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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1: 28 권하고 가르침은 - 골 1: 29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골 1: 28 권하고 가르침은 -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
본 절은 목회의 핵심과 그 목적을 보인다.
목회의 핵심은 설교이며 설교의 중심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가르치는 일을 힘쓴다.
그 목적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함이다.
1]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우리가'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메이스'(*)는 일인칭 복수 강조형으로 거짓된 진리를 가르치는 적대자들과 바른 진리를 전파했던 바울, 디모데, 에바브라를 분명하게 구별하려는 의도를 지닌다.
바울과 그의 일행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영광의 소망'되시는 그리스도만을 전했다.
2]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권면과 가르침'은 바울의 사도직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사도의 전도에 의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으로(27절)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계속해서 사도의 가르침을 듣고 따라서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22절) 설 수 있도록 신앙의 진보가 있어야 한다.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위하여 수행하는 직무는 궁극적으로 성도의 완전함을 지향하는 것이다.
바울이 사람들을 권면하며 교훈하는 목적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여 그 사람들로 하여금 각각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에 성숙한 자, 신앙에 성숙한 자)가 되어 하나님 앞에 서게 하려 함이다.
'각 사람'이란 말이 본 절에 세 번이나 있다. 중복체로 역설된 이유는 무엇인가?
Ⓐ 어떤 학설에, 그것은 복음의 보편성을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복음은 어떤 인종이나 민족, 혹은 어떤 특수 계급의 개인들에게 국한된 축복이 아니다.
모든 인종이나 계급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각 사람에게 주시는 특전이다.
Ⓑ 다른 학자들은 바울의 전도와 목회 방법은 각 개인을 상대로 하여 각별한 접촉과 상담에 역점(力點)을 둔다는 것이다.
전도자가 영혼 구원 운동에 있어서 대중 상대로 그들을 지도함은 물론이려니와 각 '개인의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會計)할 자인 것 같이'해야 된다.
둘째 해석이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 히 13: 17 -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 행 20: 20 -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권하고' 이것은 사람의 의지(意志)의 방향을 전환시키기 위한 경고와 훈계를 의미하고, '가르침'은 사람에게 지식을 주기 위한 교수(敎授)를 의미한다.
'지혜'는 1: 9 해석 참조.
'완전'이란 말(*)은 성년(成年)이 된 사람을 가리키는데(Plato legg., p.629), 이 말은 영적으로도 장성한 신앙을 가리킨다.
이것은 결코 절대적 완전 곧, 더 장성할 필요가 없는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Trench, New Testament Synonyms, pp. 75-76).
'세우려 함'은 어떤 학설에 이것은 하나님의 검열과 판정을 받기 위하여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하나님(혹은 그리스도)의 소유인 성도들을 그 소유주이신 하나님께 봉헌(奉獻)함을 의미한다.
이 봉헌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그들이 이 세상에 있을 동안에 전적으로 주님을 위하여 헌신한 삶이다.
* 롬 14: 7-8 -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둘째, 주님의 재림 때에는 그들이 완전히 주님의 것이 되어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됨이다.
* 눅 21: 36 -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 계 19: 7 -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 계 21: 2-4 -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어떤 사본에, 「계셔서 저희 하나님이 되시고」가 있음)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세운다'는 원어(파리스테미)는 '드린다.'(present)는 뜻이며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목회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들을 만들어 하나님께 드리는 일인 것이다.
'완전한 자를 만든다.'는 말은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를 다 포함한다.
첫째, 죄인이 구주 예수를 믿어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을 때 그는 법적으로 완전한 자가 된다.
그것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밝히 증거하는 복음의 내용이다.
그것이 의롭다하심 곧 칭의(稱義)가 의미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히브리서 10: 10, 14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로 말미암아 이미 거룩함을 얻었고 법적으로 영원히 온전케 되었다.
둘째, 법적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은 실제적으로도 거룩하고 의로운 생활을 해야 한다.
그것이 성경이 칭의와 더불어 강조하는 성화(聖化)의 진리이다.
성화의 진리의 강조는 칭의의 복음 전파의 일과 더불어 목회 사역의 다른 한 중요한 부분이다.
성화는 하나님께서 신, 구약 66권의 성경을 주시고 교회를 주신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이다.
