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들의 투자클럽
우리 리조트에 혼자 사는 40후반의 백인 여성이 있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 그만두고 전문투자가로 나서기 위해 직장도 내 던졌다고 한다. 누가 보아도 훤칠한 키에 금발의 머리와 지적인 큰 눈은 참 인상적이었다. 지난 2013년 12월 사업장 인수를 끝내고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그녀는 내게 다가와 먼저 인사를 건네며 A4용지를 건네주었다. 내용은 뜻밖에 새에 관한 이야기였다. 리조트를 감싸고 있는 작은 늪에 사는 40여 종의 새에 관한 기록이었다. 봄에 찾아와 알을 낳고 가을쯤 떠난다는 것과 겨울이면 빠짐없이 찾아온다는 겨울철새들 얘기며 매일같이 백조를 기다린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인사도 나누지 않았는데, 다짜고짜 그런 것을 전달하는 것에 적잖이 당황 했던 기억이 엊그제만 같다.
그 후 손님과 주인으로 자주 인사하며 짤막한 대화를 나누곤 했었다. 이 곳 사람들은 대화를 하다 보면 듣는 이가 민망할 정도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서슴없이 털어놓는다. 그녀도 자기의 결혼생활과 이혼한 이야기 등을 상세히 설명해 주곤 했었다. 몇 개월이 지났을 무렵 정원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다가온 그녀는 자기에게 시간을 좀 내줄 수 있느냐 물었다. 점심을 하고 클럽하우스에서 약속을 잡았다. 그때서야 그녀가 전문 투자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빅토리아 시내에 집이 있고 집과 리조트를 오가며 혼자 생활하는 것도 그 날 상세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결혼 전부터 투자를 하고 있었다. 주로 미국 주식에 투자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필자에게 건넨 투자종목들은 테슬라, 애플, UNH, V, 등 대형주였고 절반은 소형주 나스닥 종목들이었다. 당시 그녀에게 비중이 가장 큰 종목은 IT보안 주였는데, 필자도 잘 모르는 주식이었다. 경쟁사로부터 소송을 당해 주가가 65%가량 떨어진 상황이었다. 또한 기억에 남는 것은 V(비자카드)주식을 20년 넘게 보유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 종목을 그렇게 오래 보유하고 있느냐고 묻자 고등학교 때 유태인 친구를 따라서 주식을 배웠고 워렌버핏의 투자종목들을 따라 투자를 했다고 한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받은 팁과 현금이 모이면 한두 주씩 모았다고 한다.
그녀는 필자를 몇 개월 동안 유심히 지켜보다 자신이 투자자라는 것을 밝혔고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부동산 중개인 등으로부터 애기를 듣고 내가 투자활동을 오래 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어가 서툰 나는 상세한 설명을 해 줄 수 없었지만 우린 자주 만나 의견을 나누며 공부하였다.
얼마 후 그녀는 한군데 투자클럽을 소개해 준다며 정기모임에 나를 초대했다. 변호사 사무실 옆의 작은 공간으로 와인과 커피,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 건물 주인은 뜻이 같은 투자자들과 대화하고 의견을 교환하며 자신들만의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임대를 하지 않고 회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70이 넘은 백발의 신사가 미국 펀드운용 사무실에 다녀온 이야기와 자신이 10년 넘게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정보들을 복사해와 나눠주며 의견을 물었다. 각 증권사들의 리포트 요약, 대형 IB 매니저들의 코멘트, 방송내용, 경쟁사들의 현황 등 놀라울 정도로 세밀한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각자 보유하고 있는 종목과 매수하고자 하는 종목에 대한 의견교환 등 매우 구체적이었다. 무엇보다 20대부터 80대까지 모인 20여 명의 참석자들의 진지하고 성실한 답변 등 토론 분위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투자 또한 부동산, 펀드, ETF 등 다양했다. 그들은 투자라는 목표를 두고 다양한 세대들이 모여 토론하며 몇 시간동안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점에 더 큰 의미를 둔다고 하였다. 뒤에 알고 보니 대형 은행 이사 출신, 전 금융감독원 국장, 상공부 차관의 경력자, 의사, 목수, 전업주부, 대학생 등 다양한 계층의 회원들로 구성된 것도 참 보기 좋았다. 또한 정기적으로 자원봉사와 야외활동 산행, 야생동물보호, 환경감시, 장애인 돌보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것도 새로웠다. 그 때 계기로 필자도 산행 모임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비로소 밴쿠버 섬 곳곳을 다녀볼 수 있었다.
