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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이 요나단을 죽이려 함, 누가 참된 지도자인가
(사무엘상 20:24~34)
* 본문요약
월삭(초하루 축제일)이 되자 사울은 평소 때와 같이 음식을 먹고, 둘째 날에야 다윗이 왜 식사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다윗이 집안의 매년제에 참여하기 위해 고향 베들레헴으로 갔다고 요나단이 대답하자, 사울이 크게 노하며 그 죽일 놈을 당장 끌어오라고 말합니다. 요나단이 그가 무슨 짓을 했다고 이러시느냐고 묻자, 사울은 요나단을 죽이려고 겨냥까지 하며 창을 던집니다. 이에 요나단은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로 단단히 결심한 줄 알고 크게 고통스러워하며 그 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찬 양 : 351장 (새 321) 날 대속하신 예수께
143장 (새 없음) 십자가에 달리신
* 본문해설
1. 다윗이 왕의 식탁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사울이 궁금해 함(24~26절)
24) 그리하여 다윗은 들에 숨어 있었습니다.
월삭(초하루 축제일)이 되자 왕이 식탁에 앉았습니다.
25) 왕은 평소 때와 같이 벽을 등지고 자기 자리에 앉았고, 요나단은 서 있었으며, 아브넬은
사울 곁에 앉았습니다(70인 역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요나단은 왕의 맞은편에 앉았고, 아브넬은 사울 곁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26) 그러나 그날은 사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나, 월삭(초하루 축제일)의 의식을 치르기에 정결하지 못한(부정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 몸이 정결하지 못하여 오지 못했다고 생각했다(26절) :
어떤 부정한 것을 만지면 부정한 자가 되어 성회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은 다윗이 무엇인가 부정한 것을 만져서 월삭(초하루 축제일)의 성회에 참여할 수 없으니 오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정한 몸으로 성회에 참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울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죽이려 합니다(신앙의 허위의식).
2. 다윗이 왕의 식탁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를 요나단이 설명함(27~29절)
27) 그러나 그 이튿날, 곧 월삭(초하루 축제일)의 둘째 날에도 다윗의 자리가 여전히 비어
있으므로,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 물었습니다. “이새의 아들이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식사에 나오지 아니하느냐?”
28) 요나단이 대답했습니다. “다윗이 베들레헴에 다녀올 수 있도록 허락하여 달라고
저에게 간곡히 요청하였습니다.
29) 자기 가족이 베들레헴 성읍에서 제사(매년제)를 드려야 하는데, 그곳으로 오라는 자기
형의 명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만일 자기가 저(요나단)의 사랑을 받고 있다면 고향으로 가서 형들을 만나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저에게 간청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왕의 식탁에 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3. 사울이 요나단을 죽이려 함(30~34절)
30) 이 말을 듣고 사울은 요나단에게 불같이 화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너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이 사악한 여자의 자식아)! 네가 이새의 아들놈하고 단짝이 된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그런 놈하고 단짝이 되는 것은 너에게도 부끄러운 일이고, 너를 낳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가 되는 일이라는 것을 어찌 알지 못하느냐?
31) 이새의 아들이 이 땅에 살아있는 한 너는 절대로 왕이 될 수 없고, 네 나라도 세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당장 그 죽일 놈을 끌어오너라. 그 놈은 반드시 죽어야만 할 자이다.”
32)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가 죽어야 합니까?
다윗이 대체 무슨 짓을 했다고 이러시는 것입니까?”
33) 그러자 사울이 요나단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 하였습니다(요나단을 찔러 죽이려고 창을
뽑아 겨냥하였습니다). 그제야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34) 이에 요나단이 심히 노하여(화가 치밀어 부르르 떨면서) 식탁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가 다윗을 모욕한 것이 가슴 아파서(너무 고통스러워서, 슬퍼서) 그 날, 곧 그 달의 둘째 날에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가 되는 일이라는 것을(30절) :
고대에서는 한 왕가가 다른 왕가에게 망하면 승리한 왕이 패배한 왕의 모든 여인들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단의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는 것은, 요나단이 다윗을 좋아하는 것은 곧 왕의 여인들이 다른 왕의 노예가 되는 수치를 당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 사울이 요나단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 하였다(33절) :
창을 던지려고만 하고 실제로는 던지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요나단을 겨냥하여 창을 던졌다는 것으로, 사울은 요나단을 죽이기 위해 창을 던졌다는 뜻입니다.