성경과 교회는 일차적으로 칭의의 복음을 위해 주어졌지만 또한 성화를 위해서도 주어졌다.
칭의는 성도에게 자유와 평안과 담대함을 주지만 성화는 그것 못지않게 우리에게 기쁨과 용기를 더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의 열매들을 맺어 영생에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롬 6: 22 -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세례 요한은 외치기를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는 나무는 찍어버리리라고 했다.
* 마 3: 8-10 -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야고보서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증언했다.
* 약 2: 17, 26 -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골 1: 29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
1] 이를 위하여
이 말은 앞 절에서 언급했던 바, 성도들을 권면하고 가르쳐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을 가리킨다.
2]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의 능력의 원천이 자기 밖에 있다는 것과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밝히고 있다.
'나도'란 말은 '나도 또한'으로 번역함이 가하다. 이것은 바울이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역시 그 전도와 함께 많은 수고를 하는 사실을 가리킨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바울은 자율적이고 임의적(任意的)인 거짓 교역자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의 분량에 비례하여 피동적으로 사역한 거룩한 사도였다.
* 고후 6: 1 -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 갈 1: 1 -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역사(役事)를 따라'라는 원어(카타 텐 에네르게이안)는 '힘을 따라'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는 말(코피오 아고니조메노스)은 '애쓰며 수고한다.'는 뜻이다.
본 절은 목회의 힘과 수고에 대해 말한다. 목회의 힘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는 목회자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목회자는 그 힘을 힘입어 설교하며 목회한다.
그러나 목회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 편에서 애쓰고 수고함으로 된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목회도 성실한 노력없이 좋은 결실을 기대할 수 없다.
달란트 비유(마 25: 14-30)나 므나 비유(눅 19: 11-27)는 복음의 일꾼들이 게으르지 말고 성실하게 일하여 열매를 맺으라고 주께서 강조하신 내용이다.
3]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바울이 사도직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원천이 그리스도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사도의 수동성 즉 밖으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기계처럼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진가를 드러내는 것은 바울 자신의 사도적 소명 의식의 철저성과 전적 헌신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울이 이방 선교를 수행하면서 괴로움을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자 교회를 위해 헌신한 것은(24절), 그리스도의 능력주심과 아울러 바울의 사도적 충성을 증거해 주는 것이다.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의 '힘을 다하여'라는 말은 '애써'라고 번역할 수 있는바, 경주자가 달음질하는 것같이 애쓰는 정형을 의미한다. 바울이 자기의 성역을 경주에 비유하여 말한 실례는 성경에 또 있다.
* 고전 9: 25-26 -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 빌 2: 16 -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수고하노라.'는 이 말은 피곤해지기까지 노력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위한 바울의 경성(警醒)은 과연 극도에 달하였다.
* 고전 4: 11-13 - 11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13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
* 고후 11: 23-33 - 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 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32 다메섹에서 아레다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쌔 33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하였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을 조심 없이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 4: 12-16)
결론적으로24절부터 29절까지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소망이 되심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3일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만에 승천하셨고 지금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지만 장차 영광중에 하늘로부터 다시 내려오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영광의 소망이시다.
그가 다시 오실 때 우리는 다 영광스럽게 부활하고 변화되며 영광스러운 새 세계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둘째, 목사 된 우리들 그리고 넓게는 교회의 일꾼 된 우리 모두들은 성실하게 애쓰며 수고하는 자들이 되어야한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서도 낙심치 않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 예수께서 우리의 힘과 능력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게으르거나 불성실하지 말고 그의 능력을 힘입어 애쓰며 수고해야 한다.
교회의 일꾼들은 성실하게 자기의 할 일을 다 감당해야 한다.
셋째, 우리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
법적으로는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그 안에 거함으로 이미 완전한 자가 되었다.
이것이 복음의 내용이다.
이것이 칭의(稱義)의 진리이다.
이것이 우리의 기쁨의 이유요, 우리의 자유의 근거요, 우리의 담대함의 원인이다.
그러나 의롭다하심을 받은 자들은 또한 실제적으로도 거룩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지식과 인격과 삶에 있어서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온전한 인격자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이것이 성화(聖化)의 진리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