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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할렐루야! 선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을 믿고서 영생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우리 주 예수의 보혈의 공로를 이 세상에 잘 전파하게 하시고 이 귀한 소식을 온 세상의 사람 잘 듣게 하소서
샬롬! 오늘은 성경의 말씀 중에서 정말로 많은 사람이 암송하고 또 중요한 말씀인 요한복음 3장 16절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본문을 늘 하는 데로 3가지 버전 즉 개역개정, 공동 번역 그리고 NIV로 보겠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3가지 버전이 똑같은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잘 모르는 성도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국민일보 문서 선교사로 근무할 때 하루에 약 200집을 방문하면서 전도를 하고 또 국민일보를 홍보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천호동 철물점에 들어갔는데 주인이 점포의 아주 안쪽에 책상을 놓고 앉아계셨습니다. 그리고 저도 들어가서 않아서 늘 하는 데로 예수님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이 분이 조금 듣더니 책상에서 서랍을 열고서 군용 대검을 꺼내서 자기 앞에 놓고는 당신이 그렇게 예수님을 확신하면 제대로 한 번 잘 전해보라면서 어떤 여호와 증인이 자기에게 와서 자신이 믿는 바를 전하려고 하다가 이렇게 칼을 내놓고 여차하면 찌르려고 하니 기겁을 하고 도망을 갔다고 하면서 저에게도 한 번 도전을 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 증인이 나중에 자신의 집 앞을 지나다가 자신을 보면 신발을 벗어서 들고서 도망을 갔다고 했습니다. 저는 앉은 상태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 칼로 저를 찌르면 제가 어떻게 될까도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담대하게 전하니 이 분이 과거의 자신의 행적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자신이 어떤 산을 지나가다가 어떤 스님과 싸움을 했는데 스님이 넘어진 후에 돌을 집어서 치고는 도망을 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칼은 앞에 있고 이 사람은 과거의 죄책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곤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이 사람들에게 잡혀서 돌로 쳐서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예수님께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하자 이 여인을 죽이려던 사람들이 모두가 떠나고 예수님께서 죄를 묻지 않고 이 여인을 용서하시고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당부하고 보냈다 하면서 어떤 죄도 예수님께 나오면 용서를 받을 수가 있다고 이 분에게 용서의 길이 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도 저를 붙잡고 보내 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무언가 더 저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당시에 제가 어떤 돈을 벌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분이 공대를 졸업했고 아주 자신이 과학적이고 길게 이야기를 했는데 이 아이디어를 주었습니다. 제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준 것이 아니라 오직 이 분이 예수님을 믿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분의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었습니다.
이때가 1998-9년쯤 되었을 때인데 핸드폰이 막 보급이 될 시기였습니다. 제가 어떤 분과 등산을 갔는데 무전기만한 큰 폰으로 전화를 하던 시대가 막지나고 이제 핸드폰이 보급될 때였습니다. 그리고 자동 다이얼링 전화가 또 나왔을 때인데 제게 핸드폰과 자동 다이얼링 전화 그리고 문을 닫고 열 때 자동으로 신호를 보내는 장치가 동시에 연결된 방범 시스템의 신 발명품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특허청에 갔지만 이런 아이디어나 제품의 등록이 없어서 언제가 써먹어야지 하고 마음으로만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였습니다. 문이 열릴 때 이 개폐를 통한 신호가 자동다이얼링 전화에 연결이 되고 이 전화에 자신의 핸드폰 전화를 연결하면 출장이나 여행 시에 누군가 자신의 집이나 사업장에 침입하면 자동으로 집에서 전화가 오게 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참 돈을 많이 벌 수가 있다고 생각한 아이디어인데 이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자유롭게 풀려서 철물점 밖에 나와서 맑은 공기를 마시는데 한 20-30분이 지났으리라 생각을 했는데 3시간이나 그 사람에게 붙잡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가 이 말씀 세상을 사랑한다는 내용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하시고 영어로 성경을 보게 하셨는데 영어로 본 세상은 위의 표현과 같이 the world였습니다.
구원에 대한 논쟁 중 세상의 모든 사람이다. 택한 사람이다. 혹은 믿는 사람만이 다라는 논쟁이 교파별로 있어서 통일이 되지 않고 있었는데 전도하는 입장에서는 늘 그렇다면 누구에게 전해야 되냐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줄로 알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그날 사건으로 주신 깨달음은 온 세상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하는 사람은 누가 예수님을 믿을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만나는 사람마다 전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방법이고 성령께서 금하는 곳과 사람은 멀리하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사건으로 이 구원론에 대한 문제를 해결을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의 대상으로 보고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했고 모든 것을 그분에게 주었고 그분은 비로소 안도하고 편안해지셨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에 이 아이디어가 제품으로 개발이 되어서 신문에 전면광고로 소개가 되었습니다. 어떤 경로가 있었는지 저는 알 수가 없지만 이 귀한 말씀의 의미를 알게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과 너무나 비슷한 예가 또 있습니다. 역시 제 이야기인데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선 제가 그린 그림을 보시겠습니다.
