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봄 어느 이른 아침, 독일 북 바바리아 주 뷔르츠부르크 교구의 한스 S. 신부에게 예기치 않은 불청객들이 들이닥쳤다. 검찰청에서 보낸 검사와 수사관들이었다. 그들은 사제관 곳곳을 샅샅이 수색한 끝에 세탁물 틈이나 서랍 아래 숨겨져 있던 약 13만 유로(한화 1억 9천만 원)의 현금을 찾아내고 그 자리에서 신부를 체포했다. 그리고는 그를 성당 자금을 횡령해 유용한 혐의로 기소했다.
계속된 추가 수사 끝에 밝혀진 그의 횡령액은 모두 150만 유로(한화 22억 원). 그를 주님의 목자로 믿고 따르던 신자들과 지역사회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검찰 수사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독일 가톨릭 내에서 한스 S. 신부 사건과 유사한 재정 스캔들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마그데부르크 교구에서 4천만 유로, 림부르크 교구에서 5백만 유로의 교회 돈이 사용처가 불분명한 채 유용된 사실이 밝혀졌고, 뮌스터 교구의 한 신부는 30개의 비밀 개인계좌를 보유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처럼 세계 가톨릭교회 주변에서는 교회의 재정을 둘러싼 추문이 심심찮게 불거져 나온다. 방금 언급한 독일 사례 이전에 미국에서도 2006년 플로리다와 오하이오, 시카고 등지에서 각종 자금 횡령과 불법 유용 사건으로 가톨릭교회 전체가 큰 홍역을 치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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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효숙 기자 |
신자들의 헌금, 투명하고 올바르게 쓰이고 있을까?
그렇다면 한국의 가톨릭교회는 불투명한 재정과 회계를 둘러싼 불명예스러운 잡음으로부터 과연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독일과 미국처럼 극단적이고 파렴치한 사례가 드러나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로부터 손가락질 받거나 하는 경우는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비록 드물긴 하나, 2000년에 인천교구 부평1동 성당에서 사제의 횡령과 비리 사건이 법적인 소송으로까지 옮겨간 적이 있었고, 비교적 최근인 2009년 광주대교구의 임동성당에서도 사제의 공금횡령 문제가 불거져 신자들이 교구청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비단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치닫지 않더라도 교회 내에서 불투명한 재정과 회계 문제 때문에 사제와 신자들, 혹은 신자와 신자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이는 걸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교회 재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그간 교회 차원에서 진행되어온 노력을 점검해보고 혹시나 빈틈은 없는지, 있다면 그걸 메우기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를 한 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주요 수입원은 신자들이 자신의 본당에 납부하는 교무금, 주일 헌금, 특별 헌금, 모금 등이다. 본당은 교구에서 각 본당의 사정에 따라 정해준 비율대로 수입의 일부를 교구 분담금으로 납부한다. 그러면 각 교구는 본당이 납부한 교구 분담금 가운데 일부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 납부하고, 다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그 운영비를 제외한 일부를 교황청에 보내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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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교구의 ㄱ 성당은 매월 본당 홈페이지를 통해 신자들에게 재정보고서를 공개한다. 사진은 ㄱ 성당 홈페이지에 올라온 재정보고서. |
