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영혼의 고백: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나!]
이지은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나.’라는 생각을 오랜 시간 해왔다. 어릴 때부터 나는 유난히 까탈스럽고 예민한 아기였다. 기저귀가 조금만 축축해도 금방 “앙~”하고 울어대는 아기였다. 그리고 유달리 자주 아프기도 했던 아이였다. 우리 집 현관 서랍장 젤 위 칸에는 항상 비상금이 들어있었다. 내가 열이 펄펄 나고 아프기 시작하면 그 돈을 가지고 바로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실로 달려가야만 했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처럼 실제 사건을 각색한 프로그램이던지, ‘전설의 고향’ 같은 무서운 영화를 보고 난 밤이면 나는 무서움에 짓눌러 한숨도 자지 못했다. 눈을 감을 수 없었고, 내 방에서 화장실 가는 것도 무서워 엄마를 매번 깨우곤 했다. 이런 나를 보고 엄마, 아빠는 이게 다 기가 허해서 그런 거라고 몸에 좋다는 각종 음식과 약을 사 오셨다.
직접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메기를 사와, 펄떡펄떡 움직이는 메기를 큰 통에 쑤셔 넣느라 고군분투하시던 엄마의 뒷모습이 또렷이 기억난다. 벌써 수십 년 전 일지만.
엄마가 나에게 “너한테는 세상에서 몸에 좋다고 하는 거 다 먹였어.”라는 말이 허풍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안다. 그렇게 먹었던 각종 약재와 좋은 음식들이 돈값을 했던 건지, 나는 점차 커가면서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 건강한 청소년 그리고 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또한, 나는 어릴 때부터 심약했던 아이였다. 유리 멘탈인 나 자신을 너무 싫어해 왔다. 사소한 일에도 긴장하고 주위의 작은 변화에도 난 쉬이 흔들렸고 무너져 버렸다. 학창 시절 시험 기간 내내 나는 패닉 그 상태였다. 오늘 안에 시험 범위를 다 보지 못해 다음날 시험을 망쳐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나를 지배했다. 그래서 공부도 못하고 두려움과 무서움에 울기만 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어려운 문제가 시험지 초반에 나오면 나는 패닉에 빠진다. 이번 시험을 망칠지 모른다는 공포가 나를 매번 집어삼켰다. 학교 내신 물론 각종 자격증, 어학 시험, 면접 등 모든 종류의 시험 앞에 나는 극심한 불안함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시험 보기 직전까지 화장실만 들락날락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솔직히 지금도 자주 그런 꿈을 꾼다. 다음 주가 시험인데, 시험 범위조차 몰라 패닉에 빠져버린 나.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걸 제출 당일까지 전혀 모르다 있다가 절망에 빠진 나.
대학을 졸업 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1과목을 듣지 않아 졸업이 취소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막 발견한 나.
자고 일어나면 이 모든 일이 꿈이라는 게 얼떨떨하다. 그 두려움과 공포, 걱정 등 무거운 감정의 잔향이 내 마음에 머무른다. 그러면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해준다. ‘나는 더 이상 시험을 앞둔 학생이 아니다. 나는 무사히 대학을 졸업했다. 나는 시험 걱정이 없는 직장인이다.’
가족들에게는 항상 까칠하고 예민한 딸, 누나, 언니이다. 나도 내가 예민해지고 싶지 않은데, 예민하게 신경들이 곤두서는 걸 어쩌라는 건지. 나에게 뭐라 하는 가족들에게 나는 이렇게 항변한다. “이런 나를 데리고 사는 나 자신은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겠냐고!” 이럴 때면 나를 임신하던 기간에 고된 시집살이로 스트레스가 많았던 엄마한테 그 원망의 화살을 돌린다. 그때 좀 더 엄마가 편안했다면 내가 이렇게 생겨먹었을까. ‘아! 쓰고 보니 천하의 불효녀다.’
