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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낙랑군 수성현은 어디인가?(국사편찬위원회 답변내용)
사람이 하늘이다 추천 0 조회 292 15.12.11 14:49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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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5.12.11 16:08

    첫댓글 참고로 국사편찬위원회의 답변 중 중요한 부분의 글자를 제가 파란색으로 변경하였으며, 한자로 쓰여진 부분은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한자음을 추가하였습니다.

  • 15.12.11 16:11

    晉書/地理上/平州
    樂浪郡漢置.統縣六,戶三千七百.朝鮮周封箕子地.屯有 渾彌 遂城秦築長城之所起.鏤方 駟望

    도대체 국사편찬위원회를 포함한 강단사학계의 눈에는 '樂浪郡漢置', 즉 '낙랑군은 漢나라에서 설치하였다'는 글귀는 보이지 않나 봅니다. 4세기 초엽의 이치니, 교치니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어쨌든, 낙랑군 遂城縣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遂城 일대라는 것을 국편에서 일단 인정한다는 것은 놀라운 진전이네요.

  • 작성자 15.12.11 16:46

    국사편찬위원회의 답변 중 "선생님의 지적대로 진나라 평주는 현 중국 하북성 지역에 위치하였으며, <진서> 지리지의 낙랑군 수성현遂城縣 또한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 일대라는 데 대하여 이론은 없습니다. <진서> 지리지의 낙랑군이 어느 때의 낙랑군을 지칭하느냐의 문제가 관건일 것입니다."라고 한 부분은 국사편찬위원회의 착각인듯 합니다. 현 강단사학계의 통설에서는 진나라 평주의 위치를 현 중국 요령성 조양의 동쪽으로 보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진서> 지리지의 낙랑군 수성 또한 한반도 평양 일대로 보고 있습니다.

  • 작성자 15.12.11 16:26

    @사람이 하늘이다 제 질문은 <진서> '지리지'에 나타난 평주의 위치는 분명히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인데 왜 현 강단사학계의 통설에서는 평주의 위치를 현 중국 요령성과 한반도 북부로 보느냐를 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국편에서는 엉뚱하게 위와같이 답변을 했군요.

  • 15.12.11 17:19

    @사람이 하늘이다 그렇군요. 그런데 저번 상고사 토론회에서 공석구 교수의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갈석산의 유무를 빼고는 동일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진서지리지의 수성현은 한반도의 것으로, 반면 태강지리지의 수성현은 요서(여기서 요서가 정확히 어디를 말하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만...)의 것으로 주장하는군요. 착각이 아니라면 그나마 국편의 이해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긴 합니다.

  • 작성자 15.12.11 17:33

    @지구인 현 강단사학계의 통설은 공석구 교수의 주장과 동일합니다. <진서> '지리지'에서 평주의 위치가 현 중국 하북성 일대를 가리키고 있으므로 창려군과 요동군 및 현토군도 모두 하북성지역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국편의 주장처럼 낙랑군이나 대방군은 고구려 미천왕의 공격으로 인하여, 4세기 초엽(314~333) 모용외慕容廆에 의하여 요서군으로 이치된 곳이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으나(물론 이것도 말이 안되지만) 창려군이나 요동군이 하북성 지역에 있는 것은 어떻게 주장할 수 있을까요?

  • 작성자 15.12.11 16:33

    본문에서 첨부한 <진서지리지> '평주'조의 기록입니다.