* 묵상 point
1. 신앙의 허위의식 : 정결법은 지키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를 죽이려고 함
월삭(초하루 축제일)이 되자 사울은 평소와 같이 벽을 등지고 자기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합니다. 요나단은 맞은편에 앉았고(혹은 서 있었고), 아브넬은 사울 곁에 앉았으나 다윗의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에는 아마도 다윗에게 무슨 일이 있어서 월삭의 의식을 치르기에 정결하지 못해 참석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 다윗이 가족의 매년제에 참여하러 고향에 갔다는 말을 듣고는 그 죽일 놈을 당장 끌어오라며 불같이 화를 냅니다.
1) 정결법을 존중히 여기는 자가 왜 다윗을 죽이려 하나?
① 사울의 신앙의 내면
여기서 우리는 사울이 신앙의식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사울은 어떤 부정한 것을 만져서 부정한 몸이 되면 성회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정결예법(레 11:39)을 지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무엇인자 만져서는 안 되는 것을 만져서 안 오는 것이라면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② 예배의 의식을 존중히 여기는 사울
정결예법에 따르면 하나님의 성전에서 드려지는 예배나, 그 예배 후에 나누는 식사 자리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인데, 사울은 이것을 가정에서 드리는 월삭의 예배와 그 식사자리까지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울이 예배에 참여하려면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하는 것을 아주 중요한 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③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
그런데 이렇게 예배를 준비하는 것도 정결하게 해야 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도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신다고 생각하는 사울이, 자신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죽이려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자가, 자기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죽이려 하는 것입니다.
● 묵상 : 예배에서 정결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정결법은 예배를 드리는 자가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하고 드려야 한다는 것이므로, 거룩한 예배가 되기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할 법입니다. 그러나 예배에서 정결법보다 먼저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점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아무리 정결하게 했더라도 우상 앞에 절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지금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를 정결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 그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신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를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예배의 의식은 존중하면서 하나님의 뜻은 무시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울이 가진 신앙의 허위의식입니다.
2) 월삭을 지키는 자가 왜 매년제는 무시하나?
사울이 예배의 의식을 존중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월삭은 매월 초하루에 가족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후에 식사를 하는 것이고, 매년제는 먼 지방에 있는 가족까지 모두 모여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며 제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월삭보다 매년제가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져야만 하는 예배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가족끼리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는 월삭은 중요하게 여기면서 매년제는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월삭은 작은 예배라도 자기 집에서 드리는 예배요, 매년제는 그보다 더 중요한 제사라도 자기가 미워하는 다윗의 집에서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예배까지도 자기와 관련된 것만 중요하게 여기는 사울의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 묵상 : 사울에게서 발견되는 신앙의 허위의식
많은 경우에 예배는 거룩하고 정중하게 드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예배가 거룩하게 드려지는 예배입니까? 거룩한 예배라는 단어를 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배의 분위기, 예배당의 환경, 예배의 의식을 집행할 때의 정중한 태도들을 생각합니다. 이 정도는 사울도 지켰습니다. 사울은 심지어 예배를 드리기에 앞서 몸을 정결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까지 지킨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몸을 정결하게 하기까지 하며 거룩하고 정중하게 예배를 드리는 사울이 그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사람을 죽이려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앙의 허위의식을 봅니다. 예배 의식이나 예배의 분위기의 거룩함과 정중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드리는 자의 마음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죽이려는 것을 잔뜩 품고 있으면서 겉으로만 예배 의식의 거룩함과 경건함을 찾는다면 그것이 참된 거룩함이겠습니까? 그런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습니까? 이렇게 겉만 번지르르한 것이 바로 신앙의 허위의식이고, 외식(外飾)하는 신앙입니다.
