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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편 지파들이 요단강에 세운 제단(10-14)
이스라엘의 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열정도 아니 많은 제물도 아니고 큰 제단도 아닙니다.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그분이 요구하신 방석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즉, 순종이 예배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만든 하나님을 향한 우상숭배가 됩니다.
10내가 발람을 위해 듣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오히려 너희를 축복하였고 나는 너희를 그의 손에서 건져내었으며 11너희가 요단을 건너 여리고에 이른즉 여리고 주민들 곧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었으며 12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의 칼이나 너희의 활로써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13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 14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10-14)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동편으로 복귀하되 요단강 언저리에 제단을 축조했습니다. ‘요단 언덕 가’를 히브리어 ‘겔릴로트’ 그대로 고유명사로 읽으면서 지명을 가리킨다고 말하거나, ‘원탁’, ‘원형’을 의미할 수 있는 히브리어이기에 기념을 위해 돌들을 둥글게 세워놓은 장소(stone circle)로 보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단강 ‘언저리’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무난해 보입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이 쌓은 제단은 ‘보기에 큰 제단’이었습니다. 여러 역본들이 ‘압도적인(imposing) 제단’으로 번역합니다. 성막의 번제단보다 훨씬 큰 제단이 세워졌음을 의미합니다. 번제단의 본체 크기는 가로세로 각 5규빗(약 2.5m), 높이 3규빗(약 1.5m)이었습니다. 다만 경사로를 통해 오르내린 것으로 볼 때(레 9:22) 본체 아래에 밑판이 놓여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요단강에 세워진 제단은 이것보다 훨씬 큰 제단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제단의 위치에 대해 학자들 및 역본들의 견해는 요단 서편과 요단 동편의 두 입장으로 나뉩니다. 많은 학자들과 역본들은 그 제단이 요단 서편에 건립되었다고 보면서 11절 하반절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on the side that belongs to the people of Israel)으로 번역했습니다(개역개정; NIV; ESV,RSV; NJB; NASB). 그러나 제단 위치는 요단 동편이 분명합니다.
우선 11절 전반절의 ‘가나안 땅의 맨 앞쪽’이란 표현은 ‘가나안 땅의 맞은편/정면/반대쪽(물)’을 의미하므로, 가나안 땅을 기준으로 건너편인 요단 동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으로 해석된 히브리어 어구도 달리 해석되어야 합니다. 70인경(LXX)을 비롯한 다른 역본들은 그것을 ‘이스라엘 자손의 맞은편’으로 옮깁니다(TNK; KJV).
우리가 1:15에서 살펴본 대로, ‘에베르’는 ‘건너편’을 뜻합니다(신명기 1:1; 3:20). 여기서 ‘이스라엘’은 서편 땅에서 제단 건축의 소문을 들은 지파들이므로 ‘이스라엘의 맞은편’은 요단 동편 땅입니다(참조. 24:2의 ‘유브라데 강 건너편[에베르]’). 요단 동편에서 독자적인 대형 제단이 축조되었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서편 이스라엘의 온 지파들이 실로에 모여 즉각 전쟁을 준비했습니다(11). 그들이 전쟁을 불사한 이유는 동편의 독자적인 제단 설립을 이스라엘로부터 정치적, 종교적 분립의 시도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며, 또한 한 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서 이탈한 행위로 간주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명기 율법은 우상을 섬기고 배교한 성읍과 지역은 칼로 응징하여 진멸할 것을(헤렘) 명령합니다(신명기 13:12-18).
이렇게 싸울 태세를 갖춘 뒤, 일단 진상 조사를 위해 대표단을 선발해 동편으로 보냅니다. 이 조사단의 책임자는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였습니다. 비느하스 역시 제사장이며, 후에 제3대 대제사장으로 위임되는 인물입니다(24:33; 사사기 20:28). 비느하스는 민수기 25장의 바알브올 사건에서 음행 사건의 주동자를 처단하는 결정적 활약으로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건져낸 바 있습니다. 비느하스를 중심으로 요단 서편의 열 지파에서 아마 지파의 두령들이 대표자로 선발되어 동편으로 건너갑니다. 제사장이 책임자가 되어 이 사건을 조사하는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이 일이 이스라엘의 신앙, 곧 여호와 예배에 도전하는 시급한 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항의하는 서편 지파들(15-18)
사안의 본질을 정밀하게 살피는 조사위원회가 꾸러지고 위원장으로 제사장 비느하스가 선임되었습니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교회를 정쟁(政爭)의 판으로 만드는 사태나 평화를 위협하는 헛소문은 정밀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15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16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17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18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15-18)
진상조사와 항의를 위한 서편의 대표단은 동편의 두 지파 반에게 강력히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들은 제단을 별도로 축조한 일은 하나님께 대한 ‘범죄 행위’라고 규탄합니다. 여기서 ‘범죄’는 특별히 흔치 않은 ‘마알’이란 단어가 사용됩니다. 마알의 범죄는 ‘신실치 못하여 저지르는 죄’, 곧 신의의 약속을 깨트리고 믿음을 위반하는 범죄를 가리킵니다. 아간의 범죄에도 또한 ‘마알’이란 딱지가 붙었습니다. 아간의 범죄는 하나님과 약속한 헤렘 법을 위반한 이유로 마알로 분류되었을 것입니다.
