧은 분량으로 인생과 세상의 본질적 단면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형상화하는 장르이다. 삶의 리듬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빨라진 21세기에 미니픽션은 소설 장르의 새로운 전위이자 희망이 될 여지가 충분하다. 실제로도 미니픽션의 작자나 독자는 양과 질 양면에서 나날이 팽창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발간된 『미니픽션 10집』은 미니픽션이 다가올 시대에 인간과 세상의 겉과 속을 드러내는 서사 장르의 대표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구체적 실증이라고 할 수 있다.
-구자명의 「너와 나의 예정된 가을」, 구준회의 「혼밥의 결말」, 김진초의 「하이고」는 부부관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모양새의 ‘홀로 살기’를 형상화 한 작품들이다. 부부는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이기에 무촌(無寸)이지만, 동시에 완전한 타인이기에 무촌(無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구자명의 「너와 나의 예정된 가을」은 가장 가까운 사이인 부부도 결국에는 ‘너’와 ‘나’일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 작품이다. 구준회의 「혼밥의 결말」과 김진초의 「하이고」는 서로의 거울상과 같은 작품들이다. 「혼밥의 결말」에서 ‘나’는 아내에게 거의 학대받는 삶을 살아왔다. 결국 남편은 이혼을 선언하고, 아내와 남편은 영원한 ‘너’와 ‘나’라는 타인으로 남게 된다. 김진초의 「하이고」도 「혼밥의 결말」처럼 극적인 반전이 소설의 묘미를 자아내는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에는 한국사회의 가난이 실감나게 드러나 있다.
- 김민효의 「옆집남자의 가족사진」과 양동혁의 「살아 있는 남자」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여, 현재 우리의 ‘홀로 살기’가 얼마나 병적인 것인가를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두 작품은 모두 미래가상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민효의 「옆집남자의 가족사진」에서 ‘나’가 사는 아파텔은 “철저하게 혼자인 삶을 보장”하는 곳이다. 양동혁의 「살아 있는 남자」는 가까운 미래라고 할 수 있는 2030년이 배경인 작품이다. 혼자 사는 중년 K는 건강검진을 받고 죽었다는 진단을 받는다.
-윤신숙의 「밤의 아리아」도 환상적인 수법을 전면에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윤신숙은 마지막까지 지상과 천상 중의 어느 한쪽에 일방적인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김혁의 「어떤 고독사」, 배명희의 「해피 버스데이」, 최옥정의 「까스명수」는 사회학적 상상력이 개입된 미니픽션이라고 할 수 있다. 김혁의 「어떤 고독사」는 제목에도 드러난 고독사를 통해 ‘홀로 살기’라는 문제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김 노인의 삶을 통해 현대사의 그늘을 드러낸다. 배명희의 「해피 버스데이」는 밝은 느낌의 제목과는 달리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모를 짧은 분량에 조목조목 담아낸 작품이다. 최옥정의 「까스명수」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 사회의 외톨이(타자)가 될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불우한 초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하언의 「더불어 홀로 살아내기」, 임재희의 「선셋증후군」, 김정묘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듣는 밤」, 안영실의 「뼈의 춤」은 인간삶에 내재된 근원적 조건으로서의 ‘홀로 살기’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하언의 「더불어 홀로 살아내기」가 핏줄이라는 관계 속에서도
허물 수 없는 개체의 벽을 이야기한다면, 임재희의 「선셋증후군」은 생명체 안에 내재화된 프로그램(본능)으로서의 외로움을, 김정묘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안영실의 「뼈의 춤」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동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충동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하언의 「더불어 홀로 살아내기」는 ‘살아내기’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외로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임재희의 「선셋증후군」에서 남자는 정신과에서 선셋증후군이라 는 진단을 받는다. 김정묘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듣는 밤」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같은 의미 이전의 리듬과 분위기로 존재하는 소설이다. 안영실의 「뼈의 춤」은 소멸의 욕망을 생텍쥐페리의 삶과 죽음에서 발견하고 있는 작품이다.
-심아진의 「친구에게 가는 길」은 아주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친구를 찾아가는 내용의 여로형 소설이다. 한상준의 「틀린 옛말 없다더니」는 결국 타인과의 관계 속에 놓여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부부관계에서 발생하는 ‘홀로 살기’, 현재를 비춰보는 가상의 시공에서 형상화된 ‘홀로 살기’, 사회·정치적 의미망을 거느린 ‘홀로 살기’, 근원적 존재조건으로서의 ‘홀로 살기’ 등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김의규의 「행복 아파트」에 등장하는 행복아파트가 독신자 아파트로 불릴 정도로 독신자들만 가득한 세상에서, 위의 몇 가지 분류만으로 오늘날의 ‘홀로 살기’를 모두 드러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미니픽션 10집』에는 위의 분류에 속하지는
않지만, ‘홀로 살기’가 지닌 중요한 의미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있다. 임나라의 「그녀와 그녀를 만나다」, 이진훈의 「기쁜 나의 저승길」,정성환의 「이상형을 찾아서」가 그것이다.
-임나라의 「그녀와 그녀를 만나다」는 ‘홀로 살기’가 삶에서 가질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킨 작품이다. 이진훈의 「기쁜 나의 저승길」은 성실과 노력을 강조하는 따뜻하고 훈훈한 휴먼드라마로 두 명의 일식요리사가 등장한다. 정성환의 「이상형을 찾아서」는 제목 그대로 한 남자가 이상형을 찾아 분투한 이야기이다.
-과거에도 ‘홀로 살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전에 ‘홀로 살기’는 주로 종교적 수행의 측면에서 논의되고 사유되었다. 인간들 사이에 처하면서 잃어버리기 쉬운 영혼의 본질을 탐구하는 성직자들의 고유한 존재방식은 ‘홀로 살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었던 것이다. 성직자들의 ‘홀로 살기’는 신이나 참된 자기와의 만남과 연결되는 특급 통로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미니픽션 10집』에 수록된 19편의 작품에서는 종교적 차원의 ‘홀로 살기’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의 독거(獨居)가 지니는 의미가 그만큼 변모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니픽션 10집』은 참으로 풍성한 미니픽션의 잔치이다. 기존의 소설이 수행해 온 문학적 기능 중에서 미니픽션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미니픽션 10집』은 실증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