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미애의 다므기 여행(10회)
*다므기: ‘더불어, 함께’의 옛말
선우미애
월간『한맥문학』등단. 중앙일보시조백일장, 금호문화시조백일장, 신사임당주부백일장, 새한국문학상, 동포문학상, 국제펜문학 강원펜문학번역작품상, 춘천여성문학상, 노천명문학상 수상. 춘천여성문학회 사무국장, 강원한국수필문학회·국제펜클럽 강원지부 이사. 강원문인협회, 춘천문인협회, 춘천여성문학회, 강원여성문학회, 국제펜클럽 강원지부, 강원한국수필문학회 회원. 춘천여성문학회·강원한국 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역임. 시집『자연을 닮은 그대는』『섬 같은 사람』『까닭 없이 그대가 그리운 날에는』『산다는 것은』(전자 출판) 『봉선화 소녀』 anotherworld123@hanmail.net
인생은 여행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뭉클뭉클 살아 있음을 느낀다. 때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주르륵 눈물처럼 남아 있는 여행도 있고, 때로는
인생의 그 어디쯤에서 머물러 미소처럼 떠오르는 환희를 느끼기도 한다. 또한, 진정으로 남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하는 시간들도
온다. 그래서 나는 낯선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을 좋아한다. 일상에서 떠나 낯선 곳으로부터 오는 적당한 객창감을 즐기는 것 또한
여행의 매력이다.
여행도 병이라 했던가? 그러나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걷지도 못하고 여행을 하기에 힘에 부치지 못할 때가 있나니, 권력이
있거나 없거나 돈이 많거나 없거나 그 누구에게도 올 것이고 보면, 몸이 허락하는 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또
하나의 큰 행운이다.
여행은 누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느끼게 하고 자연스럽게 감동을 주고 잃어가는 마음을 찾아가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늘 여행을 꿈꾸고, 또 다른 곳을 향해 떠나는 일을 상상하며 살아간다.
봄빛이 창살 가득 들어오는 기분이다. 잠깐의 시간들이지만 내가 여행한 곳들을 순서대로 실을 계획이다. 저절로 오는 계절처럼 자연스럽게 여행지를 소개하며 그 마음 따라 함께 공유하고픈 마음에서이다.
생이 짧다는데 그 안에 있는 여행은 또한 얼마나 짧은 것이겠는가? 그 속의 일부를 보고서는 전체를 바라보고 온 듯 쓰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운 마음이다. 단지, 우리는 산을 다 보지 않고도 산을 이야기할 수 있듯이 여행을 인생에 넣어 삶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인생 또한 여행이기 때문이다.
하얼빈 빙등축제를 가다
—오롯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은하수를 맴돌던 별 하나 창문가에 서성이고 겨울밤의 추위에 달빛이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오늘 밤은 더욱 외로움이 깊은 건지 모르겠다.
작년까지만 해도 추운 겨울과 눈이 오는 겨울을 좋아했었는데 올해는 유난히 추위가 싫다. 아침이면 수시로 하얀 이불처럼 덮여 있는 눈이 몹시 시렵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몇 달 사이로 수차례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약해진몸의 신호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디 그뿐이던가? 추위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웅크린 어깨가 올해는 부쩍 눈에 들어와 마음을 더욱 저리게 하는 것이다. 가쁘던 호흡을 가다듬고 겨울 추위 속에서 응달에 감추어져 여러 가지 이유로 아픈 눈물을 흘리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인생은 흘린 눈물의 깊이만큼 아름답다는 말을 애써 기억해보며 우두커니 창밖을 보고 있자니 문득 작년의 겨울이 생각이 난다.

작년 겨울, 겨울 동화 같은 세상으로 유명해진 중국의 하얼빈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하얼빈은 지리적으로 중국의 끝 북방에 위치하고 있다. 빙등축제가 열리는 하얼빈은 중국에서 가장 추운 도시 중의 하나로‘동방의 작은 파리’라 불릴 만큼 중국과 서방 문화가 연결되는 곳이다.
내가 도착했을 무렵, 하얼빈에서는 세계적인 축제가 한참 열리고 있었다. 칼날 같은 바람이 불었고, 매서운 영하의 맹추위가 벼르기라도 한 듯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하얼빈까지 오는 자동차의 유리창문은 얼음이 쩍쩍 붙어 있어 강추위를 실감할 수 있었다. 1963년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이곳은 역사의 깊이를 자랑할 만큼 규모가 상당했다. 세계적인 건축물이나 중국 고대 건축물, 동물과 미술품 등의 모형들이 얼음으로 만들어져 화려한 조명으로 옷을 입고 있었다. 영하 28도 이하의 추위를 잊을 정도로 수많은 얼음 결정체의 불빛은 찬란했다. 세계인들의 눈빛이 환상의 조각품들을 바라보며 어린아이 같은 환호성을 질렀다.

