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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6: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행 16: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행 16: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행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행 16: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행 16: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행 16: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행 16: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행 16: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행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행 16: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행 16: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행 16: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유대인들이 회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요건이 있었다. 남자 10명이 있어야 회당을 지을 수 있었다. 그런데 빌립보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회당이 지어지지 않고 있었고,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는 여인들은 강가에서 기도 모임을 하고 있었다. 바울은 그 때 그 여자들 가운데 한 명인 루디아를 만났고, 루디아의 헌신으로 루디아의 집에서 교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빌립보를 떠난 후에도 변함 없이 바울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해 주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할 때 이렇게 말했다.
(빌 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빌 1: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빌 1: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특이한 점은 다른 서신들과는 달리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 안에는 기쁨이라는 단어가 16번 이상 나온다는 것이다. 사람은 그 누구를 생각할 때 기쁨, 엔돌핀이 생겨난다. 그 누구만 생각하면 기뻐진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 있어서 그런 교회였다.
특히 바울이 어려울 때 빌립보 교회는 바울을 떠나지 않은 진정한 친구같은 교회였다.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 1: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얼마나 감사했으면 이렇게까지 말했겠는가.
(빌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귀신 들려 점치는 여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이용해서 돈을 벌던 사람이 화가 나서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빌립보의 관리들 앞에 세우고 모함을 하였다. 바울이 빌립보 도시 사람들을 해롭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과 함께 온 사람들이 일제히 바울을 고발하니 빌립보 관리들이 정식으로 재판도 하지 않고 바울과 실라를 때리고 차꼬를 채우고 감옥에 가두었다. 그들은 그 다음 날 바울과 실라가 별 죄가 없는 것을 알고 하인들에게 놓아 주려고 명령하였다. 그 때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인 것을 밝혔고, 관리들은 당황했다. 로마시민권자는 재판 절차 없이 고문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황급히 와서 바울에게 빌립보를 떠나 줄 것을 청하였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을 때 한밤중에 기도하고 찬송하자 지진이 일어나서 바울과 실라와 모든 죄수들의 착고가 땅에서 떨어져 나가고 감옥 문도 망가져서 열려버렸다. 기도와 찬송은 세상을 움직인다. 진심으로 하는 기도와 찬양에 하나님은 움직이신다. 바울과 실라의 찬양과 기도가 지진으로 나타났 듯, 우리의 찬양과 기도는 상황의 변화로 나타난다.
간수는 자다가 깨어서 혼비백산하였다. 죄수들이 도망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였다. 그 때 어두운 감옥 속에서 바울의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다 여기 있으니 네 몸을 해치지 말라." 간수는 등불을 들고 어두운 감옥 안으로 뛰어들어가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다. 그는 바울과 실라가 왜 감옥에 들어왔는지 간수로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관리하는 감옥에 들어온 바울과 실라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왜 죄도 없는데 저렇게 맞고 감옥에 들어올 수 밖에 없었는가? 그가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인데 그 복음이 무엇인가? 기회가 되면 옥에 들어가서 한 번 진지하게 꼭 물어봐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뜻밖의 기회가 온 것이다. 감옥 문이 열릴만큼 격렬한 지진이 일어났다. 죄수들이 도망친 줄 알고 두려워서 자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죄수들이 도망치지 않았으니 자살하지 말라는 바울의 목소리가 어두운 옥 안에서 들려왔다. 그는 바울 앞으로 달려가서 엎드려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바울은 그에게 복음을 들려 주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복음을 받아 들이고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여 자기와 온 식구들이 세례를 받았다.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이 간수의 일을 자세히 말한 것을 보면, 간수는 그 후 빌립보 교회의 신실한 성도가 되어 바울의 선교 사역을 전적으로 지원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빌립보 교회는 첫 성도 루디아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성도가 된 감옥의 간수까지 신실한 일꾼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불어나서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돈을 좇아 사는 사람이 나온다. 귀신 들렸던 여자의 포주이다. 항상 돈만 좇아 살다보니 진리와 정의에는 관심이 없다. 자신의 여종이 귀신 드렸는데 쫓아 주었으면 감사해야 하는 일 아닌가? 인기를 좇아 사는 사람도 나온다.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인 줄 모르고 때리고 가두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어서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유지하려고 죄도 없는 사람을 때리고 가두었다. 이제 곧 나라의 선거가 있다고 하는데, 정치인들 중에는 정의보다는 인기에 치중하는 사람들이 많다.
간수는 죄수였던 바울과 실라가 도망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는가? 아니다. 그는 바울을 만나기 전부터 진리와 구원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인 바울을 발견하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엎드려고 진리를 구했던 것이다.
(행 16: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그리고 그는 그 자세로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경건히 받아들였다. 이것이 진리를 대하는 그의 태도였다.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서 데리고 나가서 씻겨 주고 자기만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는 가족들 모두와 함께 세례를 받은 후에, 음식을 잘 차려주고 기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행 16: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행 16: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대심방은 태도이다. 대심방을 대하는 태도에서 축복이 결정된다. 예배시간에 일찍 오는 것도 태도이고, 하나님께 나올 때 최선의 옷을 입는 것도 태도이고 예배를 준비하는 것도 태도이고, 예배에 임하는 것도 태도이고, 예배당을 대하는 것도 태도이고, 목사를 대하는 것도 태도이다. 모든 것이 태도의 문제이고, 태도가 올바르지 않을 때 축복은 없다. 마술사 시몬은 성도였지만 신령한 것을 대하는 태도가 잘못 되어 있었다.
(행 8:18)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행 8:19)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행 8:20)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행 8:21)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는 것은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나타나심의 상징인 법궤를 옮길 때 찬양 소리가 높았지만, 법궤를 운반하던 사람들이 법궤가 흔들거려 땅에 떨어지려고 하자 손으로 법궤를 잡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죽은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님을 아름답고 큰 소리로 찬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만나는 것이다.
궤를 옮기던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의 시간이 지나서 다시 궤를 옮기려고 할 때, 다윗과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신중하게 법궤를 옮겨 왔다.
간수가 바울에게 했던 질문은 예수님을 우물에서 만난 여인의 질문과 똑 같은 것이다. 여인은 창녀와 같이 돈을 어떻게 벌 수 있는지 묻지 않았다. 진리와 예배와 구원에 대하여 물었다.
(요 4: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요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우물가의 여인은 비록 창녀 같은 삶을 살았지만 진리에 대하여, 구원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고 있다가 예수님을 만나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바울에게 엎드린 간수의 자세는 안식일에 강가에서 진리와 구원을 찾고 있었던 루디아와 여인들의 자세와 똑같은 것이다. 그 여인들은 강가에서 우물가의 여인들처럼 진리와 구원의 길(도)을 찾다가 바울을 만났다.
(히 12:16)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히 12: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나는 운전학원에서 도로 주행 시험 채점을 할 때 처음 시험에 임하는 수험생들의 태도를 본다. 아무리 운전에 소질이 있다고 해도 한손으로 핸들을 잡고 운전하거나 살아서 움직이는 도로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운전하는 태도를 보이면 엄격한 채점을 가한다. 운전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대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맺음)
예수님은 구하는 자가 받고 찾는 자가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라고 하셨다. 돈이나 인기나 권력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멸망이 올 것이다. 우리가 찾는 것은 진리와 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