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4-01
정 중 동(靜中動)
박병민목사(새터공동체)
작년에 전국의 대학교수들에게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분야를 정리할 수 있는 사자성어(四字成語)가 무엇이겠는가? 하고 물었더니, 제일 많은 16%의 사람이 대답하기를 우왕좌왕(右往左往)이었다고 한다. 올해는 바라기를 파죽지세(破竹之勢), 탄탄대로(坦坦大路)이었으면 한다.
로마의 왕과 귀족들은 평민보다 앞서서 솔선수범과 절제된 행동으로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특히 포에니전쟁 때에는 전쟁세를 신설하고 재산이 많은 원로원들이 더 많은 세금 부담을 강조했다. 여기서 유래된 것으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의 말로“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쓰여졌다. 곧 사회적 신분이 높으면 높을수록 사회적 의무에 대해서 더욱 자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치판의 이전투구(泥田鬪狗)는 계속된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큰 기업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내어놓는 억지의 돈 상자를 차 데기로 거두어들이고, 이제는 그 속을 들추려하니까 뻔뻔스러워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정치인들, 그들을 비호하기 위해 불체포특권(不逮捕特權)이라는 것을 이용하는 같은 일당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말이 제격이다. 국회의원들이 청렴(淸廉)의 의무(義務)가 있다는 것은 왜 모르는가? 조선시대에는 각 관아에서 천거하여 뽑힌 결백한 관리를 따로 청백리(淸白吏)라 일컬었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거리에 앉아있는, 거지 앞에 바구니가 두 개가 놓여져 있었다. 길을 걸어가던 사람이 멈추어 서서 지폐 한 장을 그 곳에 넣어주면서 물었다. “왜 바구니가 하나가 아닌 두 개가 놓여져 있습니까?” 그 앉아있는 거지가 말하기를 “장사가 잘되어서 체인점을 낸 것입니다” 계속되는 지난해의 불황이, 올해에는 그 거지처럼 호황으로 이어졌으면 한다는 이야기가 버스 안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옛날에는 태평성대(太平聖代)라는, 나라님에 대한 백성들의 성세(聖世)의 극찬의 소리가 혹간 들렸던 때도 있었겠으나, 지금에는 태평성대(太平盛大)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여겨진다. 정치적으로는 술렁임 속에서 점차로 태평(太平)을 찾아가고, 경제적으로는 커가기도 하여야겠지만 그보다 속이 꽉 들어차서 들끓어대는 성한 그런 꼴이 되기를 바래본다. 곧 정(靜)적인 정치 동(動)적인 경제, 그래서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나타나는 정중동(靜中動)의 국가적 모습이 되었으면 한다.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립보서 4:8).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립보서 4:11-12).
공동체 이야기
기 생(寄生)의 반대말은 공 생(共生)
그 누구가 이 외딴의 산골에 찾아들 때이면 맨 앞서서 처음으로 반기는 우리의 아무개가 있다. 그는 보통의 우리들처럼 그저 반가워하는 모습이 아니다. 몸을 다하여, 말처럼 앞뒤를 안 가리고, 그러면서 그의 몸을 내어 맡기듯 하다 시피하며 사람 맞이를 한다. 그리고 얼싸안고 살갗을 갔다 맞대고 접촉하기를 좋아한다. 그는 처음 보는 이들도 낮 익은 사람처럼 예사로 스스럼없이 대한다. 그는 우리가 갖는 체면과 위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의 솔직한 모습을 나이 많으신 분들은 좋아라 하신다. 반면에 젊으신 분들은 다가드는 그를 부담스러워 하기도 하는 것 같다. 여러 번 함께 하였던 이들이 때로는 그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옷가지 등을 챙겨다 주시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그는 받아드리는 데에 더욱 익숙해져갔는지도 모른다. 어제는 인근 교회의 전도사님께서 최 군을 병원에 진료 받게 하기 위하여 이곳에 들르셨다. 그럴 때에 그가 그분에게 무엇이 먹고 싶다고 그것을 사 달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그 분이 계시기도 한 그 자리에서, 그에게 꾸중하였다. “누구에게 뭐 가져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그 분이 가신 후에도 화를 내며 꾸지람을 주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하여보니, 항상 거저 받으며 살아가는 너와 나의 우리 모두의 삶의 형태가 별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어떻게 말하면 기대어 살다시피 하는 우리들이 남 말할 처지는 못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삶을 확대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공존공생(共存共生)하여야 할 것이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성서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상호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늘 부족하다. 받는데 익숙해져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우리의 신앙은 다분히 표현적이어야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자기 고백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올 새해부터는 함께 밥을 먹을 때에 기도하는 것을 돌아가면서 하기로 하였다. 말 못하는 사람은 그런 대로, 말 잘하는 사람은 또한 잘하는 대로 할 일이다. 소위 잘하고 못하고가 뭐 그렇게 중요한 일이겠는가? 두 손을 모으듯이 우리들의 감사의 마음을 모으면 될 것이다.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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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최성재
최영애
지명수
정무래
박종만
어귀녀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 금산 제원적십자사는 금산밀알의집 새터공동체 그리고 이웃 장애인 분들과 함께 갖는 목요일 모임을 유상현 회장님 댁에서 12월 18일, 04년 1월 8일, 15일에 각각 가졌습니다 군북교회(한성국 목사)에서 같이하여주셨습니다.
* 03년 12월 29일에 제원교회 조종국 목사님과 논산의 대둔산 수락랜드의 도움으로 영흥교회 교우들과 공동체 식구들이 함께 목욕을 하고, 영흥교회에서 준비해 오신 점심식사를 같이하였습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이정애.강동철외3인.되살미사랑나눔봉사대(김장섭).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2인).대전방송(유영수외5인).성공회금산나눔의집(1인).그리스도의집(3인).일불사(2인).어귀녀.정무래.오정교회(2인)최영애.추부나눔의집.지명수.김기홍.만나교회(전남홍외11인).동산베이커리.대전제일교회.최선희.금산사랑회(이홍구외2인).김종택.금산읍교회(김철우외4인)썬터치(1인).최영득.주식회사EG(이광형).수당교회(노경섭외1인).대한적십자금산군추부봉사회(2인).최영수외2인.용전교회(김봉화외2인).신평교회(김춘근외1인)채윤기(박현실).대한적십자금산군추부봉사회(4인).이원교회성가대(5인).진명구영흥교회(박찬응외5인).지방교회여전도회(4인).문화교회(최동주).세광교회.대산산업(2인).향림원(2인).김영진.대전노회대덕교회.김종택.남일중앙교회(9인).신건태.무형교회여전도회(김점수).박종만대전일보(김세원외2인).김철우외1인.무명.도원교회(김의택).추부제일교회.성남교회.이정애.옥천동부교회.통계청(임명선외4인)
(호칭은생략하였습니다)