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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 5번 유형: 완전한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들 모르는 것이 있으면 5번 유형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이들은 비범하고 예민한 지각력을 사용해서 올바르고 정확한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고 매사에 독자적인 생각을 갖고 혁신적이고 창의적이다. 온전한 앎과 분별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5번 유형의 사람들은 ‘움직이는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큼 완전한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쓸모없고 무능해지는 것은 두려워한다. 그래서 지식을 습득하지 않고 편안한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얻기 위해 노력한다. 신문을 읽어도 광고까지 읽고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려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는 그 목소리의 메시지를 받아서 이들에게는 들어가는 것은 있지만 나오는 것은 별로 없다. 하나님이 풍성하게 주시는 것을 받아서 누리는 것을 모르고 오직 받아들이기만 한다. 늘 지적 공허감에 배가 고프다. 관찰을 좋아하고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며 자기만족을 추구하고 혼자 있고 싶어하며 대책없고 어리석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으려는 욕구에 의해 행동한다
왜 이런 성격이 되었을까? 냉담하고 옹색한 환경에서 자라서 부모의 따스한 애정과 다정한 접촉을 받지 못해서 외로워했을 가능성이 있다. 어려서 부모님이 부부 싸움을 할 때에 재빨리 피해 숨어서 싸움이 끝날 때까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던 경험이 있을 수 있다. 숨어서 할 일은 책을 읽거나 깊이 생각하는 일이다. 부모의 싸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던 그 공간이 마음의 고향이다. 혹은 원치 않은 임신으로 잉태부터 사랑받지 못했던 경험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감정 교류가 적었던 사람일 수 있다. 아니 이런 저런 환경으로 감정 교류를 거부한다. 어머니로부터 어린 시기에 분리된 경우, 혹은 지나친 관심이 싫어서 거리두기가 체질화된 경우, 과잉보호 받고 질식해서 가능하면 보호의 시선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경험이 있다. 애가 울 때에 건너편 방에서 엄마가 고스톱 치느라 돌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엄마가 사랑을 주지 않았기에 감정 전달이 안 된 경우일 수 있다. 그래서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하다. 이 유형이 최초로 경험하는 것은 일종의 공허감이다. 따라서 충족을 갈망한다.
태어나기 전 자궁 속에서 ‘나는 남들이 원하지 않는 존재’라는 경험을 하였을 수 있다. 어느 집사님의 경우 인데 아이를 임신했을 때에 산모가 극심한 고통을 받았는데 쌍둥이 아니가 태어났는데 둘 다 유아 자폐증상을 보여 치료한 경우를 보았다. 다행이 부모가 교회에서 이런 교육을 받아 초기에 발견하여 이제 거의 완치 되었다. 아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엄마가 그런 메시지를 주지 않았지만 몸이 긴장하니까 태아가 그렇게 반응한 것이다. 또는 정신적으로 또는 육체적으로 강압적인 부모를 가졌거나 지나치게 속박하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 중에 많다. 그들의 내면세계는 방해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자유 공간이다. 따라서 안으로 도망을 친다. 그런데 도망친 내면세계가 풍성해야 하니까 이들은 충족시키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받아들인다. 2번을 주고자 하는 충동이 문제인데, 5번 유형은 오직 받고자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2번은 밖에서 자신을 인정할 때에 충족되고 5번은 내면세계가 풍성할 때에 충족된다.
5유형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자신들 안에 있는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과의 거리감을 좀 두고 관계를 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이 갖고 있는 두려움을 겉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안으로 쌓아두는 방식으로 세상과 자신을 관계하는 사람들이란다. 온전한 앎, 깨달음, 분별하는 능력을 추구 한다. 1번은 완전하신 하나님을 추구하는데 5번은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다. 베이컨의 후예들이다. 단체 모임을 피한다. 나서는 것을 싫어한다. 공허함을 피하기 위해 끝도 없이 탐구한다. 텅 빈 것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식만이 내면의 공허를 채울 수 있다고 믿는다. 지적이고 논리적이고 냉철한 관찰자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사색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고 통찰력이 뛰어나고 분석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이 건강할 때는 여러 가지 사물을 유별난 이해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관찰할 수 있고 정신이 예리하며 호기심도 강하고 사물을 정확히 알아내는 지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나 물질이 아닌 지식에 집착한다. 생각이 많아 생각하다 행동이 안 된다. 반면에 집중력이 뛰어나다.
5번의 수집 욕구는 흔히 생각, 관념, 지식, 침묵을 좋아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다른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피한다. 이들은 또 자신을 도우려는 사람들조차도 피한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배후 동기를 갖고 있거나, 그것을 이용해서 나를 조정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느껴질 때는 더욱 거리를 둔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독립적이 되기 위해서 남이 돌보아 주는 것이나 어머니와의 정서적인 연결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한다고 한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려고 한다. 한발 물러나 관망한다. 자신만의 성을 가진다. 내성적이 많다. 안경을 쓴 사람이 많다. 정보를 눈에 넣는 일에 집중한다. 위대한 지적 체계를 발명한 사람이다. 정보의 진공청소기다. 발명가 발견자, 창조자가 이들이다. 객관적이고 질문이 많고 사물을 자세히 탐구하는 데 흥미를 느끼는 연구가, 발명가다. 깊이 파고든다. 감정을 드러내고, 야단 법석 떠는 것을 싫어한다. 의사소통, 더불어 나눈다는 말을 싫어한다. 외부 세계가 싫어 내면으로 도망친 사람은 5번 유형이 되고 내면세계가 싫어 밖으로 도망친 사람은 7번 유형이 된다. 외부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내면으로 도망치고, 내면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외부도 도망치면 6번이 된다. 5번은 주목을 끄는 일은 거부한다.
