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량의 마음지대
---권기선, 한영수, 이승희, 김예강, 정해영의 시
배옥주
1. 움직이는 마음의 기록들
마음은 온 세계를 담을 수 있는 무한한 집이다. 마음을 읽고, 마음이 맞고, 마음에 닿고, 마음을 뺏기고, 마음을 얻는다. 먹다, 훔치다, 미치다, 닿다, 갇히다, 담다, 이루다, 모으다, 다스리다 등등 마음을 따라다니는 말은 무량하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한 사람을 키우려면 온 마음이 필요하다.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과 불행에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까지 극과 극의 세계를 오갈 수 있다. 무릇 마음은 삶을 관장하는 거대한 세계다.
심리학心理學은 마음의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현대사회가 복잡해져갈수록 마음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심리학 연구가 심층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간파할 수 없는 마음의 사각지대가 광활하게 널려있고 마음에 대한 연구 영역 또한 무궁무진하다는 의미다. 사람과 사물과 자연을 조화시키는 실존적 존재는 마음이며, 내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감정을 다스리는 힘은 내 마음 안에 있다. 미국의 시인 랄프 왈도 에메슨(Ralph Waldo Emerson)의 ‘마음은 물질의 지휘관이며 생명과 질서’라는 말은,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자는 생명과 질서로 가득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마음은 마음으로만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 삶은 마음이 주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무릇 움직이는 것은 네 마음뿐”이라던 ‘이병헌’의 대사를 통해서도 ‘마음’이라는 집에는 중심을 잡아주는 대들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측 불허의 시간을 건너가는 현대인들은 종잡을 수 없는 마음 한 가운데 중심을 잡고 살아야 조금은 덜 흔들리며 살아갈 수 있다.
2. 어긋나는 마음
그날 지구에는 밀가루처럼 눈이 내렸다. 나쁜 마음을 먹기도 해야 하는 일일까. 쌓이는 눈을 보면서 생각했다. 사람은 다 이렇게 살아, 평범하게 살아가라는 말 그것이 정답이 될 수는 없었다. 목적지 없이 맴돌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
심호흡하고 나면 하늘의 자세가 불편해보였다. 사람에 상처받아 일을 그만둔 나는 빙하기 같았다. 세상 모든 일을 짊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굴다
미친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되지는 말아라, 아버지와 술을 마시다 혼자 술잔을 이어간 날
내 방에도 밀가루처럼 눈이 내렸다. 사람을 탓했고 사람들을 원망했다. 아무와도 만나고 싶지 않은 기분으로
내가 아닌 사람들은 모두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고 사람과 대화를 나눈 계절은 끝나 빙하기가 시작된 것 같은,
지구가 얼어붙고 이제 건조한 영화가 시작된 것 같은,
사랑하는 일을 말하고 기억하는 것의 온도가 깨진,
사람과 멀어지는 계절과 사람이 싫어지는 계절만 있는 나라
따뜻한 사람이고자 했던 내가 약해지는 모습으로 점점 추락하고 마는 시간이었던,
차가운 눈이 내리는 방
내 방에서 가장 슬픈 눈물이 뭉치고 있다.
아름다운 일만 있는 것이 아닌
마음의 빙하기
그날 지구는 폭포수 같은 눈을 계속해서 내렸다. 나쁜 행성이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 권기선, 「if 빙하기」(『애지』 2023년 가을)
맞지 않는 무언가와 맞닥뜨린 사람들은 종종 상처를 받곤 한다. 맞지 않는 대상이 사람이든 일이든 환경이든 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곤혹스럽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과의 관계가 순조롭지 않을 때 해결하기 힘든 난감한 상황 앞에 놓이게 된다. ‘맞다’의 명사 ‘맞음’에서 ‘ㅈ'이 탈락되었다는 ‘마음’의 어원설에서 ‘마음이 맞다’라는 말을 펼쳐본다. 마음을 맞추는 일은 중요하고 어렵다. 위 시 「if 빙하기」에서 화자는 “사람에 상처 받”아서 일을 그만뒀다. 사람에게 받는 상처만큼 지독한 아픔이 있을까.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지만 마음으로만 알아차릴 수 있는 마음에게 상처받는 일은 어차피 마음으로 치유해야하는 높은 난이도의 과제를 남긴다.
