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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찾아와 주신 예수님(2222.2023.12.7. 상주경찰서 성탄축하예배설교)
요5:1-9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 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성탄을 축하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성탄절은 즐거운 날입니다. 그래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합니다. 기쁜 날이기에 ‘기쁘다 구주 오셨네.’ ‘기쁜 성탄’이라는 찬양을 부르고 있습니다. 첫 성탄 때 천사는 목자들에게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고 하면서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한 구주가 나셨다고 전해주었습니다. 2023년 성탄절을 맞이하는 상주경찰서 성도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 시간 옆에 계신 분들에게도 성탄의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기쁜 성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탄절만큼 기쁨, 즐거움, 평화와 같은 말을 많이 사용하는 날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간 한 번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정말 나에게 있어서 성탄절이 그렇게 기쁘고 즐거운 날인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감격적인 날이 성탄절인가? 아니면 말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감격도 없고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그저 그런 날은 아닌가?
여러분 지금 솔직히 어떠십니까? 우리에게 정말 기쁨이 없고 즐거움이 없다고 하면 다시 한 번 기쁨과 즐거움과 감격을 회복하는 성탄절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회복하는 성탄절이야말로 성탄절을 가장 잘 맞이하고 의미 있게 지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탄절은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기쁜 날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껏 어두움의 권세 아래서 탄식하던 우리 인류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의 탄생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은 온 인류에게 기쁨과 소망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구원의 주로 오셨습니다. 그는 임마누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는 우는 자에게 위로를, 병든 자에게 고침이 되시고, 실망한 자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죄악으로 말미암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고 사죄의 은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탄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구원운동의 절정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탄에 하나님이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받으셔야 하며 그리스도께 모든 감사와 존귀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023년 성탄절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기쁨과 소망 그리고 사랑과 생명을 가지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성탄을 맞이해서 상주경찰서 서장님을 비롯해서 임직원들과 예배에 참여한 성도들에게 평화와 은총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1.소외되고 절망에 있는 자들이 희망을 얻고 산 소망을 얻게 되는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만민을 위해 오셨지만 그분을 통해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믿는 자에게, 아무리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시고 축복하신다, 천국으로 인도하신다고 성경 말씀에 기록해 놓았어도 그 사실을 믿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도여러분, 성탄절을 맞이해서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나의 구세주입니다.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주셨습니다.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2023년 12월 25일 성탄절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탄생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실 구주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기적의 사건이요, 축복의 사건입니다. 온 인류에게 희망과 기쁨을 가져다준 놀라운 일이 성탄입니다. 사랑과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미움과 갈등과 반목이 있는 곳에 용서와 화해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외되고 절망에 있는 자들이 희망을 얻고 산 소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절망적인 한 사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중병에 걸려서. 그 병을 고쳐보려고 애를 쓴 사람입니다. 그런데 고치기는커녕 병세가 더 심하여 세월은 흘러 흘러 38년이나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전혀 가능성이 없는 절망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던 중에 좋은 소식 기쁜 소식 복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는 그 소식을 듣고 죽을 힘을 다하여 겨우 찾아가 와보았으나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병자들이 가득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듣는 소문에 그중에 선착순 한 명만 고침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것도 천사가 물을 동할 때 누구든지 제일 먼저 들어가면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낳는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38년 된 병자는 희망을 잃고 좌절과 절망 가운데 누워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더 이상 희망도 꿈도 없는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런 절망 가운데 있는 그에게 누가 부탁한 일도 없는데 예수님이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병이 얼마나 오래된 것을 알고 38년 된 병든 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을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위로해주시고 희망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38년 동안 고통을 당하면서 누워있는 그는 낫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고 물으셨을까요. 그분은 무소 부재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신데 그 상태를 몰라서 그렇게 물으셨을까요? 그는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병으로 고통 가운데 살다 보니 모든 것을 포기 한 채 절망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희망이나 소망 같은 것은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병을 천벌처럼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는 질문을 통해 희망과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믿음과 확신을 주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문제 앞에 체념합니다. 포기합니다.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어떤 변화도 기대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믿음과 소망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38년 된 병자는 우리 사회에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형식적이고 무의한 종교 생활에 젖어있는 우리에 모습은 아닌지 한번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오신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질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 자신의 영적 실상이 어떻습니까? 나의 영적인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습니까? 지금 이대로 하나님앞에 선다면 나는 어떤 모습인지 상상해 보셨습니까? 자신의 영적 실상을 정말로 안다면 지금 이대로 생각없이 그냥 살아간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까? 실상을 모르니 하나님을 찾지도 않는 것입니다. 