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언
매주 수요일에는 대전에 갔다가 목요일 아침에는 테미공원을 산책한다. 지난주 목요일 아침에 그곳을 갔더니 공원의 벚꽃이 3할은 피어서 마음속으로 '다음주에 오면 절정이겠거니...'하고 벼렀다.
벼르던 날이 되어 새벽에 그곳으로 나섰다. 가는 길에 대사동성당 마당에 잠깐 들려서 주님과 마리아님께 나름의 소원을 빌었다. 골목을 한참 걸어 대흥동교회 옆에 왔을 때도 아직 어둠이 덜 걷혔다. 그 곳에서 길 건너 테미공원을 쳐다보니 엷은 먹구름 아래로 벚꽃나무들이 켜켜이 산봉우리를 이루고 있었다. 얼른 생각해보니 벚꽃들로만 산을 이룬 곳은 이곳 뿐인가 싶었다
산으로 오르는 진입로 계단에 올라서니 빛바랜 '사회적 거리두기'현수막은 있었으나 다행히 '출입금지'경고는 아직 없었다. 매번 하듯이 Outercifcle로 얼마쯤 걸어갔을 때 강아지를 동반한 여자가 있었는데 몸이 불편한지 앞서가려는 강아지와 실밴을 하고 있었다. 그 老婆를 뒤로 하고 동산 모퉁이를 돌아서 가니 멀리 식장산 위쪽으로 어둠이 걷히며 밝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차츰 주변 벚꽃나무들도 그 모습들을 드러냈다.
산책길을 반 바퀴 쯤 걸었을 때 '잘 알지도 못하는' 해조선생공덕비에서 곧바로 오르는 나무계단을 탔다. 계단 계단마다에는 목련꽃이랑 벚꽃들이 떨어져 발길에 밟혔다. 목련과 함께 벚꽃도 밟혔지만 유독 꽃잎이 커다린 목련을 밟는 건 싫어서 피했다. 60 여개의 계단을 단숨에 걸어 정상에 올랐더니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수십년 묵은 벚나무들이 높고 또 낮게 몇 겹으로 동산을 에워싸고 있어서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왼딴 섬 같았다.
아름드리 나무줄기들은 지기들끼리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그 어깨마다 하얀 꽃들을 가득 메달고 있었다. 넋을 놓고 사방팔방을 가득 에워싼 벚꽃들은 쳐다보고 때 이름모를 산새 한마리가 '찌르륵 찌르륵' 하자 잠들었던 꽃잎들이 그 소리에 잠이 깼는지 살랑살랑 내 얼굴로 내려앉았다. 이런 감흥을 사진에 담아두려고 자리를 또 방향을 바꾸어가면서 폰카를 연거푸 찍어대었다.
이제 주인공인 벚꽃들을 실컨 담았으니 다음은 내 차례여서 셀카화면에 얼굴을 이렇게 저렇게 디밀어보았지만 그렇고 그랬다. 그 때 아주머니 한 분이 내 곁을 지나길래 염치좋게 그 분에게 사진한번 도와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응해주었다. 그녀는 전문작가나 된 것처럼 나를 모델로 여기고 여러 포즈를 주문했다. 뿐만 아니라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을 낱낱이 일러주었다.
사진을 실컷 찍었으니 이번에는 迷路같은 산책로를 오르고 내리기를 하다가 포장된 큰 통행로로 나왔다. 그 곳에는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아낙이 있었고 그 강아지는 떨어지는 벚꽃을 쫓아다니며 좋아했다. 그 무렵 한줄기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니 수많은 꽃잎들이 꽃비가 되어 우수수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노래 동심초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나날은 아득한 기약이 없네...'를 흥얼거렸다.
되돌아가는 길에는 늘 산자락에 있는 지장사를 비껴서간다. 이날도 그곳 연못에는 새빨간 금붕어랑 때깔 고운 비단잉어가 놀고 있었다. 어쩌다 바람이 불어와서 벚꽃이 물위로 떨어지면 우르르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꽃잎을 먹이로 아는지, 놀이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비바람 몰아치기 전에 벚꽃구경 한번 잘했다’고 하면서도 '이 벚꽃이 지고나면' 봄도 거반 가겠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