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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13:1-22) 속이 새까만 수박태몽
오늘 이사야 13장 말씀중심으로 <속이 새까만 수박태몽> 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우리는 1-6절 까지만 읽습니다.
굉장히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어느 여 집사님과 대화하는 가운데 참으로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두 자녀를 잘 키우고 계시고 또 사회적으로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집안이었습니다. 그런 아픔이 있는 줄을 전혀 몰랐는데, 말씀하시기를 결혼해서 첫딸을 낳았는데 그 딸을 낳을 때 태몽이 수박태몽이었다고 합니다. 치마폭에 수박을 받았는데 수박 안이 새까맣더랍니다. 불길한 느낌은 있었지만 꿈은 잊어버리고 딸을 키우는데 딸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또 계집아이들이 사내아이들보다 말이나 생각이 빨리 트이지 않습니까?
조그만 아이가 ‘아빠! 이랬어, 저랬어.’ 할 때 보면 오줌을 싸지 않으면 그 아빠가 정상이 아니지요. 자지러지지 않습니까? 아이가 7살이 되었을 때라고 기억을 합니다. 아빠가 들어오면 머리맡에서 아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아이고, 우리 아빠! 고생하셨네, 우리 아빠! 수고하셨네. 아이고, 우리 아빠 착해라.’라고 갖은 아양을 다 떨고 엄마, 아빠에게 아주 사랑스러운 딸이었습니다.
마침 아래층은 세를 주었는데 동갑내기 사내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동갑내기 사내아이하고 뛰어노는데 아래층 집에 난로가 있었답니다. 겨울에 난로 위에 물을 얹어놓고 끓이는데 아이들이 놀다가 사내아이가 난로위의 물이 끓고 있는 찜통을 손으로 짚어 넘어뜨렸는데, 이 어여쁘고 귀여운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을 부부의 딸아이가 그만 물에 데어서 이 세상을 뜨고 말았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찢어집니다. 3년 어간을 부부가 정신을 잃고 정말 미친 사람들처럼 넋이 나간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정신을 차리고 나니 그 첫째아이의 태몽이 기억이 나더라는 겁니다. 그 뒤로 아주 잘 생긴 아들을 낳았고 잘 자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원래 그때 데려 가시려고 하셨구나.’라고 마음의 위안을 받기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으로부터 그 얘기를 들은 뒤로는 먼저 세상을 뜬 그 예쁜 딸아이와는 전혀 상관없이 '속이 검은 수박'이라고 하는 하나의 그림이 언제나 제 머릿속에 떠돌아다닙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나 설교를 할 때에 그 해당되는 본문이 나오면, 꼭 그 속이 새까만 수박의 그림이 떠오르는 겁니다. 이건 그 아이와는 상관없어요. 그 태몽에 등장했던 속이 새까만 수박을 제 나름대로 신학화한 것입니다.
요즘은 여러 가지 수박이 나오더라고요. 노란 수박도 나오고 노란 수박에 속이 빨간 것이 있고, 노란 수박에 속이 노란 것도 있어요. 또 겉이 새까만 수박도 나옵니다. 겉이 새까매도 속이 빨가니까 괜찮아요. 그런데 겉의 색과는 다르게 속이 새까맣다는 것은 참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든 얘기입니다. 이런 태몽을 꾸었다는 것은, 그 당시 집사님이 젊은 나이에 영적인 세계나 꿈이나 이런 것에 깊이 관심이 없으셨으니 금방 잊어버리고 7년 동안이나 아이를 편하게 키우셨지. 안 그랬으면 속이 새까만 수박태몽을 꾸고서 어떻게 그 아이를 바라보고 키울 수가 있었겠어요.
'속이 새까맣다'는 건 아무튼 불길하다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오늘 본문은 이제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 일단 멈추고, 그 주변국과 열 개의 열방들에 대한 심판예언이 나오는데 바벨론이 첫 번째로 등장을 합니다.