    “평주는 생각건대 우공의 기주지역이며, 주나라의 유주이며, 한나라의 우북평군에 속했다. 후한 말에 공손도가 스스로 평주목을 칭했다. 그의 아들 공손강과 강의 아들 공손연이 모두 제멋대로 요동에 의거하니 동이 9종이 모두 복속하였다. 위나라는 동이교위를 설치하여 양평에 거하였고, 요동ㆍ창려ㆍ현토ㆍ대방ㆍ낙랑 등 5개 군을 나누어 평주로 삼았다. 후에 도로 유주에 합하였다. 공손연을 멸한 후에 호동이교위를 두어 양평에 거했다. 함녕 2년(AD 276년) 10월, 창려ㆍ요동ㆍ현토ㆍ대방ㆍ낙랑 등 5군국을 나누어 평주를 설치했다. 26현 18,100호이다" <진서지리지> '평주'

  • 작성자 15.12.11 16:35

    平州. 按, 禹貢冀州之域, 於周為幽州界, 漢屬右北平郡. 後漢末, 公孫度自號平州牧. 及其子康 康子文懿竝擅㩀遼東, 東夷九種皆服事焉. 魏置東夷校尉, 居襄平, 而分遼東 昌黎 玄莵 帯方 樂浪 五郡為平州, 後還合為幽州. 及文懿滅後, 有䕶東夷校尉, 居襄平. 咸寧二年十月, 分 昌黎 遼東 玄莵 帯方 樂浪 等郡國五置平州. 統縣二十六, 戶一萬八千一百.

  • 작성자 15.12.11 17:11

    <삼국지> '공손도전'에 따르면 공손연의 멸망과 관련하여 "성을 함락하여 (공손연이 임명한) 상국相國 이하 수천 명의 수급을 베었고 공손연의 수급을 낙양洛陽으로 보냈고, 요동遼東, 대방帶方, 낙랑樂浪, 현도玄菟가 모두 평정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평주는 공손씨 정권의 강역이며, 공손연을 멸한 위나라 또한 평주를 두었다가 유주에 합하였으며, 서진이 함녕 2년(276)년에 다시 평주를 설치하였던 곳입니다. 이를 통하여 공손씨가 차지하였던 지역이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 강단사학계는 공손씨가 한반도의 황해도 일대까지 차지한 것으로 말하고 있지요.

  • 작성자 15.12.11 17:23

    @사람이 하늘이다 제가 비정한 서진의 평주 위치와 통설의 평주 위치 지도입니다.

  • 15.12.11 19:37

    사람님의 수고에 격려를 보냅니다...다만, 여전히 '공회전되고있다'라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군요...즉, 그것은 국편이나 사람님이나 물론 통설이나 모두 史實이 아닌 부분을 머릿속에 미리 그려놓고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는 '각자 자기들에게 유리한 사료들을 중심으로해서 짜맞추어진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고 보이는데, 그것은 '역사왜곡의 단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있기 때문입니다...어쨋든, 사람님의 주장이 그나마 '초기왜곡'에 속하지만, 국편이나 통설에서는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후기왜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아마 그들은 '그 왜곡의 틀'을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것입니다.

  • 15.12.11 19:50

    어쨋든, 국편이나 통설에 맞서서 분투하시는 한편으로 '왜곡되지 않은 역사'를 찾는 작업에도 눈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하북성'까지 찾으셨으면, '오리지널'을 찾을 수 있는 1차관문은 넘은 것으로 봅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남아있는 사료들' 속에서 '하북성'을 찾아내실 수가 있었었지만, 이제부터는 반드시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갈석과 좌갈석'과 같은 문제는 반드시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만, 그 실상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갈석산은 오로지 백석산 하나뿐'인데, '무체현 갈석산은 착오'이고, '진황도시 갈석산은 가짜'라고만 보시면, 결코 '實史'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물론, 모두 가짜입니다만,]

  • 작성자 15.12.12 11:37

    @카오스 한민족의 상고사를 공부하는 것은 밤하늘의 천문을 공부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봅니다. 상고사의 수많은 사건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있지요. 밤하늘의 천문현상은 북극성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지요. 북극성을 알면 복잡해보이는 별들의 움직임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복잡다단해 보이는 한민족의 상고사도 고조선의 중심부에 위치했던 갈석산을 이해하면 한눈에 들어옵니다. 또한 모든 역사학자들의 주장들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지요.

