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제:2015.2.18(수) 섣달 그믐날, 2.21(토) 정월 초사흘
*어디서:08:50 판암역 시내버스승강장(하나은행앞) 집결, 옥천행 607번 타고 09:30 군북면사무소 집결
*어떻게:대전대 종점,동신고 종점행 모든 시내버스 판암역 하차, 지하철 판암역 1번출구
*어디로:18일:식장산 둘레길 제1구간 탄현길, 21일:식장산둘레길 제2구간 성왕의 길
*챙길것:참가비는 없으며 간편한 등산복장,식수,도시락은 필수,곡차와 먹거리는 알아서...
*궁금하시면 돌까마귀에게 전화 하세요(010-4413-6565)
*개인차량은 회수가 아주 불편하니 꼭 대중교통을 이용하세요
식장산 둘레길 제1구간 탄현길
도상거리 약 9km, 4시간반: 군북면사무소-이백리 평지-갯골저수지-자모리 중간말-윗자모실-자모소류지-사방댐-임도-장고개(탄현)-세천공원 철탑사거리-삼정동 안삼정-바깥삼정-망태골-판암동

대전 시민이 즐겨 찾는 새천공원의 저수지를 지나 계곡을 오르다 보면 좌측으로 운동기구와 벤치가 놓여있는 작은 광장에서 주 등산로와 갈라지는 길이 나오니 꾀꼬리봉과 국사봉 사이의 계곡길로 능선에 올라서면 넓찍한 소나무 밭이 펼쳐지는 고개마루다. 등산지도에는 장고개로 표시되어 있고 대전광역시와 충청북도를 가르는 경계선으로 대전 동구 삼정동에서 충북 옥천군 군북면 자모리로 넘어가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던 고개 길인데 옥천 쪽에서는 자모실고개 라고도 부르는 이 고개가 바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탄현(炭峴)이라고 많은 역사학자들이 보고 있다.
삼국사기(서기501년:백제 동성왕 23년)에 "탄현에 목책(木柵)을 설치하여 신라에 대비하였다"는 기록도 있고 백제의 충신 성충(成忠)의 임종상서(臨終上書)에도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는다 하니, 원컨대 한 말씀 드리고 죽고자 합니다. 신은 항상 시세의 변화를 관찰하는데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무릇 군사를 쓸 때에는 그 지리(地理)를 살펴 상류(上流)에 처하여 적세를 늦춰 놓은 뒤에야 가히 보존할 수 있사오니 만약 다른 나라의 군대가 쳐들어 오면 육로로는 탄현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수군은 기벌포의 언덕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십시오"라며 탄현에서 적을 막을 것을 강조하였다. 또 한사람의 충신 흥수(興首)도 의자왕의 잘못을 막으려다 귀양을 가게 되었지만 서기 660년(의자왕 20년)에 신라가 5만 군사로 쳐들어 오자 거듭 "탄현이 백제의 요충지이며 이곳에서는 한 사람의 창 한자루로 만 사람을 막을수 있는 곳(一夫單槍 萬人莫當)이니 마땅히 용맹한 군사를 뽑아 이곳을 지켜야 한다" 고 하였다. 그러나 의자왕은 성충과 흥수의 말을 듣지 않아 결국 백제의 멸망을 가져 오는데 이때 신라군은 무방비의 탄현을 넘어서 한밭벌을 가로 질러 사비성으로 향하든 중 연산의 황산벌에서 계백장군의 5천결사대를 만나 주춤하다가 화랑관창의 죽음으로 사기가 오른 신라군이 5천결사대를 물리치고 사비성을 함락하였으니 이 고개는 백제의 멸망을 앞당긴 고개이다.신라가 백제의 고토인 웅진에 주(州)를 설치하고 경주를 오가던 통로가 바로 탄현에서 삼징이(삼정동),널바위(판암동)를 지나 지금의 유성으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1년 뒤 661년에 일어난 백제 유민들의 백제부흥운동에서도 백제부흥군이 신라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이 고개마루를 지켰다.
탄현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으나 설혹 다른곳에서 발견된다 하더라도 주요 교통로 로서의 그 역사적 의의는 크다, 옥천과 유성을 이어주는 고개로 나제 동맹의 평화시대에는 두 나라의 교역로로 몫을 다하다가 충신의 말을 듣지않은 군주의 우매함으로 백제 멸망을 앞당긴 이 고개는 1902년 경부선 철길이 놓이고 일제 강점기 국도4호선이 증약 세천을 거쳐 개통되기 전까지 많은 장꾼들이 대전 인동장과 옥천장을 오가던 곳으로 고개마루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사시사철 콸콸 솟는 샘이 있고 주막집이었을 법한 집터의 흔적도 몇곳 살펴볼수 있다.
식장산 둘레길 제2구간:성왕의 길
도상거리 약 12km, 6시간: 충북 옥천군 군북면사무소-노란리-임도-다리골-월전리-오동리 환촌-하동리 마곡실-동오리 장중1교-사양리 서성골-마랑골-진골-뱀골-논골-닭재-대전광역시 동구 삼괴동 덕산마을