인간관계의 덕목에서 빠트릴 수 없는 과제, 그건 바로 ‘마음 다스리기’다. 사람들은 다친 마음을 다독이거나, 엉킨 마음을 풀거나,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다양한 처방전을 내놓는다. 누군가는 마음 수양을 위해 템플스테이를 하고 무릎이 닳도록 백팔배를 한다. 또는 눈을 감는 시간이 더 많은 백일기도를 한다. 누군가는 집착과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워터 테라피(반신욕)와 사운드 테라피(싱잉볼) 아로마 테라피(스머지 스틱 태우기) 그리고 멍때리기까지 시도한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지만 마음을 치유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사람에 상처받아 일까지 그만둔 화자의 ‘마음 빙하기’엔 어떤 처방이 결빙된 마음을 녹아내리게 할 수 있을까.
그날은 “밀가루처”럼 눈이 내렸다. 희디흰 눈이 내리면 마냥 순해져서인지 화자는 쌓이는 눈을 보며 “나쁜 마음을 먹기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눈이 순백의 백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첫눈이 내리면 만나자던 첫사랑의 약속을 떠올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웃음 짓곤 한다. 하지만 사람에 상처 받아 일을 그만둔 화자에게 퍼붓는 ‘눈’은 “따뜻한 사람이고자 했”던 자신을 얼어붙게 하는 차가운 상처로 다가온다. 화자와 술잔을 기울이던 아버지는 “미친 사람들”처럼은 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지만 사람과의 꼬인 관계를 내려놓는 일은 시종 무겁게 다가온다. 화자는 “목적지 없이 맴돌”며 ‘평범한 삶’을 평범하게 만들어가지 못 하는 자신과 사람들을 원망하며 혼자 술잔을 이어간다. 화자는 마음의 빙하기에 들앉아 “차가운 눈이 내리”는 자신의 방에서 “가장 슬픈 눈물이 뭉치”는 것을 바라볼 뿐이다.
화자는 평범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이고자 했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빙하기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아름다움에서 멀어지는 인간관계의 단절은 “폭포수 같은 눈을 계속해”서 퍼붓는 지구에서 “나쁜 행성”이 되어가는 일이다. 마음의 심층까지 얼어붙는 빙하기 속으로 침잠하는 화자의 눈물은 함께 얼어버리겠지만 결국 스스로 자신의 눈물을 닦고 녹여내는 굳은 의지의 마음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위해 함께 울어주는 일이 상처 입은 마음을 쓰다듬는 가장 뜨거운 손길이므로.
3. 마음 하나로
없네, 말보다 먼저 눈동자가 튀어나오고
있었던 그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전철역에서 집으로 계단을 두 칸씩 올라
오층에서 다시 거꾸로
갔다가 오고 다시
갔다 오는
길바닥에 민들레 노랑에 하수도 입구 단추에
구겨진 금박껍질에 건널목 점자 블록에
잃어버린 그것이 바스락거린다
작고 둥글고 황금은 아니지만
금빛 고리가 영원을 가리키는
그것은 빛나고 있다 빠짐없이
빛을 빨아들이고 있다
마음이 마음에게 좋은 날의 선물
마음은 충분하고 나는
좋은 날을 믿고
내가 돌을 밟으면
돌을 밟고
모래를 밟으면
모래를 밟고
그것은 온다
한두 걸음 저기서
불현듯 지금 여기서 어딘가에서
그것이었다가
그것일 것이다가
그것이다.
들어 올리려 하면 한두 걸음 또 앞에서
- 한영수, 「마음은 충분하고」(『서정시학』 2023년 여름)
“없”다고 말하려던 생각 이후에 원래 있었지만 보이지 않던 그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음 하나로 충분하게 채워지는 빛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위 시 「시 마음은 충분하고」에서는 무에서 창조되는 신비한 유의 세계와 대면하게 된다. 화자는 외부의 어떤 자극이나 충동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 속에 중심을 잡고 서 있다. 그래서 ‘없네’라는 첫 시어의 빈 자리를 마음 하나로 그득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마음이라면, 화자는 언제든 비울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 한 채를 관장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다 비웠으므로 있는 그대로 세계와 일체를 이루는 사무사思無邪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 아닐까.
