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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토) - Loan Me A Dime
오전 1시 10분. 자꾸만 새벽에 잠이 깬다. 모스크의 기도소리가 상당히 크게 메아리친다. 장애물 없는 바다여서 더 크고 더 넓게 퍼지나보다. 무슬림들의 기도 속에 바다를 항해 하는 선원들을 위한 내용도 있으면 좋겠다. 잠시 선실 밖으로 나가보니 텅 빈 바다에 군함 두 척만 정박되어 있다. 제네시스는 지부티 앵커리지의 유일한 세일 요트다. 아니 500미터밖에 오래전 주인이 귀국했는지, 방치 된 듯 관리하지 않는 세일요트가 한 척 앵커링 되어 있기는 하다. 주인 없는 빈 배는 어둠에 매몰되어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인지 배터리가 빨리 방전되고 있다. 큰 냉장고에 냉기가 사라지고 있다. 아무래도 큰 냉장고의 냉각 시스템이 배터리 방전과 연관이 있나보다. 현재의 나로서는 열심히 충전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오전 4시에 또 깬다. 서늘한 밤에 잠을 잘 자두어야 하는데... 고독은 뚜렷한 실체 없이 달그림자처럼 마음을 파고든다.
어제 장대위님을 만나러 가면서 보니 제네시스 선저에 2~4센티의 바닷말 같은 것과 따개비들이 보인다. 심하지는 않지만 조만간 선저에 AF 페인트를 칠해야 할 거다. 이탈리아에서 선저 오염이 심하지 않길래, 청소만 하고 AF를 칠하지 않았더니 2달 만에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다. 다들 태국을 추천한다. 인건비가 낮아 가성비가 좋다고. 그래서 세계일주 선장님들에게 문자를 보내, 선저청소와 AF페인트 칠 할 가성비 좋은 마리나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한다. 어쨌든 동남아에서 선저 AF와 몇 가지 문제들은 해결하고 한국으로 갈 생각이다.
그러다 영국인 선장 아담이 내게 보낸 링크를 다시 발견한다. 이들은 이런 좋은 사이트를 많이 알고 있다.
https://www.pdfdrive.com/world-cruising-routes-e189201132.html
오전 7시 20분 오늘 일정을 정리해 본다. 간단하다. 없다. 어차피 밖에 나가봐야 흙먼지 가득한 아프리카, 에어컨 있는 호텔까지 가려면 택시비가 왕복 14,000원. 커피 값도 든다. 배에 가만히 있으면 바람이 불어 덜 덥다. 스님들 동안거처럼 배에서 가만히 책이나 보다가, 오후 5시 넘어 슬슬 걸어서 바와디 마트 가서 야채나 좀 장보고, 며칠 전 봐둔 그 가게에서 치킨 하나 먹고 오면, 최고의 하루가 될 거다. 여동생이 내게 일정을 물어 이렇게 답하니 난리다. 커피 값 줄테니 배에 혼자 덩그라니 있지 말라는 성화다. 이래저래 나는 누군가를 속 썩이는 존재인가보다. 미안하다. 윈디를 살핀다. 오늘 내일은 약간 약해지는데, 그 다음이 문제다. 나는 바람 약한 4일이나 순풍 4일이 필요하다. 자꾸 성급해지는 마음을 꾹꾹 밟아 누른다.
문득 이 적적과 고독이 어쩐지 익숙하다는 느낌. 돌아보니 2002~2005년, 경기도 곤지암에서 혼자 말을 기르며 살던 때. 하늘을 보면 숲에 가려 우물 같던 8만평 자작나무 숲에서 자주 마주했던 그 적막이다. 그러나 그때는 나도 술 잘 마시고 삼겹살도 잘 구웠다. 말 타러 온 고객이나, 지도하던 대학생들, 서울서 택시를 대절해 오던 벗들 덕에, 일주일에 두어번 쯤은 숲이 시끄러워졌다. LP 음악과 소주, 삼겹살에 인문학적인 대화들이 말똥처럼 굴렀다. 별빛 가득한 숲, 다들 취해 소란을 피운 것은 즐거운 기억이다. 독일제 클랑필름 모노모모 블록 진공관 앰프에 ‘관짝만한’ JBL L220 스피커. 그 절묘한 조합으로 듣던 Duane Allman & Boz Scaggs - 'Loan Me A Dime' 10센트를 빌려야 하는 한 남자의 절박과 좌절이, 당시 숲에 갇혀 있던 나의 고독과 절망에 구체적 형상을 주어 드러나게 했다. 그 숲에서 함께 소주에 고독과 별을 섞어 단숨에 들이키던 대학생들이, 이젠 40줄 넘은 임대균 선장, 김진영 선장들이다. 오래 묵은, 그래서 향기 짙어지는 인연들이다. 몇 안 되는 나의 소유 중 가장 소중한 기억들. 내친 김에 Wilson Pickett & Duane Allman - Hey Jude 까지 가보자. 오늘 아침식사는 추억이다. 익숙한 고독이다. 절망하고는 별 상관없다. 고독이 깊어질수록 때가 차오른다. 이제 그런 것쯤은 안다. 지부티에 구름이 몰려온다.