충북 옥천군 군북면사무소가 있는 이백리에서 시작된 길은 노란리 골짜기를 타고 식장산 동릉을 넘어 월전리로 내려와 1450여년전 백제의 성왕이 웅진성(공주)를 떠나 계현(닭재)을 넘어 왔던 길을 따라 대전시 동구 삼괴동의 덕산마을까지 이어진다.
삼국사기에 전해오는 이야기로 신라의 배신으로 나제동맹이 깨어진 서기 554년, 백제 성왕이 고시산군(옥천)에 성을 쌓기위해 나가 있는 왕자 여창(후일 위덕왕)을 위문하기 위해 닭재(鷄峴)를 넘어 구천(서화천)을 따라 내려 오다가 신라의 매복군에게 납치되어 죽임을 당한다. 성왕이 잡혀 죽었다는 구천의 위치를 찾아보면 구진벼루라는 지명이 금산 추부에서 흘러 내려온 서화천이 옥천과 합류하기 전에 크게 휘돌아 나가는 월전리 군전마을의 옛 이름으로 전해 오며 구진벼루(구천을 건너는 벼랑,개狗,나루津,벼루=벼랑)가 한자로 표기되며 변했을 것으로 여러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아마도 신라군은 금산 추부의 추풍천이 옥천으로 내려오며 소욱천으로 불리다가 서대산과 장령산 골짜기를 내려온 금천과 만나 서화천으로 이름이 바뀌는 동평리(군서면 소재지)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우연히 호위 기병 50명만 대리고 닭재를 넘어 구천(서화천)을 따라 내려오는 성왕을 사로잡아 구진벼루에서 백제노비 출신의 신라 군관 고도로 하여금 목을 배게 한것으로 생각된다. 곤룡재 아래에 있는 사양리의 진골과 식장산 독수리봉 능선의 남녘 오동리의 무중골, 하동리의 마곡실(말골)등의 지명도 김유신의 아버지 김무력 장군이 이곳에 주둔하면서 신라군을 정비하여 관산성을 공격하였다는 전설과 일맥 통하는 점이 있는듯 하다.
서화천(구천)을 가운데 두고 동남쪽으로 서산성,삼양리토성,삼정산성(관산성),룡봉성,동평성,마성산성이 천,성,장,마 줄기를 따라 늘어서 있고 맞은편 북서쪽 식장산 줄기에는 말동산(성치산성),곤룡재 보루,동오리고개(사양리산성),독수리봉 보루,510봉 보루,할애비산성(511봉),할미산성(노고산성)에 이어 경부선 철길과 경부고속도로를 넘어 황골의 고리산 제1보루부터 제6보루(동봉)까지 이어져 있으니 신라,백제의 땅따먹기 전쟁이 아주 치열했던 곳이다. 금산군 추부면 마전을 지나 요광원에서 국도 17호선과 갈라지는 국도37호선이 옥천의 서정교차로를 지나 보은까지 새로 생기자 옛 길은 길이름이 성왕로로 바뀌었다.


첫댓글 1구간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요?
9km 5시간반 점심시간 포함
혹시 엄청 어려운 산행인진요?
그냥 마을길,임도길입니다
18일 처음으로 참석하려구요..
근데 알아볼수나 있을런지 걱정되는데요~ㅎㅎ
오셔서 아주 잘생긴 까마귀 찾으시면 됩니다
@돌 까마귀 눈 크게 뜨고 찾아보겠습니다~^^
설 연휴인데 가고싶은 욕심이 더 컸습니다. 저는 삭제했지만 참석하시는분들 행복한 시간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