화자가 외출할 때마다 만나게 되는 전철역과 계단과 점자블록은 일상의 한 부분이다.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지나치던 일상의 모습들은 말 그대로 지나치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날 화자는 시선 속으로 들어온 민들레와 하수도 입구에 떨어진 단추를 발견한다. 금박껍질이 구겨진 그 단추는 작고 둥글고 빛난다. 누군가의 옷섶이 떨군 금박 단추는 황금만큼은 아니어도 빛을 빨아들였으므로 빛을 발하고 있었을 것이다. 화자는 빛나는 발견을 한 자신에게 “마음이 마음에”게 닿은 “좋은 날의 선물”이라 여긴다. 마음이 충만해지고 좋은 날이 올 것만 같은 믿음 하나만으로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그대의 삶은 그대의 것/ 두들겨 맞고 굴종의 시궁창에 처박히게 하지 마라/ 잘 살펴보면 빠져나갈 길이 있다/ 어딘가에 빛이 있다’는 찰스 부코프스키(Charles Bukowski)의 시 「웃는 마음」이다. 내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감정을 조절하는 힘은 자신에게 있다. 자아의 중심을 지키는 마음의 주인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는 순간 세상의 모든 대상은 빛으로 열린다. 문득, “모래를 밟”고 “돌을 밟”는 시적 주체가 자신의 행위를 따라하는 세상에게 전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 마음을 알아차리는 마음챙김은 ‘희망’에서 비롯된다.
4. 물을 보는 마음
아무 말 없이 헤어진 사람이 생각났다 누군가의 무덤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물속에서 꽃이 핀다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런 믿음으로 나는 지금 물 앞에 앉아 물을 보는 마음을 생각한다 나와 그 마음 사이로 나비 한 마리가 물속을 날아간다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바람이 부는 것처럼 그건 그냥 그런 것이다 모든 아픈 것들은 다 그렇다 아무 말이 없다 그걸 다 알 것 같으면 정말 아픈 것일까 더는 통과할 문이 없다고 생각해도 새로운 철문을 몇 번씩 열었다가 닫는 마음이었다 아무 것도 없다는 것만이 있을 때 나는 작약의 잎을 세고 있다 꽃이 피겠구나 안 피겠구나 몇 해째 꽃이 오지 않았다 그 마음을 생각한다 나는 이곳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 너무 많은 날이 지났다 비가 다녀가고 바람이 불었고 함박눈이 몇 번이나 내렸는지도 모른다 마당의 나무들은 제 가지 속에 물고기를 품으며 잠들었고 잠이 오지 않는 나는 그 주변을 밤새 돌아다녔다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아는 것들이 사라지고 모르는 것들이 다가와 같이 살게 되어도 그건 그냥 모르는 것들 모르는 것들이 아는 것들을 이길 수 있을까 모르는 것들이 아는 것들을 닮아간다 나뭇잎들이 물속에서 떨어진다 계단을 내려가듯 가라앉는다 물고기의 집이 될 수도 있다 많은 알을 낳을 수도 있다 그럴 때도 눈물은 중력을 거슬러 올라간다 나의 두 눈까지는 그래도 아직 멀었다 멈추지 않았으므로 알 수 있다 물속을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면 나는 어쩌면 아직 살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이승희, 「물속을 날아다니는 나비에 대하여」(『동리목월』 2023년 여름)
‘본다’는 것이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라면, 지금 화자가 생각하는 ‘물을 보는 마음’은 왠지 물처럼 유한 마음을 따라 집착도 갈등도 버리고 흐를 수 있을 것 같다. 분별없는 자리에서 온갖 마음 현상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볼 때, ‘집착과 갈등의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출가(「버리고 떠나기」, 법정스님)’라는 정의에선 인연을 세상에 되돌려주고 무소유를 실천한 회향의 마음 즉, 물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물 앞에 앉은 화자가 “아무 말 없이 헤어진 사람”과 “물을 보는 마음”을 생각하고 있는 그때, 마음과 마음 사이로 “나비 한 마리가 물속을 날아간”다. 나비의 물속 날갯짓은 가지 사이로 바람이 부는 것처럼 말없이 그냥 아프다. 이젠 끝났거니 해도 다시 생기는 기억의 ‘철문’은 말없이 헤어진 사람에 대해 “몇 번씩 열었다가 닫”는 쓸쓸한 마음이다. “아무 것도 없다는 것만이 있”을 때 느끼는 무척이나 무거운 외로움 같은.
