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록목사/자는 자여, 어찜이뇨? (욘 1:1-6)
구약에서 요나의 이야기는 매우 유명합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에 가서 그 백성들의 죄악을 질책하고 회개의 복음을 전하도록 명을 받았는데, 거기로 가기를 두려워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을 갔습니다. 이 배가 바다 한 가운데 이르렀을 때 큰 풍랑을 만나 파선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선원과 선객들은 짐을 바다에 풀고 살 길을 구하여 각각 자기가 믿는 신들에게 살려달라고 간청을 하는 다급한 순간이었습니다.
선장이 자기 힘과 지혜로서는 도저히 이 배를 항해할 수도 없고, 또 이 배에 탄 생명을 안전하게 구할 수도 없음을 알고, 마지막으로 모든 선객들에게 저들이 섬기는 신께 살려 달라고 기도하기를 요청했습니다. 선장이 배 밑창에 내려가 보니 거기 한 선객이 쪼그리고 앉아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 다급한 시간에 잠을 자고 있으니 이 성경에 "자는 자여, 어찜이뇨?"하고 그를 깨웠습니다.
오늘 우리가 타고 가는 이 한국이라는 배도 꼭 같은 처지에 있다 하겠습니다. 배가 약간만 한쪽으로 기울어도 몰살할 처지에 있습니다. 한국이 일본처럼 사면이 바다로 둘렸으면 좀 더 자유를 누려도 좋겠고, 또 한쪽에서 약간 도를 지나치게 해도, 그리고 그것을 교육적 의미로라도 좀 그대로 버려두면 좋겠는데, 한국은 일본이 아니니 그럴 수가 없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 서울 중심 백 km선 광역수도권 계획을 발표하는 정부의 계획을 그림으로 표시했는데, 북쪽은 30km에서 50km선으로 푹 패여 들어온 도표를 보게될 때 새삼 이 사실을 잊고 있었구나 했습니다. 한국은 미국이 아닙니다. 넓은 대륙에 2억 인구가 살면 다소 싸움이 일고 방종이 있어도, 그리고 어지간한 건들을 그대로 내 버려도 저절로 순화될 것인데 한국은 그렇지 못합니다. 약간만 기우뚱해도 넘어질 배, 더군다나 이 불완전하고 작은 배가 떠 있는 여기에는 그 어느 지역에서도 별로 못 보는 큰 파도가 연속으로 일어 4천만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새 미국정부가 연구보고서를 공개한 것이 보도되는데, 앞으로 20년 간 기원 2천년까지가 가장 큰 위기라고 했습니다. 성경말씀에 말세의 징조를 말한 바로 그대로입니다. 기근과 전쟁과 질병과 분쟁으로 지구의 존망이 가늠되는 20년 간이라는 것입니다. 풍랑이 격심한 한복판에 우리가 살고 있으며 어느 순간에 끝장을 볼 지 알 수 없는 다급한 자리에 처해 있습니다. 벌써부터도 앞을 내다보는 분들은 인구의 급증, 자원의 고갈, 공해로 인한 환경오염, 극한 무기의 대결 등으로 2천 년대를 그대로 넘길 것인가 하여 경고를 내린 바 있으나, 사람들은 기상 통보관의 시보는 못 들은 체 하고 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기대고 있는 미국은 세계사적으로 볼 때 퇴세로 밀리고 있으며, 적의 세력은 점점 기승을 부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 한국의 처지는 필리핀이나 인도나 싱가폴처럼, 이쪽이 불리하면 저쪽으로 기울고 저쪽이 불안하면 이쪽으로 기우뚱할 처지도 못됩니다. 미국은 천사가 아닙니다. 미국은 한일 합방을 묵인한 대가로 필리핀의 통치권을 얻어낸 나라입니다. 미국의 이익에 합치하지 않으면 한국이 얼굴에 분을 바르고 아양을 떨어도 서슴없이 버리고 떠나지, 미국의 운명을 걸고 지켜주지는 않습니다. 80년대 벽두부터 한국이라는 배는 심한 풍랑에 휘말려 들어 잘못하면 파선 할 위기에 있습니다. 이 때 선장은 배 밑에 잠자는 요나에게 "자는 자여, 어찜이뇨?, 네가 믿는 하나님께 구하여 우리를 살펴야 하지 않겠느냐?" 합니다.