주님이 먼저 찾아와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네가 정말 변화되고 싶어 하느냐’,‘새사람이 되고 싶어 하느냐’,‘구원받고 싶어 하느냐’,‘축복받고 싶어 하느냐’ 성탄하신 예수님께서 상주경찰서에서 예배드리시는 성도여러분에게 고통과 아픔과 질병에서 고침을 받아서 건강하기를 원하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네가 정말로 복 있는 인생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느냐? 물고 계십니다. 영육 간에 건강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은지를 묻고 계십니다. 이 물음에 확실한 대답과 의지가 여러분에게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반응을 보여주느냐 따라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성탄의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팔자타령만 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내 형편과 처지만 말하는 변명의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그동안 수십 년 그렇게 살아왔으니 계속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면서 현실만 말하는 무능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해 봐야 안 된다는 패배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이미 늦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내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지 말고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믿음으로 말을 선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믿음대로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말한 대로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변화에 대한 꿈이 있는지 정말로 믿음으로 살고 싶어 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모든 병에서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새롭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에게 낫고자 하는 희망을 주신 예수님은 이제 자기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고 희망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실 뿐 아니라 실제로 모든 병을 고쳐 주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어떤 죄인이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거듭날 수 있고 변화될 수 있고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놀라운 구원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신앙이 더욱 절실합니다. 이번 2023년 성탄절에 주님의 은혜를 받으시고 각자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희망이 없는 인생에게 임마누엘로 먼저 찾아와 주신 예수님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탄을 가리켜 흔히 ‘임마누엘’이라 칭합니다. ‘임마누엘’이란‘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마1:23).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로 죽어 있던 우리 인간들과 교제를 나무며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함께 머물러 계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과 원수 되었던 관계를 모두 청산하시고, 새롭게 온전한 사랑의 관계를 이루시며 우리와 영원히 교제를 나누는 데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탄절을 맞을 때마다 우리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모든 죄와 허물을 청산하고 나를 찾아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38년 된 병자를 찾아오셨습니다. 38년된 병자 모습이 어떠한지 본문을 살펴보면 한 마디로 ‘절망의 인생’이요 포기의 인생이요. 낙오자의 인생이요 꼴지 인생입니다. 아무도 그을 거들떠보지 않는 외로운 인생이요 희망이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탄의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1절‘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 가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도 유대인의 풍습에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2절‘예루살렘에 있는 양 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출입문이 여러 개 있었습니다. 그중에 양문(羊門)이라 불리는 성문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제사를 위해 양들을 데리고 올 때 바로 이 문을 통과했습니다. 그 문 곁에 연못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베데스다’ 즉 ‘자비의 집’이었습니다. 행각 다섯 개가 있는데, 그 안에 각색 병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3-4절‘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고 하였습니다. 각종 난치병 불치병 환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천사가 가끔 내려오고 그때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그때 누구든지 먼저 들어가면 어떤 병에 걸렸던지 고침을 받는다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그 병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된 병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5절‘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38년 동안 병을 앓고 누워있으니 옆에서 그를 도와줄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말한 것처럼 가족도 친척도 다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체념과 자포자기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원망과 한탄 그리고 다른 사람을 향한 미움과 저주 등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통 가운데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로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세상은 그를 거들떠보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 인생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희망을 주셨습니다. 이런 자들을 구원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목적입니다.
낫고자 하는 갈망과 믿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네가 낫고자 하느냐’하는 말씀은 당장 이 시간에 낫고자 하는 갈망을 가졌느냐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이 없으면 믿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소망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표현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떤 일을 하시기 전에 소망을 주십니다. 빌2:13절‘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하나님은 먼저 우리 가운데 소원을 주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시107:9절‘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한 가지 부족한 영적인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사모함입니다. ‘간절함’으로 사모하는 마음이 점점 식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38년된 병자, 아무런 희망도 없고, 그저 죽기만을 기다리는 환자에게 찾아오셔서 그 질병에서 고침받기를 원하는 소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사40:31절‘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여호와를 앙망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문제앞에서, 시련 앞에서, 질병앞에서, 또한 더욱 큰 은혜받기 위하여, 이러한 식지않는 열망,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열망, 끝까지 낙심하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새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 환자는 병이 나았으면 하는 간절한 소원을 갖게 하셨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이름만 자비의 집이었습니다. 사실은 그곳 역시 무자비한 경쟁의 자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자비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진정한 ‘베데스다’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음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예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로 절망적인 자에게 찾아오신 분입니다.