마음을 닫으면서도 화자는 “꽃이 피겠구나”를 되뇌이며 작약의 잎을 세고 있지만 몇 해가 지나도 꽃은 피지 않는다. 찾아오지 않는 꽃의 마음을 셀 때마다 화자는 “누군가의 무덤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무덤이 되어준 물속에서는 꽃이 필 수밖에 없다고 믿는 굳건한 믿음으로 흘러가버린 그 마음을 떠올리는 것이다. 화자는 이별을 겪은 이 곳에서 너무 많은 날을 살고 있다. 아는 것들은 사라지고 모르는 것들이 아는 것들을 닮아간다. 몇 번이나 만났는지 모를 비와 바람과 함박눈을 보냈으며, 그 마당의 나무들은 “제 가지 속에 물고기를 품으며 잠들”었지만 화자는 불면의 밤을 밝히며 “주변을 밤새 돌아다”니는 외로운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화자는 “물속을 날아다니는 나비”를 본다. 물속 나비를 통해 “아직 살아있”는 자신을 지각하는 화자의 이상은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과 닮아 있다. ‘나비의 꿈’ 우화에서는 장주의 ‘꿈’을 통해 자신을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로 인식하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보여준다. 꿈속에서 날아다니는 ‘나비’가 바로 ‘자신’이라고 인식한 장주처럼, 이 시의 화자는 ‘꿈에’서 확장된 ‘사유’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물속을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아직은 살아있는 기억의 끈을 붙들고 이별에 상처 받은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듯 유영하고 있다.
5. 없는 마음의 실체
생일꽃을 사러 들린 이름다운 꽃집에는
꽃의 발을 마른 수건으로 싹싹 눌러 닦고 있는
꽃집주인이 있다 아름다운꽃집 주인아주머니는
꽃을 손질하는 사이 꽃이야기를 전하곤 한다
꽃이 왜 아름다운지 아세요?
아름다운꽃집 주인아주머니는
꽃의 발을 가지런히 모아 싸며 그게요
아름다운꽃집 주인아주머니는 그랬다
없는 마음이라 그래요 꽃은요
안으면 안은 사람의 마음이 되는 거잖아요
할머니께 꽃을 안겨드리면 할머니의 마음이
되잖아요 아이에게 안겨주면
아이의 마음이 되잖아요
아름다운꽃집 주인아주머니는 꽃나라의 마법사
꽃엄마처럼 꽃자랑을 한다
나는 없는 마음의 꽃이란 말이
먼 바다 앞에 서 있는 듯하여 아름다운꽃집
주인아주머니가 포대를 감싸듯 꽃들을 포장지로
두르는 손길 바라보다 나는 마음이 있어 꽃이
못 된다 싶다가 꽃은 마음을 지우는 것이다 싶다가
지운 자리에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이다
싶다가 그런 생각 등에 잠겼다가 아기를 받아 안 듯
아름다운꽃집 주인아주머니가 건넨
생일꽃을 안고
- 김예강, 「꽃의 마음」(『작가와 사회』 2023년 가을)
위 시 「꽃의 마음」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없는 마음’이다. 여기서 ‘없는 마음’은 세상의 모든 마음을 품을 수 있는 무량의 세계관이다. 마음은 외부 사물이나 삶의 경계를 지향한다. 마음은 외부세계를 대변하며 그로부터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주관적인 본성을 품고 있다. 진정 힘겨울 때 눈물을 흘리는 일은 마음이 인간을 쓰다듬는 행위 같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오래된 기도」, 이문재)’ 라는 싯구처럼 어떻게 보면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인간을 다스리는 것 같다. ‘꽃의 마음’ 또한 모든 세계관을 비운 ‘없음’의 상태로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줄 안다. 언제나 비워두는 아름다운 마음의 집에 꽃을 안은 사람의 마음을 들이는 것이다.
어쩌면 꽃은 아무 꺼릴 바가 없는 무기탄無忌憚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꽃은 안은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마음은 꽃을 안은 사람의 마음을 챙겨 거리낌 없이 스르륵 자리를 바꿔 앉는다. 꽃의 마음은 언제든 자신의 마음을 비운 빈 자리에 다른 마음을 수용한다. 이런 자세는 새로운 생각이나 대상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기중심성을 벗어 던진 ‘꽃’의 ‘마음비움(중국 전국시대 후기의 제가백가 논문 『관자管子』에 실린 ’순자‘의 인식)이다. 따라서 꽃의 마음자리는 ’비움‘으로 역설하는 진정한 ’채움‘을 증명하고 있다. 타인이나 한계를 초월하는 ‘없는 마음’은 자신 안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와 일체를 이루는 세계상의 확장을 보여준다.