등과 발바닥에는 핫팩을 붙이고 확실하게 준비해온 방한복을 입어서인지 그럭저럭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여기에 쓰이는 모든 얼음은 송화강에서 가져온 것으로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에 또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호~! 입김으로 나오는 순간 수증기가 바로 얼어붙어서 마스크가 하얗게 얼어붙었다. 남자들의 콧수염은 여지없이 하얗다. 온몸을 가지가지 털옷으로 둘둘 감싼 채, 얼음풍경에 대한 호기심의 눈빛들은 한없이 반짝거렸다. 지날 때마다 얼음에서는 냉기를 내뿜고 있었지만 모인 사람들의 온기 또한 만만치 않았다. 가히 형언하기 어려운 압도적인 풍광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형형색색으로 색깔을 달리하는 뜨거운 전구가 얼음에 닿아 있는데 어찌 얼음이 녹을 줄 모르는가 말이다. 혹독한 추위에도 사람들은 미끄럼틀을 타면서 연실 웃음을 자아내며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는 아이스링크장으로 갔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쇼를 보여 주었다. 쇼가 끝난 후에는 하나둘 링크장으로 나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몸을 달구었다. 마치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응석이라도 풀어놓듯이 사람들은 그렇게 흥에 겨워했다. 그때 어디선가 손을 번쩍 들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소리를 지르며 뱅그르르 몸을 돌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곳으로 일제히 시선을 모은 사람들은 무엇인가 알아들었다는 눈치로 함께 고성을 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섞이는 순간이었다. 여기저기 카메라 터지는 소리, 비디오 촬영을 하는 사람, 제각각 열심히 추억을 기록하기 위한 행동을 했다. 지나온 삶 속을 돌이켜보면 그 무엇 하나라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리.
잠시 눈을 돌리면 세상에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곳이 참으로 많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하는 여행은 심장을 오롯이 두근거리게 하는 것이다.

하얼빈은 우리나라에게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도시이기도 하다. 그것은 항일애국운동가인 안중근 의사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대한 독립의 얼과 한이 서려 있는 안중근 의사가 감옥에 있던 뤼순감옥을 들렀다. 중국의 많은 사람들은 안중근 의사를 존경한다고 한다. 두려움 없이 행동한 용기는 이들에게 대단한 존경심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 정부에서도 위대한 독립투사 중 한 명으로 안중근 의사를 뽑는다고 했다.
뤼순감옥에서 사용했던 죄수들의 그릇이며 사람을 고문할 때 사용했던 도구들과 발목에 찼던 사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 간수들마저도 존경했다고 한다. 그래서 독방에서 책을 읽게 했다는데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1909년 10월 26일 아침에 울렸던 총성과“코리아”를 외쳤던 그날의 울림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날,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열차가 하얼빈 역으로 도착하여 회견을 마치고 열차에서 내리는 순간, 안중근 의사는 준비한 대로 군중 속에서 뛰어나와 권총을 발사하게 되었고, 드디어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성공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일본군에 의해 재판을 받게 되었다.
안중근 의사는 재판을 받는 동안 내내 당당하고 의연한 자세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죽음을 선고 받고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안중근 의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음을 선고 받은 후, 안중근 의사는 동생에게“……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으니 그의 꿋꿋한 의지는 민족의 길을 위한 큰 바위 같았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와의 옥중 서신이 눈에 들어왔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맘 먹지 말고 죽어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잠시 묵념의 기도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눈보라가 내리치고 있었다. 넓은 대지가 흑백의 필름처럼 고요히 시간을 지나고있었다. 안중근 의사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었다. 안타까운 떨림이 전해져오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어디 대한민국의 독립을 외치며 목숨을 잃은 사람이 이 한 사람뿐이던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지켜낸 지금의 내 조국은 얼마나 값진 것일진대, 나 역시 올바른 역사관을 저버리고 사는 것은 아니었는지 깊숙이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보며 눈보라 치는 길을 따라 숙연한 발걸음을 옮겼다.

하얼빈 중심부에는 성 소피아 성당이 있다. 유럽풍의 분위기를 풍기며 고즈넉이 자리 잡은 성당 주변에는 비둘기가 수십 마리 하늘을 평화롭게 날고 있었다.1903년 중동 철로가 개통되고 제정 러시아군이 중국 하얼빈에 들어오게 되면서 러시아 병사들의 예배를 위하여 1907년에 목조건물인 성소피아 성당을 건립하였다. 초록의 돔 형태와 붉은 색 벽돌로 조화를 이룬 건물은 고즈넉하고 은은한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비잔틴 양식의 러시아정교회 성당 내부로 들어가니 고풍스럽고 멋스러움이 고즈넉한 숨을 몰아쉬게 했다. 2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동시에 미사를 드릴 수 있다 하니 우아함과 함께 규모가 상당함을 알 수 있었다. 가만히 실눈으로 바라다보던 세속의 삶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 뭉클거리는 감정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늘 그리워하던 얼굴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진한 감동으로 가만히 눈을 감았다.
쇠창으로 옆구리 찔리어 먹물 같은 피를 흘리셨던 십자가의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뜨거운 피가 온몸을 돌고 돌았다. 어쩌면 안중근 의사도 성 소피아 성당을 다녀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직하게 불러보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두 시간 동안 내내 창밖을 내다보며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까? 다 음 여행을 위해 열심 히 일을 해야 하리라. 이제는 아득히 먼 그리움이 되어버린 기억들이 한 줌의 별이 되어 외롭게 창문가를 서성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별 하나가 겨울 추위에 떨고 있는 것 같은 밤이다.
춥다. 강물 속으로 흔들리던 달빛이 주저앉아 있다. 물감을 풀어 놓아도 이처럼 아름답지 못하리라.
첫댓글 멋진 곳 다녀 오셨습니다. 부럼-- 그리고 글 생생하게 다가오네요. 멋져요^^
~~~ㅎㅎ (꾸벅)
교수님, 건강 조심하시고 시간 내 만나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