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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제1강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삶에 휘몰아치는 사막의 모래폭풍이 결코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라, 우리를 정금같이 빚어내시려는 거룩한 섭리임을 확인했습니다. 사막은 우리의 힘을 빼고 오직 십자가의 은혜만을 붙들게 하는 은혜의 지성소입니다.
그러나 동역자 여러분, 사막의 훈련 중에서 가장 견디기 힘들고 뼈를 깎는 고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타는 듯한 목마름입니까? 맹수들의 위협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침묵'**과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Waiting)'**입니다.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늘은 놋쇠처럼 굳게 닫혀 있는 것 같고, 내 남편은 죽어가는데 주님은 응답하지 않으실 때, 우리의 믿음은 가장 맹렬한 풀무불 시험을 통과하게 됩니다.
오늘 저는 이 '기다림'이 결코 수동적인 체념이나 시간 낭비가 아니라, 기적을 잉태하는 가장 위대한 영적 전투임을 성경의 말씀을 통해 선포하고자 합니다.
[사막의 샘물 심화 강해] 대장정의 두 번째 시간!
**[제2강: 기다림의 영광, 침묵 속의 응답]**을 눈물과 기도로 선포합니다!
[사막의 샘물 심화 강해]
제2강: 기다림의 영광, 침묵 속의 응답
부제: 인본주의의 조급함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늘의 시간표에 순종하라
본문 말씀: 이사야 40장 31절, 요한복음 11장 6절, 시편 37장 7절
참고 도서: Mrs. Charles E. Cowman, 『Streams in the Desert』 (기다림과 침묵에 관한 묵상)
1. 서론: 응답되지 않는 기도 앞에서 무너지는 신앙
동역자 여러분, 우리 시대의 성도들은 '인스턴트'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자판기 버튼을 누르면 곧바로 음료수가 떨어지듯, 기도하면 즉각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고 병이 낫고 축복이 쏟아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복음이 아니라, 세속적인 기복 신앙과 인본주의가 만들어낸 가짜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인간의 시계와 다릅니다. 제가 남편 찰스의 병상 곁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던 6년의 세월은, 매일매일이 하나님의 침묵을 견뎌야 하는 피 말리는 영적 사투였습니다. "하나님, 왜 침묵하십니까? 주님의 복음을 위해 청춘을 바친 종이 죽어가는데 왜 가만히 계십니까!"
그러나 그 침묵의 터널 끝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졸거나 주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거절이 아니라, 우리의 작은 이성을 산산조각 내고 더 크고 위대한 영광을 준비하시는 **'거룩한 작업 시간'**이었습니다.
2. 본론: 말씀이 증언하는 기다림의 3가지 영광
첫째, 기다림은 체념이 아니라 가장 역동적인 믿음의 밧줄이다 (이사야 40:31)
우리는 종종 '기다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저앉아 있는 나약한 상태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기다림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사야 40장 31절을 펴십시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기서 '앙망하다(기다리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카바(Qavah)'의 본래 의미는 '실을 꼬아서 단단한 밧줄을 만들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동역자 여러분, 기다림은 가만히 누워있는 것이 아닙니다! 절망의 벼랑 끝에서, 나비의 날갯짓처럼 연약한 내 영혼의 실오라기들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에 칭칭 동여매는 가장 치열하고 역동적인 영적 전투입니다!
내 감정, 내 이성, 내 환경은 끝났다고 소리칠 때,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이라는 반석에 나를 결박하는 행위가 바로 '기다림'입니다. 조급한 인본주의자들은 기다리지 못하고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자신을 결박하고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다리는 자에게는, 하늘 보좌로부터 세상이 알지 못하는 새 힘과 영원한 **'공급과 충만'**이 쏟아져 내립니다. 독수리가 폭풍우를 뚫고 솟아오르듯, 기다리는 자만이 그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비상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침묵은 더 큰 기적을 위한 인큐베이터다 (요한복음 11:6)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침묵 하나를 발견합니다. 바로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급히 사람을 보내어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긴급 기도를 올렸습니다. 예수님이 당장 달려오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요한복음 11장 6절입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예수님은 지체하셨습니다. 침묵하셨습니다. 결국 그 침묵의 이틀 동안 나사로는 죽어 무덤에 갇혔고, 시체에서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게 되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슴은 새카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왜 예수님은 지체하셨습니까? 그들을 사랑하지 않아서입니까? 아닙니다! 병든 자를 고치는 것(치유)보다, 죽은 자를 살려내어 하나님의 영광을 온 우주에 드러내는 것(부활)이 예수님의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동역자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기도가 허공을 치는 것 같습니까? 응답이 지체되어 사역과 가정에 썩은 냄새가 나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원하는 작은 치유의 기적이 응답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망 권세를 박살 내는 위대한 **'부활의 기적'**을 여러분의 삶에 잉태시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를 버리신 증거가 아니라, 더 거대한 영광을 준비하시는 기적의 인큐베이터입니다. 이 십자가의 역설을 굳게 믿으십시오!
셋째, 조급함이라는 우상을 깨뜨리고 주권에 항복하라 (시편 37:7)
기다림의 사막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마지막 영적 과제는 바로 '나의 뜻'을 완전히 죽이는 것입니다.