● 묵상 : 예배의 의식보다 예배를 드리는 자의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마음은 온통 이 세상의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예배 의식과 분위기만 거룩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것은 잘못된 신앙의 허위의식입니다. 예배 의식보다 그 예배를 드리는 자의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간절함으로 예배를 드리십시오.
2. 잘못된 역사 인식 : 하나님의 뜻을 왕의 권한으로 막으려 하는 사울
1) 현실은 바로 인식했으나 그 영적인 의미는 알지 못한 사울
사울은 다윗이 살아있는 한 요나단은 다음 왕이 되지 못할 것이고, 그의 나라도 세워지지 않게 될 것이니, 요나단이 왕이 되려면 머뭇거리지 말고 얼른 다윗을 잡아오는 것입니다. 사울은 자기가 이렇게 다윗을 죽이려 하는 것이 다 자기 아들 요나단을 위한 일인데, 요나단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아버지를 탓한다며 화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다윗이 다음 왕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적어도 사울의 현실 인식은 정확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음 왕이 다윗이 될 것이라는 현실 파악만 바르게 했습니다. 사울이 파악한 것은 거기까지입니다.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까지 깨달아야 했습니다. 다윗을 죽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만일 사울이 정말 다윗을 죽였다고 하더라도, 역사를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또 다른 자를 세워 왕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은 다윗을 죽일 생각을 하지 말고, 그 일을 결정하신 하나님과 상대해야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교만하여 못된 짓을 했다고 고백하고 용서해달라고 구하든지, 이제부터라도 말씀대로 순종할 터이니 과거의 잘못을 용서해달라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께 구하여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기에게 있는 왕의 권한으로 감히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으려 합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왕의 권력으로 막으려 하는 사울
그러므로 사울이 다윗을 죽여야 한다는 것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부인하는 행동입니다. 내가 다윗을 죽일 테니 어디 다윗을 왕으로 세워 보시라고 하나님을 향하여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왕의 권력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막아보겠다는 것입니다.
3) 성령을 훼방하고 하나님을 적대하는 사울
하나님의 뜻이 다윗에게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방해하는 것, 지금 사울이 하는 이 일이 바로 성령을 훼방하는 일입니다. 혹시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내 이익에 반한다고 하여, 혹은 내가 싫어하는 자가 하는 일이라고 하여 반대하거나 방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령을 훼방하는 일입니다. 당장 중지하십시오. 이 일은 우상숭배보다도 더 무서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적대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묵상 : 영적인 의미까지 깨닫는 자가 되십시오.
현실 파악만 하고 영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세상일에만 매인 자가 됩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자녀를 현실 파악만 잘하는 자로 키우려 합니다. 세상의 것을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울 같은 자녀로 키우려고만 합니다. 자녀의 마음에 말씀이 채워져서 영적인 의미까지 깨닫는 자가 되도록 키워합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도 바른 현실 파악뿐만 아니라, 영적인 의미도 바로 깨닫는 자가 되도록 간구하십시오.
3. 자기 아들 요나단을 죽이려고까지 한 사울
요나단이 또 다시 대체 다윗이 무슨 짓을 했기에 이렇게 화를 내시는 것이냐며 아버지 사울에게 따졌습니다. 요나단 역시 다음 왕이 자기가 아니라 다윗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왜 다윗을 죽이려는지를 몰라서 이렇게 묻는 것이 아닙니다. 요나단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권에 집착하고 있는 사울은 아들 요나단의 생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왕권에 집착하는 사울은 그것이 자기 아들 요나단이라도, 다윗이 다음 왕이라는데 동조하는 사람은 원수요 대적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울은 자기의 아들 요나단에게 창을 던졌습니다. 진짜로 아들을 죽일 생각으로 겨냥하여 던진 것입니다. 이 일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동조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아들 요나단까지 죽이려하고 있습니다.
● 묵상 :
사울은 자기를 파멸하게 만드는 일에 전심전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자기를 파멸로 이끄는 일을 소원하며 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저주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내가 소원하며 행하여야 하는데, 사울은 반대로 자기를 지옥에 빠뜨리는 일을 소원하고, 열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나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내가 소원하고 그것을 얻고자 열망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의 마음을 살펴봅시다.