이상한 것은 이 '바벨론'이라고 하는 나라는 아직 태동도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이사야가 선지자의 역할을 하고 있을 때는 B.C. 730년입니다. 바벨론이 망한 것은 B.C. 539년이고, 바벨론 나라가 생긴 것은 B.C. 626년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B.C. 612년에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점령하면서 중동근방의 최강자로 패권을 잡게 되지만 바벨론 나라는 실제로 89년 정도 밖에는 이 지구상에 없었습니다. 수명이 굉장히 짧았습니다. 어쨌든 626년에 바벨론이 발흥할 때, 100년 전에 이사야는 멸망의 예언을 하는 것이고, 이 멸망의 예언은 191년 한 200년 후에 일어날 일을 지금 예언 하고 있는 겁니다. 바벨론이 생기지도 않았는데 예언을 하니 이사야의 바벨론 심판에 대한 예언은 '태몽'입니다. 이 지구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나라에 대해서 예언을 하는데 망할 것을 예언을 하는데 마치 속이 새까만 수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어요. 누구나 다 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나라가 역사의 흐름을 따라서, 다 이 세상에서 쇠락해버리고 없어지지만 이렇게 의도적인 멸망을 안고 태어나는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이 속이 새까만 수박을 신학화 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게 태몽이었습니다. 태몽. 태몽에 등장한 속이 새까만 수박. 이것은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 아이와는 상관없어요. 아이가 7살에 죽을 수도 있지요. 더 이른 나이에 죽을 수도 있고, 13살에 죽는 아이도 봤고 그 죽음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 속이 새까만 수박으로 태어난다는 거예요. 개인뿐만 아니라 모든 가정, 모든 사회, 모든 나라가 다 이 땅에 태어날 때 속이 새까만 수박으로 태어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 그냥 죽거나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쇠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멸망을 받아서 다 멸절되고 심판되어질 운명을 갖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사람도, 단체도, 가정도, 모든 것이 다 그렇다는 것이에요.
이 바벨론이 멸망하는 것은 다시 말해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에요. 이 바벨론은 온 세상의 대표로 지금 얘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런 궁금증이 생기잖아요. 왜 바벨론이 제일 먼저 언급되나? 그 다음에 보면 앗수르라고 하는 주변 나라도 멸망할 것이 예언되어 있거든요. 역사적으로는 앗수르가 바벨론보다 더 먼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멸망을 먼저 얘기해요.
왜 그랬을까요? 명시적으로 그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짐작할 수는 있어요.
역대하 36:19절에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며 그들의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들의 모든 귀한 그릇들을 부수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B.C. 586년에 남 왕국 유다가 망할 때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성전을 뭉개버린 나라가 바벨론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남 왕국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이 이어진 뒤에, 제일 먼저 심판 예언에 등장하는 게 바벨론인 이유가 성전을 뭉개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성전이 뭐예요? 하나님이 계시고 하늘이 있어요. 그 하늘의 기운이 있어요. 하늘의 기운이 이 땅에 내려올 수 있는, 그 당시 바벨론이 남 왕국 유다를 침공할 때에 이 지구상에 5대양 6대주 이 지구상 표면 위에서 하늘의 기운이 내려와서 이 지표위에 동서남북으로 퍼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착륙지점, 낙하지점이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을 뭉개버린 겁니다. 하늘의 기운이 내려와서 동서남북 이 지구의 표면으로 퍼져나가야 하는 그 낙하지점을 뭉개버린 것이에요. 바벨론이.
이게 뭘 의미합니까? 바벨론의 태몽이 속이 새까만 수박이에요. 멸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입니다. 이 바벨론에 희망이 있다면, 지구 표면 위에 유일하게 하늘 기운의 착륙지점인, 예루살렘의 성전만이 이 바벨론이라고 하는 속이 새까만 멸망을 안에 포함하고 태어난 이 나라의 유일한 희망일 수 있었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자기의 희망을 자기가 뭉개버리고 맙니다.
성전에서 일어나는 일이 뭡니까? 성전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사의 핵심은 번제입니다. 여러 가지 제사가 있었지만, 절기 때 드리는 제사가 아니더라도 평소 때도 성전에는 상번제가 드려졌어요.
오늘의 번제 아닙니까? 상번제가 매일 매일 아침과 저녁 시간에 드려졌던 번제예요. 오늘의 번제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핵심이 번제예요. 이 번제가 핵심적인 행사인 성전에서 일어나는 일이 뭡니까? 성전에 참여하는 자들의 새까만 그 수박의 속살을 다 긁어내는 곳이 성전입니다. 번제가 바로 그 속살을 긁어내고 하늘 기운이 낙하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곳이었다는 것이에요.
성전에 참여하면서 싱싱하게 하늘에서 기운이 내려옵니다. 평강의 기운이 내려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이루시려고 하시는 섭리와 뜻의 기운이 내려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새까만 속살로 차있는 나를 번제 단에 올려놓고 태워 죽입니다.
자, 이렇게 함으로써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성전에 보면 유대인 남자의 뜰이 있고, 유대인 여자의 뜰이 있고 이방인의 뜰이 있습니다. 이방인의 뜰에는 이방인들이 참여하는 것이에요.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속이 새까만 수박들이니 유대인들이 자기 자신을 번제로 드림을 통해서 속에 새까만 속살을 다 긁어내고 하나님의 기운으로 가득 채웠을 때, 그 기운이 이방인 나라로 퍼져나갔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 왕국 유다가 심판을 받은 이유가 속이 새까만 수박들로 태어나서 이 세상 것들에 대한 소원을 갖고 내 감정에 충실합니다. 죄인의 감정에 충실한 것이 망조거든요. 이게 새까만 속살을 담고 있는 수박으로 유다가 그렇게 살았다는 겁니다. 새까만 속살을 성전으로 가지고 와서 번제의 의미가 하나님께 뇌물 드리는 걸 통하여 자기 새까만 속살을 그대로 이 세상에 실현시키기 위해서 번제를 드렸다는 것이에요.