그리고 이렇게 들어오고 나가는 재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교회법전>과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는 각 본당과 교구마다 재무평의회를 설치해 재정운용과 감사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각 교구별로 재정 운영규정에 따라 소속 본당에 당해 연도 결산서와 다음 해 예산서를 작성해서 보고하도록 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감사도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대교구의 경우에는 자체 재정 운영규정에 따라 달마다 재정보고서를 작성하여 교구장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각 교구는 또한 교무금과 헌금 이외에 본당이 각종 기금이나 모금 형태로 거둬들이는 수입에 대해서도 일반 회계에 포함해 내역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1998년에 도입돼 전 교구로 확산된 통합전산화 프로그램인 양업시스템은 각 본당으로 하여금 그날그날의 수입과 지출을 빠짐없이 등록하도록 함으로써 회계의 투명성과 보고 체계의 효율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당 재정 운영의 투명성 위한 노력에도 불구 한계는 존재 사제의 막강한 권한 … 견제하기 어려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먼저, 본당의 재정 운용에 관한 궁극적인 책임과 권한을 본당 사제에게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본당 사제가 회계 관리를 잘못해 교회 재산에 대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힌 경우에 그 책임은 전적으로 사제가 진다. 하지만 이는 뒤집어 보면 책임이 큰 만큼 권한도 그에 비례해 막강하다는 걸 의미한다. 다시 말해, 사제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거나 최악의 경우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재정을 유용한다고 하더라도 그걸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물론 재정평의회나 사목평의회라는 견제 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평의회의 위원장과 위원의 임명 권한을 사제가 쥐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라 제대로 된 견제와 감시가 이뤄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회계 처리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장도 마찬가지다. 본당 사무장을 채용하는 것도 사제의 권한이기 때문에 사무장이 사제의 지시를 거스르기란 여간해서 쉽지가 않다. 게다가 간혹 사제가 재정과 회계에 관련된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일일이 챙길 수 없는 허점을 이용해 사무장이 부정을 저지르는 사례도 있다. 물론 여기엔 본당 사무장에게 주어지는 열악한 처우 문제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어쨌든 교회 조직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특별 기금 · 감사 헌금 · 수익사업 … 견제와 감시의 사각지대 ‘좋은 곳에 쓰기 위해서’일지라도 편법 사용 눈감아서는 안 돼
그 다음으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큰 부분은 건물 개보수나 신축 등을 위해 특별 기금을 모으고 지출하는 과정에 있다. 사제나 사목위원들이 공사업체로부터 별도의 대가를 챙기거나 대금을 부풀린 다음 개인 통장에 넣어 관리하는 편법을 쓰더라도 장부상으로는 이를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 이렇게 조성된 돈은 완전히 개인적인 용도로 유용되기도 하고, 때로는 본당 운영을 위한 활동비 명목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에 관해 본당 사제를 맡고 있는 ㄱ 신부는 “예전에는 많은 사제가 별도의 통장을 만들어 관리했다. 하지만 딱히 이를 부정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본당 수입의 40%가 넘는 교구 분담금을 보내고, 사회복지기금, 건물 유지비, 인건비를 제하고 나면 본당 교우들을 위해 사용할 돈이 거의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행이라는 이유로 편법을 용인하기 시작하면 투명성의 경계는 마냥 흐릿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ㄱ 신부는 본당 재정을 투명하게 운영하기 위해 본당에서 발생하는 모든 수입과 지출을 하나의 통장으로 관리한다. 부족한 본당 재정은 예산 수립과 지출 비용을 최소화하고 꼭 필요하지 않은 곳에는 돈을 쓰지 않는 원칙을 세워 해결하고 있다. 이를 위해 ㄱ 신부는 활동비와 생활비를 쪼개 신자들의 모임 후 식사비용을 지출하고 신자들의 각출을 유도하기도 한다.