서편의 지파들이 보기에 동편의 독자적인 제단 축조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배교 행위였습니다(16). 비느하스와 대표단은 ‘브을의 죄악’, 다시 말해 수년 전 모압 광야에서 발생한 바알브올 사건을 끄집어내면서, 그 음행 사건과 견줄 만한 배교 행위라고 주장합니다(17). 가나안 땅 정복과 직후의 땅 분배는 갈렙의 나이와 진술에 비추어 볼 때 가나안에 입성한 후 7-8년 정도 소요되었기에, 요단강 도하 직전의 사건이었던 바알브올 사건이 발생한 시기 또한 7-8년 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서편 대표단의 말, 곧 ‘오늘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받지 못했다’(17)는 표현은 그 일이 아직 기억 속에 생생하고 후유증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민수기 25장에서 상세히 보고되는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뼈아픈 경험이었습니다. 민수기 22-24장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발람의 저주의 시도가 무산되고, 오히려 발람을 통한 축복의 선언으로 반전되어 큰 위기를 넘긴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직후 바알브을 사건이 터집니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싯딤에서 모압과 미디안 여인들과 집단적으로 성적 음행을 범했는데(민 25:1), 브올의 신, 즉 모압 신과 연루된 제의적 성관계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발람이 꾀를 내서 주동한 사건이었습니다(민 31:8,16). 이때 그 범행으로 불과 하루 동안 24,000명이 죽었습니다. 사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상황이었는데, 현재 조사단의 대표인 제사장 비느하스가 핵심 주동자를 현장에서 처형함으로써 그날 염병이 그쳤습니다(민 25:7-8). 불과 수년 전에 하나님을 떠나 반역 행위를 했던 대가로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셔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현재 요단 동편 지파들이 정체불명의 제단을 쌓아 또다시 심각한 반역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아마 요단 서편 지파들은 그 큼지막한 제단을 여호와의 제단이 아닌 우상의 제단으로 간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서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려 한다’고 꾸짖었습니다(16). 그들의 제단은 여호와를 거역하는 행위이며 그 배역의 대가는 재앙입니다. 그들의 사악한 제단은 다시 한 번 여호와의 두려운 재앙을 초래할 것이 분명합니다(16,18). 요단 서편의 온 이스라엘은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의 형제들이 독립적인 제단을 쌓았던 이유가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고 단정 짓습니다. 다시 말해, 그 압도적으로 커다란 제단은 우상의 제단입니다!
다른 제단을 쌓지 말라(19-20)
역사에 대한 기억과 성찰을 통해 합리적 대안으로 설득하고 감화의 언어로 소통합니다. 혐오사회를 치유하는 기도문을 만들어 봅시다. 평화체제로 가는 노래를 지어 공유합시다. 경청은 대화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상상력으로 위기사회에 샬롬의 입맞춤을 선사할 것입니다.
19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20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19-20)
서편 지파들은 왜 동편 형제들이 배교 행위로 간주될 별도의 제단을 건립했는지 나름대로 그 이유를 추정했던 것 같습니다. 서편 대표단의 발언에 비추어 볼 때, 동편 지파들은 요단 동편 땅은 약속의 땅인 서편 땅에 비해 부정하다는 관념을 품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그들은 동편 땅을 위한 자신들의 독자적인 제단이 필요함을 느끼고 제단 건립을 추진했을 수 있습니다. 서편 사람들은 말하길, 만일 동편 땅이 부정하다고 생각되면 차라리 여호와의 소유지인 서편으로 건너와서 땅을 쪼개서 함께 살자고 제안합니다.
서편 지파들은 자신들의 땅이 축소되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손해를 볼 것이지만, 차라리 그럴지언정 동편 지파들이 여호와를 거억하고, 또한 자신들에게도 맞서는 일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이 제안에는 동편 지파들의 범죄가 필연적으로 자신들에게도 재앙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염려가 담겨 있다. 아간 한 사람의 범죄도 이스라엘 전체에 무서운 재앙을 초래했는데, 하물며 두 지파 반의 집단적 배교로 인한 재앙은 얼마나 더 그러하겠습니까?
교회의 정체성과 연합을 위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양극화된 사회로 경색시키는 핵심 요인을 찾아 알리고 작은 골방에서의 기도가 절실한 시간입니다. 평화의 아침을 여신 예수님을 따라 개인과 교회는 화평케 하는 자로 세상에 보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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