6. 마음의 기울임
주전자 속 우린 찻물을
찻잔 쪽으로 기울여 따른다
엄마가 전신을 굽혀
아기에게 젖을 물린다
쓰러진 아카시아 나무를
부둥켜안은 지 십수 년
굽어져 간 떡갈나무의
등 때문에
숲이 아름답다
사람의 마음도
누군가에게
기울어야 보인다
기울임은
지극한 사랑이 흐르는
몸이 하는 말
- 정해영, 「마음을 주다」(『애지』 2023년 가을)
공원이나 지하철에서 너무 사랑해서 어쩔 줄 모르는 연인들을 보면 한쪽이 한쪽에게 기울어져 하나로 되는 곡선의 모습을 종종 본다. 기울어진 곡선의 실루엣은 부드럽게 닿으려는 마음의 말을 솔직하게 전하는 마음선이며, 상대에게 가 닿으려는 지극한 마음의 표현이다. 위 시 「마음을 주다」에서는 “몸이 하는 말”을 둥글게 매만지고 있다. 모나거나 수직으로 뻗지 않고 궁굴려 있는 기울임은 마음을 베이는 일 없이 지극한 사랑을 전할 수 있다. 찻물을 따르는 주전자는 기울어져야 찻잔을 채울 것이며, 젖을 물리는 엄마의 몸은 기울어져 있어야 아기의 배를 채울 수 있다.
숲이 아름다운 이유는 오랜 시간 쓰러진 아카시아 나무를 부축하느라 “굽어져 간 떡갈나무의 등”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는 오랜 병수발에 지친 굽은 마음들이 존재한다. 이 시에서 ‘아름다운 숲’은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는 굽은 마음들이다. ‘기울임’이라는 이울어진 말 속에는 조건 없이 한쪽으로 흘러가는 “지극한 사랑”이 깃들어 있다. 누군가에게 기운 마음이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 기울임의 경사는 몸이 전하는 이타적인 마음이며 변하지 않는 본질의 일심一心이다.
7. 마음의 사각지대
사각지대死角地帶는 죽음이 뿔을 세우고 있는 곳이다. 방어운전에서 허투루 생각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인 중요한 개념이다. 운전 중 0.5초 정도의 짧은 시간에 고개를 돌려 사이드미러가 보여주지 않는 뒷좌석 옆 창문까지 확인하는 ‘숄더 체크(Shoulder Check)’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중요한 행동이다. 그렇다면 눈으로 볼 수조차 없는 마음의 사각지대에서 죽음이 세우고 있는 뿔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마음은 있고 없고, 열리고 닫히고, 얻고 잃는다. 흑백논리의 오류에 빠질지도 모를 이분법 앞에 서면 마음의 사각지대死角地帶에 갇혀 갑갑해져온다. ‘모든 법은 공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반야심경』)’는 말씀을 떠올리면 관심으로 다가가 어루만져야할 마음들을 얼마나 배타적으로 몰아붙였는지 알게 된다. ‘마음먹기에 달렸다’거나, ‘마음을 바로 써야 한다’는 말은 어렵고 두렵다. 마음의 무게가 지닌 의미 이상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if 빙하기」에서는 인간에 상처받은 인간의 어긋난 마음이 드러난다. 먹고사는 일을 그만 둘 정도로 상처로 병든 마음은 빙하기와 같음을 역설한다. ‘없는 마음’ 하나로 ‘있음’의 긍정적 세계관을 역설하는 「마음은 충분하고」와 「꽃의 마음」에서는 “색불이공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과 무량無量의 위력을 되새기게 한다. 「물속을 날아다니는 나비에 대하여」에서는 ‘꿈에’서 확장된 ‘사유’의 물속 세계를 날아다니는 나비의 ‘호접지몽’을 통해 이별에 상처 받은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타적인 마음의 본질은 곡선으로 이울어진 하나의 마음임을 깨닫게 한다. 한 곳이 한 곳으로 기울어진다는 말은 얼마나 곡진하게 겹쳐지는 일인가.
행복한가? 걸핏하면 타인을 기록하는 마음으로 내 행복의 잣대를 가늠하던 습성 앞에서 움찔, 한다. 인격의 척도는 마음의 크기와 비례한다. 그만큼 마음의 그릇은 스스로 조절이 쉽지 않고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내면을 돌보는 신독(군자:君子)의 마음으로 마음 속 사각지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을 조화롭게 기르는 일은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지름길이다. 체에 걸어도 남는 마음이나 의심하는 마음이나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을 하나둘 밀어내다보면 내 마음이 전하는 곡진한 마음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약력
배옥주
2008년 《서정시학》 시 등단
2022년 《애지》 평론 등단
<부경대학교> 문학박사
시집 『오후의 지퍼들』, 『The 빨강』
연구서 『이형기 시 이미지와 표상 공간』
평론집 『언어의 가면』
<요산창작지원금> 수혜, <김민부 문학상>, <두레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