저는 고향이 남해 노량입니다. 이순신 장군께서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신 그 바닷가입니다. 우리 마을에 충렬사라고 사당이 있는데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묻었는데 아산 현충사로 모셔가기 전까지 우리 마을에 모셨습니다. 바닷물이 급히 흘러가고 너무나 깊기에 어릴 때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고 우리의 놀이터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수영을 완전히 배우기 전에 위 그림과 같이 부두로 사용하는 큰 배에서 놀다가 실수로 바다에 떨어졌습니다. 제가 일곱 살이었는데 수심이 십 미터 이상이나 되고 배의 높이도 무척 높았습니다. 떨어져서 머리만 그림과 같이 내 놓고 밖을 보니 제 친척 할머니께서 조개를 캐시다가 제가 떨어진 것을 보고 호미를 허공에 흔들면서 누군가를 재촉하는 모습입니다. 또 노란색으로 표시된 사람은 저보다 7살 많은 제 작은형 친구분이셨는데 속히 옷을 벗고 뛰어 들려고 하는데 할머니께서 그냥 속히 들어가라 죽는다 하며 이 분에게 소리치는 모습입니다. 제가 머리만 내놓고 몸은 거의 배 밑으로 다 들어갔는데 이러 장면이 생생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형이 재빨리 물에 뛰어들고 제 곁으로 헤엄을 쳐서 오자 제가 죽자 살자 붙잡았다고 합니다. 제가 붙잡은 기억은 없는데 나중에 그 형이 제 형과 부모님께 이야기 해 준 내용입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온 저를 사람들이 거꾸로 세우고 물을 토해내게 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과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웃고 울고 살고 있지만 믿지 않는 분의 상태가 실상은 물에 빠져서 곧 죽을 저보다도 더 심각하고 급박한 상태에 있는 멸망으로 가는 죄에 빠져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신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이런 너무나 급박하고 위태한 상태를 인식조차 못 하고 잘 먹고사는데 정신이 다 팔려서 믿으라고 하면 어떤 분은 덤비고 멸시하고 조롱하며 살고 있지만 실상은 멸망의 길로 하루하루 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호미를 드신 저를 사랑하시던 할머니의 다급한 외침과 같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저를 건지기 위해서 안전한 땅에서 물로 뛰어든 동네 형과 같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제가 물속에서 죽어가다가 동네 형을 붙잡고 산 것과 같이 예수님을 믿고 살아나서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 순간에 사력을 다해서 저를 구하려고 온 형을 붙잡았다고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죽을힘을 다해서 붙잡아야 될 줄로 믿고 이 세상을 사는 날 동안에 절대로 이 붙잡음을 느슨하게 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사력을 다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끝까지 예수님만 죽도록 붙잡고 가야 할 것입니다. 돈이 많아지고 땅도 많아지고 두 손에 붙잡을 것이 많아지면 예수님도 놓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영원한 삶을 놓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께서 형과 그 집에 작은 사례를 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고향에 갈 기회가 거의 없고 이미 성장을 했는데도 이 형을 찾아가서 고맙다는 말과 사례를 아직도 못하고 삽니다. 이분의 형통을 위해서 생각날 때마다 기도는 하고 이렇게 잊지 말고자 그림도 그렸지만 생명의 구원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베푸신 분에게 감사와 사례를 아직도 못하고 살고 있는데 이번에 고향에 가면 꼭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제가 작은 예를 들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높고 높은 보좌를 박차고 하나님의 명에 따라서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낮고 낮은 이 땅에 죄에 빠져서 멸망으로 가는 우리를 건지기 위해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자유하게 하시기 위해서 사망에서 영원한 삶을 주시기 위해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와 사망의 늪 속으로 뛰어드셨습니다. 구경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온몸이 채찍에 맞으시고 찢기고 피가 흘렀습니다. 우리의 피와 같은 붉은 죄를 눈과 같이 희게 하는 피 흘리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이 박히시고 또 창으로 찔리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저주를 지시고 우리의 죄의 속량을 위해서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어떤 피조물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이 사실이며 또 이 세상의 무엇으로도 덮을 수가 없는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피를 흘리시고 죄인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이를 믿는 우리가 죽음에서 구원을 받고 영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멸망에서 건짐을 받고 자유하게 된 것입니다. 죄의 늪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건져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사랑과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과 희생으로 우리가 천국의 백성이 되고 우리가 영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사랑이시고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이렇게 해결을 하셨습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우리는 오늘도 하루하루 믿지 않는 분들과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분이 우리보다 더 경제적으로 잘 살고 공부도 잘하고 그리고 돈도 잘 벌고 직장도 학벌도 더 좋은 수가 있고 믿지 않는 분이 우리의 통치자가 될 수도 있고 회사의 사장이 될 수도 있고 그리고 상사가 될 수도 있고 배우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늘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을 이들은 물에 빠져 곧 죽게 될 사람과 같이 멸망으로 하루하루 가고 있는 우리의 사랑과 구원이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누가 전해야 합니까 비록 작아 보이고 없는 것 같아 보이고 그리고 약해 보이지만 영생을 얻은 우리의 몫입니다.
로마서에서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지만 늘 복음을 전하는 바울 사도께서는 이런 사람의 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표현을 했습니다.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3.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14. 그러나 믿지 않는 분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들어보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전도자로서 파견받지 않고서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말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13. for,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14. How, then, can they call on the one they have not believed in? And how can they believe in the one of whom they have not heard? And how can they hear without someone preaching to them? 15. And how can they preach unless they are sent? As it is written, "How beautiful are the feet of those who bring good news!"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소식과 하신 일이 GOOD NEWS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인간에게 가장 복된 소식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구원받은 데로 그대로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죄인이었고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구세주 예수님을 전해서 믿지 않는 분이 믿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증인은 이렇게 자신이 보고 겪은 내용을 그대로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당신 곁에 믿지 않는 분이 계십니까? 그분이 곧 당신의 복음 전파를 애타게 기다리는 이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