4. 다윗을 모욕한 것을 인하여 크게 고통스러워하는 요나단
사울이 자신을 겨냥하여 창을 던지는 것을 보고 요나단은 사울이 다윗을 죽일 생각이 굳어졌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온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크게 진노하여 식사를 하지 않고 그냥 나옵니다. 그리고는 그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모욕한 일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말대로 자기가 다음 왕이 되지 못하고 다윗이 왕이 된다고 하더라도, 요나단에게는 이 일이 아무 일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 정하셨다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 다윗을 자기도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그에게는 오직 이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 묵상 :
내 이익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판단하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그래야 나도 하나님께 복을 받는 자가 됩니다.
5. 누가 진짜 참된 지도자인가?
1) 강력한 카리스마 형의 지도자 사울
사울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면 어떻게 해서든 빼앗고 차지해야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뜻을 반대하는 사람이면 그것이 자기 아들이라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누군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해준다고 할지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울은 이미 자기의 왕권을 하나님의 말씀과 뜻 위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평생에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단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죄의 고백 역시 왕권을 지키기 위해 형식적으로 한 것 이외에 단 한 번도 진심을 담은 회개의 고백을 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이스라엘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왕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왕인 자신의 말을 따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존중히 여기는 신실한 지도자 형의 요나단
그러나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이루어지기는 더 원하는 사람입니다. 요나단 역시 왕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보다 다윗을 택하셨다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다윗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안전하게 도망하도록 돕고, 심지어 다윗의 대적들을 하나님께서 모두 멸해달라고 기도하기까지 합니다. 다윗의 대적들 속에는 그의 아버지 사울과 요나단 자신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윗의 대적들을 모두 물리치셔서 다윗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왕이 되기를 축복하는 기도를 합니다.
3) 누가 참된 지도자인가?
자기의 욕심을 기어이 차지하고야 마는 탐관오리 스타일의 사울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자기의 욕심을 포기할 줄 아는 요나단 중에서 누가 더 참된 지도자입니까? 당연히 요나단입니다. 만일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아 그 왕위가 요나단에게 이어졌다면 요나단 역시 다윗 못지않은 훌륭한 왕이 됐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나라가 되기에 힘쓰는 왕, 백성들이 고루 평안하게 살도록 하기에 힘쓰는 왕, 연약한 자들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선하고 신실한 왕이 됐을 것입니다.
4) 그러나 사람들은 사울이 더 좋은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울 왕이 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처럼 보입니다. 저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이라도 그 강력한 힘으로 자기를 지켜줄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든든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가 이 나라를 잘 지켜주기만 한다면, 그가 저지르는 탐욕스러운 일쯤은 용서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요나단은 연약하기만 한 자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포용하려 애쓰는 요나단의 모습이 평범한 사람으로는 몰라도, 나라를 이끄는 왕의 제목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외적이 쳐들어올 때 머뭇거리다 나라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울이 요나단보다 더 좋은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연약한 지도자라 생각하는 신실한 지도자 형의 사람 다윗의 때에 이스라엘의 국력이 가장 강력했습니다. 다윗의 때에 사람들은 가장 행복했고 평안했습니다.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가 지도자가 될 때 그 나라가 가장 평안하고 안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5) 저주 받은 욕망 : 이러한 사람들의 생각을 이용하여 더 강력한 권력을 가지려는 사람들
권력에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사람들의 이러한 생각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합니다. 그가 가진 권력으로 연약한 자들의 것을 빼앗고, 자기들을 반대하는 자들을 억압합니다. 언론을 통제하고 양심 있는 자들로 하여금 바른 말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권력을 함부로 사용할수록 사람들은 자신을 향하여 카리스마 있는 믿을만한 지도자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 이런 욕망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저주받은 욕망입니다. ‘카리스마의 사유화’, 즉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자기의 사리사욕을 위해 이용하였기 때문입니다.
* 기도제목
1. 바른 현실 파악뿐 아니라 영적인 의미까지 바르게 파악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내 이익을 얻자고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3. 중보기도 : 이 땅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지도자들이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