  • 작성자 15.12.12 11:36

    @사람이 하늘이다 제가 갈석산을 중심으로 한민족의 상고사를 이해하는 이유는 갈석산은 하나라 우임금 시절 황하 하류 해변가에 위치했으므로 그 시간과 공간의 좌표를 뚜렸하게 알 수 있습니다. 갈석산은 그 시간과 공간의 좌표가 뚜렸하기 때문에 과학적으로도 그 위치를 알 수 있으며, 중국의 수많은 사서들을 통해서도 그 위치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나라 장성의 유적도 남아 있습니다. 즉 갈석산은 문헌기록과 고고학적 유물과 과학적 합리성으로 그 위치를 알 수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석산을 중심으로 한민족의 상고사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카오스님은 무엇을 중심으로 한민족의 상고사를 이해하며, 그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15.12.12 15:46

    @사람이 하늘이다 카오스가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으므로 아마 피곤하실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사람님을 괴롭힐려는 의도가 아니므로 오해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만, '무엇을 중심으로 한민족의 상고사를 이해하려하느냐?'고 물으셨으니, (굳이 답을 드린다면) '합리성과 현실성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즉, 이는 '현존 역사사료들이 모두 합리성과 현실성에 맞지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여러차례 지적햇었지만, '갈석'이 '갈석산'으로 둔갑하는 과정이 비합리적이고 또 비현실적이라는 것이지요. 3천년전 현,섬서성 사람이 무슨 재주로 치수를 해가면서 현,발해만까지 온다는 것입니까? '왜곡'일 수 밖에요...

  • 15.12.12 15:56

    @카오스 그래도, '답(實史)'를 찾으려면, 역시 무엇인가 실마리는 필요할 것입니다.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갈석산'과 견줄 수 있는 힌트로는 '河(하)'가 있습니다...즉, 고대인들이 과연 무엇을 '河(하)'라고 하였었으며, 왜 '河(하)'라고 하였었는지?...그리고 그 '河(하)'의 끄트머리가 왜 '海(해)'인지?를 근원적으로 추적해 보시면 답이 보입니다. 역사왜곡자들이 모든 기교를 부려서 '왜곡해 둔 것(현존사료)들'을 액면 그대로 믿어버리면 결코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어쨋든 너무 피곤해 하시는 것 같아서 이제 댓글을 그만 두겠습니다...자주 들여다 보겠으니 필요하시면 글을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사람님의 건승을 진정으로 바랍니다

  • 작성자 15.12.13 20:24

    @카오스 하나라는 현 중국 하남성의 황하 일대에 위치했던 조그마한 나라였는데 과연 하나라 우임금이 하북성 보정시 일대까지 와서 치수를 했을까? 이런 카오스님의 의문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저 또한 우임금이 하북성 보정시 일대까지 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 하북성과 산서성 등을 모두 포함하는 우공구주의 강역은 춘추전국시대와 진.한대를 거치면서 지나족의 강역이 확대됨에 따라 그 지역이 옛날부터 자기들의 강역이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우임금의 전설을 접목한 것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 15.12.13 23:19

    @사람이 하늘이다 아, '통설에서 현,하남성 정도로 보는 하나라'으l 우임금을 '현,섬서성사람'이라고 한 것에 대한 지적이시군요...일단, 카오스도 사람님이 말씀하신 바와같이 '춘추전국시대와 진.한대를 거치면서' '그 지역이 옛날부터 자기들의 강역이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우임금의 전설을 접목한 것'으로 보지만, 그 위치는 하남성이 아니라 섬서성이었었다고 본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라'의 존재여부나 위치와 관계없이...'우임금은 어디까지나 전설'이므로 '현,섬서성에 접목된 우임금은 현,하북성의 발해만까지 오지 않았었다'는 것을 지적했었던 것이고, 결국, 하나라, 우임금과 관계없이 '碣石'과 '海'는 섬서성 부근이었다는 의미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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