시편 37장 7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자유주의와 세속에 물든 현대인들은 자기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 상황을 견디지 못합니다. 내가 정해놓은 시간(Deadline) 안에 하나님이 움직이셔야 한다고 겁박합니다. 그러나 참된 정통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 시간표를 박살 내고 전능자의 주권에 절대적으로 항복하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풀무불 속에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아,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었구나. 내가 하나님의 보좌를 차지하고 앉아 내 뜻대로 조종하려 했구나!"
사막의 침묵 속에서 우리의 자아(Ego)는 십자가에 철저히 못 박힙니다. 내 뜻이 죽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살아서 역사하시도록 나를 완전히 비우는 시간, 그것이 바로 기다림의 위대한 영광입니다. 자아의 죽음 없이는 결코 하늘의 신령한 **'공급과 충만'**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온전히 항복할 때, 우리는 드디어 하나님의 평강을 맛보게 됩니다.
3. 적용: 강단에서 '기다림의 복음'을 선포하여 교회를 무장시키라
존경하는 주의 종 여러분! 환난의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온 성도들을 어떻게 무장시켜야 하겠습니까? 인간의 위로를 멈추고 강단에서 이 십자가의 기다림을 강력하게 선포하십시오!
1) 속성 재배를 멈추고, 십자가의 인내를 전 세대에 가르치십시오.
주일학교 아이들부터 청년, 그리고 백발의 장년에 이르기까지 "빨리빨리"를 외치는 세속의 풍조를 강단에서 책망하십시오. 신앙은 패스트푸드가 아닙니다. 수십 년의 세월을 십자가 앞에 엎드려 견뎌내는 인내의 뿌리 없이 어떻게 영광의 열매를 맺겠습니까? 기도가 즉시 응답되지 않아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뚝심 있는 성도, 하나님의 주권에 자기 삶을 던질 줄 아는 거룩한 영적 거인들로 교회를 훈련시키십시오.
2) '침묵'을 두려워하는 성도들의 영안을 열어 주십시오.
교회 안에는 수년째 병상에 누워있는 성도, 재정의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가장, 자녀의 방황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얄팍한 긍정의 힘을 설교하지 마십시오.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바로 지금, 무덤 속에서 부활의 생명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대속을 믿으십시오. 부활의 능력을 믿으십시오!"라고 외치며 그들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어 주십시오.
3) 인간의 꾀를 버리고 하늘의 절대적인 '공급'을 의지하게 하십시오.
조급함은 불신앙의 가장 명확한 증거입니다. 응답이 늦어진다고 세상과 타협하거나, 인간적인 꼼수(악한 꾀)를 부리려는 성도들을 말씀의 검으로 막아서십시오. 비록 눈앞의 현실이 캄캄할지라도,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마르지 않는 한 우리를 향한 하늘의 **'공급과 충만'**은 결코 중단되지 않음을 확신하게 하십시오. 견디는 자가 승리합니다!
4. 결론 및 기도
말씀을 맺겠습니다.
십자가의 좁은 길을 걸어가는 동역자 여러분.
사막의 메마름보다 더 고통스러운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결코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어둠 속에서 오직 믿음의 밧줄 하나만 쥐고 십자가에 매달려 버티는 그 처절한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온 우주에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우리 인간의 조급한 시간표를 찢어버립시다.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침묵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손을 굳게 부여잡고 묵묵히 전진하는 강단과 성도들이 될 때, 마침내 닫힌 하늘 문이 열리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는 부활의 영광이 쏟아질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인내의 영성과 부활의 소망을 위한 파송 기도]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모든 시간의 주인이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참으로 어리석고 조급하여,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신 뜻을 헤아리지 못한 채 내 시간표대로 응답해 달라고 떼를 쓰던 인본주의자였음을 회개합니다.
십자가의 고난 속에서 침묵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지 못하고, 고난이 올 때마다 세상의 얄팍한 방법으로 도망치려 했던 우리의 죄를 보혈로 씻어 주시옵소서!
주여! 마지막 시대의 거센 환난을 맞이할 우리 목회자들의 강단에 거룩한 '기다림의 영성'을 불어넣어 주시옵소서!
질병과 재정의 압박, 가족의 문제로 수년째 캄캄한 무덤 곁에서 울고 있는 성도들에게 다가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침묵이 곧 더 큰 기적을 잉태하는 부활의 전야임을 깨닫게 하시고, 세상의 모든 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옵소서.
절망의 사막 한가운데서도 오직 말씀의 밧줄에 나를 결박하여,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영원한 생명의 '공급과 충만'을 누리게 하옵소서!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하신 우리의 영원한 소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뜨겁게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동역자 여러분, 이것이 캄캄한 밤을 견뎌내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거룩한 무기, **[제2강: 기다림의 영광, 침묵 속의 응답]**입니다.
우리는 이제 고통 속에서도 기다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이 캄캄하고 기약 없는 감옥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공격적이고 위대한 영적 행동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탄의 머리를 박살 내고 지옥의 문을 흔드는 **'밤에 부르는 찬양'**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절망의 잿더미 위에서, 십자가의 피를 힘입어 기적을 창조해 내는 **[제3강: 밤에 부르는 찬양의 기적]**으로 계속해서 돌격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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