5번 유형은 부모 역할을 잘못 한다. 어린이는 부모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에너지를 끊임없이 요구하는데 이것을 못 견디어 한다.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 피곤하다. 나서지 않고 예의 바르다. 초연하고 객관적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 나는 총명하며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 이라고 부른단다.
이 유형에게 최대의 유혹은 지식이다. 그들에게 지식은 힘이다. 알면 삶이 보장될 수 있다고 믿는다. 각종 세미나, 여러 가지 이론을 좋아한다. 에니어그램을 좋아 하는 사람도 이 유형일 가능성이 많다. 끝없이 지식을 탐하기만 한다. 여행을 좋아한다. 끝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방어기재는 후퇴, 거리 두기다. 독신을 좋아한다.
이론과 관념과 추상적 세계에 머물기를 좋아한다. 칼 마르크스는 “철학자들은 세계를 변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집단이다”라고 비난하였다. 5번은 행동하지 않고 해석하는 일에 머문다. 아는 것 즉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들은 비교하거나, 비난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왜냐면 경청은 행동을 위한 준비태세를 말하기 때문이다.
5번 유형의 근원적인 죄는 탐욕이다. 타인이나 하나님에 대한 자만심을 경계해야 한다. 이 유형의 함정은 감정적 인색함이다. 자신을 내놓는데 인색하다. 스크루지와 같은 유형이다. 삶을 즐기지 않고 아낀다. 선천적으로 금욕적이다. 정보를 얻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색하다. 크레물린이다. 철의 장막이다. 보살핌을 거절한다. 나중에 받을 상처를 미리 피한다. 관계를 맺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으니까! 엄마와 아빠와 마주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이 없으니까! 따라서 ‘너희도 이와 같이 행하라’라는 행동하는 종교인 기독교인보다 깨달음의 종교인 불교를 선택할 가능성이 많다. 십년 벽면 수행을 했다는 성철 스님 같은 분은 아마 이 유형이 아닌가 싶다.
개발하면 뛰어난 상담자가 될 수 있다. 초연함이 강점인 동시에 죄다. 보수적이고, 예의 바르며 신중하고 냉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는 영국 신사 같은 사람이다. 남의 얘기를 잘 듣고 잘 기억하고 객관성을 가지고 잘 분별한다.
5번 유형은 실행과 행동을 배워야 한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5유형이 해야 할 평생 숙제다. 이 유형은 사랑학에 대해서 도사지만 막상 사랑은 잘 못한다. 이론에 강하고 실전에 약한 사람이다. 이들에게는 명상과 기도가 힘의 원천이다. 그 다음에 행동으로 나가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성풍이다. 디트리히트 본회퍼처럼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 나누는 것을 배워야 한다. 한국의 방송 통신대학에 석사 학사 학위가 8개를 가진 분이 있는데 방송대 개설 10개 학위를 전부 따기 위해서 다시 공부를 시작한 사람이 있다는데 그래서 무엇을 하겠는는 것인가?
이들이 건강하지 못할 때에는 자꾸만 속세를 떠난 사람처럼 현실과 사람들로부터 고립을 고집하며 매우 적대적으로 변해간다. 그런데다가 지나친 앎에 대한 욕구와 분별하려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정보를 요구하고 수집하고 자신의 안으로 성을 쌓고 폐쇄하는 불편함을 보여준다. 성을 박차고 나와야 한다. 삶으로부터 초연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라. 관계 속에서 가까움과 친밀함을 두려워 말라. 이미 충분히 가졌음을 기억해야 한다.
지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다, 관찰자이지 참여자가 아니다. 예의 바르고 깔끔하고 남을 편하게 한다. 자기 보호와 생존을 위해 필요 이상의 지식을 수집한다. 항상 자신의 영역을 만든다. 수도승, 발명가, 과학자, 라이브러리 등이 많다. 남의 영역 침범 안한다. 문제에 부딪치면 감정을 스톱시키고 이성으로 처리를 한다. 멀리 있는 사람은 따스하게 느끼게 하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은 밀어낸다. 자녀들조차도 너무 밀착되는 것을 경계한다. 누구와 나누는 것, 의사소통 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식에 대한 과도한 탐욕이 문제이며 경계선 (칸막이)이 있어 가까이 오면 밀어냄, 그래서 비밀을 잘 지킨다. 인간관계를 제한 한다. 글, 시, 채팅 등 말없이 친밀감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자신의 에너지가 적다고 생각해서 남을 위해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분쟁을 철저히 피한다. 내부로 움츠러들어 지나치게 분석하기보다는, 외부를 향해 나아가서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니체, 사르트르, 프로이드, 아인슈타인 이런 사람들이란다. 모두 역사 속에서 자기다움을 발휘하여 각자의 영역에서 재능을 나타냈던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지식에서 회당에서 토론할 정도로 충분하셨다. 그러나 때로는 홀로 계셨다. 지혜로우셨다. 간음한 여인 사건,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야 하는 진퇴양난 상황에서 피하셨다. 마12:46-50. “ 누가 내 아버지요 형제냐?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그러면서도 광적인 제자들을 돌려보내셨다.
5번은 전지하신 하나님을 좋아한다. 그러나 자신은 전지 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스스로 전지하다는 유혹이 올 때에 회개 해야 한다. 전지하신 분은 하나님 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