나와 오랫동안 파트너이자 친구로 지낸 친구의 아들이 월가에서 몇 년간 근무하다 독립하였다. 중국 베이징과 홍콩에서 다년간 근무하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 친구에게 몇 번 권유한 것도 좋은 투자멤버들을 사귀어 작은 커뮤니티를 만들라고 했었다. 친구는 대만 출신이지만 한국말을 잘하고 영어와 일본어가 유창했지만 아들은 한국말을 못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유명한 대학을 나온 그 친구는 다행히 중국어를 잘해 중국, 홍콩 친구들이 많았다.
오랫동안 친구들과 의논한 결과 드디어 자기도 투자클럽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 달에 한번 정기 모임을 갖고 모임 때마다 회원들이 한명씩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을 초대해 얘기를 듣는 단다. 인문, 천문학, 예술, 신기술은 물론 의학 등 다양한 분야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초대해서 대화를 하는데, 반드시 회원 스스로 주제를 정한다고 한다. 그 날의 주제가 끝나고 나면 그 때 투자의견을 교환하고 각자 수집한 정보를 나누며 투자전략을 짠다고 한다. 그 처음 모임이 지난달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참석을 하지 못했다. 아직도 캐나다와 미국 국경이 닫혀 있기 때문이다. 30여 명의 회원 중에는 한국 청년들도 3명 있다고 했다.
백인 사회는 철저히 인맥사회다. 회사나 공공기업도 정기채용보다는 추천제도가 정례화 되어 있고 수시채용이 대부분이다. 또한 개별적으로 시험으로 봐 들어간다 해도 반드시 레퍼런스(reference)가 절대적이다. 월세 방을 얻어도 반드시 이것이 필요하다. 그 레퍼런스에 적힌 사람에게 연락해 그 사람이 살았던 집에서 월세는 정확히 냈는지? 떠들고 문제는 일으킨 적이 없는지? 친구들은 자주 찾아오는지 등을 묻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관계와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설명을 해 준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취업하는 사람이 얘기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거나 연락해 그 사람에 대해 상세히 묻는다. 그 사람이 제출한 스펙보다 이 레퍼런스가 훨씬 더 큰 신뢰가 있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데 참고로 삼는다.
이런 모임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어떤 목적보다는 그 과정을 소중히 하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층과 주제로 접근하며 끈끈한 신뢰를 쌓는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더 큰 감동은 그 모임에 어떤 벽이 없다는 점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야 말로 대화의 깊이와 다양성을 수용하는 힘이 아닐까 싶었다. 다만, 그런 모임에 가기위해선 반드시 회원의 초대가 있어야 하고 초대하기까지 얼마간 그 사람을 지켜보고 주위의 평판 등을 확인한 다음 초대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문득 우리 피닉스 작은 커뮤니티가 생각났다. 어느 모임 부럽지 않게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며 함께 공부하며 나누는 좋은 모임이라는 생각에서다. 참 자랑스럽다. 한 분 한분이...
글: 자명
첫댓글 저에게 있어서 피닉스 커뮤니티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좁은 길 속에서 앞만보며 달려가다가 넓은 길을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길잡이 해주시는 자명님께 항상 감사하고, 따뜻한 글들로 카페를 채워주시는 멤버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이런소중한 모임에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제가 해드린건 없지만 많이 배워서 능력이 되면 저도 주변에 도움이 될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서양인들의 개인주의라 함은
집단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우리와 달리 개인의 권리를 더 중요시하고
여러영역에서 적용되는 철학도 우리와 달라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알고 있는데,
말씀하시는 모임은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도덕적으로 자율적인 개인들이 계몽사상을 가지고 집단을 이루어 서로 가지고 있는 정보를 나누는 모임 인듯 합니다.
아주 합리적인 모임이라 생각됩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동시에
정서적인 안정도 받게 되지요.
여기 피닉스카페가 저에게는 그런 곳입니다.
제가 여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다른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 감사드립니다.
"연구와 나눔"
느끼고 체험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더 감동입니다.
귀중한 투자정보와 함께
접하지 못하는 세계까지
아낌없이 카페에 공유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여기 계신 분들도
자명님의 선한 영향력을
닮아간다는 생각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제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이 관계가 흐트러지면 일과 생활 모든 것이
불안정한 상태로 변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조금 양보하고 손해본다는
기분으로 생활하지만 저는 마음이 편합니다.
자명 선배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시고
잘 이끌어 주셔서 저희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늘 감사드리고 부족하지만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으로 생활하겠습니다.
그리고 피닉스카페 회원님들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고
사랑해요~~~~
하루하루 쫓기듯 살아 가다보니
시야가 좁아질 수 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주위도 돌아보고
남에게 관심도 갖고
자연도 즐기며
생각도 좀 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분들을 만나게 되여 큰 영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늘 배려하고 배워나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조금씩 시야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그냥 쓰시는 글이 아니고
누군가에게는
한줄기 햇살을 선물하는 창문처럼 따뜻한 희망이 되기도 하는..
귀한 글입니다.
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