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칼럼] (25) 프란치스코 교황과 일본교회 / 존 알렌 주니어
일본 오사카대교구장 마에다 만요 추기경은 2018년 12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한 뒤, 교황이 2019년 하반기에 일본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다시 확인했다고 전했다. 교황은 특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방문해 원폭 피해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교황이 실제로 일본을 방문하면 핵무기의 해악에 관한 정치적 메시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 분명하다. 한편으로 이 방문은 교황이 선교사로서 자신의 뿌리로 돌아가는 여정의 모양새도 띨 것으로 보인다. 젊은 예수회원 시절,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테오 리치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발자취를 따라 아시아 선교의 꿈을 꿨다. 긴 세월을 돌아, 이제 그 못다 이룬 꿈을 짧게나마 실현하는 셈이다.그러나 이런 굵직한 화제들 뒤에는, 교황청과 지역교회의 대결 구도에 얽힌 이야기도 있다.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아시아 주교대의원회의 특별총회를 소집했을 때, 아시아의 고위성직자들은 교황청의 지나친 유럽 중심 사고와 지역주교들의 판단을 무시하는 중앙 집중적 행정 절차를 비판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목소리를 낸 이들은 일본 주교들이었다.사적인 자리에서 일본 주교들은 교황청의 고압적 태도에 훨씬 더 대놓고 분개했다. 일례로, 일본 주교회의가 일본 토착 종교의 전통 요소들을 접목시키기 위해 공들여 작성한 전례문을 교황청에서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것도 교황청 관리들은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만큼 그들이 직접 판단한 것도 아니라, 익명의 일본 신학생 몇몇의 소견에 의존해서 그렇게 했다는 소문이었다.이러한 반발은 1990년대에 일어난 일명 ‘종교 다원주의 신학’을 둘러싼 거대한 신학 논쟁과 연결돼 있었다. 그리고 이 논쟁의 중심에는, 인도에서 선교사로 활동했고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의 신학 자문을 지낸 벨기에 출신 예수회 신학자 고(故) 자크 뒤피 같은 인물이 있었다.종교 다원주의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이렇다. ‘그리스도교가 인류에 대한 하느님 계획의 모든 진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리와 은총의 요소들을 간직한 다른 종교들을 통해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세계의 여러 위대한 종교 전통들 사이에서 그리스도교가 경쟁자가 아닌 친구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이었고 아시아 전역에서 큰 호응을 얻었지만 교황청의 뻣뻣한 태도에 부딪히고 말았다.20년이 흐른 지금, 그러한 긴장 분위기는 더 이상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교리 싸움을 벌이는 교황이 아니며, 잠잠해진 종교 다원주의 논쟁을 다시 들쑤시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게다가 교황 자신이 종교간 대화의 큰 지지자로서, 특히 아시아의 종교성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2015년 스리랑카에서 열린 종교간 모임에서 힌두교 성자에게 받은 법복을 입었던 일화는 유명하다.교황청 주도형 권력 문제에서, 교황은 오히려 교회 생활에서 지역 교회의 권한을 강조하고 ‘건강한 분권화’를 요청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에 일본 주교들이 제기했던 문제인 전례서 번역과 관련해, 교황은 대부분의 권한을 지역 주교회의에 넘겨주는 자의교서 「대원칙」(Magnum Principium)을 2017년 9월 발표한 바 있다. 사실 이 문서는 어쩌면 20년 전 일본 주교들이 제기했던 반발에 대한 응답일지도 모른다.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올해만 해도, 도쿄대교구에 ‘네오까떼꾸메나도 길’ 회원들을 위한 신학교가 설립될 것이라는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의 일방적 발표에 도쿄대교구장 기쿠치 이사오 대주교가 당혹감을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이런 동요가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려는 전조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다시 말해, 교황의 일본 방문은 결전의 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경기가 다 끝난 뒤 기쁨을 누리는 자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가톨릭교회가 종종 묘사되듯 그렇게 언제까지나 복지부동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존 알렌 주니어 (크럭스 편집장)rn※존 알렌 주니어는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