나는 오늘 이 시대를 평범한 시대로 보지 않습니다. 기원 2천년을 막바지에 이르러 인류의 존망을 가늠하는 시기로 봅니다. 지금 우리는 어느 편이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요, 전체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최후적 시기에 도달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시기에 어찌할 것인가? 이 배를 누가 더 잘 저어 갈 것인가? 어느 선장의 기술이 더 좋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논하는 시기가 아닙니다. 선장도 배 밑창에 쭈그리고 잠자는 요나에게 "이 때가 어느 때인 줄 알고 잠자는가? 이리와 네가 믿는 신에게 기도하라"고 외치는 때입니다.
나는 오늘 이 성경을 보고 여러분 성남교우들에게 선지자 요나가 되라는 권고까지는 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오늘 이 성경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권고하고자 하는 바는 여러분들 각자가 바로 이 선장이 되어 달라는 요청입니다. 이 선장은 하나님도 모르고 기독교도 모르고 다만 배운 재주는 배를 인도하는 것뿐인데, 그가 지금 이 다급한 자리에서 자는 자를 깨워 기도하라고 권고한다는 바로 이 사실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 교우들이 가족들 가운데 신앙의 잠을 자고 있는 자, 친구들 가운데 신앙의 잠을 자고 있는 자, 직장동료 가운데 신앙의 잠을 자고 있는 자들을 깨우는 일을 해보자고 권고하려합니다.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이 때가 어느 때라고 태평성대를 누리고 신앙의 잠을 자는가? 성남교회 교우들이 기독교를 모르는 이들에게 전도하는 일은 다음에 하더라도, 이미 신앙을 가졌으나 지금 잠자고 있는 식구들을 일깨우는 일은 우선 열심히 해야 합니다.
성남 교회 교우들 가운데 신앙의 잠자는 식구들을 찾아 잠을 깨우십시다. 깊이 잠자는 자도 깨우고, 왔다 갔다 하면서도 졸음에 못 견디어 겨우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이들도 그 잠을 깨워 정신을 차리게 하고, 일부러 잠자는 체 하고 숨어 있는 자도 찾아 깨워야 합니다. 열렬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촉구하십시다. 내가 깨우지 않으면 안 될 분들이 내 주위에 누구누구인지, 분명히 밝히고 찾아가서 흔들어 깨우도록 합시다. "자는 자여, 어찜이뇨?"
다음, 사명의 잠을 깨우치십시다. 요나는 큰 사명을 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피하여 지금 도망을 하고 있습니다. 이름만 선지자이지, 선지자 일을 하라는 자리에는 가지 않고 슬슬 도망을 치고 숨어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 안에는 각각 사명을 맡은 일꾼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잠자는 일꾼이 누구이신 지 알아보십시다. 코를 골고 자는 일꾼, 반 잠을 자는 일꾼, 눈을 뜨고도 자는 일꾼이 없는가를 찾아보십시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하나님은 나름대로의 사명을 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회피하고 숨어서 잠자는 자가 많습니다. 이들을 찾아 깨우도록 하십시다.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자기 사명에 충성된 자에게 큰일을 맡겨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사명자의 단체입니다. 각자가 각기 맡은 사명을 다하면 교회가 부흥합니다. 교회 안에 여러 기관들도 그 기관을 맡은 사명자들이 깨어서 열심히 일하면 잘 되어 갑니다. 이름만 가지고 잠자는 일꾼이 있으면 발전하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일은 각자에게 사명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입니다. 오늘과 같이 사회 조직도 유기체적으로 된 세상에서는 각자 자기가 맡은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그 사회 전체가 바로 세워져가지 못합니다. 오늘 같은 시대는 사명감에 투철한 선장만이 절대 필요한 존재입니다. 자기 몫의 사명을 감당치 못하는 자가 아무리 훌륭한 말을 해도 무용지물입니다. 자기 맡은 일 한 가지도 제대로 똑똑히 못하는 사람이 천하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오늘은 도덕 사회요 기능 사회이기 때문에 누구의 큰 소리 한마디가 문제가 아니라, 각자 자기 사명을 다함으로 그 사회와 그 조직이 건전하게 움직여 갑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편지와 에베소서에서 교회를 인체에 비하여 기능적 조직체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철저히 민주적이어야 하고, 민주적인 단체가 되기에는 철저히 그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직분을 다하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주사회에는 영웅이 필요 없고, 자기 직책을 철저히 다하는 평범한 시민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발전에 저해되는 요인은 자기 사명을 다하지 않는 사람도 그렇지만, 동시에 남이 할 일까지 앞장서서 혼자 다 해버리려는 지나친 열성당원도 문제됩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이 다함께 그 직책을 나누어지고 함께 일하는 때만이 화합과 단결과 발전이 있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