우리들은 혼자서는 절대로 살아 갈 수가 없는 인생들입니다. 함께 어울어진 숲을 이루어서 광야와 같은 인생길에 지쳐있는 다리입니다. 세파에 찌들린 가슴, 찬바람에 시린 어깨를 서로 기대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게 우산하나 들려주는 것보다는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듯이, 울고 있는 사람에게 손수건 한 장 넘겨주고 가는 것보다는 어깨를 기대어 주며 울 수 있는 따듯한 가슴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어두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인생들이기에 서로 일으켜 세워주고 아픈다리 서로 기대어 줄 수 있는 평화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욕망을 조금만 내려놓고 손해보는 삶이라도 함께 어울러져 줄 수 있는 성탄절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로 절망적인 인생들에게 찾아와 주셔서 함께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먼저 찾아와 주시는 사랑입니다. 그게 바로 성탄절입니다.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스스로 찾아 나서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먼저 그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먼저 찾아와 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죄로 인하여 절망에 빠진 성도여러분에게 찾아오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연약할 때 사랑하여 찾아주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너무 잘 알고 계신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찾아가셔서 어떻게 하십니까? 6절에‘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 형편과 사정과 처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냥 아시는게 아니라 속속들이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체험적으로 아시고 도와주시는 사랑의 예수님 이십입니다.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오늘도 우리에게 자비와 궁휼로 은혜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6절‘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하였습니다. 왜 예수님은 물으셨을까요. 그는 너무 오랜 세월 병에 걸려 살다 보니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망이 없이 절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병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어떤 희망도 없는 상태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낫고자 하냐는 질문을 통해 희망을 불어넣은 것입니다. 먼저 마음에 상처를 치유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영의 눈을 열어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문제를 앞에 자신을 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의 대답을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7절‘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에게는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참 답답한 일입니다. 주님이 찾아 오셨지만 주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만 늘어놓습니다. 이사람은 주님을 만났지만 주님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단지 낯선 사람으로 생각하였기에 ‘물이 동할 때 나를 물에 넣어주었으면 좋겠오’라는 말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능한 인간, 불신앙적인 인간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찾아왔지만 주님께 진짜 구할 것을 못 구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만났지만 자기 방법, 세상 방법만을 추구하면서 불평과 원망만 늘어 놓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오늘 교회안에 있는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치료하러 찾아오셨지만 주님께 진정 구할 것을 구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 자기 방법만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에 대한 무지와 불신앙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 주님이 오늘 나에게는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을 치료하러 왔습니다. 주님은 나의 치료자이십니다. 내 영혼을 치료하고 내 정신을 치료하고 내 육체를 치료하십니다. 믿음은 내 문제를 다 하나님앞에 내어놓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나의 염려와 무거운 집을 다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응답을 믿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십니다. ‘너는 낫을 수 있다는’확신과 믿음을 주십니다. 그에게 치유의 기적을 베푸신 겁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8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세마디의 명령이 나와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일어나라. 네 자리를 들라. 그리고 걸어가라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보통 사람이 누워 있는데 '일어나라'고 한다면 너무 당연합니다. 또 조금 아파서 맥없이 누워있는 사람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하셨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환자는 38년을 누워 있어서 자기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형편이요. 그래서 연못의 물이 움직일 때도 누워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 이 사람은 전신이 마비되어 있었습니다. 무엇하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기에 듣고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8절‘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축복의 말씀입니다. 치유의 말씀입니다. 기적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그 병자의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솟구쳤습니다. 그의 온몸에 힘이 생김을 알았습니다. 마침내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들고 갔습니다. 9절‘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면 권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는 겁니다. 우리 인생이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우리 인생이 만사가 OK가 됩니다. 그러므로 패배 의식, 소외감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몰라 줘도 예수님은 나를 알아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모습이 아무리 형편없어도 초라하게 보여도 나를 소외시키는 분이 아니십니다. 나를 사랑하여 주십니다. 축복하여 주십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 안에서는 절망적인 인생이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부족해도 나를 응원해 주시고 희망을 주시고. 권능으로 역사하여 주시기 위해 성탄 하셨습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함께해주는 사람이 귀합니다. 그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감사합니다. 이렇게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사람들 중에 함께하셨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기쁨과 축복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 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들이 가장 힘들고 지치고 어려울 때 함께해주신 다는 것입니다. 그 만인에게 주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11:28절‘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주님에게로 가면 누구든지 살아납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평화가 임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삶에 승리를 이루게 됩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곳에는 회복과 부흥이 있습니다.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위에 사람의 자리마다 늘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기뻐하고 예물을 드려 축하해야 할 성탄절의 의미는 임마누엘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것이 성탄절이라면 우리도 이 성탄에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하지 않겠습니까? 무엇이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것인지를 깨달아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탄절이 기쁘고 즐거운 이유는 잘 먹고 잘 놀고 선물을 받는 날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구원자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구원자로 오신 예수이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으로 오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초림하신 예수님은 약한 자와 병든 자들의 친구가 되셨고 절망하는 이들과 함께하시며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고 하늘로 가셨지만 지금도 보혜사로 우리 가운데 오시며 임마누엘의 은총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이끌어주십니다. 예수안에서는 절망이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얼마든지 희망의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형편에 있든지 오늘 성탄 하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요1:12절‘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우리를 구원 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희망의 인생, 승리의 인생, 축복의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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