독일 선장 마르코가 Many friends go to rebak marina in Langkawi and were happy 라며 rebak marina in Langkawi 를 추천한다. 어쨌든 잘 알아보고 신중하게 AF 페인트 칠 할 장소를 알아보자. 마르코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고 위치를 묻자, 운하 입구에서 210Nm 거리이며 맞바람이 거세서 현재 3Kn/h 로 운항중이라고 한다. 이집트 Hurghada 인근에서 고생중인 것 갑다. 윈디로 현장 바람을 보니 16노트 맞바람이다. 엄청나다. Yes, right now we go to safaga - soma bay 로 피항 한다니 다행이다. 노련한 독일 선장 마르코도 바람에게 호되게 당하는 중이다. 아덴만에는 저렇게 피항 할 곳도 없다. 좌로 예맨, 우로 소말리아.
일본서 배 구해가지고 오는 아우의 요트가 강릉에 잘 도착했다고 한다. 5시간도 안 걸릴 거리를 8시간 걸려 죽을 뻔 했다고 한다. 윈디로 보니, 역풍 17노트다. 윈디로 강릉 바람, 수에즈 바람을 이리저리 확인 중이다. 나를 비롯해 가까운 선장들이 모두 역풍으로 고생중이다. 머지않아 바람이 바뀌겠지. 물극필반(物極必反) 달도 차면 점차 기운다.
홍 선교사님께 연락이 왔다. 모기 퇴치제 2개, 중국된장 1개, 부채 1개, 물 6개들이 5팩, 중국 쌀 5키로를 부탁했는데. 벌써 부탁한 것들을 모두 준비했다고 하신다. 너무 빨라, 깜짝 놀랐다. 오후 4시에 만나 물품을 전달 받기로 한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오후 2시 30분 김석중 선장님께 문자가 온다. ‘인도양. 바람이 바뀌고 있습니다. 상황 보시고 앞섬 오른쪽으로 돌아서 오보크 까지 가서 기후보고 출항을 추천 드립니다.’ 어? 아침과 윈디가 또 달라졌나? 윈디를 다시 보니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약해진다. 일, 월 이틀 바람이 약하다. 화수목 3일만 잘 버티고, 소말리아 ‘보사소’ 앞쯤에서 오만을 향해 방향을 바꾸면, 옆바람 또는 크로스홀드다. 마음을 먹고 다시 윤태근 선장님께 조언을 구한다. ‘나 같으면 어제 금요일에 출항했습니다. 언제 바람이 바뀐다는 기약도 없는데, 마냥 기다릴 수는 없잖습니까? 일정 중 절반만 바람이 약해도 찬스입니다. 이걸 놓치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몰라예. 가다 안 되면 다시 돌아오면 되죠!’ 역시 긍정의 화신. 나는 엔진 오일을 체크하고, 기어오일을 체크하고, 배에 디젤을 가득 채운다. 배에 350리터, 좌갑판에 190리터, 우갑판에 260리터, 디젤은 총 800 리터다. 이번에 이걸 다 쓰더라도 오만까지만 가자! 거기서 사이클론 오기 전에 스리랑카 galle로 간다. 이번엔 반드시 오만 살랄라로 갈 거다. 여기저기에서 긍정적 신호가 오고 있다.
오후 3시 45분. 홍전도사님을 만나러 선착장에 갔다. 전도사님께 일단 짐을 내려놓고 함께 커피라도 하실 수 있겠냐? 여쭈니, 일부러 시간을 내셨단다. 그럼 짐을 그대로 차에 두고 함께 가시죠. 첫 번째로 간 카페는 라마단으로 오전만 운영 한단다. 그냥 지부티 쉐라톤으로 갔다.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승마와 요트 세일링에 대해 내가 말을 많이 했다. 쉐라톤에서 홍선교사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지부티 4대 마트 중의 하나인 카지노 마트에 갔다. 야채와 과자, 돼지고기 300그램, 마늘을 사고 홍전도사님의 댁으로 갔다. 통조림과 김치를 챙겨주신다. 사모님과 아이들에게 감사와 작별 인사로 강릉에서 만나자 인사하고 홍전도사님과 함께 바와디 몰로 간다. 캠핑 의자 한 개와 캔콜라를 산다. 그리고 아시안 푸드에서 치킨 벤또(개당 1,300지부티 프랑)를 두 개 사고, 곁의 가게에서 통닭 세트(2,000 지부티 프랑)를 샀다. 이렇게 지부티 프랑을 동전 하나 남김없이 말끔하게 처리했다. 실은 홍전도님이 가져 오신 물건이 내가 드린 돈보다 훨씬 많은데, 한사코 돈을 더 안 받으시겠다 하시니 내가 저녁이라도 사겠다고 우겼다.
