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康熙字典』
穴地出水曰井。《釋名》井,淸也。《廣雅》深也。易有井卦。《世本》伯益作井。《汲冡周書》黃帝作井。《孟子》掘井九仞,而不及泉。
又《廣韻》田九百畝曰井,象九區之形。《孟子》方里而井,井九百畝。
又市井。《玉篇》穿地取水,伯益造之,因井爲市也。《師古曰》市,交易之處,井,共汲之所,因井成市,故名。
又南方宿名。《史記·天官書》南宮朱鳥東井爲水事。《註》東井八星,主水衡也。
又井井,經畫端整貌。《荀子·儒效篇》井井兮其有條理也。
又往來連屬貌。《易·井卦》往來井井。
又古文井與刑通用。《左傳》有井伯,卽郉伯。
『說文解字注』
(井) 八家爲一丼。穀梁傳曰。古者公田爲居。井竈葱韭盡取焉。風俗通曰。古者二十畝爲一井。因爲市交易。故稱市井。皆謂八家共一井也。孟子曰。方里而井。井九百畝。其中爲公田。此古丼田之制。因象井韓而命之也。象構韓形。謂井也。韓、井上木闌也。其形四角或八角。又謂之銀牀。★象也。缶部曰。★ 、汲缾也。丼、子郢切。十一部。古者伯益初作井。出世本。凡丼之屬皆从丼
韓 : ★
우물과 샘의 관계
샘[泉]은 자연히 용솟음쳐 나오는 물이고, 인공적으로 파내려간 우물(井)의 물구멍에서 솟아나오는 물을 나타내기도 한다. 인공적으로 판 샘물인 井은 마을 한가운데의 공동우물이자 공동우물을 중심으로 이뤄진 共同體 사회를 뜻하기도 한다. 詩를 보면 나라의 흥망성쇠를 샘[泉]에 비유해 노래하는데 그 대표적인 시가 曹風 下泉편(아래 인용구 참조)이다. 下泉편은 주나라의 쇠망을 탄식한 시로, ‘冽彼下泉’을 안짝으로 하고, ‘浸彼苞稂’(제1장), ‘浸彼苞蕭’(제2장), ‘浸彼苞蓍’(제3장)를 바깥짝으로 하고 있는데, 흥성했던 시기를 안짝으로, 쇠망한 때를 바깥짝으로 하여 비유했다. 『주역』의 水風井卦는 바로 왕도정치의 바탕인 井田法을 샘물인 丼에 비유하여 殷末에 무너진 정전법인 助法을 西伯인 周나라에서 다시 徹法으로 다듬어 세워가면서 마침내 周天子의 나라를 이뤘음을 담고 있다.
曹風 제4편 下泉四章(拙著, 『시경강해』 참조)
(1장)冽彼下泉이여 浸彼苞稂이로다 愾我寤嘆하여 念彼周京호라
맑고 찬 저 아래 샘이여, 저 우북한 피가 침범하도다. 아, 내가 잠에서 깨어나 탄식하면서 저 주나라 서울을 생각하노라.
[참고] 冽彼下泉은 『주역』 水風井卦 九五효에 ‘井冽寒泉食(우물이 맑고 차서 시원한 샘물을 마시도다)’과 연관된 말로, 맑고 찬 샘물을 마신다는 것은 福祉 사회가 이뤄졌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冽彼下泉은 주나라가 성대했을 때를 비유한 말이고, 지금의 쇠퇴함은 浸彼苞稂에 비유하고 愾我寤嘆과 念彼周京을 흥기했다. 毛詩序에서는 조나라 사람이 共公이 아래 백성들을 침해함을 미워하면서 그 근심하는 바를 얻지 못하여 옛적의 밝은 왕과 어진 제후를 생각하면서 지은 시라(曹人이 疾共公侵刻下民하며 不得其所憂而思明王賢伯也라)고 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孟子 掘井九仞而不及泉猶爲棄井也
십길 우물을 파야하는데, 구길만 파서 샘에 이르지 못하면
우물을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니
井之道也 常也周也,
恒常하고 두루하는 井의 道를 本받아
무슨 일이든 하다말면 아니한만 못하니
盡誠으로 臨하라는
소중한 가르침, 感謝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