간간이 들어오는 신자들의 감사헌금이나 특별헌금을 공식적인 회계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도 역시 비판의 소지를 안고 있다. ㄴ 신부는 “수입이 발생했음에도 회계 상에 수입으로 기재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투명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입과 지출을 무조건 드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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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당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위한 교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 (*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한상봉 기자 |
한 편, 최근 들어서 늘어나고 있는 본당의 자체 수익사업은 견제와 감시의 사각지대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자체 수익사업으로 성물방을 운영하는 정도에 그쳤다면 이제는 봉안당과 영안실, 결혼식장 등으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 사업이 확대되는 만큼 재정의 규모도 대폭 늘어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감사 시스템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대구대교구의 한 본당에서는 장례식장 조성 때부터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평협회장이 주임 사제가 회계보고를 등한시하고 식장 관리를 실장 한 사람에게 맡기는 등 독단적이고 비민주적인 운영을 일삼았다며 문제를 제기하자 사제가 교중 미사에서 공개적으로 반박을 가하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교구 지침만 제대로 따라도 충분히 투명해질 수 있어 재무평의회의 독립적인 운영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 필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제기한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최재철 신부(수원교구)는 “교구에서 내리는 지침대로만 하면 거의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매일 양업시스템을 통해 수입과 지출을 보고하는 업무 구조를 확립하는 동시에 월별, 분기별로 통장 잔액 증명을 해서 장부상 잔액과 통장 잔액을 대조해 교구와 신자들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즉 가장 기본이 되는 것부터 충실히 지키라는 말이다.
그리고 아직 재무평의회를 두지 않고 사목평의회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하는 본당은 재무평의회 설치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 본당에서 사목위원으로 활동하는 ㄷ 씨는 “본질적으로 활동을 집행하는 기구인 사목위원회더러 활동 과정에서 지출한 자금내역을 감사하라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회계의 집행과 감사를 분리함으로써 상호 견제와 감시가 가능한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재무평의회가 지금보다 더 독립적으로 운영되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도 중요하다. ㄱ 신부는 “재정을 투명하게 하려면 재무평의회가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본당 사제가 이래저래 간섭해서는 투명해질 수 없다”고 강조한다. 재무평의회 위원직의 독립성을 보완하기 위해 위원장은 사제가 임명 하더라도 위원들의 경우 신자들에게 참여의 폭을 대폭 늘려줌으로써 보다 민주적이고 투명한 그림을 만들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꼭 비리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신자들이 교회의 재정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게 되면 교회에 대한 신뢰와 관심도 좀 더 높아질 수 있다. 이는 결국 교회에 대한 애정으로까지 이어져 궁극적으로 교회 재정에도 보탬이 될 거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신자 임성무 씨의 조언은 한 번쯤 새겨볼 만 하다.
투명한 재정 운영은 교회 구성원 모두의 의무와 책임 사제와 신자들, “거룩한 제물 사용에 두려움 갖고 진지해져야”
이런 인식의 전환은 사제들뿐만 아니라 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요구된다. 간혹 신자 중에서는 교회 재정이나 운영은 사제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매년 본당 예결산을 공개해도 관심을 두고 꼼꼼히 들여다보는 신자가 드문 게 현실이다. ㄴ 신부는 “본당의 모든 수입은 교우들의 기부금으로 형성된다. 기부금을 내는 주체는 당연히 그 결과에 대한 보고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신자들은 자신이 낸 기부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를 알고 공동의 책임의식을 공유할 의무가 있다.
이 외에도 본당 재정 운용에 회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최재철 신부는 “본당 안에 회계를 아는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며 이전 재정평의회 위원에 회계사인 신자가 참여해 본당 재정 운영 매뉴얼을 만들어 활용한 것이 본당 재정 운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에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물론 이것은 당장 본당 차원에서 풀기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그렇다면 교구차원에서라도 회계 전문가들을 연결시켜주고 사제와 사무장들에게 관련 교육을 지원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핵심은 투명한 재정 운영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해결에 대한 의지다. 오늘날 교회가 가진 모든 재산은 하나하나가 모두 하느님을 향한 신자들의 믿음의 표현이다. 김성길 신부(의정부교구)는 “거룩한 재물을 쓰는 것에 대해 사제와 신자들은 항상 두려움을 갖고 진지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교회 재정의 투명화가 곧 영성의 문제로 직결되는 이유다.
* 위 기사 네번 째 단락, "2009년 광주대교구 임동성당에서 제기된 횡령 문제"와 관련하여, 광주대교구 측에서 "당시 주임신부의 횡령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조사 결과 확인된 바 없으며, 임동성당 사무장이 기소됐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는 내용을 전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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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