유다가 망하므로 결국은 주변의 왕국 모두가 망하는데, 주변의 왕국들은 새삼스럽게 망하게 되었던 것이 아니라, 아예 태어날 때부터 속이 새까만 수박의 태몽을 꾸고 태어났습니다. 성전을 뭉개버렸기 때문에 제일 먼저 언급이 됐지만, 원래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생길 때부터, 자기 몫으로 받고 있었던 수박의 새까만 속살, 자기 몫으로 받고 있었던 새까만 멸망을 받은 것뿐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을 이렇게 보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내 눈이라도 빼주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 아이가 새까만 멸망을 속에 담고 있는 수박입니다. 그걸 아세요?
대한민국이 뭐 같습니까? 월드컵 16강 들어가고 응원의 열기가 굉장하던데요. 속이 새까만 멸망을 담고 있는 수박입니다. 별 수가 없습니다. 사랑스런 애인이 너무너무 예쁘지요. 그 애인이 뭔지 아십니까? 속이 새까만 멸망을 담고 있는 수박입니다.
바벨론 나라가 지금 이사야 예언의 태몽을 안고 이 땅에 태어납니다. 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바벨론이 태어나지만 속에 멸망을 담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9년의 비교적 짧은 세월, 나라의 수명으로서는 짧지 않습니까? 이 짧은 세월 동안에 메소포타미아의 중심부에서 발흥해서 그 평평하고 넓고 넓은 땅을 다 정복하면서, 화려한 왕궁과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도로를 건설하고 화려한 문명을 그 89년 안에 이루어 낸 굉장한 경제적 번영을 이룬 나라입니다. 사실 앗수르가 더 오래 되었고 영토도 컸지만 우리는 바벨론을 더 익숙하게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속에 새까맣게 멸망을 담고 태어나도 그런 번영을 이루더라는 겁니다.
대한민국의 경제가 발흥합니다. 5000년 역사 속에서 제일 잘 살고 있답니다. 속이 새까만 멸망을 담고 있는 수박일지라도 가능합니다.
내 아이 공부 잘 합니다. 속이 새까만 수박일지라도, 멸망을 담고 있는 수박일지라도 서울대 합격이 가능합니다. 우리 남편 속이 새까만 멸망의 수박일지라도 사업 잘 할 수 있습니다. 돈 잘 벌수 있습니다. 아주 건강합니다. 빳빳합니다. 80-90년 살 수 있어요. 그러나 멸망을 담고 있는 수박이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예외 없이 망한다고 하면 새삼스러울 게 없어요. 원래 태어날 때 모든 인간은 죄 값으로 인해서 다 멸망을 안고 태어납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원죄의 값을 통해서. 원래 멸망을 안고 태어나는 새까만 수박들입니다.
희망이 어디 있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을 대치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희망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한 순간이라도 바벨론이 예루살렘 성전을 뭉개버린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우고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다고 기록되어 있거든요. 그런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십자가에 달려서 내가 바로 같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내 마음의 성전을 뭉개버리는 것 같은 것입니다. 십자가가 유일한 희망입니다.
지금 여러분! 돈 버는 게 급한 게 아니에요. 지금 성적을 올리는 게 급한 게 아닙니다. 지금 결혼이 급한 게 아닙니다. 우선 속이 새까만 수박의 상태에서 내 속에 있는 새까만 속살을 긁어내는 게 급선무입니다. 화려한 번영을 이루고 있던 바벨론 최고의 전성기 때, 누가 89년의 짧은 생애를 마치고 이 세상에서 소멸할 것을 예측이나 했겠습니까? 급한 게 뭡니까? 얼른 마음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건을 기억해 내는 겁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건은 기독교의 근간입니다. 그것을 매일 기억하는 것이고 분초를 다투어서 마음에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존심 상해하는 사람이 있어요. 십자가가 태승철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속이 새까만 수박으로서 태어난 나 자신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여러분! 이상한 게 있어요. 유다나라가 자기의 새까만 속살을 번제를 통해 다 긁어내고 정말 싱싱하고 신선하고 생명을 주는, 그리고 이 땅의 삶의 현장으로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가야 되는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였다면 주변에 있던 이 열 나라들에게 어떤 역사가 전개되었을지 우리가 알 수 없어요.
