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시집가는 날
아침 햇살이 중천에 떠올라 격자문양의 창호를 뚫고 방안에 환한 빛으로 들어와 있다.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식구들이 둥근 상에 둘러앉았다. 식전에 돼지가 우리를 뛰쳐나와 한바탕 소동을 치는 바람에 아침 식사가 늦었다. 아직도 밖에서 돼지의 꽥꽥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된장찌개를 한 수저 떠시던 아버지가 오늘은 어느 집에 수퇘지가 있는지 알아봐야겠다고 말씀을 하신다.
돼지가 발정이 나서 며칠째 동네가 떠나갈 듯이 소리를 친다. 평소에 순하던 돼지가 짝 짓기 할 때가 되면 아주 거칠어진다. 야트막한 우리를 뛰쳐나오려 해서 넓은 판자를 듯 대어 높이 막아 놓았다. 어제도 돼지가 우리 밖으로 뛰어 나오는 바람에 채마밭이 엉망이 되었다. 할머니와 나는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돼지를 우리로 몰아넣는데 아주 고생을 했다.
어머니는 음식 찌꺼기 버리는 것이 아깝다고 하시며 돼지를 한 마리 사다 키우기 시작했다. 크게 손이 가지 않는데도 가끔 새끼를 낳으면 목돈을 만질 수 있어서 재미가 쏠쏠히 있으신가 보다.
아침을 드신 아버지가 마을 회관에 나갔다가 위 골목 우진 네 집에 수퇘지가 있어서 부탁하고 오셨다고 하시며 서둘러 들어오셨다.
우리 동네는 동물병원이 없는 시골이라 돼지를 교배시킬 때가 되면 수컷을 키우는 집을 수소문하느라 애를 쓰셨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잠잠해진 돼지를 쳐다보시며 신랑 잘 만나고 오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시며 굳게 닫힌 문을 열어 주신다. 축 늘어진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돼지는 앞장서 걷는다.
아버지는 긴 작대기를 들고 돼지가 엉뚱한 곳으로 가려 할 때마다 워워 소리를 내시며 몰고 가신다. 고마운 마음에 우진 네 아버지를 드릴 담배 한 보루를 사서 들고 엄마와 나도 뒤를 따라간다.
길에서 만나는 어른들은 돼지 시집보내러 가느냐고 먼발치에서 한마디씩 건네신다. 신랑을 만나고 온 이후 돼지가 아주 순해졌다. 돼지우리를 들여다보시는 부모님은 이번에 새끼를 가지면 좋겠다고 하신다. 단번에 임신이 되면 좋은데 잘되지 않으면 3주쯤 있으면 또 발정기가 찾아와 소란을 피우기 때문이다.
돼지는 115일의 임신 기간이 있다. 일 년에 두 번 임신이 가능하다고 한다. 조금씩 달이 차서 배가 불러오는 돼지를 볼 때마다 손 주 가진 며느리를 바라보듯 기특하다는 듯이 쳐다보신다.
초가을 들어가면서 교배를 한 돼지가 겨울에 새끼를 낳게 되었다. 돼지가 추울까 봐 어머니는 헌 이불을 갖다가 돼지우리 사방에 둘러 쳐주었다. 새끼 낳을 때가 되어 제 몸 가누지도 못하고 부른 배를 깔고 누워 있는 돼지에게 볏짚을 넣어 주시며어머니는 “순산해라~ 순산해라~” 라고 당부를 하시며 돼지의 배를 썩썩 쓰다듬어 주신다. 돼지는 바닥에 배를 깔고 일어나지를 않는다. 돼지가 새끼를 낳을 때가 되면 어머니 아버지는 집안에서 산통 기미만 살피신다.
드디어 돼지가 새끼를 낳는 날이다. 돼지는 한 번에 새끼를 10마리 이상 많이 낳기 때문에 아버지가 어미에게서 나온 새끼를 먼저 받아주시면 어머니가 건네받아 태에서 나온 물기를 얼른 닦고 방안으로 안고 들어 오셨다. 한 마리를 낳고 나면 한참을 지나야 또 한 마리를 낳는다. 그사이 아버지는 추위에 언 몸을 녹이시며 짚 봉쇄기에 있는 먼저 태어난 돼지를 보며 연신 웃으신다. 정말 내 동생이라도 태어난 것 같이 나도 예뻐서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 본다. 밤새 낳은 돼지 새끼는 모두 12마리였다. 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아서 두 분은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밤새 해산의 고통을 한 어미 돼지에게 늙은 호박을 쓸어 넣고 배추 잎사귀와 새끼 낳고 나서 먹이려고 사다 놓은 사료를 넉넉히 넣고 가마솥에 푹 끓인 죽을 첫 국밥으로 주었다.
새끼를 낳은 동물에게도 부정 타지 않고 새끼를 잘 키워 내라는 바램에서 인지
아버지는 새끼줄에 청 솔잎을 끼워 만든 금줄을 쳐 주셨다. 돼지우리에 금줄 처진 것을 보고 마실 오신 이웃어른들도 밤사이 우리 돼지가 새끼를 낳은 것을 알게 되셨다. 첫국밥을 먹은 어미돼지에게 어머니는 가장 작고 약하게 태어난 돼지를 가장 좋은 젖꼭지를 찾아 물려 주셨다. 돼지는 처음 입댄 젖꼭지를 젖을 뗄 때까지 빤다고 한다. 힘센 녀석들이 좋은 젖 차지하면 약한 녀석이 치여서 잘못 클까 봐 염려하는 어머니의 방비였다.
돼지가족이 하루아침에 대식구가 되었다. 어미 품속을 찾아든 새끼들은 제대로 눈을 뜨지도 않고 어미의 가슴팍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야단법석이다.
아롱이다롱이 돼지 형제들이 참 예쁘다.
어머니는 새끼들이 조금씩 커지면 어미가 있는 우리와 새끼들이 노는 우리를
자유롭게 왔다갔다 다니며 놀 수 있도록 열어 주셨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한
우리에 두면 수시로 젖을 빨아대는 새끼들 때문에 힘든 어미를 생각하여 새끼를 옆 칸으로 보내고 칸을 막아 둔다. 서서히 새끼들에게 어미 없는 우리에서 적응을 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나절 막아둔 칸막이 문을 열어 주면 어미와 떨어져 있던 새끼들은 어미의 품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앙탈을 부린다. 어미는 바깥 놀이 잘 다녀온 자식이 기특하다는 듯이 젖가슴을 내주며 다리를 쭉 펴고 누워 있다.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새끼에게 젖을 주는 어미의 모습이 아닐까?
새끼 돼지들이 젖을 끊고 죽을 먹기 시작하면 한 마리는 수퇘지 임자인 우리 돼지 새끼의 아비가 있는 집으로 고마움의 표시로 보내고 나머지 11마리는 각각 다른 집으로 입양을 보낸다. 대식구가 북적거리다 어미 혼자 단 촐 한이 남아 있는 모습을 보면 쓸쓸해 보인다. 새끼를 떠나보낸 아픔은 짐승이나 사람이나 같겠지~
2018.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