나는 쓸데없이 눈치 빠르고, 감정 이입 잘하고, 마음도 여리다. 누군가는 이런 점들이 살면서 도움이 되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글쎄, 지금까지는 오히려 더 피곤하기만 했다. 괜히 눈치는 빨라서 다른 사람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도 알아채 낸다. 그러면 소심한 나는 ‘혹시 내가 말실수를 한 게 있나,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같이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한다. 과도하게 감정 이입을 잘해서 슬픈 영화나 ‘동물의 농장’ 같은 프로그램도 못 본다. 인간에게 학대당한 동물들이 불쌍하다고 자주 울던 나는 이제는 울지 않지만 괴로움, 죄책감의 무거운 감정들이 나를 며칠간 짓누른다.
이러한 기질을 가진 나와 엄한 아빠는 그야말로 나에게는 최악의 조합이었다. 아빠는 엄하셨고, 자녀 교육에도 열정적인 분이셨다. 어릴 때 나는 퇴근하는 아빠 표정을 재빨리 알아채어 오늘은 과연 숙제 검사를 할 것 인가를 파악하는 건 어릴 적 나의 필살기였다. 기분이 찌뿌드드 언짢아 보이시는 날이면 숙제 검사는 필수요, 거기에 더해 긴한 잔소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놀았던 날, 눈치 빠른 나는 대충 공부 하는 시늉해 잔소리를 피해 갔지만, 눈치 없는 동생은 그 융단폭격을 온전히 다 맞았다. 그래서 눈치가 빨라서 이럴 때는 좋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내 답은 “절대!”
아빠 감정 기폭에 따라 숙제 검사의 유무, 숙제의 분량 등이 달라졌기에 항상 아빠의 감정을 예민하게 지켜봐야 하는 나날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 아빠 부부싸움도 아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 집의 그 냉랭한 기운이 내 예민 레이더에 걸려들었다면 나는 더더욱이 엄마, 아빠 눈치를 봐야 했다.
나도 명확히 안다. 이런 나의 성향과 기질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장난스레 하는 말이 있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고,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린다고.” 무당이나 하는 소리를 한다고 지인들은 타박하지만 사실이다. 보고 싶지 않은데 순간 미묘하게 변하는 상대방의 표정이 보이고, 별로 듣고 싶지 않은데 귀가 밝은 건지 남들이 작은 소리로 나누는 대화도 잘 들린다.
그래서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비밀들도 많이 알게 된다. 아는 게 많으면 피곤하다. 일부러 타인에게 무심해지려고 애쓴다. 보여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을 자주 한다. 진작에 눈치챘지만 전혀 몰랐다는 듯 행동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척’을 하면 살아가야 하는 게 그나마 내가 찾은 방법이랄까.
아직 나는 나 자신과 가까워지지 못한 것 같다. 다만 ‘어차피 이렇게 태어났으니 데리고 잘 살아야지.’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라는 진부한 말이 나에게는 아직 와닿지 않는다. 포기, 받아들임 그 사이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는 나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어떤 감정의 카테고리에 머물러 있는 걸까?
첫댓글 나는 어떤 아빠였고 지금은 어떤지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분명한 것은 아빠는 자녀들 걱정과 사랑이 최우선입니다.
지은님은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자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서 몸에 좋다고 하는 거 다 해 먹이는 부모님 만나는 것 쉬운 일은 아닙니다. ㅎㅎㅎ 지은님께서 나를 소재로 한 글을 '조금 마음에 안 드는 나'로 잡으셔서 이렇게 쓰신 것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지은님께서는 한 가지에 깊이 파고드는 능력이 있으시잖아요. 제가 생각해 보건데, 지은님은 이 글과 반대되는 주제인 '마음에 드는 나'로 반드시 글을 써 보셔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얼른 적어 보기에도 예쁘다, 똑똑하다, 말을 잘 한다, 관찰을 잘한다, 깊이 사유한다 등 좋은 점이 엄청 많거든요. 그래서 거듭 권해 드립니다. 이 글과 반대되는 주제로 꼭 글을 써 보시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시고 월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