지금 현재 상태를 한 번 볼까요? 가나안 땅, 팔레스틴을 중심으로 주변국가가 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기독교의 앤티 세력이 되었습니다. 팔레스틴, 그 가나안 땅은 지금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변은 다 이슬람국가들로 둘러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들이 가장 강렬하게 기독교국가와 맞서서 지금도 테러를 자행하고 있고 선교사들이 가도 가장 힘든 지역이 이슬람 지역입니다.
내가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도 내 새까만 속살을 긁어내지 못한 채로,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소원을 갖고 세상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느낌을 갖고, 그대로 행동하고 그대로 판단하고 그대로 걱정하며 살아가지요? 자식, 배우자, 친척, 부모님, 지인들이 제일 먼저 강한 기독교의 앤티 세력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사님들, 장로님들, 권사님들, 오래 믿은 가정의 자녀들이 기독교를 완전히 습관처럼 생각한다든지, 그래서 복음이 들어가기가 너무너무 힘들어진 그런 경우들이 너무나 많고, 기독교에 대해서 가장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자들도 어설프게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라든지 목사님이나 장로님이나 권사님 자제들이 많다는 것이에요.
'날마다 죽는다'는 사도바울의 말처럼 주님의 십자가복음을 마음에 기억하면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사건마다에서 내가 죽고 하늘의 기운이 흘러 들어오는 이 복음의 역사를 일으키지 못하고, 하늘의 기운을 그들이 만날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검은 속살을 그대로 안고 기독교는 습관이 돼 버리고 문화가 돼 버리고 규율이 돼 버리고 싱싱한 하나님의 살아계신 인격적 호흡이 내게서 느껴지지 않은 채로 살아가다가 결국은 주변전체가 다 망해버리고 마는 겁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여러분! 하늘기운이 내려올 수 있어야 됩니다. 내 새까만 속살이 빠져나가야 하늘기운이 내려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는 것은 모든 사건 모든 순간에 지속되어져야 됩니다.
상번제의 불길과 연기는 하루 종일 1년 365일 계속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기억되지 않는 순간은, 바벨론이 예루살렘 성전을 뭉개는 순간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만이 하늘기운을 받아들이고, 새까만 멸망의 속살을 거두어 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요, 길인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내 사업장에 하늘의 기운이 나타나기를 원하십니까? 새까만 속살의 멸망의 기운이 나타나기를 원하십니까? 그 멸망의 기운이 뻗어 나가는 동안에도 바벨론의 번영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세상 일이 잘된다고 내가 지금 생명의 길로 가는 게 아니에요. 세상 기준으로 잘 되고 못됨을 떠나서 내 마음에 변치 않는, 돈 없어도 평강이 깨어지지 않고 돈이 있어도 마음이 흔들려 교만하지 않고, 이러나저러나 이유 없는 평강을 잉태한 상태가 아니라면, 우리는 일이 잘되거나 못되거나 멸망의 속살을 담고 있는 상태로 반드시 참담한 현실이 벌어질 것이에요.
오늘 우리가 읽은 이후의 말씀을 읽어보세요. 얼마나 참담한 것인가? 너무나 잔인할 정도의 묘사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마세요. 그렇게 잔인할 정도로 형상화될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죄악이 큰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어떻게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시고 가시관을 쓰시고 못 박히시면서 돌아가셨는가를 상상해보세요. 왜 그렇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셔야 했습니까? 내 죄가 그렇게 지독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열 개의 나라들에 대한 잔인한 심판들이 주어질 때, 하나님에게서 그 잔인함의 이유를 찾지 마세요. 우리 죄악의 깊음과 추악함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바르게 성경을 보는 것입니다. 속살이 새까만 수박, 모두가 다 그래요. 모든 단체가 다 그래요.
오직 주님의 십자가, 제2의 성전이신 영원한 성전이시고 영원한 번제이신 주님의 십자가사건만이 우리에게서 속살을 다 파내고 하늘의 싱싱한 기운을 내려 보내고 그 기운이 나의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가게 해주실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새까만 멸망을 속에 담고 태어나지 않은 수박이 누구겠습니까?
유일한 희망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뿐입니다. 영원한 번제이신 주님의 십자가사건을 매 순간마다 기억함으로 날마다 죽어 새까만 속살을 다 거두어 내고 싱싱한 생명의 하늘기운으로 가득 찬 하늘의 수박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속이 새까만 수박으로 태어났지만 주님의 십자가사건을 받아들임으로써 몽땅 긁어낼 수 있는 은혜를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십자가붙잡고 하늘의 공기 하나님을 호흡하게 하시사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이웃이 사는 놀라운 은총을 찬양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