식당의 점원들은 수다를 떨어가며 여유만만이다. 벤또와 통닭 양쪽 다 30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다. 이번엔 홍전도사님이 지부티의 전도 방법에 대한 계획을 말씀하신다. 어제 말씀 중에 부인이 한국 식당을 하신다고 하여, 전도사님에 대한 지원이 많지 않거나 지부티 물가가 엄청나니 생활에 보태시려 부업을 하시려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오해였다. 월드뱅크 자료에 따르면 지부티 전체 실업률이 28%다. 또 15-25세 청년 실업률 77% 다. 국민 1/3이 직업이 없고, 청년의 2/3가 직업이 없다. 이런 상황에 무슨 전도가 되겠냐는 거다. 홍전도사님은 일단 한국식당 같은 것을 창업하여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급여를 주며 자연스레 전도하겠다는 방법의 일환으로 식당 창업을 기획하신 거였다. 아하.
이미 프랑스어권인 모로코에서는 전도를 위한 한국 식당(어서와) 창업에 성공하여 까르프 체인에 입점하기로 되어 있단다. 또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모로코에서 전도를 위한 식당 체인점 운영 교육을 하시고 있단다. 홍전도사님도 그 교육에 참가하고, 독자 브랜드 또는 ‘어서와’ 지부티 브렌치를 개장하실 계획인거다. 놀랍다. 전도를 위해 사업을 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엄혹한 이슬람 국가에 전도를 한다니. 그 스케일과 기획 추진력에 찬사를 보낸다. 아프리카의 기독교 청년들은 이런 일을 하고 있었다.
오후 7시 20분. 식사가 한꺼번에 나왔다. 수준은 변두리 분식집 정도. 한국 식당이 어느 정도 수준만 되도 경쟁력이 충분할 것 같다. 전도사님 사모님은 이미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김치, 샌드위치, 김밥 등을 판매하고 계신다. 지부티의 외국인들에게 김치 판매라니, 이것도 분명한 한류다. 벤또는 간신히 비우고 통닭은 한 조각씩만 먹고 아이들을 위해 포장했다.
나는 홍전도사님께 내 인생의 쇠사슬에 대해 고백했다. 그분은 이미 교회에서 몇몇 자매들이 비슷한 경우가 있어 내용을 잘 알고 계셨다.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고 함께 길고 긴 기도를 했다. 나는 어렴풋 내가 지부티에 회항한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여러 가지 복선이 깔린 회항이었다. 은총에 감사하고 홍전도사님의 차를 타고 부두로 왔다. 무거운 짐도 같이 텐더 보트 까지 운반하고 실어 주셨다. 우리는 아프리카 지부티 부두에서 기약 없는 작별 인사를 했다. 내가 지부티에 다시 오기는 쉽지 않다. 여름이면 한국에 오신다니, 한국에서 뵙기로 하고 나는 손을 흔들며 제네시스로 돌아왔다. 혼자 배에 짐을 싣고 텐더를 끌어 올리니 땀이 비오 듯 한다. 일을 마치고 바로 샤워를 했다. 하지만 몸에서 물을 닦으니 곧장 땀이 물처럼 흐른다. 콕핏에 앉아 이 글을 정리하며 땀을 식힌다.
오후 10시 17분. 독일선장 마르코에게 질문이 도착했다. 나는 자세히 답한다. 수에즈와 이스마일리아 똑 같이 디젤은 1.5달러/ 리터다. 양쪽 다 더럽다. 하지만 이스마일리아 디젤이 훨씬 더 더러우니, 너는 반드시 수에즈에서 디젤을 사라. 수에즈의 Badar maket에서 식료품을 살 수 있다. 택시비는 15 이집션파운드다. 다행이다. 나도 이런 정보를 그에게 제공할 수 있다.
오후 10시 30분. 지부티 앞바다는 역풍 10노트 정도다. 오늘은 일단 일찍 잠자리에 들고, 내일 새벽 2~3시에 출항하기로 한다. 4시간가량 눈을 붙이자. 드디어 출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